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월) 아가 4:7-5:1 찬송 387장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개역 개정)
- 초야를 맞이한 신랑 신부의 기쁨의 노래 -
오늘 말씀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혼인 예식과 초야를 치르는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이 누리는 사랑으로 연합된 기쁨을 서술하고 있는
아가서 제 2부 3:6-5:1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둘만의 초야를 치르게 된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육체적, 인격적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는 내용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대부분 술람미 여인의 육체적, 인격적인 순결함을
칭찬하고 사랑스러워하는 솔로몬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며(7-15절)
16절 한 곳만이 이같은 솔로몬의 칭찬에 몹시 수줍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 화답하여 그에게 자신을 내어맡기며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신부의 고백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신랑인 솔로몬은 때로는 직접적으로(7, 9, 10절)
때로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는 간접화법으로(8, 11, 12절)
신부의 아름다움을 한껏 칭찬하고 있다.
본문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외모와 탁월한 내적 성품을
온갖 식물들과 향품들, 그리고 그 식물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샘, 우물, 시내 등에 비유한 것은 여성 특유의 매력과
생산력을 기리는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신부에 대한 이같은 칭찬과 함께 ‘잠근 동산’, ‘봉한 샘’,
‘덮은 우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부의 순결과 정조를 강조함으로써
오직 자신만이 그녀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가진 것과
그 동안의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결혼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은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전 단락 4:1-6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가지고 있는
외면적인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어 묘사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녀가 솔로몬 자신의 아내로서 부족함 없는
정결한 성품과 순결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전 단락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 성(性)은 일부 금욕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더러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바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선물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하나님과 이웃에게 공인받은
부부만이 누릴 수 있으며 이러한 원칙을 파기할 때에는
음행이라는 범죄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다.(잠5:15-20; 고전7:3-5)
② 아내가 사랑하고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그녀의 남편 뿐이듯 우리가 사랑하고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야 할 대상은
오직 그의 신랑이신 그리스도 뿐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소유하실 수 있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 되어야 한다.(골1:10; 살전2:4)
16절)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술람미 여인은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며
남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질이 전혀 다른 바람으로서 인생으로 친다면
순풍과 역풍, 형통할 때와 역경의 때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술람미 여인은 북풍이든 남풍이든 상관없으니 불어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느 바람이든 자신의 향기를 사랑하는 님에게
날려 보내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본다.
즉 참된 믿음과 진리로 가득찬 그리스도인은 북풍이 불든 남풍이 불든,
다시 말하면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나 늘 신령한 향기를 날린다.
하지만 거짓된 믿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들은 순풍이 불고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좇는 것 같지만 역풍이 불고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오면
이내 원망과 불평과 함께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극단적인 예를 성경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즉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입술로 범죄치 않으려 했던 욥이 전자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던 그의 아내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욥2:9,10)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일 때에는 열심히 좇다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좇으라고 말씀하시자
이내 떠나 버렸던 무리들은 후자에 속한 자들이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며
주님 곁에 남았던 제자들은 전자에 속한 사람들이다.(요6:66-68)
따라서 부족하나마 끝까지 주님을 좇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전자의 참된 성도로 남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일, 의로운 일에 대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포기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마26:41)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와 찬송을 쉬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질문한다.
그렇다면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라.
올빼미나 부엉이 같은 야행성 동물들은 캄캄한 밤에도
미세한 먹이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이렇게 밤에도 대낮처럼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빛을 만들어서 비추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 동물들보다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세포들이 몇 배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의 동물들이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빛만 있어도
이를 포착함으로써 캄캄한 밤에도 낮처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 신앙의 비밀이 있다.
즉 보통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이 오면 이내 절망하고 포기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제아무리 상황이 어두울지라도
희미하게나마 비쳐지는 소망의 빛을 감지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감사와 찬송을 계속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감옥 속에서도 찬송하고(행16:25)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을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소망과 함께 끝까지 싸워 승리했던 바울과 같은 사도는
영적인 초인(超人)이요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후1:8-9)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는 말씀처럼
형통할 때에는 당연히 기뻐하고 찬송하되
고난의 때에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신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만일 고난이 범죄에 대한 징계 때문이라면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회개와 더불어 회복의 소망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만약 악인에 의한 무고한 고난이라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하여 형통할 때나 고난의 때나 기도와 찬송을 쉬지 않으며
진리의 길을 따라 늘 천국의 향기를 날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약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