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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육산악회-10월산행-한라산
*일시:
*장소: 한라산
*참가:
박정천(회장) 부부,
김경흠(총무), 김간진,
기우회 죠인트:
모두 41명이 참가하였음
*산행경과와 특기사항:
1--대강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금요일
한라산은 바다 가운데의 고산으로 기상이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당일산행을 원칙으로 하고 또 야간산행도 금지되어 있어 정상 가까이 있는 진달래휴게소까지는
그리고 우리와 같은 경우는 반대편 하산 지점인 관음사휴게소로
기우회가 주관하는 낚시모임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 중 기우회 멤버와
2시쯤 정상에 모두 도착하여 “백두에서 한라까지” 라는 우리의 플래카드를 펼쳐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절로 어깨에 힘이 솟는 듯했다. 관리소에서
이렇게 우리 일육회는 8시간 반에 걸친 한라산 산행을 성공적으로 끝맺었다.
건강을 염려하던
고맙게도 기우회에서 낚시로 잡은 생선을 회까지 떠서 여객터미널에서 전달하고 헤어졌다. 이날 저녁은 기우회가 보내준 싱싱한 회로 푸짐한 만찬이 되었다.
일요일인 19일 아침 9시 20분경에 인천항에 도착하여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고는 100회 산행으로 우리나라 제2봉인 한라산(실제로는 제3봉이다, 함경북도 관모봉이 2,541미터로 제2봉)을 등정하였다는 뿌듯한 기분을 만끽한 채 헤어졌다.
2--졍병무가 50만원을 기금으로 희사하였다.
3--
4--16회동문회에서 참가자 모두에게 멋진 등산모를 제공했다.
陽川閑談
백록담에서 구름에 올라타다
일육산악회에서 100회 산행기념으로 크루즈 선박을 타고 가서 한라산을 오르기로 하여 꼭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는 어린 날의 마음으로 돌아간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종일 걸어야 된다니 걱정도 가득하다.
인천항에서 오하마나호를 타고 제주로 향하는데 이렇게 큰 여객선은 처음이다. 배 아래층에는 화물, 차량, 컨테이너를 싣고 3, 4, 5층에 객실과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6천 톤 급에 정원이 945명이라고 한다. 객실의 크기와 등급도 다양해서 미리 단체의 인원에 맞춰 객실을 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배 안팎을 둘러보니 사방이 컴컴한 중에 우리 연안 쪽으로 간혹 불빛이 있어 아직 큰 바다에 나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라이브카페에서 필리핀(?) 가수가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우고 있는 중에 문득 영화 “포세이돈 어드밴처(Poseidon aventure)”의 파티장면이 떠오르며 OST “모닝애프터(morning after)”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영화 속의 대형크루즈 선박의 규모와 이 배와는 크기에 큰 차이가 있다 해도 현실로 보는 듯한 잔재미가 있어 또한 즐겁다.
안면도를 지날 무렵인가 후미갑판에서 벌어진 댄스파티에 절로 흥이 날 즈음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캄캄한 밤하늘로 쏘아 올리는 10여분 동안 형형색색의 폭죽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터지며 아름다운 그림을 하늘에 그리는 듯하고 자못 꿈길 속에서 불꽃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듯 황홀함에 젖는다.
불꽃놀이의 화려함을 그대로 머리 속에 간직하고 싶었음에도 이어진 댄스파티의 춤사위 속에서 그대로 싹 잊혀지고 말았으니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제주까지는 14시간 정도 걸린다 하니 아직 밤은 길다. 내일 산을 오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두들 술자리도 일찍 파했지만 몸이 건들거리는 것이 취기(醉氣) 때문인지 배가 둥실대는 때문인지 알 수 없구나.
확실치는 않으나 제주도가 현재와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것은 오랜 화산 활동의 끝 무렵인 25,000년 전쯤이라고 한다. 고려시대까지 분화(噴火)활동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誌)에서 한라산의 옛 이름은 두무산(頭無山), 또는 원산(圓山)이라고도 했다는 것인데 머리 없는 산이나 둥근 산이라는 것은 한라산의 모양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겠다.
한라산은 제주도 중앙에 솟아있는 산으로 북에서 서측 사면(斜面)까지에서 일부만 계곡이 깊을 뿐 대체로 서서히 해발이 높아지는 완경사(緩傾斜) 오르막이다. 사라악대피소까지 2시간 가까이 올라왔는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오르다 보니 주변경관을 샅샅이 살펴볼 여유가 없는데다 그저 온통 나무숲만 보일 뿐이라 그다지 볼만한 경관도 없는 것 같아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따분하다.
그래도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점차로 단풍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온통 단풍 숲에 들어온 듯하여 흡사 내가 단풍나무가 된 듯하니 제대로 단풍철에 맞추어 산행을 하는 것이다.
진달래휴게소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드디어 한라산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 남제주의 가을 풍정(風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달래휴게소를 지나 또다시 2시간여를 걸어 막바지 정상을 향해 제법 경사가 있는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이르니 가슴이 벅차고 절로 탄성이 나온다.
여기에 올라서 돌아보니 북쪽은 화구벽(火口壁)으로 전망이 가려지지만 남쪽은 훤히 내려다보이고 더구나 구름들이 눈 아래에서 정상에 오른 것을 축하하듯이 띠처럼 둘러서서 인사하는 것이 매우 희한하다.
한라산은 워낙 바람이 거세고 날씨의 변덕이 심해 산을 오르는 것이나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을 이렇게 쾌청한 날씨 속에서 보는 것도 참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오늘은 한마디로 “원더풀(wonderful)!”이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백록담(白鹿潭)을 내려다보니 장엄(莊嚴)한 듯은 하나 물 한 방울 고여있지 않는 것이 너무나 허망(虛妄)하다. 정상에서의 하산통제시간이
그나마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은 볼거리가 꽤 있다. 화구호 북벽(北壁)에서 삼각봉에 이르는 장대(壯大)한 능선과 대패로 밀어 깎아 내린듯한 절벽이 위용(偉容)을 자랑한다. 눈을 돌려 반대편 성판악 오름 길을 돌아다보니 온 산벽(山壁)이 모두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간간히 절벽에 붙어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들이 흡사 새색시가 색동장옷을 입고 금방 달려나올 듯이 보이니 얼마나 화려한가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고는 그뿐으로 하산 길은 그냥 그대로 분주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계곡에 개천의 모양은 있으나 간혹 고인 물웅덩이만 있을 뿐이다. 수풀 속에서 노루 서너 마리가 고개를 약간 쳐들고 쳐다보다가 다시 사람 기척에 놀라 후다닥 도망치는 것이 막간(幕間)의 여흥(餘興)이었다고나 할까?
4시간을 걸어 거의 파김치가 될 때야 관음사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남들도 죄다 오르는 한라산이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뒤를 돌아다 보며 흐뭇한 기분에 피로를 잊었다.
버스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저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올랐다는 것뿐으로 왠지 허무한 느낌이다. 아무리 한라산의 생태계에 신기함이 있다 하여도 이처럼 쫓기듯 오르내리면 무엇을 보겠는가? 관광자원으로서의 한라산이라면 조금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일관광을 원칙으로 한다면 적어도 백록담을 보러 산을 오르는 관광객에게는 오로지 두 가지 볼거리밖에 없다. 정상에서 제주도 전역(全域)을 조망하는 것과 백록담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정상까지 빠른 시간에 오르고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제주도 전역을 조망하려면 화구호 외벽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백록담이 신비감(神秘感)을 가지려면 언제나 물이 차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돌길로서는 전혀 산행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등산로를 몽땅 널판길(板道)로 열고 백록담 화구벽도 그렇게 하여 제주도 사방경개(四方景槪)을 조망하게 할 수 있는 꽤 기이(奇異)한 관광 길을 만드는 일이 과연 촉의 잔도(棧道)를 여는 일보다 어려울까?
촉의 잔도라는 것은 기원전부터 있어왔는데 험준한 절벽에 구멍을 뚫고 나무기둥을 꼽아 나무로 길을 만든 것으로 험하기로 유명하다. 백거이(白居易)는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구름 위의 잔도를 빙글빙글 돌아들어 검각에 오른다.(雲棧縈纡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검각은 촉으로 들어가는 관문)”
한라산 오르는 길의 일부에도 널판 길이 있어 아예 상, 하행 길을 몽땅 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까 싶어 생각해보았다. 혹 그렇게 된다면 MTB도?
백록담은 큰비가 오면 담수(湛水)되어 꽤 많이 찬다고는 하지만 곧 말라버린다고 한다. 근데 청계천도 만들어내어서 대단한 자연환경을 복구했다고 크게 떠벌리는 판에 현재의 토목기술로서 연중 푸르른 물을 보게 하는 일이 과연 어려울 것인지?
어쨌든 노약자라 하더라도 쉬이 올라와 한두 시간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고산등정(高山登頂)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더니 “황당하지만 그러하다 해도 자연환경이 오염될 수도 있으니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관점(觀點)에 따라서 다양(多樣)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 힘 드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이런 고사가 있다. 진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아버지 진헌공(晉獻公)의 첩인 여희(麗姬)의 음모를 피해 외국으로 떠돌아다니다가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황하를 건너 진나라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를 따르던 호숙(壺叔)이 망명시절의 고생길에 쓰던 깨어진 그릇이며 찢어진 옷이나 구멍 난 돗자리까지 일일이 수습하여 보물단지처럼 배에 실었다.
그것을 보고 중이가 웃으며 “내가 이제 돌아가면 왕이 될 것이니 갖은 호사(豪奢)를 다하게 될 것인데 그런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무엇 하러 가지고 가느냐? 모두 백사장에 버리거라.” 고 말하자 호숙이 “공자가 부귀를 눈앞에 두고 벌써 빈천했던 지난 날을 잊었구나,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함께 고생해온 우리들을 잊고 새로운 사람을 등용하겠구나.”라고 탄식하고는 “공자와 인연을 끊어야 되는가?”라고 생각하며 중이에게 “황하만 건너면 공자는 왕이 되십니다. 이제부터 공자를 기다리는 신하가 많을 것이니 저와 같은 사람은 이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며 작별의 뜻을 고하자 중이가 크게 놀라 이유를 물었다.
그 이유를 듣고 중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그대의 행동은 심히 마땅하다. 이는 나의 잘못이니 백사장에 내버린 물건을 다시 들여놓아라. 그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여 지난 날에 함께 고생한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중이와 호숙이 서로 맹세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개자추(介子推)는 “공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결국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호숙은 자신의 공(功)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결국 그들도 부귀를 탐하는 것이로구나.”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귀국하자 한번 조하(朝賀)를 하고는 칩거(蟄居)하였다.
중이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한 명인 진문공(晉文公)이다. 그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 개자추가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상을 내리지 않았다. 훗날 개자추가 노모를 모시고 산에 들어가자 그를 나오게 하려고 산불을 냈다가 두 사람이 불타 죽자 진문공은 크게 후회를 하고 개자추를 사모하는 뜻으로 찬 음식을 먹게 하였으니 곧 한식절(寒食節)의 효시(嚆矢)인 것이다.
다만 그것은 뒷 얘기일 뿐으로 하나의 똑 같은 사례(事例)에 대하여 중이와 호숙과 개자추의 생각이 모두 다른 것을 말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중이가 포용력이 없어 호숙을 용납하지 않았다면? 호숙이 그저 중이를 쫓아가 점령군처럼 거들먹거리며 권력의 맛을 즐기려고만 하였다면? 개자추가 중이의 부름에 따라 산에서 내려왔다면? 세 사람의 가는 길이 모두 다를 수도 있다. 이러니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이겠는가?
갑판 난간에 기대 어두컴컴한 바다를 바라보니 조금 이지러진 하현달에서 비추이는 달빛이 바다 물위에 서치라이트를 비추이듯 하얗게 길을 내놓듯 한데 그 주위로 물고기가 점프하는지 하얀 포말이 때때로 일고 있을 뿐 사방이 교교하니 세상사 오만 걱정이 이 순간만은 얌전히 숨죽이고 있구나.
이를 일러 “모든 흥망성쇠가 다 정해져 있거늘 인생은 쓸데없이 분주하도다(萬物榮枯皆有定 浮生碌碌空奔忙)”라 하면 너무 비약하는 걸까?
(陽川書窓에서
첫댓글 힘든 산행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터인데...이렇게 멋지고재밌는 산행후길 써준 양천서창으로 박수를 보냄다. " 짝짝짝" 수고하신 박회장님,김총무님,함께하신 일육회 동창여러분 수고하셨읍니다...박수 짝짝짝 짝짝짝
9시간 가량 걷고 또 걷고 .... 사고 없시 또 걷고.. 느낌은 양천 서창님이 올리는 글로 꺼꾸로 필림 돌려 보면 정리 될 줄 알았는데 .. 엮시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군요. 좋은 추엌으로 남슴니다. 동문 여러분 즐거 웠슴니다.
늘 일육산악회를 위하여, 산행후의 빛을 더욱 발해주는 양천서창님! 항상 고맙네~~~ 한라산 등산에 동참한 일육 산악회 회원님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