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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전기(電氣) 스토리텔링 공모
한국전력공사에서 고객의 전기사용 경험을 공유하여 소통의 채널을 확대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2014년 전기(電氣) 스토리텔링』을 공모합니다.
1. 공모개요
가. 공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나. 공모기간 : '14. 5.26(월) ∼ 6.25(수)
다. 공모내용 : 재미, 감동이 있는 전기(電氣)관련 에피소드
라. 공모방법 : 텍스트, 포토에세이, 웹툰, UCC, 노래, 재능 등 형식의 제한 없이 제작하여
한전 사이버지점(http://cyber.kepco.co.kr) 이벤트창에 제출
2. 우수작 선정 및 시상
가. 시상기준 : 사례 공감성, 내용 충실성, 전파가능성 등
나. 시상내역 : 최우수 1명(100만원), 우수 2명(50만원), 장려 5명(10만원), 참가상 10명(3만원)
다. 우수작 발표 : 2014년 7월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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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수상작을 참고로 올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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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아주 오래 전 전기장판에 얽힌 추억
김군자(서울특별시 은평구)
지난해 여름, 캄보디아에 사는 큰 아들 집을 다녀왔다. 그런데, 보름을 머무는 동안 하루에도 전기가 2~3번씩 나갔다. 낮에는 전기가 나가도 TV를 보지 못하는 것 빼고는 그럭저럭 견딜 만 했는데, 저녁식사를 할 때 쯤 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전기가 나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식탁위에 후레쉬와 촛불을 켜고 밥을 먹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밥알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이라 먹기도 그런데, 그나마 남은 밥맛마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캄보디아에서 무려 10년 넘게 살아온 아들 녀석은 이런 생활이 이미 익숙한 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밥을 꾸역꾸역 넣고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며느리와 손주들도 마찬가지로 밥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다 때려치우고 이런 가난한 나라까지 와서 고생하며 사는, 아들 녀석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속상한 마음에 밥이 들어가지 않아 숟가락을 놓으니, 아들 녀석도 금세 눈치를 챘나 싶다. 아무 말도 않고 묵묵히 있더니, 다음날 아침 느닷없이 시장에서 중고 발전기 한 대를 사왔다. 기술자들과 올라가 옥상에 설치를 하는가 싶더니, ‘달달달’ 거리며, 요란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나라는 전기가 워낙 자주 나가서 좀 사는 집들은 대부분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놓고 산다고 아들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귀띔해 주었다.
아들 녀석이 별로 녹록치 못한 살림에 잠깐 쉬다가 돌아갈 애미를 위해 무리한 지출한 셈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 어김없이 전기가 나가 깜깜해지자, 요란한 발전기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몇 번 껌벅거리더니, 방안이 금세 환해졌다. 여덟 살 난 손주 녀석은 탄성까지 질렀다. TV 만화까지 보며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신기한 지, 녀석들은 깔깔대며 좋아했다. 괜스레 아들 내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발전기를 한 대 사려고 했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던 아들 녀석 얼굴이 떠올라, 비행기 타러 공항 가는 길까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불현 듯,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박씨 집안에 시집 올 무렵인 6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요금이 아까워서 벽에다 구멍을 뚫어 전등 한 개를 가지고 두 방이 썼다. 사람이 없는 방에 불을 켜두면 어른들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화장실에는 5와트짜리 희미한 녹색 전등을 달아놓고 썼다.
가정용 전기는 일반선과 특선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일반선은 해가 지는 시간에 들어왔다가 밤 11시면 어김없이 나갔고, 좀 잘 사는 가정에서는 24시간 전기를 쓸 수 있는 특선(特線)을 들여다가 전기를 썼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쓴 것도 아니다. 그런 고급 가전제품은 부잣집이나 열 집 건너 한집 정도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대부분 집들은 30와트짜리 전등 한 두 개를 쓰는 게 고작이었다.
작은 읍내 사거리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우리 남편의 가게는 한겨울엔 가게 안에 물이 얼 정도로 추웠다. 일을 거들기 위해 오가던 나 역시 하루 종일 추운 가게에서 견디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른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은 나보다 열배는 더 추웠을 것이다. 그런 남편은 차가운 가게 마룻바닥에 미군에서 흘러 나온 군용담요를 깔고서 백열등 전구를 켜서 수건에 둘둘 말아 발밑에 넣고 가끔 손발을 녹이곤 했다. 기름난로는커녕, 연탄난로조차 살 돈도 귀하고 아쉬웠던 그런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날 30년 만에 강추위가 찾아왔다. 어디서 들었는지, 솜씨 좋은 남편은 가게 안에서 뭔가 뚝딱거리더니, 전기장판을 하나를 금세 만들어 냈다. 시장에서 산 베니어판 한 장 위에 못들을 모서리에 촘촘히 박아놓고, 가느다란 에나멜선을 지그재그로 감아서 깐 것이었다. 그리고 신문지에 풀칠을 해서 에나멜선을 덮어 바르고 말려, 근사한 전기장판을 한개 완성했다. 그새 소문이 나 옆집 가게들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두 세 개 더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동장군도 얼어 죽었다는 그해 겨울, 남편과 나는 전기장판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달 무려 오천 원이 넘는 전기요금이 벼락같이 부과되었다. 자전거 ‘빵꾸’ 한번 때우면 겨우 30원 정도 받고, 가게 종업원 월급이 2만원이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전기요금 때문에 남편과 한바탕 부부싸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탄난로도 없이 그 추운 날 꽁꽁 얼어붙은 손으로 차가운 자전거 쇳덩어리를 만지며,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니, 남편에게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추운 날도 고생하던 그 남편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새로 나온 전기장판을 볼 때 마다 문득 남편 생각이 나곤 한다.
얼마 전 캄보디아 사는 큰아들 내외가 한국에 왔다. 어린 손녀딸 아이가 아파서 한국에서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달 째 병원과 우리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식 때 빼고 한국에서 오래 살아보긴 처음인 외국며느리는 지난 한달 동안 한 번도 전기가 끊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가난한 캄보디아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1/3 이상 더 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을 다녀와도 거실에 아무도 없어도 형광등을 그냥 켜놓기 일쑤였다. 얼마 전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외출을 해버려, 나중에 잔소리를 몇 번 했더니 입이 쌜룩 나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어른이니, 참아야하지‘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며느리 마음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손주 아이 병간호로 힘들게 보내고 있는데, 마냥 시어머니 노릇만 할 수는 없었다. 동네 마트에 가서 며느리가 입을 따스한 가을 잠바와 속옷 몇 벌을 사들고 들어왔다. 며느리 표정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때를 놓치지 않고, 며느리에게 형광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소곳이 말했다.
“얘야~ 전기 아껴 써야 돼. 알았지?”
한국말을 잘 못하는 며느리도 그 말만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네~ 어머니~” 하며 내 품에 넉살좋게 어깨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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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전기코드 뽑으셨나요?
이혜경(경기도 성남시)
“선생님,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나요.”
코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볼 낯이 없어진다. 아직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지만 사소한 것들도 금방 발견해내는 민감한 내 제자들이다.
“그렇지? 바깥에서 나는 가 본데....... 금방 괜찮아질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서둘러 아이들의 후각과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시켰다. 수업을 다 마칠 때까지 컴퓨터 책상이 자꾸만 눈에 거슬리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들이 하교 한 뒤, 남편이 보내준 가구 전문가가 왔다. 불로 상처 입은 업무용 컴퓨터 책상을 손질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손을 좀 본 뒤 결을 가다듬고 왁스를 바르니 감쪽같아 졌다. 평평하던 나뭇결이 조금은 부풀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멀쩡하다.
‘아, 다행이다.’ 한 순간의 방심이 이런 결과를 안겨 주다니. 만약 학교가 전부 불타 버렸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가만가만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젠 절대로 이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텅 빈 교실은 점점 추워져만 갔다. 손이 시려오고 굳어져 가는 듯 한 내 몸을 위해 전기 난방기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력 소모가 많은 난방기를 금지하고 있고, 교사의 양심 또한 허락지 않았다. 시린 손을 비벼가며 일을 하다가 참기 힘든 추위 속에서 난방기의 전기코드를 꽂아 버렸다. 퇴근 시간을 30분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잠시 손을 녹이고 몸을 녹이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시간은 보며 따스한 내 집을 그리다가 퇴근시간이 오자마다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 나와 버렸다. 드디어 해방인 것이다.
저녁 시간은 후다닥 이다. 설거지를 하고 이것저것 밀린 집안일들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9시다. 피곤한 몸을 소파에 눕히고 TV를 켜니 뉴스가 진행되고, 겨울철 화재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 현장을 보면서 깜빡 잠이 든 것 같은데, 문득 깨어나면서 갑자기 교실 난방기 생각이 났다. 플러그를 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걱정을 하니 남편이 말한다.
“당직하시는 분에게 전화해서 한번 봐 달라고 해봐.”
얼른 학교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만 갔다. 시간을 보니 10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다. 우리 교실이 다 타버리고 학교가 불더미가 되는 상상 속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계산해보니 전기 귀신이라는 난방기는 지금까지 7시간 가까이 뜨겁게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혹시 과열된 난방기가 폭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남편과 함께 서둘러 차를 몰았다. 우리 교실이 재가 되고 불길이 학교 전체를 휘감으며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학교는 다 타버리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학교를 잃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그 허망함 속에서 오직 나를 원망할 뿐이다. 내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는 교실까지 나를 데리고 와서 현장검증을 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비웃음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나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다. 교사라는 이름가진 그런 죄인이 이 세상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펑펑 울어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일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뒤늦게 후회해도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내가 가야할 길을 어둠뿐이다. 아, 모든 것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한참을 달리니 학교가 보인다. 다행히 불길은 보이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까만 연기가 뭉글 뭉글 솟아오른다. 가슴이 떨려왔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착각이다. 휴우……. 가슴을 다시 쓸어내린다. 학교에 도착하니 무사한 학교가 정겹게 다가왔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남편과 함께 3층인 우리 교실을 향해 뛰어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난방기는 뜨거운 열을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책상 모서리와 옆 부분은 열을 견디면서 못해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당장 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남편은 침착하게 전기 플러그를 하나하나 뽑았고 수건들을 물에 적셔와 붉게 달구어진 곳들을 덮었다. 순간 뿌지직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나고 놀란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큰일 날 뻔 했네. 이건 정말 하늘이 도운거야. 지금 오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휴우~ ”
남편도 놀란 모양이다. 자꾸만 교실을 점검하면서 이것저것을 살폈다.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다행이야. 이제는 잊지 말고 날마다 확인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그 후로 ‘전기코드 뽑으셨나요?’라는 문구를 내 눈이 잘 가는 달력에도 책상 앞에도,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 아래에도 붙여 놓고 항상 플러그 빼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퇴근 할 무렵, 현관에서 동료들은 만나면 나는 외치곤 한다.
“전기 코드 뽑으셨지요? 확인하셨지요?”
내 말을 들은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고,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교실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어떤 동료는 나를 만나면, “전기 코드 뽑으셨지요?” 하고 장난스레 말하면서 환하게 웃어 주신다.
화재가 날 뻔한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 서서 항상 불조심을 강조하던 교사가 학교를 다 태워버릴 뻔한 그 사건은 일생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의 내 작은 제자들은 모두가 ‘에너지 지킴이들’이다. 교실의 형광등도 창가 쪽은 소등을 하고 행여 운동장에 나갈 때는 서로 불을 끄려고 경쟁을 한다. 집에서도 항상 전기 절약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그 어린 것들이 불필요한 전등은 스스로 끄고 플러그도 빼내고 있는 모습들이 대견하다며 학부모들은 이야기 한다.
이제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점점 따뜻한 것을 가까이 하는 계절이다. 전기로 물을 끓이고 난방 기구를 수시로 사용하게 되는 추운 계절이 온 것이다. 오늘도 내 앞에 선 어린 제자들은 에너지 지킴이가 되어 전기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 작은 외침이 모두의 가슴에 메아리 되어 울렸으면 좋겠다.
“여러분, 소중한 전기 꼭 아껴 쓰세요. 전기절약, 절대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