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감리교회 이인규 권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협력상담위원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http://cafe.naver.com/anyquestion.cafe) 카페 운영자
최근에 신사도운동과 그와 유사한 곳에서 안수를 통하여 성령과 은사,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물론 성경에는 사도들이 안수를 할 때에 성령을 받은 것과 같은 내용이 일부 언급된다. 그러나 성령이 어떤 사람 혹은 물질적인 매개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이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견해다.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면,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임재하시며 온 세상에 충만하신 분으로서, 그분의 뜻하시는 대로 자유롭게 누구에게나 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이나 안수를 통하여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임하실 수 있으며, 안수를 통하여 임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수는 상징적이며 의식적인 방법으로 보아야 한다.
안수를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 은사를 전이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혹간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인용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로마서 1장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신사도운동에서는 바울이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영어로 impart이기 때문에 Impartation 이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과연 사도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좀더 정확한 해석을 위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11절에서 말한 ‘어떤 신령한 은사’(some spiritual gift)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른 번역성경을 살펴보자.
[공동번역]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KJV] For I long to see you, that I may impart un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the end ye may be established; [NIV]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make you strong-- [RSV] For I long to see you,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strengthen you,
공동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축복”으로 번역하였으며, 영어성경은 "gift"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언급되는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영적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 정신적, 물질적인 “선물, 은혜”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를 갖는다. 같은 로마서를 살펴보면,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영적은사”가 아니라, “은혜, 축복, 선물, 자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롬 5:15-16 그러나 이 은사(카리스마)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카리스마)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다른 번역성경은 “은총, 은혜”로 번역하고 있는데, 본문에서 카리스마를 영적은사로 해석하면 뜻이 이상해진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다른 번역성경은 “선물”로 번역하고 있으며, 본문 역시 고린도전서와 같은 영적은사로 해석할 수 없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항상 영적은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히 롬 1:11의 다른 번역성경은 “축복, 선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사도바울은 영적인 축복이나 선물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롬 15:29에서 사도바울은 “축복”을 가지고 간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롬 15:29).
2) 사도행전 19장11절~12절
또 신사도운동은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사도들이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과연 본문이 어떤 물질을 통하여 신유와 능력이 전이되는 것을 말하고 있을까? 신사도운동가들은 본문의 앞 구절에 있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라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도바울 자신이 성령과 능력을 바울의 손으로 전이시킨 것이 아니며, 또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하여 전이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행하게 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친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가 희한한 일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그러한 경우가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른 번역성경을 보자.
[공동번역] 하느님께서는 바울로를 시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표준새번역]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KJV] And God wrought special miracles by the hands of Paul: [NIV] God did extraordinary miracles through Paul, [RSV] And God did extraordinary miracles by the hands of Paul,
바울은 단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물질을 통하여 성령과 능력이 전이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을 빌어서, 즉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다. 사도 베드로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행 5: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신사도운동에서 이 능력을 베드로의 능력이라고 보는가? 베드로의 그림자에 덮이면 성령과 능력이 전이가 되는가? 사도 시대의 특수한 성령의 기적의 상황을 일반적, 보편적으로 해석하고, 이것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방법은 이단들의 상용수법이었다.
3) 성경이 말하는 성령을 받는 방법은 “말씀”을 통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성령께서는 온 세상에 충만하신 삼위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 그가 원하시는 뜻대로 임재하실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임재방법은 바로 “말씀”이 그 통로가 된다. 우리의 거듭남은 말씀으로 인한다는 것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또한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말씀을 뜻한다(눅 8:11, 마 13:19-20). 우리의 심령에 뿌려진 씨가 결실을 맺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과연 거듭나는 중생, 성령의 내주가 어떤 사람을 통하거나 어떤 인위적인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성령은 회개와 믿음을 통한 성령의 선물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후 13:5).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4) 안수
“안수”라는 단어는 구약이나 신약 모두 손을 얹는 행위(lay hand upon)를 말한다. 그런데 “손”이라는 단어는 (특히 하나님의) “능력, 힘. 보호”를 상징한다. 비록 사람들이 손을 얹는 형식이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상징하는 하나의 의식적인 방법인 것이다. 안수를 하는 그 “손”은 신인동형어적인 “하나님의 손”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안수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수라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래와 같이 많은 성경은 안수를 하면서 동시에 기도를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마 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물론 안수를 할 때에 성령이 임하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도 하게 된 성경적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오해하여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성령을 전이받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성령이 전이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안수를 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한글번역성경은 성령이 내리셨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위로부터 오셨다(came on)는 것이다. 즉 안수는 하나의 의식이며 기도의 방법이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안수를 하는 손을 통하여 머리로 성령이 전이되었다는 구절이 단 한마디도 없다.
그렇다면 오순절에는 안수를 통하여 이루어졌을까? 아무도 안수를 한 적이 없었으며, 오순절의 성령은 하늘로부터 성령께서 불의 혀와 같이 임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행 2:1-4 참고). 다음 성경에서도 안수가 없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내려오셨다.
행 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안수에 대해서 신구약 성경전체를 살펴보면 안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구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희생제물에게 죄를 전가시키는 의식으로 사용된다. 둘째, 임직이나 임명에 관련된 의식으로 사용된다(민 8:9-11, 민 27:18-23, 민 34:9, 행 6:5-6, 행 13:2-3). 셋째, 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예수와 사도들이 병을 치료하거나 축복을 하여주는 의식으로 사용된다, 넷째, 성령을 받게 되는 안수는 한 두번 언급되어지는데(행 8:17, 행 19:6), 그것은 안수자체가 성령을 전이시키는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의식적이며 상징적인 방법으로서 기도와 함께 행하여짐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신사도운동의 자칭 사도들이 안수를 함으로서 성령과 능력, 영적 은사를 전이한다는 견해는 잘못된 견해이다. 그러한 견해는 바로 시몬이라는 자의 견해였다. 그는 사도들이 안수로 성령을 전이하는 것으로 알고 돈을 주고 그것을 사려고 하였다(행 8:17~20). 오히려 사도들은 성령을 주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행 8:20)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그것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의도에 대해서 시몬을 핀잔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성경은 제물에게 안수를 하므로서 죄의 전가를 하고 있다. 과연 안수라는 의식이 죄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켰을까? 사람의 죄는 물질이 아니며 이동되거나 전가되지 않는다. 죄사함은 죄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죄책을 묻지 않는 것이다. 즉 죄가 있지만,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죄성이 없어져서 실제로 온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책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죄를 뜻하는 “카파르” 와 “푸림”이라는 단어는 “죄를 덮는다”는 뜻이다. 그 짐승은 죄가 실제로 이동하여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죽음으로서 죄책을 면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도 그 사상이 나타나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세례의 경우를 보자. 세례라는 의식 자체가 어떤 효과나 능력이 있어서 죄사함을 하게 하여 주거나, 믿도록 하여 주거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야 하지만, 그 세례는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안수도 세례와 같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의식으로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능력이나 성령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기름부음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크리스마, anointing)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구약에서 기름 부음은 왕과 선지자, 제사장 특별히 하나님이 임명하시거나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제한된 사람에게 해당되었다. 요한일서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은 초대교회에서는 영지주의자들이 신비한 지식을 깨달았을 때에 실제 기름을 붓는 성유식(聖油式)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에서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을 받은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셔서 자신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요일2:20에서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받고” 요일2:27에서는 “주께 받은 바”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자칭 사도들의 임파테이션을 통하여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은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안수나 임파테이션과 같은 어떤 행위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거듭남의 상태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사도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의 성유식과 같은 인위적인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름 부음이 곧 성령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후 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이나 능력은 안수나 매개체적인 물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임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이 사람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은사 역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께서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또한 성경은 성령을 주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그 통로는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은사는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메시야(헬라어: 멧시아스.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구약에서는 주로 왕, 선지자, 제사장같은 높은 직분을 가진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려졌으며,(왕상19:16, 시133:2, 출30:22-30) 그 말의 의미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메시야를 기다려왔다.
다시 말하여, “메시야”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제사장(출29:29)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 세 직분을 “예수님의 삼중직분”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왕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성경은 오직 예수만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the Christ)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몇몇 이단들이 기름부음(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오늘날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는 사이비교주들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믿지 말고, 골방에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는 오직 한분이시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26. 참고: 막13:21)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
기독교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에서 세워졌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