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北海)....
고려나 조선은 틀림없이 그 북쪽 인접지역에 북해(北海)가 존재했음은...역사서를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연구자님들간엔...북해=북극해이니...조선의 관경은 시베리아 최북단 북극해까지 미쳤었다고 추정도 하시고...
한(漢)의 역사서엔...연경(燕京)중심 서북방 사막 넘어에 북해(北海)가 있고...그 북해 넘어엔 뭔 괴물들이 사는지 알수 없다라 한 기록을 참고로...
조선의 북쪽에 북해가 있다 했으니...조선의 최대 관경은...현 러시아 우랄산맥 넘어 시베리아 서부 백러시아 지역까지였다고도 추정하시는 연구자님도 계시는데...
역시...각 왕조와 문명의 시대적 중심점은 고려치 않은 해석의 과대확장에서온 오류인듯 싶다.
북해(北海).
나의 짧막한 소견은론...
중원 연경(燕京)중심 서북의 북해라 함은...고지도들 그대로...
과거 지금보다 수량이 엄청 많았던 알알해와 발하쉬호 신장성 북단 보해(富海)가 같은 줄기로 이어진 상태를 이름한 것이고...
이 경우는...천자의 자리인 천산(天山)주변이라...항시 천해(天海)란 별칭도 따라 다닌다.
그럼, 그 알알해,발하쉬호,보해의 연장인... 천해(天海)가 과연 조선 북단의 북해(北海)인 것일까...?
그런 조건이 돼려면...조선은 신장성과 파미르를 중심으로한 나라여야하고...조선의 서북경계인 압록강 넘어 요동의 서쪽에 있었단 연경(燕京)과 연경을 북경으로하는 중국(중원)은...카자흐스탄 남부,우즈벡,터키,아랍등등의 서아시아여야 한다.
그럼, 그 중원의 연경 서쪽을 거대하게 둘러처 서역과 중원을 나누었단 총령은 어느 산맥여야 하나...?
대륙 어디에도...동서양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거대 산맥은...히말라야와 파미르 알타이를 연결하는 거대 산맥밖엔 없다.
연경은 파미르 이서엔 있을 수 없는 조건이란 얘기다.
그렇다고하여...
옛 주나라나 후대의 한나라...명나라,청나라의 영토가 파미르 이서엔 없었단 얘기가 아니다.
그 왕조들은 오히려 파미르 이서에 더 영토가 많았고...단지, 천자들의 전통적 자리인 천산(天山)...
몽골 돌궐어로 탱그리산(당굴산,(텡)기련산)에 도읍해야 명실공히 세계의 천자(天子)를 자임하는 것이기에...
특히 북방 기마족 출신 왕조일수록 무리가 따라도 도읍은 이 연경을 선호했다 보인다.
대략, 주나라는 카자흐스탄 동부와 신장성 서부정도가 중심...
한(漢)은 연경은 전통도읍으로 하질 못했고...신장성 남부 티벳 북부가 중심...
명은...말 그대로 무굴리스탄 한국 영토로...신장성 서부와 카자흐 동남부 파키스탄,인도북부,티벳 정도가 영토...
청(만주)는...알타이&신장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론 카자흐스탄...동북으론 현 외몽골을 아우리던 왕조로 보인다.
부여,고구려,말갈(발해,금나라)는...연경중심 동북의 신장성 동부 내외몽골 감숙성 정도가 주 영역...
고구려 전성기엔 카자흐등의 중앙아도 서역 속지로 두었다 보여진다.
고조선(단군조선,배달국)은...천산중심으로 더 서북인 알알해(아리수)인근 알타리가 발원점으로 보이고...
선비족계통이란 주나라(周)나...진나라(秦),위(魏),수당(隋唐)..돌궐(서돌궐)등...
모든 북방 기마족계 중원황조가 단군조선(배달국)계통이라 보이긴 하나...
그 주(周)의 분봉을 받아 동이 예맥의 땅에 정착했단 기자조선은...별 수 없이 더 동쪽일 수 밖에 없으니...
신장성 동부와 감숙성 청해성 섬서성이 그 중심영역였다 보인다.
물론, 기자조선 이전의 서쪽 선비족계 모든 황조를 모두 단군조선의 문명이라 볼 땐...
조선의 강역은 서역 지중해가지를 속지로 했다 주장할 수 있으나...
그 동부의 기자조선 이후...이 지역을 흡수한 동이의 부여,고구려,발해,고려,근세조선...등까지도...
그 영역이 단군조선의 서역속지(서선비지역)까지 다 경영한 왕조라 해석함은 환타지의 시작이 됀다 보인다.
크게 보면...중원의 상(尙),주(周),진(秦),수당(隨唐),돌궐(突厥),위(魏),거란...등등의 기마족 왕가들은...
모두 당군(텡그리)를 천자로하는 배달국의 왕조들이 맞겠으나...
이들의 상대적 동쪽인 동이(東夷)의 기자조선,부여,고구려,발해,고려,금나라,근세조선등등이 경합한 역사가 역사의 전체인데...
동이(東夷)와 근세조선이 파미르 서역까지를 역사내내 천자국으로 다스렸다 함은...
역사연구 그만하잔 얘기밖엔 않됀다 보인다.
그러려면...요즘 퍼지는 양이들의 허접한 주장대로...세계는 모두 아프리카 흑인인 아담에게서 시작됀 하나의 민족이고 문명이니...
구태여 동쪽이다 서쪽이다 북적이다 남만이다 나눌 필요가 없다 하겠다.
그럼, 역사서에 나오는 조선 북쪽의 북해(北海)는...?
조선 서북경계의 요동 서쪽의 연경(燕京)을 기준으로...북쪽이 천해이자 북해라면...
당연 조선 한양을 중심으로 천해(北海)는 한 참 서북여야 하는데...왜 역사가들은 조선 북쪽에 북해(北海)가 있다 했나...?
한해(翰海)...고비사막이다.
고비사막은 아직도 점점의 염호천지다.
현재 몽골고원에서 10년간 말라서 사라진 강과 호수가 40여개나 됀단 조사를 보건데...
몇 백년 전만해도...이 고비사막중 호수주변 저지대는 지금과 비교해 엄청 많은 수량의 내륙호 천지였을 것은 자명하다.
황하(黃河)가 북쪽으로 내몽골로 뻗처 오른 그 자리부턴...황하 주변 파단길림사막은 전체가 거대 습지대였을 것이며...
이 황하의 물이 섬서성으로 흐르게 돼면선...
한해(翰海)는 모래와 자갈만 남는 거대 사막화가 발생한 현상이고...
황하의 서북단에 있었다 보이는 두만강과 압록의 물줄기도 수량이 확 줄었다 보인다.
원 황하의 또다른 상류는...감숙성과 신장성을 통과하는 고비사막 남단인데...그 수량이 줄어 지금은 보잘것 없는 강줄기만 남았다 보여진다.
역시, 고지도들에 다 나와있다.
고비사막까지도 북해(北海),한해(翰海)로 나와있으며...
어느 지도들엔 알알해,발하쉬호,보해,고비사막 전체를 모두 북해(北海)로 표기하기도 했다.
백제와 고구려가 바다로 막혀있단 소리도...
이를 기준한다 보인다.
그 고지도들 죄다 조작이라...?
과연 양이들과 일제가...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쪽의 현 발해만이나 바이칼이...오츠크해가..북해라 하면 그만일 것을...
왜 궂이 함참 서쪽인 알알해와 고비사막을 북해라 조작할 이유가 있었단 말인지...?
그럼, 그 남단의 중원전체가 바로 조선의 강역이 돼는 것인데....?
모든걸 다 조작이라 하면...과연 어떤 사서가 조작이 아니라서 인용할 가치가 있다 할 수 있겠나...?
또 문제가 하나 발생하는데...
말갈,실위,숙신,차한,왈가,영고탑,아라사(악라),황두실위가 있었단 흑룡강(黑龍江)인근 북해(北海),동해(東海)는 어떻게 하나...?
그 곳은 말이 오줌을 싸면 바로 얼어 붙는단 혹한의 기후로 기록됐는데...
지구기후역사론...알알해나 고비사막 위도는...온대를 넘어 난대지방였던게 고대의 기후였는데...?
대부분의 역사 그대로 풀면 됀다.
연경중심 동북으로 몇 천리에 영고탑이 있고...조선 한참 북부에 영고탑이 있다 했다...
그 영고탑에서 북단으로 1000리도 않돼는 곳에 흑룡강이 있고...그 북단의 북해(동해)인근에...위의 오랑케종족들이 있다 했다.
바이칼이 북해(北海)인 이치고...그 주변이 흑룡강인 이치로...
현재의 바이칼 한참동부인 극동의 아무르강이 흑룡강이 아니라...
몽골 서북부 시베리아와의 경계를 흐르는 바이칼 서쪽의 어느 거대 강줄기들을 흑룡강이라 해야 말이됀다 보인다.
그 영고탑과 흑룡강에 대해선 다음글에 논해 봅니다.
걱정은...북해(北海)가...북극해(北極海)요...조선의 최북단 경계에 있었던 바다란 주장인데...
그럼, 말갈 실위,숙신등이 모두 북극점을 중심으로 살았단 말이 돼는 것인가...?
북해의 북쪽은...조선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들이 살던 이씨조선의 고향이라던데...
그럼, 이성계 할아버님들은...북극점에 살다 고려로 귀하한 몽고 다루가치들인가...쌍성총관은 북극에있었단 말씀들이신가?
그럼, 그 북쪽의 몽골은...?..북극점 넘어 알래스카나 카나다에 있었단 말씀들이신지...?
밑에 태조총서엔 분명 이성계의 할아버님들이 알동(斡東)근처 쌍성총관부근 여진족들을 피해...
남쪽으로 두만강을 타고...북해(北海)를 건너...적도(赤島)란 섬에 피해 살다가...고려 의주(宜州)로 돌아와 재 귀화한다 한다.
요동이나 쌍성총관보다 남쪽에 조선의 북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한해(翰海)인 고비사막 저지대로...현재는 황하가 북으로 뻗치다가 만나는 파간길림사막 내륙호의 더 서쪽 고비 저지대같다.
거기가 근세조선사의 길림지역같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가...알동의 여진족들을 피해 남으로 북해를 건너는데...
그 땅은 세종조 이후엔 영원히 조선이 찾지못하는 성지라고 ...조선사 내내 안타까와 하는데...
그럼, 이런 경우도 무조건 조선 최북단 북해는 북극해라 할 수 있는것일까?
이성계의 할아버지는 북극해를 건너 고려로 귀화한 걸까?
재미있는게 또 하나 있는데...
조선사 내내 이태조의 시조들에 대해 미화하다 보니...
그들의 행적중 석연찮은 점들은 두리뭉실 넘어간 흔적이 역력한데...
찾아보니 진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
이성계의 한참 위 할아버님이 전주(현 중원 호북성?)에 있을때...
뭔 고관의 기생(관기)을 범해 도망처 강원도(섬서성 태백산,사천성?) 삼척으로 피신해 살았는데...
재수없게 또 그늠의 지방관늠이 삼척으로 발령받아 오는 바람에...의주(宜州)로 줄행낭을 치고...
당시 누구도 가기 싫어한 전장터인...요나라에 점령당했던 옛 발해의 고토인 요통근처 후대 쌍성총관부 근처 알동(斡東)으로 천호(千號)의 주민을 이끌고 가 정착시키려는 무주공산으로의 이주정책에 울며 겨자먹기로 책임을 맞게 돼었는데...
원나라 산길대왕이 밀고 내려와 항복을 권유하자...낼름 항복해...고려 이주민들 대표인 알동의 다루가치(파발꾼)이 돼었는데...
여진족들이 평소엔 친하게 지내다가 이태조의 할아버님들이 날로 그 위상이 높아지자 시기하여 단체로 이성계 할아버지를 없애려 알동군사를 동원했기에...다시 북해를 건너 적도에 살다가 고려 의주로 귀화했다 하는데...
해모수나 고주몽의 설화 그대로...
본시 조수간만의 차가 있을 수 없는 북해가...갑자이 확 낮아져서 북해를 건너 적도에 피신할 수 있었고...
여진족들이 들이닥치자 북해물이 확 불어나 통과를 못했다 하는 모세의 기적같은 전설도 남기는데...
이를 근거로 봐도,,,조선의 북해는...조수간만의 차가 없는 얕은 내륙해(내륙호)였단 얘기가 됀다.
더 재미있는게...
이태조의 할아버지는 그 위상이 날로 커져서...여진족들의 질투를 받아 제거됄 뻔 한게 아니라...
주사위 윷놀이노름판에서...야바위(속임수)숫법을 써서...여진족들에게 맞아 죽을뻔 한 것이다.
기록을 보자니...
몽고에 투항해 다루가치(달로가=파발꾼대장)역할을 맞던 이태조의 할아버님이...
평소 여진족들과 노름판을 버리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주 큰 내기를 걸고 노름판을 벌렸는데...
이태조의 할아버지가 쌍육(주사위 두개가 모두 6이 나오는 경우)가 아니면 위기모면이 어려워...
잔꾀를 내어...중요한 내기니...내일 마저 진행하자 하고는....육면이 모두 숫자 6인 야바위 주사위를 만들어
다음날 부러 물가에 노름판을 벌려선...쌍육이 나오게 만든 뒤 바로 주사위를 물로 차 넣어 증거인멸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기발한(?) 야바위를 써서...분노한 여진족들이...그럼 우리도 몇일 있다가 마저 던지겠다 하곤 떠난 연후...
몇날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하자...의심이 나서 고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아무도 가르처 주지 않고 쉬쉬하는데...
한 노파가 고맙게도(눈치없게도)지금 당신을 패 죽이려 여진인들이 군사(패거리)를 데리러 북으로 갔다 고자질 하니...
황급히 가족들과 가산,고려노비들을 챙겨...두만강을 타고내려가 북해를 건너 적도에 숨게 하고...
자신은 진짜 그런가 확인하다가...사실이자 아내와 말을타고 북해가에 이르러 얕은 여울을 건너 적도로 숨어들어간 얘기를 미화한 썬데이서울식 얘기인게 들어난다.
그들의 인품을 흠모해 따라 나섯단 알동의 주민들도...
여진족들에게 핍박받을게 겁나는 고려에서 이주시킨 이주민들이기에 도망온 것을 또 미화한 것이다.
그들이 고려로 바로 못 들어오고 북해의 국경지대 섬에서 살다 들어오는 것은...원나라에 투항해 부용한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고려의 원조배신자 홍다구집안 혹복원얘기가 없는건...
형식적인 고려의 벼슬을 받은 도령(都領)은...고려의 정식 관직이라 보단...중립 자치지대였기에 그렇단 얘상도 해 본다.
그들이 원나라 지배 이전부터도 고려황제에게 절도 않했고 고려황제도 그냥 놔두라 한 예를 보건데도...
그들은 고려의 작위는 받았을지 몰라도...거란과 금나라와 고려와 몽골의 국경이 겹치는 중립지대에 있었기에...
쎈늠이 우리편이여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던 처지로...
옛 고구려의 서도(서평양?)지역이라 함은...아마도 유라시아대륙의 거의 유일한 통로 접경지인 현 신장성 북부 중가르고원이 아닐지 싶다.
또한...
이성계(아기발도=아기벌트=아기쇠돌이=아미르쇠돌이)의 여진정벌사의 서역식 기록으로 보이는
중앙아 아미르 티무르(아기쇠돌이)얘기에도...
아미르 티무르가 쇼호르(이방원?) 탄생날에 뭔 노름을 하다...대박이 터져...
그 노름의 대박(요즘 용어로 외통수~,짹파~)인 쇼호르~를 이름으로 했단 얘기가 있는데...
이성계 집안 내력이 노름을 좀 많이 좋아하는 유전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학대사와도 이성계가 내기바둑을 잘 둬었다는데...
내 생각엔 바둑이 아니라 뭔 내기장기(중앙아(여진)식 체스?)였다 짐작됀다.
심리전의 일환으로...무학대사를 돼지에 비견하기까지 하나...
무학대사는 돼지눈엔 돼지만 보인단 수준높은(?) 맞장구 구찌(심리전)까지 놓았음을 보건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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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북해"는 조선사에서 빼 놓고 말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북해는 최초의 기록이라는 "산해경"에서도 나타나는 곳인데, 그 주석을 보면, 중원을 기준해, <서북방향에도, 북쪽에도 있다>고 해 놓아 조금 혼돈스럽습니다. 그러나 돈황이나 그 서쪽지방의 "안서 사진"에 있었던 <잠삼>등의 변새시인들이 노래한 것을 보면, <지리적 위치>로 보면, 북해는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북방지역에 있었다는 것이며, 이곳은 백장의 얼음 벽이 가로막혀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거든요. 또한 한해는 오늘날의 지도에도 고비사막에 표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고비사막이 지금 그 자리에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황연구논문>을 보면, 돈황의 석굴등에서 발견된 옛 문서를 보면, 당시에 "돈황주위의 사막지대를 고비사막"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약수가 있는 거연호 주위는 농사와 수초가 많았다는 설명도 있으며, 현 고비사막 지대는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초원지대와 자갈지대등등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고비사막은 여타의 사막지대와는 조금 다른 자연환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서에서는 북해와 한해를 같은 것으로 표기해 놓고 있는데, 또 다른 곳에서는 북해와 한해는 다른 곳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역사서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에, 이성게에 대한 "미사려구"는 당연한 승자의 것입니다.
현재에도 몽골인들은 돈황주변 신장성도 다 서부 고비사막이라 부릅니다.
고비알타이의 부분으로 칩니다.
제 얘기가 그겁니다.
고비사막 실계천과 염호들은 예전엔 수량이 훨씬 많아서...점점의 내륙호(내륙해)가 연결돼고...고비알타이 산들이 끝나는 지점에선 산(섬)과 내륙호가 어우러지고...일부 염분에 강한 수목과 초원도 형성됀 빼어난 경치의 한가이(한개=한해=절경)이였을거라 봅니다.
조선 장수들이 말한 빼어난 음산의 절경(한해)은...고비알타이 산(올)과 주변을 이르는...올 한가이(올한개,한해)라고 전 봅니다.
몽골어론...고비는 사막(沙)이 아니라...자갈지대(砂幕,石幕)을 이릅니다.
한자에서도 보이듯...옛 사막은 항시 주변에 물이 있는데...이는 멀잖은 과거엔 그곳이 물이였고...물이 빠진후 사막화돼고...뻘과 모래가 죄 날라가곤...자갈의 석막지대가 돼는 이치이며...
이 현상은 몇백년이면 이뤄지는 현상으로...자연지형 변화중 물길의 방향이동과 물의의 소실로 이뤄지는 지형변화는 다른지형변화에 비하면 실로 순식간이라고 봅니다.
돈황주변이나 준가르나 타클라마칸에 고운모래사막들이 많음은...그곳 저지대들일수록 근세에도 물이 존재했단 것이며...특히 알타이서쪽 카자흐스탄의 알알해 주변 저지대들이 죄다 검은 사막인것은...
그 알알해의 물이 급격히 빠지고...아직도 검은 갯벌조차 덜 날라간 근세에 형성됀 사막이란 얘기로...
고대엔 거긴...알알해(天海)의 바닷물이 질펀한 내륙해였다 전 보는겁니다.
문명의 건축물이 있었을 자리가 아니란 것이져...
1340년대의 두글라트 부의 차가타이가의 왕자로 알려진 인물이 "두글로크 티무르"인데 이 사람은 1347년에 칸으로 옹립되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이 지역을 "이슬람개종과 정복자"로써 유명한 인물이란 것이 중앙아시아 역사 해설인데, "티무르"는 청년시절에 "샤이흐 자말 앗 딘"을 만나면서 감명을 받고, 그가 칸이 된 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아랍사"는 설명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이성계"라? 그렇다면 그 이후의 조선은 "이슬람교를 믿는 회교국가"이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직 미숙한 단계에 있는 탓인지는 모르지만, "조선과 이성계와 이슬람"은 연결고리가 없다고 본다.
이슬람과 명나라,조선의 연결고리는 의외로 큽니다.
근세조선 사서에서의 종교론에서도 보이듯...이슬람의 원류는 불교입니다.
알타이인근의 사카족들이 서방으로 진출해 서방불교인 배화교등을 낳고...여기서 초기 기독교&이슬람교인 유대교가 나오고...유대교중 급진 무하마드계 모슬림들이 현재의 급진 서아시아 이슬람을 재 창출했을 뿐이며...유럽은 자기식대로...마리아란 아테네식 여신을 껴 넣으며 카돌릭을 만들었다 봅니다.
원조 이슬람과 기독교는...알타이에서 이동한 아리안(사카족)들의 불(佛,火)종교로...부여계 키르키스(황두실위)의 영향이라고 전 봅니다.
투글룩티무르가 모굴리스탄(동차가타이한국)의 패자로 등극하는땐...
몽골제국의 사한국들이...고려와 짬뽕이 됀 중원후빌라이계 원나라와 대립하던 극한시기로...텡그리신앙의 몽골이라도...각 지역의 종교는 포용했기에...당연 이슬람유다교지역 종교도 포용했던 것일뿐...현재와 같은 극단 이슬람은 아니였다 봅니다.
고려가 기황후의 원나라를 배격하고...친명정책을 썼단 것은...중원남방 홍건적괴수 주원장에게 복종했단게 아닌것이...고려가 친명정책과 유교를 받아들인단 싯점 자체가...주원장을 비록한 홍건적들이 고려를 침입했다가 박살나고 돌아간 싯점과 멀지 않으니...아무것도 아닌 도적패들을 고려가 섬겼다고 보는건 말도 않돼고...몽골전체를 배격했다간 그 서쪽 사한국들의 철퇴를 맞을 싯점의 처신이 아니였다 보이니...당대의 명나라는...몽골제국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모굴리스탄제국을 뜻한다 보는 겁니다.
모글리스탄한국의 동쪽영토는...문무님이 요동이라 보시는 현 신장성까지며...
이를 티무르가 대부분 흡수한 걸로 보면...티무르는 고려와 무굴과 원나라의 접경지인 이성계집안의 알동(斡東)까지 지배한것이며...무굴과,티무르제국의 동쪽 국경은 반듯이 고려와 겹칠수 밖엔없었으니...
바로 그것이 명이 철령위를 설치해 고려와 마찰했단 역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티무르가 이성계라면...고려에서 조선으로 정권이양이 됄 시기...문화적으로 격변의 시기가 있어야 하는데...그런점이 없음으로 티무르를 이성계라할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 하시는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권력이양됄 시기 격변의 근거는 많습니다.
고려말기 반원친명정책 이후 유교가 슬슬 고려에서 힘을 얻게돼도...고려는 확고부동한 불교의 국가였는데...
이성게의 조선개국후엔...급작스레 과격한 유교로 고려(조선)이 문화격동기를 맞습니다.
고려때도 몽수(차도르,장옷)는 있었으나...이를 여염집 아낙들 전체가 다 의무적으로 착용했다기 보단...
당나라식 모자에서 면사포로 얼굴만 가리는 햇빛가림역할이 주였는데...
조선 개국후엔...일체의 여염집 아낙들에겐 모두 온몸을 다 가리는 장옷(몽수,차도르)가 거의 의무적으로 보급돼는 문화적 격변...이는 아주 자유분방했던 중앙아 이슬람여인들이...티무르 이후 급격히 의무적으로 차도르를 착용한 싯점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이슬람도 유교같이 업드려 절합니다.
우리 유교같이 웅엉웅언 뭔 축문을 읽으며 경배합니다.
이슬람같이 조선 주자학도 모든 여타종교&학설을 죽음으로 배격합니다.
공자의 유교라기보단 주자의 엄격한 유교가 조선의 통치철학이 돼는데...이도 중앙아 티무르제국의 엄격한 이슬람으로의 변모와 맞아 떨어집니다.
원조 이슬람은...동방의 불교에서 시작돼나...중세 이슬람은...
동방의 유교를 서아시아식으로 변형시킨것 뿐이라고 전 봅니다.
티무르가 대 제국을 건설하고도 대칸(황제)를 참칭하지 못한 것은...황금씨족(태무진가계)가 아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엄연히 고려의 병마절도사였기 때문으로 보이고...티무르가 지배지를 파괴만 하고 관리를 않했다 함도...고려에서 너무 먼 변방(서북면)의 여진지역였으니...겁만 주고 약탈만하고 동북면(돈황일대)으로 돌아가는 식이였기 때문이라 봅니다.
티무르의 생몰연대와 이성계가 거의 일치하고...그의 일대기도 이성계와 거의 일치합니다.
티무르의 아들 쇼호르가 일으킨 왕자의 난도...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이유와 과정이 그대로 일치합니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벡의 신문자개발,과학,문화 중흥은...이성계의 손자 세종대왕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티무르와 왕자의난 주범쇼호르가 동서 티무르제국으로 나뉘어졌다 함도...
이성계의 함흥전권과 이방원의 동쪽 정권얘기와 일치합니다.
동시대에 동서역에서 이같이 일치하는 행적의 대제국이 동시에태동하며 마찰하나 없었을 기적적 확률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의심입니다.
제일 의문은 이겁니다.
아무리 서역 사한국들이 원나라와 황위(대칸)계승권으로 다퉜다고 해도...자신들의 본거지인 성스러운 징기스칸의 고향이 고려와 동남방 홍건적들에게 유린당하는데...서역 사한국들...그중 가장 강력했던 접경지역 티무르제국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말이 않 됍니다.
고로, 고려와 함께 원나라를 몰락시킨 명나라는...허접한 중원남부 홍건적들이 아니라...새로운 몽골의 강자로 떠오른 무굴제국과 이를 인수한 티무르제국이라고 봐야합니다.
홍건당이 고려에 들어와 갖은 만행을 부리고 전멸당한 이전부터도 고려는 친명정책을 썼는데...
고려가...아직 홍건당 내에서조차도 정권도 잡지 못한 주원장을 명태조로 받들었단것 자체도 코메디고...
신흥강국였던 요나라 금나라 대원제국에도 그리 뻗대던 고려가...그 당시엔 하찮은 식인종 도적떼들의 두목도 아닌 부장정도인 주원장을 명태조로 받들었단 자체도 코메디입니다.
실제로 주원장의 못난이 초상화엔 면류관의 규(구슬)이 아홉줄 밖엔 않 됍니다...제후란 얘기저...
잘생긴 명태조의 초상화가 바로 투글룩 티무르가의 홍무제라고 전 보는 이유입니다.
식인 도적패 두목 주원장이 명태조(투글륵 티무르)로 둔갑하는건...현재의 짱께(쭝궈,중가르속민)국 지배층들이...티벳과 서남아 출신 식인 홍건적 후손들이기에 그런다 봅니다.
이때부터 이곳의 몽골제국은 대부분 "이슬람"을 신봉하게 된다고 "아랍사"는 설명하고 있다. 만약 조선의 개국시조나 그 이후의 조선이 "이슬람"과 관계가 깊다면 분명 그에 대한 것들이 우리들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어야 하며, 불과 일이백년전의 일이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역사 추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성계라는 분이 몽골계 여진, 또는 달단계라는 주장은 본인도 한 몫을 했는데(십여년 전), 고려에 귀한한 몽골계 여진계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치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 이슬람 주류(수니파=新派)는 원래의 이슬람(시아파)과 상당히 이질적인 유대교의 짝퉁이라고 봅니다.
이란의 샤머니즘 비슷한 것이 이슬람의 원류이자, 조선의 국교의 유교(儒敎)와도 상당히 흡사한 수피즘이라고 봅니다. 아미르 티무르가 이성계라는 주장은 저도 동의하지만, 난장이 왜구장수 아기발도가 이성계라는 주장은 역사연구를 희화시키려는 돌팔매질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왜구토벌로 명성을 얻은 이성계가 왜구대장이었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궐한님의 한심한 주장의 반복의 목적이 있겠지만, 어째 그 효과가 김홍필 센세를 연상하게끔 합니다. 역사는 텍스트의 장황한 해설이전에 심플한 감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티무르님은...같은말을 희안하게 자신잣대로 재단해 엉뚱한 주장을 하십니다.
왜장 아기발도를 이태조인 아기발도가 진압한건 조선사 맨 첫머리에 누누히 자랑하는 이성계의 최대영웅담입니다.
두 장수가 이름이 우연히 같은건...당대는 몽골치하였기에...개나소나 죄다 영웅은 벌트(발도=강철)라 한 연유고...
이는 무쇠(태무르,티무르)의 또다른 별칭이라 그리도 설명했는데...앞뒤설명 다 자르고...왜장을 이성계라했다고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문제는...왜(倭)가 원나라에 속국이 됀 적이 없는데...왜장이 아기발도란 몽골식 영웅칭호를 사용했다하는데 있는데...이로보아...당대의 왜장은...대륙남방 남송지역 변방의 왜들진영에 들어가 원주민들을 흡수한 오고타이계 몽골인였다 봅니다...철갑을 두른 기마 창검술의 달인인걸로 봐도 당시의 왜장 아기발도는 빤스도 못입던 난쟁이섬 원숭이족인 원주민 왜(倭)족이 아니였다 봅니다.
아기"란건...이름이나 호칭의 앞자가 아"자로 시작돼면...약칭으로 모두 "아기"라 호칭하는 몽골어와 관련있기에...왜장 아기발도는 아미르"란 호칭이 아닐수도 있는 겁니다...마자로 시작돼면 마기...바자로 사작돼면 바기..태"자로 시작돼면 "태기"이런 식입니다.
아기"라도 같은"아기"는 아니란 겁니다.
아미르를 아기로 누가 발음합니까? 아미르는 관직명인데, 아기라는 보통명사로 누가 낮춰 말한답니까?
그렇게 조선사를 희화하고 싶으면 대륙조선사연구회에 가서 김홍필 센세의 충실한 동맹자 이영준외 4인과 잘해보시지요. 날조사의 텍스트에 기록된 객관에 충실한 곳은 그곳입니다. 궐한님의 저질스런 논법과도 잘 맞고요. 그 곳에서 명예회원을 하시는 편이 훨씬 어울릴 겁니다.
역사란 "가정일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사입니다." <가정한다는 것, 추리한다는 것>은 "금물"입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연구는 고증학>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왜의 아기발도>를 갑자기 "이성계"와 연결시키려 하는지도 그 연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성계가 비록 달단이나 여진 계열이라 하더라도, 또는 조선인으로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달단이나 여진에 의탁했다가, 다시 고려조정에 귀화한 인물이었던 간에 말입니다. 그는 조선의 건국시조이며, 明이 조선인지, 제후였는지 조차 아직 불확실합니다.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장 아기발도와 이성계를 갑자기 연결시키다니요...?
이성계 몽골식이름이 아기발도인거 모르십니까...?
그걸 왜장 아기발도와 우연히 이름이 같은 이유에 대해 설명한 겁니다.
왜가 몽골에 먹히지 않았던게 우리가 아는 역사인데...왜장은 정작 몽골식 호칭을 쓰고...
몽골식 호칭을 쓰는 동명이인의 이성계에게 당하는 우연이 발생했으니...당대의 사천으로 치고온 왜들의 수장은...어쩜 몽골계인물일 가능성 많다 한 겁니다.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이 아기발도라고요? 어느 문헌을 근거로 단언하시는 겁니까? 출전을 대 보세요?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이 아기발도라는 소리는 궐한님에게 첨으로 듣는군요. 출전을 정확히 밝혀 보시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리한 추정이나 가정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를 동왜니 서왜니 하는 식의 발상 역시 같은 식입니다. 왜면 왜지 무슨 <동왜니 서왜>니.......이것은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 이렇게 조선사를 온 통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분들이 많으신지 솔직히 걱정과 우려가 됩니다. 지금 한 가닥(정통의 역사연구)으로 구심점을 잡아 나가도 될까, 말까 한 처지임에도, 온통 추리와 가정을 뒤섞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지방이나 땅에 조선이 있었다. 남과 같은 자들의 역사를 연구해서 무엇에 쓸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서에 엄연히 하(夏)국도 서하(西夏) 동하(東夏)가 나오고...
주(周)에 동이지역으로 분봉받은 동선비 기자조선(朝鮮)에 대한 기록도 엄연히 나오고...
동쪽의 몽골인 원나라가 서역에 거대한 사한국 속지를 뒀고...
요나라도 동쪽에서 금나라에 밀리곤...서요(西遼,카라키타이)라 분류된게 역사에 분명이 명기되고...
분명 동서지역이 따로 분류된게 있는데...제 맘대로 뭘 나누었다시는지요,,,?
문무님은 그럼...한국이면 한국이지(韓國) 북한(北韓) 남한(南韓)은 뭐냐...국호왜곡이라 하실건가요...?
민족과 문명이 같아도..영토가 너무 커서 스스로 분할관리했거나 시대와 사정에따라 정권이 분열돼면 나눠불리우는게 상식아닐까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나눈 것은 사가들이 자신들이 편하게 하려고 나눈 것이 아닙니까. 동한이니 서한이니 나눈 것이 누굽니가. 후대인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돌궐이면 돌궐이지 누가 이것을 동동궐이니 서돌궐이니 나눳습니까. 그들 스스로 나눈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후대인들이 그것을 편리해서 또는 두 개의 역사로 나누려고 분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일이천년 전 이야기를 현대의 방식대로 나누지는 말자는 뜻입니다. 궐한님께서는 나라가 크면 별도 관리를 통해 나라이름까지 바꾸신다고 생각하시나요? 동선비 라는 말은 후대 사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선비들은 그저 선비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생각이 다름으로 인한 언쟁은 항상 근원을 가져야 합니다. 흉노. 선비. 돌궐. 글란. 여진등등을 사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이나 소속되어 있는 곳의 이익편익을 위해 동서남북이란 글자를 차용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선비중에서 오환. 모용. 우문. 단씨. 탁발등등이 있는데, 이들은 왜 동서를 분치 않았을 까요. 요녕성으로부터 신강성너머까지 단석괴는 차지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들은 성씨를 가지고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역사를 자꾸 분리해 해설하다보면 더욱 혼란을 부채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왜와 서왜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놓은 단어입니까?
이러한 예를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물론 조선사라는 것이 워낙 방대한 것이다 보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습니다만, 항상 제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이 무슨 외계인이 와서 만들어 놓은 나라입니까? 똑같은 인간의 조선왕조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나의 주장은 그저 나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것을 왜 내 주장과 틀리냐 한다면...어찌 되겠습니까? 아 이런 주장과 의견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이며, 자신의 연구에 참고할 것은 하고, 버린 것은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또 댓글을 다는 것은 "이렇게 생각도 하는데,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면서 참고 또는 궁금함을 풀려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