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
댄스에 입문한지 일 년 쯤 되어 가는 여성이 소질도 많고 열심히 한 덕분에 경기대회 출전을 앞두고 모던댄스 드레스를 맞춰야했다. 학원에서 여기 저기 이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보니 드레스 값이 3백 만 원 정도 된다는 것이다. 더 고급스러운 드레스는 5백 만 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돈이 많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드레스 사는데 몇 백만 원을 써야 한다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개인레슨까지 받다 보니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줄 알았으면 아예 댄스를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금껏 기껏해야 몇 만 원짜리 옷만 사서 입었었는데 드레스 한 벌에 3백만 원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최소한 가격으로 3백민 원'을 얘기했다.
실제로 몇 몇 댄스 의상실을 둘러 봤는데 좀 쓸 만하다 싶은 드레스는 기본이 3백만 원이었다. 물론 그 이하도 있었지만 3백만 원이라는 소리를 여러 사람에게 들었기 때문에 드레스를 맞추려면 3백만 원은 써야 한다는 것이 뇌리에 박혔다. 이것이 ‘닻 내리기 효과’라는 것이다. 나중에 여러 의상실을 둘러보고 나서 2백만 원에 드레스를 맞추긴 했다. 그래도 처음에 3백만 원을 생각 했다가 백만 원이나 싸게 사고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지 않고 댄스 의상실에 갔는데 2백만 원을 불렀으면 그 금액도 놀라 자빠질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 여러 사람에게 들은 3백만 원이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 역할을 한 것이다. 실제로 드레스 제작 재료비는 얼마 안 된다. 결국 디자인과 수공비인데 그 값이 그만큼 비싸다는 얘기이므로 수공비를 실비로 부르는 좋은 의상실을 찾으면 가격은 몇 십만 원 대로 내려 갈 수도 있다. 그만큼 마진이 높으므로 댄스 의상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백화점에 걸려 있는 신사 정장이 몇 백만 원, 몇 십만 원씩 한다. 아웃렛에서는 몇 만원하고 비싸봐야 2십만 원이면 산다. 그러니 아웃렛에 가면 싸다면서 몇 벌씩 사게 되는 것이다.
몇 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과 몇 만 원짜리 국내 가방은 실제로 품질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 가방은 으레 비싼 것으로 알고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세일을 해도 여전히 몇 백만 원인데도 싸다며 사람들이 몰린다. ‘닻 내리기 효과’에 현혹되는 것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지갑에 넣어둔 1백만 원이 넘는 수표를 도난으로 분실한 적이 있다. 파출소에 신고하고 신문에 분실 공고도 내고 법원에도 갔었다. 별별 고생을 다 해서 절반은 건졌지만 그동안 고생한 것을 감안하고 경비를 빼면 결국 손에 쥔 돈은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1백만 원은 내 인생에서 '닻 내리기 효과'로 작용했다. 1백만 원 한도 내의 금액은 저항감 없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착각의 심리학’ 책에 보면 좋은 예가 나온다. 질문이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1,200만 명보다 많을까 적을까를 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1,200만 명을 기준으로생각해서 몇 백 만 명을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한다. 처음에 1,200만 명이라는 숫자가 '닻 내리기 효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실제 인구는 약 2,800만 여명이다.
‘닻 내리기 효과’는 비즈니스나 실생활에도 적용된다. 처음에 큰 숫자를 부르고 적당한 선으로 내리면 결과는 좋게 나온다. 신사정장을 살 때는 백화점을 먼저 둘러보고 나서 동네 매장에 가서 사면 기쁨이 두 배 이상이다.
개인레슨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면 유명 학원 강사의 레슨비를 먼저 알아 보는 것이 좋다. 그것보다는 싸기 때문에 그 정도 돈은 낼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학원에서 락커 대여료를 한달에 만원이나 받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그 덕분에 집세 겨우 내고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닻 내리기 효과'는 사람의 통을 크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글: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