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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취임하려면 두 달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다양한 반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윤석열 시대의 중요한 특징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은 대선 전후에 방송한 3개의 시사다큐들을 볼 필요가 있다. 시간 순으로 보자면 대선 직전에 방송한 <시사기획 창>의 ‘끈질긴 친일’, 대선 직후에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쩐과 혐오의 전쟁’, 그리고 며칠 전 방송된 <PD수첩>의 ‘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가 그것이다.
소재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3편 모두 극단적 비방, 조롱, 낙인찍기, 조리돌림을 통해서 편견과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거기서 사회경제적 이익을 얻어가는 집단과 방식의 실체에 대해서 탐사 취재해서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중요하게 추적해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이버 렉카'이다. 뭔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이들이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판을 벌이기에 붙여진 이름이고, ‘이슈 유튜버’라고도 한다. 이들은 먼저 누군가에게 좌표를 찍고, 이어서 저격하는 방송을 만들어서 희생자를 난도질한다.
희생자는 몇 가지 단편적 정보와 짜 맞추어진 프레임 속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쓰레기, 역겨운 인물, 더러운 악녀가 돼 버린다. 이어서 시청자들이 어마어마한 댓글과 악플들로 조리돌림을 하고, 그러면 결국 표적이 된 사람은 만신창이가 돼서 낭떠러지로 몰린다. 그 중에 일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너무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이번 방송들 중에서는 그 중의 일부 최근 사례들만 다루고 있다.
희생자가 심지어 죽어서도 악플과 혐오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상, 댓글들도 사라지지 않는다. 윤서인, 뻑가, 윾튜브 등 세 방송 대부분에 계속 언급되는 공통적인 '사이버 렉카'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인터뷰 요청을 회피하거나 ‘나는 이미 생겨난 이슈를 뒤에서 정리한 것이지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간단한 답을 보냈다.
다만 대표적 청년극우 유튜버 중에 하나인 성제준은 <그알>과 직접 인터뷰를 자처해 물타기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영악스러운 전술을 택했다.(이들 중에서 윤서인과 성제준은 진중권이 이들을 칭찬하며 추천해 준 공통점도 있다. 진중권은 성제준TV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성제준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매달 2~3천만 원은 번다고 자랑한다. <PD수첩>은 뻑가가 그동안 번 돈이 수십 억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혐오는 돈이 되는 장사이다.
이 세 편을 모두 보면 친일적 뿌리를 가진 기득권 우파를 옹호하는 것, 좌표를 찍고 누군가를 조리돌리고 인간사냥하는 것,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앞장서는 것이 주도자들만 겹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수 ‘핫펠트’가 사이버 렉카들에게 당해 온 공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알>에서는 사이버 렉카 지망생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전문업체까지 등장하는 데, 이들은 ‘나의 교양과 양심이라는 방해물만 버리고 대중의 속성을 잘 이용하면 돈벌기는 최고’라고 자문을 해 준다. 이들에게는 또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가 있다. 이 나라 사법체계는 그것에 아주 관대하고 많은 지식인들도 그것을 돕는다. 누군가를 ‘북한의 개’라고 낙인찍어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사이버 렉카들에게 시달려 온 방송인 곽정은 씨는 <그알> 인터뷰에서 “누가 이런 공격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혐오가 보편의 정서가 됐다”, “더 이상 죽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만 이 방송들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먼저 사이버 렉카 중 최고라고 할만한 ‘가로세로연구소’와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의 최고라고 할 ‘신남성연대’ 등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사이버렉카가 ‘사고’가 나면 달려오는 자들이라면, 사고를 내고 중계방송을 하는 자들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바로 족벌, 거대 언론들의 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먼저 더 강력하게 좌표를 찍고, 낙인을 찍고,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며 사냥을 시작하는 것은 그들이다. 그것을 통해서 클릭수를 높이고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 사이버렉카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판에 달려들어서 조회수를 높이며 떡고물을 주워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족벌, 거대언론들이 차마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는 것을 사이버렉카들은 한다.
이 ‘미디어 렉카’들에 대해서는 <PD수첩>말고는 별 언급과 분석이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나아가 ‘정치적 렉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으로 사이버 렉카들이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를 ‘극렬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은 다음에 조리돌리고 사냥하는 구조가 만들어 진 것에는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을 우파의 재결집과 부활의 중심축으로 삼은 정치세력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이준석, 윤석열로 대표되는 이들을 마치 사이버렉카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에 뒤늦게 올라탄 사람들처럼 묘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책임을 크게 덜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알>은 오히려 윤석열의 새정부에게 ‘국민 통합’을 부탁하고 당부하며 방송을 마무리해 버렸고, 그나마 역시 <PD수첩>이 어느 정도는 이들의 책임을 물었다.
또 세 방송 모두에서 지금과 같은 혐오, 낙인, 편견, 조리돌림이 구조화되고 일상화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던 사안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컨대 누군가의 흠을 샅샅이 찾아내서 끝없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조리돌리고 악플을 달고 하는 현상이 극심해진 것은 바로 2019년 검언대란(조국몰이) 때였다. 지금 악명을 떨치는 사이버 렉카와 극우유튜버들이 본격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 윤서인 등이 “7199(친일극우) 친구들아”하면서 ‘친일’과 ‘극우’를 정당한 브랜드로 삼고, ‘윤미향과 정의연에게 국민 세금을 퍼준 여가부’라는 프레임으로 반페미니즘 선동과 여가부 해체 주장을 뒷받침한 것은 2020년 족벌언론들의 윤미향 마녀사냥 때부터였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종북몰이가 변형 발전된 이 두 사건은 ‘혐오정치’ 성장의 주요 계기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어떤 방송을 봐도 이 문제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조국 가족이나 윤미향 의원은 그 이름만 들어도 자동반사적으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당연한 최고의 위선자와 사기꾼들이라는 프레임은 그냥 반박불가능한 ‘정답’이 돼 있다. 이것을 의심하거나 이견을 제시하면 괴상한 펜덤무리가 돼서 같이 사회적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혐오, 낙인, 편견, 조리돌림은 잘못이고 반대한다는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 표적이 되면 그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다른 문제인 것처럼 넘어가 버린다. 미디어 렉카와 사이버 렉카들이 이 사람들과 그 가족에 대한 기사나 영상을 올릴 때마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개의 차마 읽기도 괴로운 막말, 조롱, 저주의 악플들이 달리지만 문제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번 대선이 끝난 후 윤서인의 ‘윤튜브’에 들어가 봤다. 그는 승리의 감격에 겨워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재인 공산당 정권이 드디어 끝났다. 그래도 아직도 *신같은 뇌없는 자들이 47%나 된다. 전라도 봐라. 이제 막 칼을 휘두르고 다 조져야 한다. 공산세력과 미친 노조들을 다 칼질하고 밟아야 한다. 빨갱이들과는 절대 대화하고 타협하고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도 후퇴시키면서 때려 잡아야 한다.’
열광적으로 동조하면서 증오와 처단을 외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가세연, ‘신의 한수’ 등에서 보여주는 살기등등한 승리감은 물론 이 정도도 애교로 보이게 할 정도이다. 이제 이런 미디어 렉카와 사이버 렉카들이 더 자신감과 힘을 얻으면서 ‘혐오의 시대’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이다. ‘여기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여기서는 모든 머뭇거림을 버려야 한다.’(단테 <신곡> 지옥편)
* 사족: SNS에서 정치적 입장과 견해 차이를 기준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것은 항상 별로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로 이견을 존중하며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느 위치에 있던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보다 내 자신이 힘들고 괴롭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는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 <시사기획 창>의 ‘끈질긴 친일’,
https://www.youtube.com/watch?v=HvaGzGRldnA
* <PD수첩>의 ‘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
https://www.youtube.com/watch?v=Ox4Fn3qyD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