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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은 유난히 시립고 춥다 했던가.
새벽 동쪽하늘 샛별이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하늘을 배경으로 미의 여신처럼 반짝이는 모습엔 시린 아름다움이 있다.
튕겨나간 손톱같은 그믐달도 아랫녘 동쪽 하늘에서 여윈 체형으로 샛별맞이하는 것도 어쩐지 애잔하고 추운 모습이다.
가로등이랑 셋이 이상한 여운으로 소리없는 새벽길을 수놓던 그 시간에 우체국앞 길거리 신발노점상은
가로등을 빛삼아 신발 전을 펼쳤다.
아직 어둠이 채 물러가지 못한 그 시간에 만나는 노동의 새벽은 마치 엄숙한 숭배의식처럼 경건했었다.
아무도 길을 걷지 않는 이른 아침에 홀로 겨울새벽의 미사를 치르듯 늘 해오던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저 행위.
저 사람들은 내가 몰랐던 새벽을, 그로부터 밝아오는 아침의 실루엣을 늘 저렇게 길에서 함께 맞이하고 있었구나.
가볍지 않은 새벽추위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추위여서인지 하얀 입김은 짙은 포연으로 새벽공기를 가른다.
그믐달이 건물에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샛별은 일치감치 높이 떠서 싸한 보랏빛 여명위에서 고적하다.
새벽 동쪽하늘에 있으니 오늘 이름은 샛별이지만, 초저녁 서쪽하늘에 있으면 '저녁별','개밥바라기별'이라 했던가.
그냥 금성이라 불리우며 그 어떤 별보다 늦게까지 빛나는 저 별을 태양이 솟기 직전 만나기 좋은 계절은
이토록 시린 겨울인가 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전쟁신 마르스와 미의 여신 비너스처럼 오늘 우리 부부는 하필이면 하루 전날, 그러니까 새해의 첫날,
화성에서 배운 말과 금성에서 배운 말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고 말았다. 말했듯이 새해 첫날부터.
다음날이면 산행을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말로 아옹다옹 옥신각신하다가 급기야 산에도 안갈거라는
최후통첩을 날리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딴에는 사흘동안 주고받았던,
사소하나 서운했던 몇가지의 말에 대한 종결의 의미로 새해엔 그러지 말자고 하던 끝에 나온 것이었지만,
서로의 말들이 따지고 보면, 내 말이 옳다 너 말은 너만 아는 거다 식의,
그러니까 화성의 말이자 금성의 말 땜에 생긴 말놀음이자 지자랑의 극치가 부부싸움의 주요 골자였다.
다음날 새벽엔 산행 도시락을 싸야하는 몸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웃고 서 있다. 함께 산행에 나선 사람은 의령산우회 회장님 가족.
느닷없이 하게 되었지만 남편은 지난 해 부대장으로서 산행대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서로 한해동안 고생했다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리고 한해 새롭게 산에 열심히 다니자는 멋진 신년계획서의 의미로서 함께 하기로한 산행이었다.
이렇게 단 두 집만 가는 산행인데 못난 감정으로 약속을 어기고 우리가 안가고 만다면,
그건 모양새뿐만 아니라 우리의 한해살이에 대해... 아, 상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일이었다.
빨리 정신을 수습해야 했다. 멍청하게 서로를 째려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어찌 되었든 상쾌한 공기를 쐬며,
잘 하는..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것으로 공기를 전환해야 했다.
그 무모하고도 껄끄러운 일을 가게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혼자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참으로 포기가 빠른 내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이날의 산행은 역사에도 없을 일이었다.
참, 새해에는 내 장점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기로 했다. 이것은 진짜 내 장점이다.
물론 건망증도 좀 심하지만 건망증도 때에 따라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
잘 잊고 빨리 좋은 쪽으로 수습해 버리는 성격의 지름길이니까.
보온도시락을 꺼내면서, 기분좋게 하루 잘 보내고 밤늦게 가게에 일하러 나가서 기어이 사단이 생긴 일을 빠르게 되감아 보았다.
순진하게 편안했던 낮동안의 일들이 멍청하게 떠올랐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도 말이다.
내가 도시락 준비를 했는데 안 갈 양반은 아니라는 확신도 있었지만, 싫을 때 좋은 장점을 발견하는 것도 개운하진 않을 때였다.
다시 웃음을 접고 심각해서 잠도 못자는척 하려 했는데 어느새 모닝콜 알람이 나를 흔들었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접혔고 새로운 하루는 그렇게 열렸다.
새해 첫 해가 떴을법한 시간에 회장님네의 차를 타고 출발한다. 다섯사람이 빽빽하게 한 차를 꾸려서 간다.
트렁크엔 각자의 배낭이 나란히 눕고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로 길을 좁힐 것이다. 오늘 길은 통영을 거쳐 거제로,
거가대교를 건너 가덕도로 향한다. 통영가는 길의 터널을 벗어나자 언제 웃솟았는지 해의 후미가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오늘 날씨가 어쩐지 저 해의 후미처럼 포근할 것 같다.
공룡 휴게소에서 부담스러운 소고기국밥을 먹으면서, 왜 통영휴게소 메뉴에 굴국밥 같은 것은 없냐고 아쉬워 하였다.
어느덧 거가대교가 저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 단장한 휴게소에 들어서니 특이하게 빵집이 입점되어 있었다.
아마도 아침밥을 안먹었다면 나는 당장 빵을 샀으리라. 빵만 보면 군침이 도는 체질이 그림의 떡보듯 그냥 지나친다.
지갑이 없었고 다시 가져오기엔 귀찮았었다. 그러나 내내 그 빵을 안사고 그냥 온것이 후회되었다.
그 생각을 하다가 그만 거가대교를 흘깃 보고 말았다.
바다로 들어가는 침매터널이 바로 나오고 있었다. 카메라를 급히 열었다.
침매터널은 그냥 터널과 꼭 같은 인상이라 말하다가 터널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거제를 지나 부산으로 행정구역을 옮긴 것이다.
대신에 저 산위에서 터널의 자리를 짚어보자고 하였다.
이제는 부산광역시에 속하는 가덕도는 강서구로서 부산에 있는 섬 중에 가장 큰 섬이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거제도와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인 가덕도가 거가대교와 침매터널로 이어지는 길을 그토록 쉽게
이어놓으니, 기술이란 말과 수십년의 공사기간 등이 입에 올랐다.
가덕도 남중마을로 차가 들어서는 순간, 버스가 마을을 벗어나고 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다는 저 버스를 놓지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눌차선착장까지 버스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이곳 남중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어찌 되었건...회장님에게 담배 한대 태울 시간은 주어야 했다.
때아닌 산행전 산책시간이 주어졌다.
남편의 배를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카메라를 꺼냈으나, 어느새 배를 탄 모습만 찍게 되었다.
부부란 저런 모습으로 늙어간다는 생각이 문득 가슴을 건드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골목 한 바퀴 걷는 시간동안 어느새 택시가 다가온다. 다섯명이 택시를,
그것도 배낭까지 짊어진 산행객들의 몸이 장난아니다.
산행은 나섰지만 그래도 아직 남편과 말도 변변히 하지 않은 처지에 택시 뒷좌석에 네사람이 앉아야 했다.
몸이 젤 얇은 내가, 그것도 부부싸움한 줄 꿈에도 모르는 회장님네 가족에게 어색하지 않게 남편위에 걸터 앉아야 했다.
아주 여러가지로 시험에 들게 하는 산행이었다.
눌차동까지 택시를 타고 낑겨 오니 벌써 허리가 아프다. 그곳에 굴 판매하는 곳이 있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것처럼
갯내음 풍기는 곳에서 굴 한 접시 사먹자고 여론이 만들어진다. 큼직한 굴과 소줏잔이 산행시작 전부터 한 순배씩 돈다.
벌써 산행이 시작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호젓한 가족들끼리의 산행이어선지 여유를 맘껏 부린다.
굴 껍질 까는 모습을 보니 자연 고향 엄마생각이 난다.
바닷가 어촌에 겨울이 오면 그곳의 여자들은 농한기의 휴식도 잊고 굴을 까거나 굴껍질에 줄을 끼우거나 그도 아니면 바다에 나가 물일을 한다.
잠시 불편한 택시를 타느라 허리가 아픈 내가 있는 반면 날마다 생업처럼 일의 업보를 안고 사는 엄마가 마치 다른 행성의 여인네들처럼 대척점에 놓여있다.
굴 향내는 엄마가 우리를 위해 한손 한손 다듬어 보내주신 것보다 맛있을 수 없었다. 무조건 맛있을 수 없었다.
겨울이므로 당연히 추울 거라는 고정관념을 비웃듯 햇살은 바다를 먹고 사는 플랑크톤처럼 잘게 부서지면서도 따사로왔다.
겨울날 길을 걷는다는 것은 긴긴 겨울따라 함께 언 육신이 저 햇살이 풀어주는 살가운 안마를 받는다는 것일까.
들숨날숨이 걸음마저 나른하게 풀어놓는 동안 가닥가닥 조각조각 햇살은 몸을 비집고 들어선다.
오랜만에 맡은 햇살의 냄새는 달디 달았다.
다시 길은 눌차동 오래된 골목으로 인도한다.
집 담벼락에는 오래된 시간여행처럼 색바랜 페인트로 <간첩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선동적인 구호에 비해 글씨체는 정직하고 착실하다. 아직도 청산하지 않은 잔재처럼 서슬퍼런 글귀가 골목을 향해 쓰인 것을 보니 집이 변하지 않고 긴 세월을 보낸것도 놀라웠지만, 언뜻 저런 글귀도 향수가 되어지는 그런 나이를 사는 걸까,
어쩐지 지난 세월의 조작도 때에 따라서는 추억이 되는 이상한 현상이 세월속에 함께 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동네 골목길을 타넘는 이색적인 체험과 긴 방조제를 산행시작 전 한 시간 가까이를 걸으니, 산행이 아니라 골목길 탐험이나
제주올레 걷는 맛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바다가 지척에서 고요히 수평을 맞추고 여행나선 것처럼 들뜨기 좋은 풍경들이
등대, 바다새 등등의 이름을 달고 시야에 널려 있다.
햇볕정책처럼 옷을 벗게하는 따뜻함이 햇살에 피어 오르니 얼마 후 우리는 기어이 한 꺼풀씩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지척의 바다가 풍요로운 들판처럼 널려있는 동선방조제에서 산을 향해 걷는다. 저 산들이 바로 우리가 넘어야 할 산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산을 넘을 줄 꿈에도 모르고 언니나 나나 남편이나 모두 처음엔 그저 산 하나 오르는 것을 상상했었다.
오로지 연대봉 하나만 생각했었지, 그렇게 가덕도를 하루종일 돌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근 1년만에 산행에 나선 언니는 그간 다리를 다친 휴유증으로 산행에 나서지 않고 이번에 처음으로 오르는 것이었다.
무리는 금물이었다. 그러나....
모두 바닷가에 이렇게 눈이 녹지 않았다고..신기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금도 아니었고...추측컨데 얼음같았다. 끝까지 풀리지 않는 저 하얀 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느 집 옥상엔 저렇게 풍요한 바다의 식탁이 줄에 꿰여 있었다.
어릴 적 바닷가 마을의 내집 풍경들이 그곳에 걸려 있었다.
등대와 작은배...그리고
사람과 바다새...
본격적인 산행은 동선방조제를 지나 새바지의 가파른 오르막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바지에서 강금봉을 오르는 길은 평지길이 없다.
그만큼 빠른 시간에 바다는 패잔병처럼 발아래 드러눕는다.
오늘의 바다색은 유난히 차분한 비취빛을 머금었다. 날씨와 닮은 꼴의 색상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6년동안 산우회 회장과 산행대장을 역임하며 한 번의 결석도 않으셨던 회장님은 산을 즐기는 방법을 아는 진정한 산님이다.
사람들이 어떠한 이권에 자신의 욕망을 이입시키느라 혈안이 될 때에도 바위처럼 정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패배를 부르더라도 옳은 일에 자신을 거는 모습은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던 그 분처럼 확고했다.
아무나 가지못할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쉬운 길을 선동하는 사람보다 한차원 더 높은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나마 이 세상에 옳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단 하나의 희망 아니겠는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하늘의 빛속으로 자맥질한다.
산에서는 이런 합일의 경관을 만나기가 쉽다.
울퉁불퉁한 바위위에서 때아니게 비명을 지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남편과 티 안나게 서먹서먹했던 끝에 기어이 서로가 카메라를 주고받는 사이, 마치 올 것이 오고만듯 카메라를 놓치고 말았다.
저렇게 단단한 바위위에서 카메라는 세번의 점프를 퉁!퉁!소리도 비극적이게 떨어져 내렸다.
카메라는 그럴 때 남편보다 소중한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터진 비명으로 사람들은 저 바위 위에서 너도나도 놀라고 말았다.
남편은 손목에 줄을 감고 나에게 건네주었으면서도 못받은 나를 이 기회에 나무라고,
나는 그렇게 감고 주는 당신이 더 잘못이라 억울해했다.
내 입장에선 억울해 죽을 일이었지만 중재를 한 언니가 아니었음, 그리고 카메라가 파손이라도 났다면
우리의 이튿날도 장담못할 상황이었다.
어떻게 그러고도 카메라가 멀쩡한지 몰라~라며 삼성의 기술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화해를 바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스리슬쩍 말을 섞는 부부싸움의 뒤끝은 바로 평화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오묘한 길을 들어가야 길이 이어진다.
연대봉 정상에서 봉수대를 배경으로 부부사진을 찍었지만, 아직 뒤끝있는 심란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연대봉 정상에서 바라본 거가대교와 가덕도 해저터널.
이 바다에 길이 들어있다는 뚜렷한 인식으로 이 새로운 바닷길을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이 경이로운 현상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안부를 전하듯 번갈아 바라본다.
바다의 가교가 하늘로 솟구치듯 두 팔 맞잡은 이음새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듯,
등대가 지키는 바다의 밀실로 길을 연결해주는 착안이 마음에 깃든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다리가 섬과 섬을 연결하고 바다의 미학을 연구하는 수단으로 이제 그 쓸모를 과시한다.
사람들에게 저 바다는 뭍을 심어두기 전엔 무한한 상상력이었지만, 무엇이든 빠르지 못하면 사라지고 마는 세상의 이기에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을 모든 낭만적이었던 것들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이제 미래의 사람들은 저곳에서 무슨 상상을 하며 꿈을 심을까.
길이 숨어든 바다를 바라보며 꿈조차 너무 기능적으로 변하지만 않았으면...
바다위엔 항상 배와 갈매기가 있다는 풍경이 당연한 세대가
바다속에 찻길이 있어 편리하게 세상을 통과한다고만 이해할까봐 괜한 걱정이다.
바다위로 배가 조금 더 느리게..그리하여 세상은 여전히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차들은 길을 수놓는다.
먹이를 실어나르는 개미행렬처럼 엉금엉금 부지런히 어느 목적된 곳을 향하는 의식처럼 무표정하게 이 기막힌 도로에 합류한다.
섞이지 못하면 소외된다는 듯 모두 급조한 시간을 틈타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관대한 비대칭의 상념을 겪으면서도 나또한 곧 있으면 저 길위에 섞여들 몸.
이제부터 오른만큼 내려가야 하는 하산길이 펼쳐질 것이다, 아주 당연하게.
우리가 걸었던 산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가까운 도로엔 여전히 꽉 막힌 차선과 헐거운 차선이 공존하고 있다.
마을이 지척에 있어서인지 이제야 두고 온 차가 기다리는 걸 알았다.
새해 첫날부터 사소한 일로 싸우고, 산행에 나서야 하는 책임감과 그 덕분에 해소되는 어떤 반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산을 다녀왔다. 다녀오고 이런 내용으로 맑았던 것이 처음이어선지 오히려 상쾌함이 더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빠르게 잊는만큼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어제의 일도 잘 기억못하는 나이를 산다는 것도, 실은 잘 잊는 그 나이야말로 인생이 베풀어놓은 지혜로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잊고 새로 믿는 단순한 반복 속에서 어제의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렇게 날은 간다.
그러니까 나는 인생이 베풀어놓은 지혜로운 삶의 한 부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2011년 신묘년 새해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곳으로 산행 갔다 오셨군요. 정상에서 바라 본 가덕 해저터널 정말 장관입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같이 아름다운 신묘년 기원드립니다.
난 부부싸움 얘길 했는데..이런, 사진만 봤군요.ㅎㅎ.
해저터널 사진이 진짜 멋지죠?
부럽군요. 어디론지 다 갈 수 있다는게. 거가대교도 가는데 망설여지는 처지다보니 ㅎ
남강님 빨리 쾌차하시고 천천히 활동하세요. 미루어 두었던 바람보자기 풀리는 날 다함께 산에 오르는 겁니다.
이렇게 다니는 얘기 쓰고 처음으로 부끄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