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에 용인으로 떠난 가을 여행
2020년 10월 1일(음력 8월 15일),한가위 추석명절에 박 병무 원장과 가을 남자 두 사람이 가을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추석명절 기간동안 혼자서 있어야만 할 따분한 상황이라며, 여행을 함께 따나 보자는 요청을 해 왔기 때문이다.
본래는 3~4일쯤 숙박을 해가며 가볼까도 생각했지만,그런 장기 계획을 갑자기 실행에 옮긴다는 건 그리 쉽지않은 일....
해서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어디론가 가볼 요량으로 작정하고, 그 첫번째 여행지를 용인 와우정사로 택했다.
천안에서 와우정사를 가는 길이기에, 기왕이면 길목에 있는 미리내 성지를 먼저 들아보기로 했다.
미리내 성지의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수 우리말로서 시궁산(時宮山 515m)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자리하고 있다.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양평, 용인, 안성, 화성, 시흥 일대와, 충청도 천안 목천, 진천 배티, 동골 등, 교회 초기에 카톨릭 성도들이 신유박해(1801년)를 거치면서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 중에서, 중부내륙 용인과 안성에 깊숙이 위치한 초기 비밀교회로써, 이곳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들을 이루며 주로 척박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곳이다.
또한 미리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어 더욱 유명한 카톨릭 성지이기도 하다.
미리내 성지순례를 마치고,와우정사를 찾아가는 길에, 용인에 둥지를 틀고 계신다는 정 재룡 원로목사님께 전화했더니,함께 만나 동행하기로 쾌히 승락해 주셨고....
용인에 도착하니 딱 점심 때가 되었는데,식당을 찾았는데 도무지 문을 연 곳이 눈에 띄질않아 한동안 애를 먹다가,어쩌다 중국집 하나를 발견하여 시장기를 때우고,그리고 곧장 와우정사로 달렸다.
와우정사는 볼거리가 꽤 많은 곳인데다,산책과 힐링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기도 하다.
와우정사를 한바퀴 돌아본후,찾집에 들려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인근에 있는 법륜사를 마져 가보기로 했다.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
건물안에 김대건 신부 묘소가 있다.
으름이 주렁주렁
대한불교 열반종 연화산 와우정사
와우정사(臥牛精舍) 는 경기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의 48개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위치한 사찰로 1970년 실향민인 해월삼장법사 (속명 김해근)가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며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산으로 3천여 점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여러 불상 중 절 입구에 세워진 불두(佛頭)와 산중턱에 있는 와불(臥佛)이 유명하다. 높이가 8m 인 불두는 초대형이며, 세계규모의 와불(누워있는 불상)은 높이 3m, 길이 12m 에 이르는 것으로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만든 것이다.
경내에 있는 거대한 불두와 황동 10만근으로 10년간 만든 장육오존불, 무게가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88 서울올림픽 때 타종),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미륵반가사유상이 있으며, 석조약사여래불 등이 있다. 세계최대이며 유일한 석가모니 불고행상(佛苦行像)도 와우정사의 자랑거리이다. 이 불고행상의 본체는 백옥, 좌대는 청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반전에 이르는 계단옆의 통일의 돌탑은 세계각국 성지에서 가져온 돌 한개 한개를 모아 쌓아가고 있다.
와우정사에는 인도·미얀마·스리랑카·중국·태국 등에서 모셔온 불상 3천 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세계 각국의 불교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세계만불전(萬佛殿)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와우정사는 삼보(三寶)를 다 봉안하고 있다. 인도·스리랑카·미얀마에서 들여온 석가모니 불진신사리(佛眞身舍利), 파리어대장경과 산스크리스트어 장경(藏經) 등이 봉안되어 있다.
와우정사 대웅전
수금중
찾집을 찾아서....
법륜사는 상륜큰스님께서 삼각산 승가사 주지 역임 중에, 승가사 제일 선원에서 새벽 입선 정진 도중
관세음보살의 현몽으로 인연 닿아 창건한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선방에 앉아 고요히 정진하고 있는 스님 앞에
수백 그루 밤나무와 감나무 등이 우거진 아담한 산자락이 보였답니다.
스님께서 그 산기슭으로 들어가 보니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었고,그곳에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커다란 청룡이 하늘로 높이 치솟으며 푸른 물을 뿜어내었습니다.
청룡이 사라진 자리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투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수행하라.”
스님은 곧바로 그곳에 앉아 자세를 바로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조금 전의 일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큰방[선방] 좌복 위에는 본래대로 스님 혼자 고요히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몽을 보고 난 얼마 뒤에,
상륜 큰스님께서는 현재의 문수산 법륜사 도량 터가 정진 중에 보았던 그곳임을 알아보고 인연을 맺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번 생(生) 한 번은 태어나지 않았다.’
생각하자시며 이 세상에 다시없는 특별하고 위풍당당한
비구니 수행 가람을 만들고자 불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백두산 홍송(紅松)을 비롯해 우리나라 금강송, 육송 등을 겸비하였는데,
백두산 홍송을 직접 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들어간 불모(佛母) 처사님 등이 현지에서 6개월간 상주하며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상황을 감내하고서야 20만 재의 백두산 홍송을 벌채하여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배를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화강암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익산황등석으로 대웅전의 본존불, 협시보살, 광배를 비롯한 4개의 석조연화주와 계단,난간 등을 조성했습니다.
이렇게 상륜 큰스님께서는 문수산 법륜사가 천 년을 이어가고 만년 역사에
길이 남을 비구니 수행도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출가 수행자나 재가 수행자들의 공부 도량이 되고,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를 서원하셨습니다.
독특한 양식의 대웅전
때마침 다비식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