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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김동인 단편 전집1, 2>, (가람기획 : 2006)
글의 단편 단편이 마치 허무하게 지나가는 듯한 바람과 같은 글 같다.
무엇을 나타내려 이렇게 많이 단편집을 썼을까?
마치 남겨지지 않을 것 같은 글 조각조각들이 가슴을 쓰리게 다듬어 나가는 느낌이다.
“ 나는 일본말을 모르는 조선 사람에게 읽히고자 쓴 작품이니, 그런 구차한 노릇까지 못하겠다. ”
일본의 지배 하에 어쩔 수 없이 문학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
그의 생활환경을 보면,
부유한 집안에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유교적인 사상 대신)을 가진 서북지역 출신이다.
1900년 10월 2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평양 하수구리에서 8대를 내려온 집안으로서 상당한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집안 환경에서 당연하다시피
“유아독존”의 사상을 머릿속에 깊이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환경에서 충실하게 살지 못하였다.
술과 노름 여자에 빠져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고,
그는 살아가기 위해 문학을 하였다.
윗 글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기질적으로 오만하고,
자존심이 세었다.
그런 그가 일본의 식민지 하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글은 항상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있다.
1편에서 그는 배따라기, 감자, 광염소나타, 광화사... 등등의
대표적인 글과 함께 20편정도의 단편 글이 있다.
대표적인 글의 성향을 보면, 그의 글 속에서 순진하고,
우직한 조선인을 그리다가 점점 퇴락의 길로 빠져드는 여인과 남자를 그려놓았다.
배따라기에서 주인공인 뱃노래를 부르면서, 옛일을 회상하게 되는데,
자신의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부인을 죽이고, 동생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실상 그것은 배따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노래일 것이다.
그것은 감자에서도 마찬가지로 순진하고,
부지런한 복녀가 점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성을 접하게 되면서,
점점 그 길로 빠져서 나중에는 파멸한다는 이야기...
물론, 광화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화공의 이야기를 꾸미는 단계에서 화공 솔거가 자신이 아내를 얻는 대신
완벽한 미녀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고, 여인의 얼굴을 찾아나서는 계기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찾게 되는, 봉사인 한 처녀를 만나 그녀를 그리기로 하고 데려가 그림을 시작한다.
그녀를 꾀하기 위해, 용궁이야기로 데리고 왔지만,
이야기에 실증이 느낀 화공은 그녀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은 실수로 그녀를 죽이게 된다.
그녀의 몸부림에서 먹이 튀어 마지막 눈동자를 찍게 된다는 이야기...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글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광염소나타에서는 더욱더 놀라웠다.
아니 흥미로웠다.
그 주인공은 “기회라는 것은 사람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다.”
라는 말이 글 속의 주제를 내포했다.
<광염소나타>의 피아노곡을 만든 백성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마을에 불을 질러 방화를 해놓고,
그 것을 즐겁게 보면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다.
말 속의 기회라는 것은 어느 날 불이 난 것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피아노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베토벤을 능가할 만한 음악!
그것은 흥한다고 할 수 있고,
망하게 한다는 것은 그것의 쾌미를 느끼며,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방화였지만,
더 즉흥적인 기분을 내기 위해 굴러다니는 사체를 던지고,
던지면서 깨어지는 모습을 보고 음악을 만들었고,
아름다운 여인사체에 사랑의 행위를 하게 되면서,
백성수는 불멸의 곡을 만들게 된다.
이야기는 점점 괴이하고 시니컬하게 이어져나갔다.
결국 그는 법의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1900년대의 조선사회에 대한 형상을 그려나간다.
그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조선을 조선사회를 알려보고자 하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환경에서 결코 평범하게 일어날 수 없는
살인이야기를 내세우면서 이야기는 나의 뇌리에서 흠집을 낸다.
끔찍하고 쇠처럼 쨍하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김동인은 이처럼 약간의 교훈적인 의미를 내세우면서도,
조선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 김동인의 단편전집2 ”는 20편의 단편집에서
“선구녀”라는 이야기 속 주인공 연실이의 기구한 삶 속에서 무엇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연실은 첩실의 자식으로 태어나 결코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녀였고,
그는 그의 삶을 찾아 나서기 위해 돈을 들고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거기서 조선여자들의 선지식의 문학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도 여성문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연실은 주변사람 최명애를 만나 인생이 점점 퇴락되어간다.
진정한 문학가가 되어 간다는 것 보다 겉모습에 만족하는 속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이 마지막 목표가 되었고,
그는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는 것이 신여성의 행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실이의 충실하지 못한 행동을 보고, 난 그녀의 끝이 비극으로 끝날 거라 믿었다.
그녀는 결국 최명애와의 관계 속에서 마지막에 진정한 정신적인 사랑을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 구조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나에게 결코 어려운 문학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고 느끼자고 하는 것이었다.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퇴락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접하면서,
나의 삶과 비교해 보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인들의 삶의 형식에서 벗어나 그는 일본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비판한다.
그 통치 속에서 조선인들의 사상을 짓밟았다.
철저한 조선인이 일본교육에 의해 세뇌당하였다.
통치 전에 살았던 사람이 진정한 조선인이라면,
통치 이후에 사는 사람은
일본인일까?
조선인일까?
“김덕수”, “반역자”라는 글에서 해방 이전과 이후의 조선인의 삶을 나타내었다.
살아남기 위해 일본의 심복이 되어야 했고, 해방된 이후에 그들은 진정 행복했을까?
김동인은 해방이후의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을 풀어야하는 것은 우리인 것이다.
“주춧돌”에서는 자신의 명예를 바쳐 조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한 노인에 대한 희생정신을 그린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천재적인 오페라 천재였던 그가 미친 늙은 정신병자가 되어,
조선동포의 추춧돌로 여생을 보내려는 거룩하고 거룩한 심정.
그의 글은 그렇게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희생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김동인은 진실로 조선의 곧은 대나무 같은 선비 같았다.
조선의 말로써만 조선의 문학이 바로 선다는 것을 주장했던 김동인 이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조선의 문학가이다.
우리 조선 문학을 바로 서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
첫댓글 _()_밤을 하얗케 새우시는 문학적 열정,순수미에 합장드립니다.아미타불.
대단하다고 밖에 말 못함~
ㅎㅎ 멋진 평론! _()_
촌철살인! 역쉬!(꼭 아들이어서 편을 드는 것이 아님!)
김선희 부처님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아미타불!
김선희 부처님!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선희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