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94]“인생 땡큐 땡큐”
#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인 것은 진리일 터.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도 있지 않은가. 나쁜 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굳이 나쁠 것은 없다고 하겠다. 기독교와 성경에서 강조하는 “범사에 감사하라”도 그 맥락일 듯. 고향의 한 성님은 무슨 얘기를 나누다가도 “땡큐 땡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제안이나 의견이 당신의 마음에 들면 곧바로 “땡큐 땡큐”를 연발하는데, 자주 듣다보니 좋은 일이 있으면, 어느새 “땡큐”라고 하는 나를 발견하고 웃기도 했다. 오늘 아침 전주의 친구집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내놓은 유리잔<사진>의 바깥면에 <태어나줘서 땡큐/함께 해줘서 땡큐>라는 문구가 써있었다. 문득 그 성님이 생각나 친구에게 그분에게 선물을 하자고 했다. 형수님과 나란히 이 잔으로 커피를 마시면 땡큐땡큐일 터, 40여년간 함께 살아낸 세월속 수많은 추억들을 되새기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시버시란 이런 것일 듯. 나를 태어나게 해준 분은 부모님이니까 부모에게 땡큐, 나라는 부족한 사람을 사랑하며 여태껏 함께 살아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아내(남편)이므로 당연히, 영원한 땡큐가 아닌가.
# 마침, 요양원에 계신 100살 아버지의 전화다. 아버지는 끼니끼니 하루에도 최소 3번 이상 “밥 먹어야제?”라는 말을 한 후 “애쓴다” “애써라”라는 말로 전화를 끊으신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속으로 ‘뭘 애쓴다는 말이요? 애쓴 것 1도 없어 그 말이 듣기 민망하니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오늘 아침 친구와 ‘땡큐 땡큐’ 말을 하면서는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누구라도 산다는 것은 얘쓰는 일이 아닐까? 고향을 지키며(?) 잘 살고 있으니 ‘애쓴다’ 앞으로도 잘 살라는 뜻으로 ‘애써라’고 하시는 말씀을 성가시게 생각한 내가 불효자임을 반성했다. 아버지야말로 1세기를 살아오시느라 진짜 애쓴 '최고봉'이신 것을. 앞으로는 “예, 애쓸 게요”라고 대답을 해야겠다며 친구와 웃었다.
# 지난 주, 초딩친구 남녀 10여명과 칠순을 기념하여 제주를 2박3일 다녀왔다. 대부분 전주 등 인근에 사니 1년에 몇 차례 만나기는 해도, 몇 년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 “칠십”이 됐냐는 것이다. 이 나이까지 ‘한 생’을 살아오느라 “애썼다” “앞으로도 잘 살자”며 서로 위로의 덕담을 하며 손을 맞잡고 어깨를 두들려주며 껴안기도 했다. 그렇다. 지금껏 큰 탈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애쓴 것”이 아니면 무엇이 애쓴 것이겠는가. 한 가정의 아들 딸로, 형제가 되어 자라나, 결혼을 하여 ‘한 여자의 남편’(한 남자의 아내)으로, 대부분 두 아이의 아버지(어머니)가 되었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산 친구도 있고, 격랑처럼 힘들게 살아온 친구들도 있지만(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처럼 왕년에는 칠십을 넘긴 사람이 드물었다), 지금은 ‘100세 인생’이 아닌가. 나의 건강, 우리의 행복이 최고라며 웃는 시간이 많았던 사흘의 짧은 여행도 추억속에 묻히고, 봄날이 사정없이 피어나는 개나리 벚꽃 등 무수한 봄꽃과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 ‘지식 소매상’ 유시민이 신간을 냈다는데,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제목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 여성(강순희.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우홍선의 아내)의 삶과 한국 현대사를 함께 담은 구술(口述)의 기록물이라는데, 그분의 육성을 듣고 싶다. 그분은 유시민씨에게 “사랑으로 자랐고,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었고, 사랑으로 비극을 견디며 살아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랑으로) 살다보니, 힘든 삶도 살아지더라”며 “미워하며 살았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 사랑이 나를 살게 했다”는 말에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결론은 사랑인 것을. 우리 서로 땡큐 땡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