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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배스 레이크. 오늘은 아내 생일. 그러나 아내에겐 힘든 하루. 여행 경비를 줄인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유부초밥을 싼다고 법석. 6개월만에 만난 회포를 푸느라 둘다 일어나기 힘들었지요. 보통 관광객들이 요세미티를 찾을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2시간 30분 달려 머세드라는 곳을 거쳐 다시 1시간 30분을 달려 공원의 서쪽에서 요세미티 밸리로 들어와 후딱 사진찍고 남쪽으로 마리포사 그로브 들러 라스베이거스로 향하지요. 이게 아마 정석일겁니다.
저희 집은 샌프란시스코의 남쪽 베드 타운이자 산호세를 연결하는 쿠퍼티노여서 다시 샌프란으로 올라갈 이유도 없고 공원 북쪽의 레이크 타호도 둘러볼 계획이니 굳이 한국 관광객의 정석 코스를 따를 필요가 없지요.
야후 맵을 검색하면 아주 친절하고 상세한 드라이브 지침이 있어요. 몇 미터 내려가 우회전하면 어느 거리가 나온다고까지 안내하니 정말 도움이 되지요. 집 주소와 저희가 첫날 묵을 호텔을 입력하면 그만이지요. 저희가 택한 길은 지도의 99번 도로가 아니라 공원 아래쪽 프레즈노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41번 도로를 타고 북상, 공원의 남쪽 입구로 들어가는 것이었지요.
웃기는 일은 아내가 정성스레 싼 초밥 도시락을 먹을만한 장소를 못 찾아 프레즈노시 언저리에 있는 월마트 앞 잔디밭에서 먹었다는 거지요. 6개월 전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 캐니언을 갈 때 탔던 도로였는데 조금 가면 레스트 어레이어가 나오겠지 했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해서 찾다찾다 헤매다 10시 50분쯤에야 잔디밭을 발견해 사실상 길거리에서 밥 먹는 홈리스 꼴이 된 거지요.
근데 맛있더라구요. 집을 8시에 출발했으니 거의 3시간만에 먹는 아침이니 그렇지 않겠어요. 이때까지 제가 운전하고 여기서부터 아내와 교대했지요.
프레즈노에서 30분 정도 달리니 서서히 산의 윤곽이 보이더군요. 목적지에 다 다가온 듯해서 들른 곳이 배스 레이크였지요.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광경이었지만 사실 요세미티 안에 그렇게 많은 호수가 있는 줄 알았다면 여긴 들르지 않았을 거예요.
6개월 전에 예약한 호텔에 이르고보니 오전 11시 30분.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간이고 조금만 들어가면 공원 남문이 나오겠지 싶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지요.
27일 낮 공원 남문
공원 남문에선 20달러만 내면 가족들이 승용차를 이용해 공원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티켓을 팝니다.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이 이런 방식이지요. 캠핑을 즐기는 미국인의 패턴에 딱 들어맞는 겁니다.
근데 설악,지리와 달리 이곳에선 세가지 선물을 제공합니다. 요세미티 데일리라는 타블로이드판 신문과 신문 대판 크기의 컬러 지도,90페이지 짜리 컬러 공원 안내책자를 줍니다. 성인 2명에 초등학생 1명이 우리 돈 2만원을 내고 일주일 동안 드나들 수 있고 신문에는 또 요세미티 빌리지 안에서 30분짜리 요세미티 안내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니 꼭 들러 영화를 감상하라고 안내하니 꽤 수지맞은 일로 여겨지더군요. 제 머리 속은 설악산 입장료 곱하기 우리 식구 하면 얼마이고 과연 이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따지고 있더군요.
우리 국립공원은 엄청난 수입에 견줘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는 자조적인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물론 공원 직원들이 입고 있는 옷과 모자는 미국의 그것을 본딴 것이 틀림없다는 판단인데 아직 다양한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요.
27일 오후 마리포사 그로브
공원 남문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틀면 요세미티 밸리, 오른쪽으로는 마리포사 그로브입니다. 저희들이 공원 남문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11월부터 폐쇄되는 글레이셔 포인트를 들러 밸리로 들어가자는 것이었지요. 또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티오가 패스를 이용해 공원 동북쪽에 자리한 레이크 타호를 가자고 이 코스를 택한 것이었지요. 남문으로 들어와 중앙을 즐긴 다음 동북 방향으로 공원을 빠져나가는 것이었지요.
공원 남문에서 20분 정도 달리자 마리포사 그로브가 나왔는데 어렵게 주차하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따라 2킬로미터의 트레일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야말로 삼림욕을 하면서 길 따라 오르면 자연스럽게 삼나무와 세쿼이아에 대해 공부하는 형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들 앞에서 기가 한참 죽었지요. 수년 전에 일본의 삼나무 숲을 우연찮게 구경할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이렇게 대단한 삼림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지요. 아쉬운 것은 디카로는 이 거대한 세쿼이아 숲을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는 거지요. 나무의 일부분만 걸치거나 숲의 일부만 담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정말 대단한 숲이었고요. 그렇게 오르는 데 1시간, 걸어 내려오는 데 1시간이 걸리는 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땀을 조금 내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요. 아침에 먹다 남은 초밥으로 대충 때웠고요.
사실 이 그로브에선 트램을 운영합니다. 밸리 투숙객들을 버스로 모셔와 우리로 말하면 코끼리 열차 같은 것에 태워 레인저가 앞에 앉아 숲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꽤 많은 사람이 이용하더군요. 1인당 8달러인데 그 돈이 아까워 우리는 걸어간 겁니다. 나중엔 조금 후회되더군요.
호텔에서 이런 일이
그로브를 나와 공원 남문에서 직행하면 얼마 못가 와오나 란 곳이 나옵니다. 여기에 계곡이 있다고해 한번 요세미티의 물맛을 보자 싶어 가족들을 채근해 가보기로 했지요. 딸아이는 여기 이름이 너무 재미있대요. 왜 오냐의 경상도 버전으로 들린다는 겁니다.
정말 그림같은 계곡,영어로 샬로라 하지요-옆에 그림처럼 서있는 나무들과 그 속에 캠핑카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더군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희들이야 야영하고 싶어도 장비를 준비해오지 않았으니 이런 경험을 해볼 일이 없지요. 잘 아시겠지만 이 사람들 캠핑카는 거의 호텔 수준이고 이들의 장비 또한 집에 있던 바비큐 용기마저 들고오고 냉장고까지 갖춰져 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지요.
하여튼 부러운 마음만 가득 채우고 치누알라 협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물에 손을 댔더니 그야말로 온 몸이 오싹해지더군요. 그런 물에 저 건너편 낚시꾼들을 보니 맨발로 들어가 한참을 서있더군요. 순간 왕눈이 이런 데 오면 문자 그대로 환장하겠구먼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왕눈이가 평소 하던 물 속에 산 있다란 말도 그 뜻을 알 수 있게 만드는 협곡이었고요.
와오나에 있는 서부 개척시대 마구간이며 당시 주택을 재현한 것을 보고 다시 제가 핸들을 잡고 공원 남문을 빠져나와 예약한 호텔로 향했습니다. 근데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닙니다. 올라갈 때도 사실 제가 운전했는데 그때는 잘 몰랐거든요. 1시간 오른 길을 나중에 내려와보니 30분밖에 안 걸리더군요. 더군다나 뒤에서 버스가 따라오니 아무래도 초보인 저는 더욱 신경이 쓰여 브레이크를 잘 밟지 않고 내려오게 됐지요.
오후 6시 30분. 서산에 해가 제법 기운 시점에 자동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다리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2000미터 고도에서 갑자기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아내는 말하더군요. 근데 이상한 건 운전자가 더 그런 증세를 나타난다는 겁니다. 요세미티에 있는 동안 그런 일이 꽤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애먼글먼 내려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한 것을 감사해 했습니다.
근데 호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옆 수영장에서 백인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저랑 딸애가 지켜보고 아내가 체크인을 위해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하도 나오지 않아 간단한 짐을 꾸려 데스크로 들어갔습니다. 꽤 많은 백인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나오더군요. 순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팍 오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백인 처녀는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해 다른 손님에게 방을 넘겼다고 미안해 하더군요. 4시부터 체크인인테 무슨 소리냐 했더니 자기네는 오후 6시를 마감으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 인터넷 예약 문건에 그런 사실을 왜 명시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더니 어쨌든 미안하다, 대신 다른 호텔에 방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거예요.
더 혼내고 싶었지만 영어도 달리고 해서 관두었습니다. 빨리 다른 호텔 찾는 게 낫겠다 싶은 거였지요. 근데 이 아가씨, 지도를 그려달라는 아내의 요청을 무슨 이유인지 끝내 거절하며 무조건 5분만 내려가면 그 호텔이 있다는 거예요. 지도를 그려달라는데 왜 안 그려주는지를 놓고 아내와 두고두고 얘기를 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아가씨 혹씨 문맹이 아니었을까요. 여기 오크허스트란 곳이 그만큼 오지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까지 해본 거지요.
근데 그 호텔이 안 나오는 거예요. 분명히 가르쳐 준대로 내려왔는데 다시 오르막이 저 건너 보이는-거기서부터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산길 오르막이 시작되거든요-거예요. 해서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반대편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봐도 안 나오는 거예요. 이제 7시 30분이 다 돼가더군요. 날은 어두워지고 초조해져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기로 해 물어보는 데 다들 방없다는 거예요.
주위를 둘러보니 저희들처럼 호텔에 들렀다 뭐 씹은 얼굴로 나오는 차들이 많아요. 이 동네 오늘 대박났네. 한참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아내가 그래요. 맨처음 호텔 여직원한테 다시한번 가서 따지겠다는 거예요. 아이구 그만두세요 아줌마.
이제 8시가 가까워오니 모든 걸 포기하고 프레즈노까지 내려가자 이런 생각을 하고 산길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근데 왼쪽에 퍼뜩 그 호텔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길 아래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은 겁니다. 프런트에 들어갔더니 긴 줄이 서있더군요. 여기저기 퇴짜 맞은 길손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호텔스 닷컴 등에 예약하면 10달러가 할인되는데 예약없이 가면 10달러를 더 비싸게 자야 되는 겁니다. 30분 기다린 끝에 프런트 여직원이 소리칩니다. 애니원 엘즈 레저베이션? 아무도 긍정하지 않자 다시 외치더군요. 타임 이즈 아웃. 이제부터 예약도 안하고 온-혹은 예약하고도 방을 도둑맞은 우리들의 차례가 온겁니다.
여기서 웃기는 일이 또 벌어집니다. 여직원이 전화받을 새도 없이 바빠 하니까 나타난 백인 청년이 지딴에는 이 호텔 그렇게 후진 데 아니라고 트리플 에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내는 더블 베드에다 딸애 있는 침대만 있으면 된다고 아이 헤브 더 도터 어쩌구 하는 거예요. 꼭 백인처럼 생겼는데 나중에 가족들과 대화하는 걸 들으니 남미 출신이 분명한 한 친구가 옆에서 참견하는 거예요. 트리플 에이 인증 마크가 붙어있는 패를 가리키며 이 호텔이 괜찮은 호텔 어쩌구 설명한 거였죠.
아내는 영어 헛공부했다고 겁나게 뭐 팔려 하는 거예요. 하여튼 우리가 들어간 방은 1층 프런트 바로 옆 방인데 장애인용이라 엄청 큰 게 특징이었지요. 욕실 크기가 거의 저희 오피스텔 크기만 하더군요.
아내는 여행 첫날이면 으레 그렇듯이 욕실에 들어가 토하기를 시작하더군요. 아침부터 설친 데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편이라 항상 여행 첫날이면 토하지요.
저도 그렇고 딸아이도 그렇고 우리는 배가 고프거든요. 그리고 이런 장면 하도 많이 봐가지고 익숙해져 안타깝지만 우리끼리 먹기로 했지요. 집에서 데워온 돼지고기 볶음에 상추쌈을 싸 먹으니 맛이 최고지요. 딸아이는 참치 통조림 한 통을 거뜬히 비우고 맛나게 밥을 먹고 나니 9시. 이제 피곤이 몰려오네요. 차 안에서 잠을 계속 잤던 딸아이는 정신이 말똥말똥해 하는데 그냥 불끄고 자기로 했습니다. 내일 하루 신나게 돌아다니려면 지금 잠을 자야지요. 이렇게 여행 첫날 밤이 막을 내립니다.
첫댓글 정말 딸내미 아빠 닮아서 참 크다. 거의 키가 비슷(?)하네. 엄마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미인이고, 진짜 한번 다녀오면 더욱 그리워 지내기 힘들긴 하겠다. 큰 산 큰 물 보고 왔으니 마음 크게 먹고 6개월 잘 기둘려 보더라구. 이제 한국의 산이 너무 쪼맨하다는 생각이 안들라나 몰라.
몇년전에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길! 방학마다 vacancy네온을 찾아 불나방처럼 헤매던 밤들... 바로 어제일같은데...중요한건 얼만큼의시간을 공유했냐가아니고 얼만큼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고 나를 비워가며 그를 쓸어담았는지... 조금은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근데 미국에서 꼭 내가핸들잡으면 급경사에 폭우더라..3탄!
4년 전 아들 고1때 새크라멘토 근처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보냈는데 그리워서 새벽전화 기다리며 전화기를 베고 자다시피 했죠.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에 갔다고 전화 오면 인터넷 뒤지며 같이 여행을 했어요. '그리움'--길지 않은 인생에서 향유할 만한 풍요로운 감정입니다. 즐기세요. 곁에 있어도 그리우면 더욱 좋고.
공교롭게도 여자 선배 세 분으로부터 걱정과 위로,또는 즐기라는 권고를 듣고 있네요. 잘 견뎌내야죠.아침에 통화했는데 5분쯤 막 떠들다가 갑자기 딸애가 울려고 했다는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네요.얘가 마음이 좀 약한 편이라. 저는 약한 듯해도 강하다는 얘기를 듣는 편이고.격려 저버리지 않도록 힘내야죠, 아자.
그래요. 형 힘내시고요. 그리고 부부는 가끔씩 떨어져 있어봐야 서로 소중한 걸 아는 것 같아요. 우린 24시간 붙어 지내려니 영 ~^^. 근데, 언니는 제가 언제 뵌 적이 있나요? 얼굴이 익은데...
제수씨는 십몇년전에 중구에 살 때 한번 집에서 본것 같은데...그 당시 말라 보였는데...사진 보니까 지금도 말랐구나..딸사진을 유심히 보니 너하고 코와 눈 있는데가 아주 많이 닮았다...내가 어저께 2번 읽고 오늘도 1번읽고 먼 말을 달까 곰곰생각해 봤는데 (나영민 최장고 댓글)....암만 생각해도 즐거운게 최고인것
같다. 그냥 유괘하게 생활해라...저번 청계산행때처럼 "총각행세" 하면서 말이다. 너 젊어 보이니까 산에 미쳐서 때를 놓쳤다고 하면 다 믿을거다...
형, 은별(맞죠?)이의 꿈꾸기가 저 레드우드의 높은 키만큼, 그리고 아름드리만큼 커지고 넓어질 거라 생각하면 행복해지지 않으세요?
그리고 어제 제가 직접 체험한 '여행의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 하나. 어제 엄마 묘소에 갔었거든요. 동생네랑. 그런데 묘 옆에 있는 집안 어른들의 커다란 대리석 가족납골묘를 보며 만 두 돌(어제가 두 돌 생일)된 제 조카 혼잣말로 그러대요. "와, 중국이다."
말도 잘 못하는 녀석에게 한 달 전 다녀온 자금성, 혹은 천제단, 혹은 명나라 왕릉이 그렇게 새겨지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죠. 알 형 파이팅! 참 이거 콩글리신데!!! ㅎㅎ
형 정말 여자들한테 인기 많네! 댓글이 모두 여자네.. 곤충 빼고, 나(어류? 맞나?)도 빼고..
감히 우렁쉥이가 척추동물 동네를 넘보다니. 오리너구리가 포유류라 외치면 이해하지만.
멍게야 ! 고맙다. 곤충으로 분류해서...난 해충인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