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구식 터미널의 형식이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지역이다.
여러 회사가 제각각 운영하는 고속터미널, '정류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외터미널이 그 흔적이다.
30여년 전에는 서울, 부산, 대전, 광주 등등 전국의 대도시들이 모두 이랬었지만,
2015년 기준으로는 모두 통합과 변경의 역사를 거치고 대구만 홀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흥미를 끌었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뒤로 밀리고 밀라다가 첫 계획에서 7년이나 틀어진 2015년에서야 겨우 일기를 썼다.
일기의 첫째 장이 고속터미널이라면, 다들 예상하다시피 둘째 장은 시외'정류장'이다.
여러번 접했던 동대구의 고속터미널과는 달리 여기는 난생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었다.
약 1시간 반에 걸친 동대구 방문을 마치고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직접 가본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고마운 물건 덕분에 길을 잃을 뻔한걸 헤매지 않고 찾아갔다.
길이 한 번에 이어지지 않고 몇 번 꺾어야했는데 이걸 깜박했다가 다시 되돌아간 것이다.
한창 다녔을 무렵인 2008년~2009년만 해도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어렵게 대로변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나즈막히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니 다 쓰러져가는 3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그 위로는 절벽과 가까운 경사가 놓여져 있었는데 무언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건물 한가운데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그 끝엔, 역시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바로 경북 동해안의 연결을 책임지는 '대구동부정류장'이다.
첫 번째 사진은 동부정류장으로 올라갔던 계단 옆의 '효신네거리'의 모습이고,
두 번째 사진은 효신네거리에서 동대구역 방면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동대구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효신네거리 부근에 바로 동부정류장이 있는 것이다.
비교적 큰 도로에서 접근하는 길은 이렇다.
명색이 대도시로 들어오는 시외버스를 타는 공간인데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없다.
맹세코 '시외버스터미널'을 안내하는 간판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효신네거리에서 동대구역 방향의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다시 왼쪽으로 꺾어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조그만 야산 정도 되는 수준의 둔덕에 제법 큰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영업중인 가게들도 많았는데, 정확히 어떤 것을 취급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둔덕 주차장 가운데에는 ㈜동부개발이라는 간판이 있다. 밑에 조그맣게 '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붙어있다.
그렇다. 바로 여기가 대구동부정류장인 것이다.
대로변에는 꼭 붙어있을 줄 알았던 나의 상상과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주변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잘도 꼭꼭 숨어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올라온 공간을 향해 뒤돌아보니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확실히 언덕에 올라왔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역시나 이렇게만 보면 여기가 버스터미널인지 잘 모르겠다.
1975년에 지어져 올해로 꼭 마흔이 된 불혹의 버스정류장인데,
오랜 시간 이 곳에 있었다는 자부심 때문에 일부러 홍보를 안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농담삼아 한 말이고, 버스를 잘 안타는 다수의 대구시민이나 어쩌다 한 번 오는 외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지하철 연결은 꿈도 못 꾸는데다 시내버스로 왔다고 해도 어디가 버스터미널인지 내려서도 찾을 수 없다.
분명 지도를 보고 찾아와도 보이지가 않는데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런 곳을 계속 찾아다니는 필자조차 길을 잃고 헤맬 뻔했다. 찾기 쉽게 안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물은 무척 낡았고 구조도 옛날 식이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법도 하지만 남부정류장에 관심이 쏠려 의외로 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 흔한 리모델링조차 복합환승센터라는 떡밥에 밀려 지지부진했는데,
결국 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서면서 리모델링은 필요가 없어져 이 모습 그대로가 최후의 모습이 될 것이다.
매표소 맞은편에는 '독도는 우리땅' 홍보물을 붙여놓았는데 마치 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버스터미널에 이런게 들어와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별 상관 없어'보이는' 대구에 이런게 왜 들어와있을까?
그것은 바로 울릉도가 경상북도 소속이고, 동부정류장이 주로 경북 동해안과 연결을 해주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울릉도로 가는 간접적 관문이니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창작자의 센스가 돋보인다.
독도가 울릉도 앞바다 외따로 있는 섬인 것처럼, 찾아가기 매우 까다로운 동부정류장의 입지가 왠지 겹쳐보인다.
위에 설명했다시피 주로 연결되는 지역의 해수욕장, 관광지를 매표소 위에 안내해주고 있다.
여기저기 소개한 곳은 많지만 정작 사람이 많은 곳은 불국사, 주왕산 정도 뿐이다.
경북 동해안의 위치가 접근성이 너무 안 좋아서 사람이 많이 찾지 않기 때문.
그나마 가까운 대도시권인 대구에서조차 영덕까지 1시간 반~2시간, 울진까지 2시간 30분~3시간이 걸리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자가용 기준으로, 버스로는 울진 직행이 3시간, 완행은 4시간 30분이 걸린다. 서울과도 거의 맞먹을 정도다!
커버하는 지역이 적은 편이어서 시간표도 대도시의 터미널치고 굉장히 소박하다.
그 작디 작다는 대전의 유성조차 A4용지에 인쇄해서 붙여놓지는 않는데...
덕분에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칠판시간표' '손글씨시간표'같은 분위기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주 노선은 포항행 무정차 노선으로 거의 시내버스처럼 자주 오기 때문에(10~20분 배차) 굳이 출발시간을 붙여놓지 않았다.
무정차 노선을 베이스로 울진행, 강릉행, 속초행도 운행하는데,
이보다는 경주-포항-영덕-울진-강릉행 완행노선이 훨씬 많다.
경주-효자동-포항-흥해-청하-송라-장사-강구-영덕-도곡리-영해-병곡-후포-평해-월송리-기성-매화리-구산리-울진을 모두 경유하는 완행노선으로, 포항 2시간, 영덕 3시간, 울진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경주까지는 직통이어서 경주 갈 때 이 노선을 타면 좋지만, 그 이북으로는 시승 목적이 아니면 타지 말 것을 권장한다.
포항 이북으로는 배차가 많이 늘어나서 포항-울진은 대략 30분~1시간 배차간격이고,
울진 이북으로 가는 강릉행 노선은 불과 하루 4회(05:40 09:00 11:00 13:30) 뿐이다.
대체로 첫차는 매우 일찍, 막차는 매우 늦게까지 있다. 소요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다.
여기는 울진행 직행노선인데, 무정차라고 안내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중간에 영덕-영해-후포-평해를 거친다.
완행버스와 비슷하게 대체로 50분 배차이지만 첫차, 막차가 매우 짧아서 9시 첫차, 18시 10분 막차다.
도보 10분거리의 고속터미널에서도 자주 있는 울산행은 여기서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울산행과 방어진행이 거의 1:1로 다니는데 시내에 정류장이 많아서인지 의외로 자주 운행한다.
경북 북부 내륙지방은 원래 북대구 관할이지만 청송만큼은 예외다.
같은 청송이어도 진보면은 북부정류장, 청송읍은 동부정류장 관할로 각각 나뉘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인 청송인 만큼 정말 생소한 시골 동네까지 훝고 지나가는 진정한 완행이다.
경유지는 영천-자천-회목-안부-도평-부남-청송-(주왕산) 순이다.
하루 14회, 배차는 1시간으로 대부분의 시간대에서 30분 정시출발을 한다.
포항행 완행버스는 하양-영천-고경-안강을 거치는데 역시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여기서 영천은 주 수요처이기도 한데, 영천을 가려면 저 두 노선 중 하나를 타면 된다.
포항행 완행버스 옆에는 경주행 완행버스도 붙어있다.
임포와 건천을 거쳐 경주까지 가는 노선이지만 최근 들어 배차가 상당히 줄은 듯 곳곳에 땜질을 해놓은 흔적이 보인다.
하루 10회, 배차간격은 1~2시간 정도로 많지 않으니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한다.
거가대교 개통의 영향인지 원래 있었던 것인지 여기서도 거제도행 노선이 있다.
주말 8회, 평일 6회 뿐이라 시간표는 필수로 확인해야 하며, 전차량 우등으로 실어주는 고속버스 노선이다.
마찬가지로 이웃 고속터미널(한진)에서도 시외면허 노선이 있는데,
고속과 시외의 구분조차 체계적이지 않고 회사마다 임의로 정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청송행과 묶어야 할 것 같은 죽장-상옥행 완행버스는 여기에 있다.
역시 하루 3회 뿐이지만, 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외지로 나가는 가장 편한 수단이다.
확실히 행선지가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동서남북 구역별로 정류장이 나뉘어있는 대구의 특성상 크게 부족하거나 한 것은 없다.
다만 북부와 서부에 비하면 노선이 적고, 도보 10분 거리에 고속터미널과 동대구역이라는 존재가 있어 인지도는 다소 떨어진다.
덧붙이자면 심각한 접근성도 한 몫 하고, 대부분 완행버스와 국도 경유노선 위주여서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경주 4,900원 포항 7,000원 영덕 12,500원 영해 14,400원 평해 16,900원 울진 20,900원.
왕래가 많고 버스, 기차와 경쟁하는 경주행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나머지는 거리에 비하면 다소 비싼 편이다.
동해와 강릉은 3만원이 넘고, 속초는 4만원이 넘는다! 부산-거진 완행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요금이 비싼 노선일 것이다.
울산행은 7,100원으로 일반 고속버스와 요금이 같다.
영천 3,600원 안강 7,000원 청송 15,600원 주왕산 17,700원으로 영천의 경우 나쁘지는 않은 편이지만
국도 구간이 많은 청송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버스 타는 곳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화장실, 매점, 의자, 기사 휴게실이 모두 여기에 몰려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철제 쓰레기통이 화장실 앞에 종류별로 있고, 오락실 기계도 있어 제법 특이한 구색을 갖춘다.
승차장 입구에는 표를 확인하는 아저씨가 지키면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저기에도 시간표가 따로 붙어있다.
승차장 입구에 사람이 지키는 광경도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는데,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어도 동부정류장은 40여년간 한결같이 이 자리에서 사람들의 애환을 실어 나르고 받아주었다.
이제 그 운명을 다해 내려놓을 준비만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동부정류장은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베일에 감쳐진 것이 많은 부끄러운 그대는 아쉽게도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이제라도 숨은그림찾기는 그만 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다.
* p.s.: 아쉽게 사진을 여기까지 찍고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하는 바람에 차마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승차장에서 버스를 탔지만 결국 타기만 하고 사진을 담지는 못했는데 곧 없어질거라 생각하면 아쉬움만 남는다.
첫댓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다만 정정해야될것이 있는데 대구동부-고현 노선은 고속으로 인가되어 우등고속 요금을 징수하는 노선입니다.
고속 인가였군요. 수정하겠습니다.
학생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 동부정류장-대구동부시외터미널-입니다. 아성여객(지금의 아성,천마고속)이 BH120과 BH115를 주력차종으로 했었던 반면 한일여객(지금의 금아여행)은 한일고속에서 내려온 AERO H/D가 대부분이었지요. 한때 아성여객이 DA66을 대량 출고했을 때 완전히 홀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추억의 이름들이 마구 생각나는군요. 이름만 들어도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학창시절 추억이라면 장거리 등교를 하셨나요?
@Maximum 그게 아니고요, 동부시외터미널 아래 동구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는데요, 거기에 저희 고모께서 계시거든요. 심부름 갔다가 시내버스 타러 동부정류장에 갈 때면 아성여객 차량들이 박차장에 가득했지요. 벌써 30년 전의 일이네요. 그 때 BH120이 처음 등장했는데 그 버스 처음 보고 완전히 넋을 잃고 한참 쳐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소망의 바다 아 그러셨군요. 고모님께서는 잘 계시는지 동구시장은 여전한지, 동부정류장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BH120이라면 사실 저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버스인데도 괜히 제가 다 아련해집니다.
@Maximum 동부정류장과 동구시장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한 가지 바뀐 건 도착하는 시외버스들의 동선 뿐이지요. 동부정류장 입구에 주유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 주유소 앞에서 좌회전하여 진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중앙선이 그어져 있어서 들어오는 차량들은 동대구고속터미널 방향으로 우회하여 들어오게 되어 있고, 이 과정에서 동대구고속터미널 입구(동대구역 입구이기도 합니다)에 중간하차가 생긴 것이죠.
@소망의 바다 주유소 앞에 삼거리가 있었군요. 안 그래도 입구의 주유소 사진을 찍었습니다. 분위기와 맞지 않아 글에는 넣지 않았습니다만.. 그 자리에 동부정류장 안내판이라도 있으면 찾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 이런곳이 아직도 대구에 있군요^^
대구의 버스터미널은 모두 이렇습니다. ㅎㅎ
광역시 터미널중에 제일 시설이 낙후된 곳이 대구더군요. 복합환승센터 개장이 기대됩니다.
늘 느끼지만 버스터미널 갯수와 시설은 반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요샌 유성도 일부시간이 많이 바뀌어서 기존꺼에 종이로 덮어 씌워 시간표게시중입니다ㅎㅎ
시간표가 자주 바뀌어도 참 골치아플 것 같습니다. ㅎㅎ
동부정류장이 그렇다고 지하철과의 접근성이 영 떨어지지는 않는 게.. 이곳 시외버스들은 동대구IC 바로 앞 (지하철 1호선 용계역) 승하차가 가능하다는 게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합니다. 이때문에 경주나 울산 등 일부 고속.시외 경합노선들은 고속버스도 이곳 하차가 가능하다고 선전할 정도로 나름의 경쟁력을 탄탄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동부개발' 팻말이 있는 곳은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대구시내버스들이 들락거리며 손님들을 승하차하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순환2번 시내버스만 들어오지만요. 대부분 이곳 터미널 이용객들도 주유소 못미쳐 시외버스들의 출입구쪽으로 자주 이용하는 편입니다.
시외버스가 동대구IC 앞에 정차해서 용계역과 환승이 된다고는 하지만 동부정류장 자체에서 환승이 되는것은 아니죠. 용계쪽 정류장은 엄연히 간이정류장이니 따로 구분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순환2번을 제외한 모든 버스가 대로변에서만 세워주니 버스정류장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용하나보군요. 출입구라면 더 위험할 것 같네요.
대구동부정류장(대구동부시외버스터미널)
http://www.gobus.co.kr/bus.asp?src_gubun=easter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완공되면 대구동부정류장이 그 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대구동부정류장(대구동부시외버스터미널)+대구남부정류장(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개장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건
대구에서 강릉 이북으로는 북부정류장 가야 한다는 게 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