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과 자유 민중가요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오르다 -안치환의 새 앨범 《BEYOND NOSTALGIA》
서정민갑(대중음악평론가)
◀《BEYOND NOSTALGIA》앨범 표지
안치환의 새 앨범 《BEYOND NOSTALGIA》는 말 그대로 가수 안치환에게 향수가 가득하면서도 향수로만 머물러 있지 않은 노래들을 모은 음반이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6자 이하로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처음 듣는 노래일것이 분명한 이 노래들은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전반(<임을 위한 행진곡> 발표 전)에 불리워지기 시작한 초기의 민중가요들이다.
박정희 군사파쇼정권과의 투쟁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민중가요 운동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는 당시 불려졌던 곡들중에서 무려 스물 한곡이나 되는 곡들이 담겨져 있어 노래운동의 흐름을 되짚어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사실 이 앨범은 안치환이 1997년에 내놓은 《NOSTALGIA》 앨범과 시리즈 음반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으로 이번 새 앨범에 옛 음반이 더블시디로 담겨있기도 하다.
21곡이나 되는 《BEYOND NOSTALGIA》 음반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암울하고 무거운 시대상황이다. 오랜 군사파쇼정권의 통치아래에서 대학내에 일상적으로 경찰이 상주하고 있던 시대, 겨우 2명만 모여있어도 연행이 가능하고, 단지 5분동안 구호를 외치기 위해 젊음의 모든 것을 바치는 벗들을 피눈물 감추며 지켜보아야했던 당시의 초상화들이 이 한 장의 앨범에는 빼곡하게 담겨있다.
‘친구는 멀리 가’고 ‘기러기, 처량히 울며 줄지어 나’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숨죽인 아우성을 담은 노래들은 투박하고 거칠다. 그러나, 당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늘상 흘러나왔던 조용필과 이선희, 이용의 노래가 아무리 매끈하고 아름다웠다 한들 섹스, 스포츠, 스크린이라는 3S정책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기능할 수 밖에 없었고, 일군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수년뒤의 대폭발을 말없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BEYOND NOSTALGIA》 음반에 담긴 노래들의 투박함은 민주주의를 위해 생을 걸어버린 모든 이들의 피와 땀을 통해 읽혀져야 마땅하다. 만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마음 편히 음악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스스로의 음악을 무기로 탈바꿈시켜야 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지금처럼 아무 음악이나 듣고 부를 수 있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안치환의 《BEYOND NOSTALGIA》 음반은 최근 가요계에 쏟아지고 있는 리메이크 앨범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 앨범들이 원곡의 예술성과 명망성에 기댄 안이하고 무성의한 기획으로 한국대중음악을 후퇴시키는 주범들이라면 안치환의 새 앨범은 숨죽이며 조악한 테잎에 몰래 담아야만 했던 노래들을 비로소 제대로 된 음악으로 복권시켜준 것이다. 이것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강제로 지워진 빈틈을 20여년이 지난뒤에서야 채워준 것으로서 비유하자면 ‘한국대중음악사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에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그 이후 불려졌던 곡들 중에서 무려 스물 한곡이나 되는 곡들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안치환은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 곡이 불려졌던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개의 리메이크 앨범들이 가창자의 특성에 맞게 곡을 재해석하고 최근의 스타일로 화려하게 편곡되는데 반해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1980년대 초반에 불려졌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불려진다. 대부분의 곡들을 떠받드는 것은 단순한 통기타 반주뿐이다. 흡사 학생회실이나 동아리방에서 혼자 노래하거나 싱얼롱을 할때처럼 기타는 강하게 내려치는 스트로크나 트레몰로, 혹은 아르페지오만으로 노래를 수식할 뿐이다. 여기에 무시로 끼어드는 북소리는 그 단순함을 배가시키고 적절하게 사용된 국악기들은 노래의 역사성과 무게감을 그대로 복원해낸다. 그럼으로 인해 이 음반의 노래들은 우리를 노래가 불려지던 시대로 단숨에 이끌고 간다.
아직 민중가요가 없어 민중가요처럼 불러야 했던 대중가요들과 민중가요 운동의 초창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은 대체로 비장하고 격정에 차있다. 숨죽여 말해야 하고, 소리쳐 말하기 위해서는 생을 걸어야 하는 시대를 뚫고 나가고자 하는 이들의 삶이란 얼마나 무겁고 버거운 것이었는지를 이 스물 한곡의 노래들은 똑똑히 보여준다. ‘수많은 목숨 앗아버린 총탄자욱’이 또렷한데도 ‘혀짤린 하나님’은 ‘죽어버’린 듯 대답없는 시대에 ‘우리 것 우리가 찾으러’가는 이들은 ‘지쳐 쓰러져도’ ‘끝내 싸워 이길때까지’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절망은 더 깊고 결의는 더 비장하다. 행진곡풍의 노래로 당당하게 집단적 결의를 표출하고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탄압의 시대에 운동은 철저히 개인의 결의로부터 시작하기에 더욱 무겁고 비장할 수밖에 없다. 작자미상의 곡들이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깊은 절망을 뚫고 전진하는 주체들의 결의를 안치환은 각각 그 노래를 수식하는 최소한의 반주와 함께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처연하게 노래로 불러낸다. <해방가>, <농민가>, <출정가>,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이 전자의 경우라면 <기러기>, <까치길>, <민중의 아버지>는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절한 빈민운동가 김흥겸이 만든 <민중의 아버지>는 기타와 건반의 소박한 어울림만으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의 절망을 절절하게 살려낸다.
록으로 편곡된 <친구2>에서의 분노와 결의 역시 진정성 넘치는 안치환의 보컬을 통해 마치 오늘의 것처럼 와닿는다. 당시 군부독재의 살인적 통치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순수한 노래 <이 세상사는 동안>도 당시 운동하던 이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198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했던 안치환은 대부분의 곡들에서 원곡이 가진 아우라를 그대로 잘 살려내고 있다. 리메이크 앨범이 원곡의 아우라를 잘 살려내거나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라면 이 앨범은 전자쪽에 가깝다. 물론 이 앨범에서도 <맹인가수 부부>는 보사노바로 편곡하고, <코카콜라>는 리듬감 있는 기타반주와 건반연주를 사용해 해학적인 느낌을 잘 살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 앨범을 보며 상업적으로는 거의 가치가 없는 옛 노래를 꼼꼼하게 다시 부른 가수 안치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노순택
그래서 이 앨범은 지난 80년대 당시 시대를 고민했던 이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구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아마 이 앨범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질 이들 역시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조악한 테잎으로 몰래 들어야 했던 노래들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음악으로 다시 듣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에서 상업적으로는 거의 가치가 없는 옛 노래를 꼼꼼하게 다시 부른 가수 안치환의 치열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민중가수로서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민중가요 리메이크 작업을 성실하게 진행하며 진정한 리메이크 앨범의 본보기를 창조했다. 또한 이 앨범은 1997년의 《NOSTALGIA》 앨범과 함께 1984년 연세대 예울림으로부터 활동을 시작한 안치환의 음악활동을 복기하는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포크에서 록으로 음악적 색깔을 바꾸고, 지난 앨범에서 미국과 전쟁에 대한 날선 비판을 수행했던 안치환은 이 앨범에서 다시 자신의 개인적인 음악의 뿌리를 섬세하게 되짚어갔다 돌아왔다. 연어처럼 자신의 시원으로 돌아온 안치환이 이제는 어떤 음악적 산란작업을 진행할지 사뭇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귀 밝은 감상자라면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이 대략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파업중인 KTX 여승무원의 사연을 읽으며 <민중의 아버지>를 들어보길 바란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을 부르며 성장한 참여정부의 정치인들이 다시 똑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른다.
편집 : [강문영] 2006-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