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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문학사를 들여다보면 현실 세계에서 약자였던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판타지를 찾아 살 길을 모색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텍스트는 현실을 엄정하게 평가하는 역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매혹적인 이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19세기 영국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는 지금까지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자유 연애를 주장하는 급진적인 텍스트로 읽히고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집안과 돈을 보고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운명과 삶에 저항하는 여자의 반항기로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략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그 때의 소녀들에게 여성 작가들이 쓴 러브 스토리는 얼마나 주먹을 불끈지게 하는 매혹적인 지침서로 다가왔겠는가? 가깝게는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능력 있는 여자가 사랑과 성공을 잡는 드라마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처럼 우리 여자들의 마음 속에는 남자들이 주인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의 선택과 도움을 통해서가 아닌, 온전히 '내 자신'의 힘으로만 인정받고 멋지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온스타일에 온(on)이다.
왜 나는 온스타일에 열광하는가
편견에 가득찬 말이지만, 내 주변의 남자들 중에는 온스타일을 보는 사람이 정말 없다. 언젠가 사람들과 티비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들이 주로 보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한국 드라마, 사극, 뉴스, 코메디가 대세였다. 물론 여자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온스타일을 자주 본다는 남자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다 한 두번 봤다 하더라도 '재미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남자도 찾기 힘들었다. 반대로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20-30대에 꽤 많은 수의 여자들이 고작 케이블인데도 불구하고 온스타일을 시청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온스타일에 여자들을 끄는 '무엇'이 있다는 말일까? 일단 온스타일은 겉으로도 패션, 뷰티, 요리, 인테리어, 연애 등 소위 여자들이 관심있다는 영역에 맞추어 여성들의 구미가 당기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화려한 핑크빛 디자인부터 수적으로도 이렇게 티비에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이 나오기가 힘들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분위기의 동아티비나 올리브 등 여성들을 겨냥한 케이블은 온스타일만큼 인기가 있지 않다는 사실.
물론 온스타일에도 불편한 것은 여러가지다. 완전 돈 많고 스타일 좋은 여자들만 나올 때도 많고, 더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남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법도 중요한 주제이고 어떤 면에서는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오는 중산층 보수파 기독교 아주머니들이 그렇고, 프로그램 내내 성형수술 장면을 보여주는 악취미적인 것도 있다. 여자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남자보고 고르게 하는 프로그램은 단골 메뉴이고 명품 콜렉션은 가난뱅이 여자들은 꿈도 못 꿀 천문학적 액수의 메이커들만 나온다.
그래도, 어쨌든, 왜 나는 온스타일에 열광하는가? '니가 된장녀라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피식 웃고 말겠지만,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내 마음을 끄는 온스타일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고 싶다.
여자는 미워하지 말되, 재수없음은 씹어주라
나에게 온스타일은 선정성을 자랑하는 다른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들, <재용이의 순결한 19>라던가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 처럼 '욕하면서 계속 보는' 프로그램과는 약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타이라 뱅크스가 여왕님같이 굴면서 얄밉게 군림하든, 린제이 로한과 패리스 힐튼이 파티에서 얼마의 돈을 쓰든, 신델렐라가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거리 습격>의 주인공들이든, 밉지가 않다. 내 친구 니나노가 이야기했듯이 온스타일은 '어떤 종류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만 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잊게 해주는 달콤함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패리스 힐튼씨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계급차가 있고 내가 한 달 쓰는 돈은 그 여자 치와와의 옷값도 안 나온다는 사실을 살짝(?) 잊기만 하면 나는 적어도 한 가지 위안을 받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여자잖아?
물론 위험한 생각이다. 인정. 치마만 둘렀다고 여자가 모두 동지가 된다면 앞서간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채널을 돌리면 백발백중 여자 위에 군림해 보려고 안달이 된 남자들과 얄팍한 지식을 내세워 잘난 체하고 여자의 몸무게와 외모를 비하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그 꼴을 보며 혈압을 높이기보다는 난 백만 장자 언니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며 된장을 얼굴에 바르겠다.
온스타일에서 여자는 법이다. 그래서 온스타일은 그 어떤 여자를 폄하하지도 않고 비하하지도 않는 곳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랑 비교되지도 않고 여자이기 때문에 참고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여자들의 욕망이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일그러진 것이라고 한들(여자들은 속물이면 안되냐) 에이, 그 정도야 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판타지인데 좀 즐기면 어때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때때로 좀 재수없는 썅년들이 있기도 하지만, 뭐, 저런 여자도 있지라고 뒷다마를 까주면 그뿐이다. 그녀의 싸가지 없음은 미워하되, 여자는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온스타일의 신조이다. 그러니까 뚱뚱한 여자들은 살을 빼서 더 멋진 여성으로 거듭날 수도 있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은 아름답고,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쌍놈들은 다 죽어야 된다라는 동지의식이 온스타일에 흐른다. 이 모든 것은 여자들의 꿈, 여자들의 판타지, 여자가 만든 세계이니까.
시크함이 선인 세계
온스타일에는 ‘시크함’(절대 세련미라고 하면 안 된다 불어식으로 쉬크, 혹은 시크~)이 선이다. 뷰티, 미용 채널이 아니라 '스타일' 채널이다. 한 마디로 온스타일이 추구하는 것은 예쁘기만한 응석쟁이가 아니라 세련된 데다가 자기 주장을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는 여자들이다. 그녀들은 가부장제의 욕망을 마음껏 이용하면서도 결코 그 속에 이름 없는 한 떨기 꽃으로 지지 않고 강하게 피어나고 싶은 여자들이다. 예쁘지 않아도 좋지만, 자기의 색깔만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 온스타일의 가르침이다(뭐ㅡ 현실적으로는 그게 겹치고 겹치겠으나).
또하나 온스타일의 높이 사줄만한 점 중에 하나는 사적 영역으로 폄하되었던 여성의 영역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이것을 상업화와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편입하는 현상이라 우려하는 사람들도 넘치겠지만). 그 예로 <내니 119>는 돌봄 노동에 대해 전문 유모가 등장해서 아이를 바로 양육하는 법을 알려준다. <프로젝트 런웨이>에 등장하는 디자이너들의 프로정신과 옷에 대한 열정에는 입이 벌어질 때가 있다. 좀 선정적이긴 해도 <도전 슈퍼모델>은 예쁘고 늘씬한 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 모델이 되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예쁘기만 해서는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매 회 후보들은 주입받는다.
그래서 온스타일 프로그램에는 '도전'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프로그램 이름도 <하우 투 겟 더 가이>다. 남자란 쟁취하는 것이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욕망을 억압당하고 박탈당해왔던 여자들이 욕망을 해방시키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 무시무시해서 사회의 온갖 금기도 쾌락을 위해서라면 단번에 해제해버리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가 정숙하기 짝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드라마에 '섹스'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목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시즌마다 레즈비언이 왕왕 등장하는 <도전 슈퍼모델>은 어떻고? 배가 남산만해진 하이디 블룸은 임신한 채로 계속 <프로젝트 런웨이>를 진행했다. 게이들이 찌질한 남자들을 코디해주는 <퀴어 아이>와 <퀴어 애즈 포크>,
레즈비언이든 뚱뚱녀든, 촌년이든 된장녀든, 임신부든 미혼여성이든, 여자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기를 최대의 목표로 삼는 온스타일은, 그녀들이 시크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온스타일을 계속 보다보면 마치 세상의 주인은 여자들이고 자기 색깔을 찾기만 한다면 가부장제 따위 코딱지 정도의 영향력밖에 없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오- 찬양하라, 온스타일.
강렬한 욕망에 눈 멀어버리기
마지막으로 한가지. 그래, 인정한다. 온스타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않아서 그렇다. 먼 나라 ‘제 1세계’ 여자들이 득실득실 나오니까 더 재미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예쁘고 늘씬하고 눈요기가 되니까 더 재미있다. 그렇지만 요즘 티비에 그런 사람들 말고 나오는 것 봤냐? 요즘 한국 드라마들은 죄다 의사 말고는 직업도 아니던데, 한국말도 잘 못하는 배우들이 왕왕 등장하여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던데, 오똑한 콧날과 선인골격이야말로 선택받은 자만이 티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된장녀의 온상으로 온스타일이 감내해야 하는 공격은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닐런지? 선정성과 폭력성, 인종과 국적의 문제를 모두 눈 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유독 온스타일에만 '정치적'으로 그렇게 바라는 것들이 많으신지, 완전 열받는단 말이다.
여자가 즐거운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 한껏 잘난체를 하며 준엄하게 너는 골빈 년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온스타일을 끄면 내 꿈도 끝난다.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남자들에게 선택받기를 간절히 바래야 하고, 그 여자들이 잘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돈이 많기 때문이고,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선인골격 때문이란 것은 매일 보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달콤한 꿈을 꾸고 싶을 때가 있다. 허구적 텍스트가 원래 그런 것인데, 건조하고 삭막한 내 삶에 물기가 되어주는 바보상자 하나 관용을 발휘하지 못할쏘냐.
인생 별 것 있나, 엔조이. 엔조이.
월간 언니네(www.unninet.co.kr) 2007년 3월 특집 "언니네 TV 수사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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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온스타일이 재밌어요-
난 이제 재미없어졌어..ㅠㅠ 본거 또보고 또보고 또보구..ㅠㅠ
난 왜 투니버스가 더 재미있는걸까...................
나도 맨날 온스타일 고정 ㅋㅋ 재밌는것만해서 좋다
온스타일 완소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