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누에고치의 추억
흰색의 아름다움을 처음 깨닫다
'누에는 분명 푸른 뽕잎을 먹고 자라는데 똑같은 입에서 토해내는 명주실은 어쩜 저토록 고운 흰색을 띠고 있을까...?'
어린 시절 매년 한 철이면, 우리집 식구들을 쪽방으로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던 그 누에들을 보고 어린 소년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 귀여운 녀석들이 생산해놓은 하얀 누에고치에 연신 감탄하면서 소년은 자연스레 때묻지 않은 순백(純白)의 아름다움도 더불어 깨달았다. 무엇이든 푸짐한 것이 최고인 줄 알았던 그가 처음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 여백의 미(美)를 처음으로 알아챈 것이다.
사각사각…. 초여름밤, 그토록 잠이 많은 녀석들이 밤새도록 하얀 집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뽕잎을 갉아대는 소리의 정겨움이라니! 그 무언의 합창소리는 또 얼마나 가늘고도 길었던가? 침묵과도 같은 그 여름밤의 교향악에 소년은 꿈 길에서조차 귀를 종긋거릴 지경이었다.
누에들은 소년의 손가락 만큼 자라나면 본격적으로 가늘지만 길디긴 명주실에 자신들의 짧은 인생을 악보처럼 그려놓고 탈진해간다. 그리고는 기나긴 영면(寧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누에 녀석들은 애써지은 '하얀궁전'에 잠이 든 뒤로 가끔씩 실례(?)를 하기도 한다. 줄지어선 새하얀 누에고치 사이로 한 귀퉁이에 갈색 물을 들인 고치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누런 고치를 솎아내며 소년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녀석들은 분명 뽕잎 아닌 걸 먹어 배탈이 났을 거야! 안그래? 그래서 어른들이 늘 송충이는 솔잎을,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하는 법이라 하셨거든!'
1960~70년대, 내 고향에서도 누에 키우기가 농삿일 만큼이나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76년쯤 전국적으로 58만 가구가 양잠(養蠶)을 했다고 하니, 그 시절의 소년과 그 형제, 누이들은 대부분이 누에의 입에서 나온 명주실 덕택에 배움을 얻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내 고향집 우물 옆에는 아직도 품에 안으면 한 아름으로도 부족한 늙은 뽕나무가 한 그루 버티고 있다. 그 우물가 뽕나무는 아직 내 어린시절의 추억의 한 켠에서 오롯하다.
늙은 뽕나무에는 철이 되면 여전히 싱싱한 뽕잎과 검붉은 오디가 수 없이 메달린다. 그 시절 소년은, 파란 뽕잎은 따다 누에를 주지만 파알간 오디는 어린 누이들의 입에다 넣어주었다. 오디 먹고 새까매진 어린 누이들의 입술을 보고 깔깔대던 그 때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김홍균 ⓒ
첫댓글 어린시절 고향에서 외할머니가 가끔씩 누에치는 모습을 잘 보아왔기에 눈에 선합니다. 오디가 익을때면 더욱더 신이 나지요.뽕도 따고 님도보고 오디도 먹고............ 옛추억을 되새기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