뉴저지 대국
미국까지 가서 바둑을 둔다꼬? 이눔이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려!
저승 땅에서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린다.
2017년 1월, 서울의 고교동창회 카페에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서울기행’이란 글을 올렸는데 미국 뉴저지에 사는 L(jongslee)이 댓글을 달면서 바둑 얘기가 나오게 된다.
가을에 미국 갈 일이 있다니까, 뉴저지에 바둑광인 K 선배가 있는데 미국 동부의 강자란다. 난 거처가 캘리포니아 쪽인데 그 동네는 너무 멀지않나? 촌놈 보래이, 요즘 세상 비행기 타면 잠깐이야. 그리하여 대륙횡단 일전을 겨루는 이벤트가 성사된 것이다. 이름하여 ‘뉴저지 대국’….
그해 8월 미국 땅에 상륙한 이후 구경도 구경이려니와 내 머리에선 이 남아일언중천금의 실천이 머리를 떠난 적이 없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딸이 일주일짜리 동부 여행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금방 문제가 생긴다.
숙소까지 자기가 마련한다고 난리를 치는 친구…. 우리 셋을 포함한 작은 교민회까지 기획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딸의 메뉴에는 시골 뉴저지가 애초에 있을 리 없다. 1박2일 나이아가라 패키지를 빼면 나머지는 전부 뉴욕 맨해튼이 무대요 그것도 촘촘한 일정으로 짜여 있다.
마누라와 딸을 구슬려야 한다. 말하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머나먼 거리를 좁혀야 하는 것이다. 말 대신 눈으로 감으로 꽤 심각한 대화가 이어진다.
금쪽같은 시간, 뉴욕까지 와서 바둑이 뭐야. 랜드마크 급이 차고도 넘치는데.
방에 누워서도 오대양 육대주 별의별 구경거리를 다 보는 세상이 아닌가. 아빠는 남아일언중천금이야.
결국 마누라의 한나절 동행, 딸의 자유 시간으로 결론이 난다. 말이 동행이지 감독관으로서의 소임이 주어진 것이겠지만. 어쨌든 교민회는 취소되고 나로선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일단 먼저 나이아가라에 갔다. 좋았다. 긴 시간 오고가면서 스치는 풍광 느끼는 분위기, 굳이 이국의 정취니 뭐니 따질 것도 없이 여행이란 정말 좋은 것이야! 외친다. 비용 절약의 차원에서 중국인여행사를 이용했으니 중국 냄새도 맡은 셈이고. 중국인에겐 금지된 투어, 다리 건너 캐나다 땅까지 밟고서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감한 것도 덤의 행운이라 할 것이다.
마릴린 먼로의 출세작이라는 영화 ‘나이아가라’(1953년 작)를 본 것은 그즈음일 게다. 먼로가 불륜남을 시켜 남편을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도로 당한다는 칙칙한 스토리…. 지금도 어쩌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리면 장엄한 물보라 속에 그녀의 20대 농염한 자태가 바로 링크되니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9월 3일 낮 12시, 두 쌍 부부가 도킹에 성공한다. 친구가 사는 뉴저지 주의 팰리세이즈파크(Palisades Park)란 동네, 코리아타운의 한 중화요리 집에서다.
버스 내리는 곳을 놓치고 말았다. 딸이 맨해튼의 버스터미널에서 신신당부한 행동요령을 깜박한 것이다. 덩치가 어마무시한 흑인 기사에게 토막 영어를 구사하기가 찜찜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어쨌든 한참을 지나친 곳에 무작정 내렸고, 우버택시를 불러 위기를 모면한다. 여행의 양념인 약간의 스릴이 따라서일까. 이역의 짜장면 한 그릇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중학생 때 먹던 그 짜장면 맛이랄까. 수십 년 만의 만남이지만 어제런듯, 시끄럽고 즐겁다. 고향 친구 학교 친구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는 유유자적, 허드슨 강변과 뉴저지 주립공원을 정처 없이 헤맨다. 허드슨 강, 그야말로 도도한 물의 흐름이다. 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링컨 터널과 조지 워싱턴 다리…. 역사에 우뚝한 두 위인이 허드슨 강에서 더욱 크게 클로즈업되어 다가온다.
선배에게 대접 받은 한식 저녁은 3개월 체류기간 중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먹거리보다 더한 구경거리, 그것은 낯선 땅에서 성공한 동포의 생활을 보는 즐거움이리라. 정원의 기화요초, 선배의 피아노 연주, 격조 있는 공간 배치, 교가 합창….
드디어 반상 19로 오로전쟁(烏鷺戰爭)이 전개된다. 아마5단, 나의 집백 호선, 제한시간 20분. 깊어가는 밤, 누군가는 져야 하는 긴박한 승부의 호흡…. 결국 시간은 흐르고 돌 소리가 멎으면서 나의 불계패로 막을 내린다.
호스트에 대한 예의, 돌아갈 길에 대한 걱정, 패전의 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런저런 무대장치에 너무 감동한 내 감정의 널뛰기가 변수였을 것이다.
감정에서 해방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을 무너트린 인류사적 사건은 그 일 년 전의 일이었다. 하여튼 돌부처가 되어 승리를 챙기는 것보다 인간적 패배의 결말이 싫지 않았고 또 순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튿날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을 갔다.
긴 시간 땡볕에 줄을 서고 배를 타기 위한 보안검색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하기야 9.11의 현장이 바로 코앞이긴 하다. 인산인해, 인종전시장이란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흑백적황 남녀노소…. 아! ‘자유’란 것,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기단까지 포함하면 93미터, 높고 높은 가시왕관의 끝까지 억척같이 올라가는 사람들, 나는 어질어질해지고 만다. 그리고 자유란 것이, 갈망하는 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멀리멀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땅이 인간 정신의 진보를 실험하는 넓은 무대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결코 하나가 되기 힘든 많은 것들을 자유와 평등의 울타리 안에 넣으려는….
요즈음도 나는 자유란 말이 생각날 때마다 인간의 언어로는 이만큼 미국을 잘 표현하는 키워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그 후 폐섬유증이란 난치의 병이 악화되어 요양원을 들락거렸다. 그러면서도 근황을 씩씩하게 알리는 전화는 보통 30분을 넘는다. 떴다 하면 수천 킬로씩 휘파람을 불며 트레일러를 몰던 근육질의 강골, 신대륙의 자연과 정신을 속 깊이 찬양하던 그는 씩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젊은 날 연좌제로 Main Street〔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그로서는, 그 올가미를 벗어나 신천지를 선택한 그로서는, ‘대가리가 깨져도 문빠’일 것이다.
바둑을 인생의 축도라고 한다면, 5년 전 그 시점 그는 끝내기의 수순을 밟고 있었고, 금년 봄 삶의 돌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미국 여행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뉴저지 대국인 바, 친구도 그때의 한나절 시절인연을 먼 곳에서나마 괜찮은 그림으로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