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아래로 햇빛이 드는 위치가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나란히 놓여 있는 화초들의 생육상태도 짙푸르고 생기발랄하다. 생육조건과 환경이 같아서 그런지 꽃이 동시에 화사하게 피었다. 특히 봄과 함께 찾아오는 미세먼지 영향으로 마음 놓고 창문을 열 수 없어 공간에 강제로 갇힌 마음이 짙어질 무렵 봄 그늘이 좋은 자락을 찾았다. 참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 온 사람이 연락을 주어 아주 오랜 시절 다녀왔던 곳을 지정하며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있다 하며 은근히 부추겨 그 당시 기억을 살려 주었다. 물이 풍부한 곳이면 물과 암이 절묘한 조화로 절경을 만들어 놓는다. 암과 계곡(岩과 溪谷)이 좋으 면 수목(樹木)도 당연히 좋다. 정점을 오르려면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이용해도 다 좋으나 암과 계곡인 곳은 하계(夏季)에 거슬러 오르는 것이 제격이다. 4월 초순에는 누가 뭐래도 양지바른 야트막한 능선을 타고 걸으며 진달래와 노니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또한 봄볕이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봄 그림을 순서에 입각해 멋지게 그려 놓는 달이 4월이다. 걷다가 다시 아침에 스쳐 지나갔던 곳을 오후에 찾으면 숲은 새로운 모습으로 꾸며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전, 후 시간 다르게 변모하는 것이 요즈음 자연이다.
진달래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보아 이젠 꽃자리를 철쭉에게 물려줄 모양이다. 꽃의 생명력은 딱 열흘이다. 꽃 잎에 무게가 실린 녀석들은 열흘 안쪽이다. 만개를 이룬 후 여지없이 툭툭 자기가 태어난 가지 아래 떨어진다. 요즈음 목련이 지는 추세다. 아파트 뜰 안에 어디 가나 목련꽃 낙화모습으로 지전 분하다, 바닥이 흙이라면 그런 느낌이 없을 텐데 바닥자체가 시멘트 계열의 보도블록이나 아스팔트라 이질감의 영향으로 더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꽃의 결이 바람을 닮은 벚꽃은 휘날리며 지는데 온바닥을 꽃무늬로 수를 놓아 장관이다. 밟으며 걷다 보면 꽃씨방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게 된다. 순간적으로 기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밟아 씨방을 터트리면 생명을 단절시킨 다는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인 모양이다. 꽃 잎이 참 가련하고 연약하게 느껴지기에 생기는 보호 본능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벚꽃이 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트레킹 바닥을 꾸며 놓은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후지산 둘레길 여러 구간을 걸으며 바닥전체를 흰빛, 분홍빛 잔돌을 모아 섞어 바닥에 도포해 놓았는데 그 구간이 참 길었다. 흩뿌려진 벚꽃을 상징적으로 길에 잡아 둔 것이다. 걸으며 내내 아름다운 발상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산벚꽃 낙화들이 군무를 하듯 스쳐 지나갔다. 자연은 점점 녹빛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이 수채화처럼 시시각각 다가왔다.
보고 있으면 아련하게 아름답다. 참 좋은 계절이다.
꽃자리를 새싹이 이어가면서 진달래의 꽃은 꽃물결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름 끝에 잠시 쉬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인적이 없는 숲 고요해서 참 좋다. 요즈음 어디를 가나 상춘객으로 시끌벅쩍하는데 이곳은 고요하다. 지금껏 상춘객을 만난 적이 없을 만큼 고요한 곳이다. 능선상에서 슬쩍 물러나 안부로 내려가 자리를 깔았다.
양지바른 산추녀에 자리를 깔고 앉아 보니 적막감이 더 깊어졌다. 준비한 도시락과 함께 꽃술을 담가둔 것이 농익어 향기가 좋길래 사각 페트술병에 담아 온 것도 꺼내 놓았다. 말이 도시락이지 행동식 겸 안주거리 겸 주전부리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꽃술 서너 잔과 수육과 그리고 만두 몇 알을 먹은 후 상을 물렸다. 음식 향이 꽃 향기를 압도할 가바 겁을 먹은 것이다. 서둘러 챙겨 넣고 진달래밭을 바라보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달여 갖고 온 찻물을 마지막으로 털어 넣고 일어섰다. 체온열기에 영향으로 축축해져 널어놓은 쟈켓을 주섬주섬 챙겨 넣고 앉으면서 꺼내 입은 윈드쟈켓 만 입고 걸어도 견딜 만큼 기온이 상승되어 있었다. 남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주능선 너머 산주름 사이로 올망졸망 산사발이 놓여 있다. 가만히 살피자 아지랑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래저래 봄은 만물을 움을 트게 하는 모양이다. 느릿하게 제비꽃을 보다 다시 흰 노루귀와 노란 괴불주머니도 살피며 걸으니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 걸음 여행이 되었다. 오늘따라 꽃이 참 예쁘다. 어제 살짝 내린 봄비 영향으로 바지단에 성애 같은 먼지도 끼지 않는다. 내친김에 두 시간 이어서 걷다 산추녀 끝에 걸어 놓은 식당을 찾아들었다. 이 집은 된장찌개가 일품이고 불고기 맛이 그럴듯하고 곁들여 싸서 먹는 쌈채가 싱싱하고 달다. 그리고 잔치국수 육수와 김치를 다져 놓은 고명과 김가루도 일품인 집이다. 창가에 자리 잡고 반주로 지평 막걸리 두 병을 시켜 나눔 하고 일어섰다. 간단하게 서서 악수로서 무언의 동행 꽃 산행, 종료를 선언한 후 돌아섰다. 무엇이든 종료 후 상대의 손을 잡는 것처럼 허전한 것도 없다. 언제 또 약속이 잡힐지 모르는 나이가 속절없이 느껴졌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볼기회가 없는 것이 노년의 삶이다. 왜 그럴까? 무엇인가 새로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 버리는 망각의 세월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라 그런 모양이다. 총기도, 재기도, 순발력과 재치마저 사라진 자신을 생각하다 보면 슬며시 허깨비가 된 듯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도 좋다. 왜? 단순해졌으니깐 이렇게 되받아치고 후회하는 중이다. 느슨한 것은 좋으나 정체성 없는 맨 바보 된 것 같아 그렇다.
ps. 귀가하여 용품울 전부 정리한 후 책상 끝에 앉자마자 카톡이 울린다. 잔잔하게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여전하시네요. 좋은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늘 산이시라는 것을 또 느꼈습니다. 그리고 카톡카톡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언제 이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나는 요즈음 거울도 잘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대의 심리를 익히 깨닫고 산벚꽃 나무 아래에서 딱 한 장만 챙겨 두었는데 그 사진을 보내며 추임을 적어 보냈다. 여전히 맑고 예쁘시네 이를 따를 자는 없다! 카톡~~! 봄기운이 마음에 옹골지게 들어차 그런 걸까? 심연으로부터 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깨닫는다.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파이와 산책길로 나섰다. 와우 꽃비가 바람결을 타고 눈처럼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