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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듯 몽환적인 < 비너스의 탄생>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가장 유명하며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가리비 조가비 안에 약간 이상한 포즈로 떠 있는 비너스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지만 매우 아름답다. 그녀는 이제 막 신들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계로 한발을 내디디려한다.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풍요로운 대지의 여신 비너스는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드라마틱한 탄생설화를 갖고 있다. 옛날 횡포가 극심했던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반발한 막내 아들 크로노스에게 생식기를 잘린다. 키프로스 섬 근처 망망한 파포스 바다 위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살점과 피는 파도에 쓸려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아름다운 거품이 되었다.
눈치 빠른 사랑의 서풍(西風) '제피로스'에 의해 '키프로스' 섬으로 밀려간 거품은 점차 여체의 형상을 띠어가다가 그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신을 내놓는다. 찬탄과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는 이렇게 에게해 푸른 파도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에 해당하는 ' 아프로티테'라는 이름도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서 유래한 '디테'로 이루어졌다.
The Birth of Venus, 148 0, Tempera on canvas,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이 그림은 거룩한 미의 여신이 탄생해서 육지에 상륙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왼편을 보면 비너스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서풍 제피로스가 비너스에게 달려들고 있다. 제피로스는 생명력 넘치는 미풍으로 입 속을 볼록하게 부풀려 장
미꽃을 뿜어내며 온 힘을 다해 비너스를 기슭으로 밀어 올린다.
깍지 낀 두 손으로 제피로스를 꽉 껴안고 한데 엉켜 있는 여인은 꽃과 풍요를 상징하는 님프 클로리스. 사랑을 보여주는 이들의
다정스러운 포옹 주변에는 비너스의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제피로스와 결혼한 클로리스는 꽃의 여신
인 플로라가 된다. 봄의 전령인 꽃은 이미 비너스의 주변까지 날아와 부드럽고 우아하게 떠다닌다.
비너스가 몸을 의지하고 있는 조가비에서는 여성이 느껴진다. 육지에서는 계절을 알리는 님프 호라이가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
진 붉은 망토를 펼쳐 들고 비너스를 영접하기에 여념이 없다.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벌거벗은 채로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꾸며서 신들에게 데려가려는 것이다. 수줍어하는 처녀 비너스는 거의 10등신에 가까운데, 모델은 당시 피
렌체 최고의 미인이었던 시모네타였다고 전한다.
보티첼리의 순결한 비너스가 탄생하다
보티텔리는 아마 아주 순결한 마음을 지닌 화가였던 것 같다. 그는 옷을 걸치지 않은 여인의 모습을 너무 세속
적이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었다. 비너스 탄생의 산고와 습한
분위기까지 느껴질 정도니, 보티첼리가 구현한 회화적 표현의 경지는 정말 밑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위
대한 것은 보티첼리에 의해 정형화한 비너스의 미와 순결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비너스
탄생의 음산한 배경을 모두 뛰어넘게 한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머릿결을 휘날리며 서있는 비너스의 자태는 바람에 나부끼듯 우아하지만 어딘가 서먹하면서도 멜랑
콜리한 표정이 읽힌다. 탐미와 금욕, 관능과 우수의 서로 상반되는 극단적인 이미지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
고 있기 때문이다. V자 무늬로 표시된 일렁이는 물결은 그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사실 비너스 자신말고는 어
느 누구도 그녀가 공중에 유연히 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며, 조가비에서 한 발짝 내디디려 하는 듯한 비너스의 자세는 몸을 그 위에 확실히 딛고 있다
기보다는 미묘하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물리적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민들레 꽃씨가 날리
는 듯한 가벼운 느낌이다. 청정한 파포스 바다의 잔물결에 몸을 맡긴채 떠밀려 온 비너스는 다시 육지의 목적
지를 향해 둥둥 떠갈 것이다.
우리가 갓 탱어난 비너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에도 조가비배는 벌써 그녀를 해변으로 인도했다. 어
두운 해저 위로 가볍게 찰랑이는 투명한 잔물결을 넘어, 이제 우리 눈앞에는 아름다운 여신의 탄생을 경외하
듯 흩뿌려진 꽃송이와 이제 곧 그녀가 지나갈 길에 그늘을 드리울 나무들이 펼쳐진다.
신화는 자유로운 창조를 위한 돌파구
마치 긴 잠에서 막 깨어나 여전히 꿈꾸는 듯한 표정과 나체를 감추려는 듯 은근한 몸짓의 비너스는 무척이나
고혹적이다. 신비에 싸인 중세의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한층 더 관능적으로 미화된 비너스는 보티첼리
에 의해 현현되었다.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창조를 위한 하나의
돌파구를 제공했다.
중세 시대에 예술가는 단순한 기술자 정도로 생각되었고 일반 공인들과 마친가지로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가로서 개성을 표출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도래하자 화가들의 자의식은 공방의 장인을
넘어서서 전인적인 예술가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은 기독교 유일 신앙에 관한 어떠한 반문
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종교의 시대였는데다 그들의 가장 큰 고객은 교황과 추기경 등 종교 권력자들이었다.
게다가 성경은 변주의 여지가 많지 않아 소재 선택에서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이단으로 몰린다거나 권세 꽤
나 있는 고객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낼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그리스
신화였다. 르네상스 새대의 신화 그림들은 당대 화가들의 정치 및 사회의식, 예술가적 자의식이 시대 상황과 적당히 타
협한 형태로 나타난다.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여신이 정숙하고 순결한 '성(聖)처녀의 이미지'로 재탄생되었
다. 물론 교회는 이런 이교도의 이야기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성직자도 이 그림을 두고 '퇴폐적이다'
'우상숭배다'라고 공격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정숙한 비너스의 포즈는 후대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여러 차례 변주된다.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재현해낸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완전한 누드'
푸른 바다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여성미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비너스
의 이미지는 각 시대가 추구한 관능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단순히 관능의 역사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그녀들이 존재했던 시대의 미를 반영한다. 보티첼리 스타일의 '순결한 관능미'는 기독교적인 세계
관과 도덕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르네상스인들의 확고한 도전과 반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은 하나의 구실이고 현실의 구속을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더 커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누드화를 그리고 싶어서 고전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끌어댄 것인지도 모른다.
이 <비너스의 탄생>은 '천상의 사랑'을 상징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천상'의 비너스가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완전한 누드화'였다는 사실이다. 신의 말씀만이 진리이던 중세에 붓 하나로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어젖힌 보티첼리는 그동안 죽어 있던 여신 비너스에 '성녀'의 새생명을 블어넣었다.
관능의 절정 '봄'
<비너스의 탄생>은 '천상의 사랑'이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봄>은 '지상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여기서 보티첼리는 예술적인 탐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메디치가문의 코시모 대공 별장에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걸렸다고 전하는 <봄>의 제작 연대와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1475년 기마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사랑을 축복한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고전적인 상징시 '라조스트라(La Giostra)'를 1475년 무렵에 회화화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Primavera 봄 1477-80 Tempera on wood,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봄>은 줄거리를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진다. 꽃이 만발한 피에조레 언덕의 저녁놀이 깃들인 오렌지 숲 속에 비너스가 사랑의 신 큐피드를 거느리고 나타난다. 오른쪽에서는 비너스의 동산에 나타난 푸르스름한 색조의 제피로스가 입속 가득히 머금었던 봄바람을 힘껏 뿜어내고 있다. 월계수 숲 사이로 날개를 숨긴 그가 팔을 뻗어 붙든 여인은 아내이자 꽃을 상징하는 님프 클로리스다. 봄바람이 닿자 클로리스의 입에서 꽃이 쏟아져나오고 왼쪽의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플로라로 변신한다.
바람의 자취를 좇아 꽃을 뿌리며 봄을 알리는 플로라를 지나 화면 중앙의 비너스는 동반자인 우미(優美)의 여신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동산에 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서 있다. 지상의 비너스는 마치 성모를 연상시킨다. 우리의 눈길은 오히려 윤무를 추는 미의 세 여신에게 쏠린다. 속살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세 여신의 관능적인 몸짓,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보티첼리가 추구했던 예술미의 본질이다.
세 여신은 왼쪽부터 '애욕' '순결' '미'를 상징하는데, 큐피드는 불타는 불꽃의 화살촉을 가운데 여신을 향해 날릴 태세다. 아직 사랑을 아지 못하는 순결한 자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지필 셈인가. 인본주의라는 르네상스 이념은 인간이 가지고 잇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서 관능이라는 부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시대의 화가 보티첼리를 부추겼을 것이다. 화면 왼쪽에는 신들의 사자 메르쿠리우스가 뱀 모양의 지팡이를 치켜들고 비구름의 이슬을 털고 흩으며 이 아름다운 순간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차분하고 정갈한 청색조의 숲 속에 여신들의 투명한 아름다움이 덮이면서 보티첼리 특유의 감미롭고 섬세한 곡선의 리듬이 극대화되었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는 조가비를 타고 바람에 밀려 해변가에 도착한 지극히 관조적인 천상의 비너스라면, <봄>의 비너스는 자연의 방식으로 태어나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사랑을 상징하는 물질세계, 즉 지상의 비너스로 해석된다. '천상의 사랑'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지상의 사랑'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이 두 가지 사랑은 이렇게 서로 돌고 돌면서 이 세상을 사랑으로 채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비너스의 사랑에 이끌려 보다 높은 곳, 신의 사랑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비너스의 화려한 올림포스 입성 해부학에 정통했고 강력한 후원자인 메디치가의 인분주의 사상에 해박했던 보티첼리는 특유의 시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교도의 이야기를 아주 경건하게 다뤘다. 신플라톤주의(플라톤 철학에 동방의 유대사상을 절충하여 신비주의 적인 직관과 범신론적인 일원론을 주자안 파)에 심취했던 피렌체의 인문주의 물결은 보티첼리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모든 근원은 하나라는 철학적인 신념은 그리스 신화 역시 기독교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한 단계로 해석하는 융통성을 발휘하게 한다. 이제 회회에서는 더 이상 성모 마리아 한 여인만을 숭배하지 않는다. 비너스의 '거룩한 아름다움'은 우리를 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 이끈다.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조가비 속 진주처럼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이제 세례를 통하여 '신의 재생'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거대한 희망이었던 '인간의 재생'을 의미하게 된다. 해부학에 완벽했던 보티첼리였건만 이상하게도 비너스의 몸매는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목은 일부러 늘여놓은 것처럼 길쭉하고 양쪽 어깨는 가파르게 쳐졌다. 심지어 왼쪽 팔은 몸통에 붙은 것처럼 보인다. 의도적인 불균형과 파격, 그리나 신비하게도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오히려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걸출한 르네상스 화가는 파격을 통해 조화를 이루고, 표현의 자유와 회화에 보태어진 시적 상상력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선보인다. 이 그림은 정말 강력하다. 저절로 시흥을 돋우는 서정적인 아름다움, 르네상스 회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잔틴과 고딕의 신성한 위엄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정립시킨 르네상스야말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르네상스라는 시대는 그의 타고난 회화적인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 땅을 보티첼리라는 화가는 주저없이 활보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이자, 도시 전체가 올망졸망 아담하여 '꽃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가진 작은 도시 피렌체에서 1444년 3월 1일 태어나 65세의 나이로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거의 그 도시를 떠너본 적이 없는 피렌체의 화가 보티첼리는 당대 최고의 가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으며 메디치가 지식인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다. 유려한 선과 투명한 색체의 비너스로 '시인 화가'라 칭송받은 보티첼리야만로 아기자기한 꽃의 도시 피렌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였다. 비너스는 이제 막 눈부신 알몸을 옷으로 가리려한다. 사실 우리는 사람의 벗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르네상스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경솔하고 도독적 위선에 오염되어 있어 참된 아름다움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자유로운 정신의 화가 보티첼리는 이교도의 신앙도 역시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종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종교화 대부분에는 세상의 모든 진리는 곧 하나로 수렴된다는 자신의 경건한 믿음이 한결같이 나타나 있다.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남성화가가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우아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감미롭다.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도덕 관념과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이 이 그림을 그토록 사랑받게 했을 것이다. 새로움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비너스의 탄생>은 오늘날까지 수 많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비너스가 태어나도록 고무하면서 현대 여성미의 이상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년
비너스는 꽃들에 둘러싸인채 하늘을 나는 바람신에 의해서 바다로부터 탄생되었다. 비너스가 대지로 막 걸어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님프가 자주빛 외투를 가지고 그녀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은 우아하며 완벽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그림속의 인물들은 우아한 곡선의 선율에 둘러싸여 있다. 이 거대하고 우아한 그림속의 모델은 이탈리아 피렌체 최고의 미인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피렌체의 모든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모네타를 보티첼리는 사랑하고 있었다. 보티첼리는 그가 그린 여러 그림속에 불멸의 시모네타를 그림으로써 새겨넣었다. 여신 비너스는 서풍에 의해 탄생되어서 뭍으로 아름답게 걸어나온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 바람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이 그녀를 장식하며 대지의 요정이 그녀의 우아한 발걸음을 맞이한다.
보티첼리 비너스와 마르스 1483년
보티첼리가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보티첼리가 그녀를 사랑해서 그림속에 불멸의 여신으로 새겨넣으려 했던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보티첼리의 그림속에서 비너스는 보티첼리가 사랑했던 시모네타로 알려져 있다. 부유하고 엄격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시모네타는 15살의 나이에 베스푸치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피렌체의 귀족들에게 알려졌으며 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시대의 절세의 미인이었던 시모네타는 1476년 4월 26일 불과 22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게 되었다. 그녀를 바라보자마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가 죽어서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보티첼리는 그녀가 죽고나서 9년 후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다.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이 그림 비너스와 마르스에서도 비너스는 보티첼리가 사랑했던 여인 시모네타였다.
보티첼리 불굴의 정신 1470년
그림의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드는 이 그림속에서 여신은 당당한 태도와 자태로서 꿋꿋이 자신을 자신감있게 나타낸다. 이 그림은 비너스의 탄생, 봄과 함께 보티첼리의 3대 대표작이다. 보티첼리의 유명한 그림들은 대부분 메디치가를 위한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 그려졌다. 보티첼리의 그림속에는 곡선의 미가 깃들어 있으며 그 곡선속에는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그의 그림속에는 곡선의 미와 함께, 감성적인 생각들, 여신들의 은총들이 깃들어 있다. 그의 그림속에는 고딕 양식 스타일의 심세한 정서가 깃들어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 양식은 후세에 아르누보 그림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
보티첼리 프리마베라(봄) 1482년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는 한명이 그림속의 불멸의 세상속에서 그림 바깥의 일시적으로 변하는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건 보티첼리가 그림속에 불멸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림속의 세상, 몇백년을 지속해왔던 이 그림속에 그는 그가 사랑했던 시모네타를 새겨넣었다. 불멸의 비너스가 된 그녀는 그림 바깥의 세상을 응시하며 바라본다. 그림의 오른쪽에서 님프 클로리스를 쫓아가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 그 옆에 방글거리는 미소를 간직한 꽃의 여신 플로라가 서있다. 보티첼리는 여신으로 변화하는 클로리스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였다. 큐피드는 왼쪽에서 춤을 추는 우아함의 여신들 카리데스를 사랑의 화살로서 겨냥하고 있다. 왼쪽에서 붉은 색의 외투를 걸친 머큐리는 정원에서 노니는 여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는 그림의 중앙에서 이 그림속의 전체적인 움직임의 균형을 잡으며 그림속의 세상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이쪽 세상을 바라본다.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루스 1482년
보티첼리가 그린 여러 그림들에서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는 여신들은 그가 사랑했던 시모네타였다. 그녀는 피렌체의 모든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귀족들은 그녀를 여왕으로 앉혀놓고 말을 타고 기사도 경기를 펼쳤다. 15살의 나이에 결혼해서 22살의 나이에 죽었던 절세의 미인 시모네타, 그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였다. 그녀의 긴 목, 귀족적인 우아한 자태, 그리고 아름답게 늘어진 황금머리카락은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속의 비너스의 모습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죽은 후 끊임없는 연습과 습작으로 그녀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그의 불멸의 그림속에 그녀의 모습을 새겨넣었다. 시모네타는 결혼하였지만 결혼한 후에도 많은 귀족들이 그녀에게 구애하며 그녀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바쳤다. 그리고 귀족들의 파티에서 시모네타는 시인들과 화가들, 음악가들의 영감의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비너스였다. 그녀의 귀여움과 아름다움의 매력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매혹시켰다.
보티첼리 여섯명의 성자에게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와 아이 1470년
보티첼리는 성모 마리아 그림으로 꽤 많은 명성을 얻었다. 보티첼리의 성모 마리아 그림에서의 매력은 어머니와 아이의 교감하는 표현에 깃들어 있다. 특히 아이의 매력있는 표현은 그의 성모 마리아 그림의 매력이며 특징이다. 그림에서의 표현은 대개 신중하며 그림속의 인물들의 표정은 때때로 강렬하다. 보티첼리의 그림속에서 성모 마리아는 신성한 경외심과 전조적인 슬픔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보티첼리의 성모 마리아 그림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천사들, 성자들의 시선과 표정이 긴밀한 선으로 연결되는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다. 보티첼리는 시스티나 성당을 꾸미기 위한 그림을 그렸으며 초상화도 그렸다. 보티첼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에 대해서 그 자신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으며 그의 스스로의 스타일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이 그림들을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하였다. 보티첼리는 결혼한 부부에 대한 미덕을 표시하는 그림도 그렸으며 그러한 그림들속에는 대부분 우화적인 느낌이 깃들어 있다. 그는 단테의 신곡을 위한 90개 이상의 삽화도 그렸다.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수 많은 화가들의 영감을 잡아끌었던 단테의 신곡을 위해서 보티첼리가 작업한 이 그림들은 대부분 펜과 연필로써 그려졌다. 단테의 시들을 위해서 그려진 이 그림들 속에는 자연에 깃든 사람들과 명상에 잠긴 사람들의 표정, 그들의 극적인 움직임들, 균형잡힌 능숙한 균형과 배열등이 보티첼리의 마지막 그림작업을 돋보이게 만든다.
보티첼리 수태고지 1490년
시모네타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 힘과 재산,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의 여왕처럼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보티첼리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같은 거장들, 그리고 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여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모네타는 피렌체의 귀족들에게 "아름다움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었고 그녀가 22살에 죽고나자 수 천명의 애도자들이 그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장례식 행렬에 참여할 정도였다. 피렌체의 어느 누구나 그녀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보티첼리만큼 큰 슬픔을 겪지는 않았다. 시모네타가 죽기전 병에 걸려 있었을때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그림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보티첼리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슬픔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는 9년동안 비너스의 탄생을 그리기 위한 그림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보티첼리가 비너스를 그리고 여신들을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그리더라도 그 모습에는 그가 사랑했던 시모네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는 사람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높은 이마, 귀여운 보조개가 그려진 턱과 아름답고 창백한 눈,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황금빛 머리카락, 우아한 목과 아름다운 곡선미를 통해 시모네타를 발견할 수 있다. 보티첼리의 시모네타에 대한 불멸의 헌신은 그의 수십개의 그림속에 여신의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보티첼리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보티첼리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시모네타를 불멸의 여신으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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