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새로 가입한 '리'라고 합니다.
카페에 가입한 김에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세벌식 사용기를 올려 보자 합니다.
세벌식을 알게 된 건 특이하게도 꽤 옛날이었는데, 바로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배우며 '한컴 타자연습'을 사용할 때 설정 페이지에서 '세벌식 390'과 '세벌식 최종'을 발견했던 겁니다. 그 때는 "이런 것도 있구나. 특이하네." 라는 생각을 하고, 몇 번 자리연습을 해 보다가 그만뒀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바로 작년 봄, 어째선지 세벌식이란 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아, 맞다. 세벌식이란 것도 있었지."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찾아 보니 쓰는 사람이 정말 적다는 사실과 장단점 몇 가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세벌식 사용 전에 들은 장점을 정리해 보면,
- 한글 창제 원리에 알맞다
- 손이 편하고 리듬감이 있다
- 모아치기로 타속을 높일 수 있다
- 타속이 빨라진다
이 정도의 장점을 듣고,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것 같아서 어디선가 주워들은 '날개셋 타자연습'과 '날개셋 입력기'를 설치해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배열은 '세벌식 최종'으로 골랐는데, 390과 최종의 차이점은 이미 봐서 알고 있었지만, '최종'이라는 말이 더 끌려서(...) 최종으로 시작했습니다.
세벌식 연습 과정
처음 약 3일 동안은 자리연습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리연습과 낱말연습을 같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이런 걸 자세히 기록해 놓을걸 싶네요)
그리고 약 1주일 뒤, 세벌식으로 인터넷 채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자리연습부터 시작한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 게 더 나을 정도의 속도였습니다. (블로그 게시글을 확인해 보니 70타였네요) 그런 형편없는 속도로 채팅을 하니, 채팅방 사람들이 속도가 느리다면서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봤(?)죠. 하지만 "실전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는 마인드(...)로 채팅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동안 채팅을 하자, 분당 140타 정도의 속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이 되니 두벌식으로 타자를 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뒤로는 새 노트북을 사게 되어서 세벌식 사용으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과 혼란(?)도 없어졌고, 새 노트북으로 세벌식만 사용하며 타속이 쑥쑥 늘었습니다. 사용 개시 후 약 1달 정도 되었을 때 300타가 나왔던 것 같네요.
그리고 작년 여름, 갑자기 타자기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세벌식 타자기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네벌식 타자기를 구했습니다. 네벌식 타자기 사용을 위해 구입 전부터 네벌식 직결 글꼴을 만들어서 연습(?)을 한 결과 네벌식 타자기로 무리 없이 타자를 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 두벌식으로 타속을 측정해 보니 네벌식과 헷갈리기는 하지만, 사용 개시 1주일 후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배열 고안(?)
작년 겨울, 쓰고 있던 핸드폰의 할부가 끝나서 새 것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블랙베리 사의 '프리브'를 사게 되었습니다. 프리브에는 슬라이드로 열리는 물리 키보드가 있는데, 거기는 숫자열은 물론이고 따옴표와 세미콜론 키가 따로 없기 때문에 바꾸기 1주일 전부터 '프리브를 위한 세벌식 배열'을 만들어 뒀습니다. 숫자열을 쓰지 않고 거센소리는 쉬프트로 입력, ㅑ나 ㅕ는 ㅏ와 ㅓ를 두번씩 눌러 입력이라는 방식이었습니다.
핸드폰을 사고 나서는 Multiling O Keyboard 앱을 내려받아서 새로 만든 배열을 입력해서 사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Multiling 키보드에 일본어 입력 기능이 있긴 했지만 기능이 너무 부실했기 때문에 구글 일본어 입력기와 바꿔가며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또 귀찮아지자 아예 구글 한글 입력기에서 제공하는 두벌식 자판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 구글 입력기는 버그도 있고 앱 구동도 무거운 겁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라며 오픈소스 일본어 입력기를 찾아보게 됩니다.
안드로이드 앱 개발
소스가 공개된 일본어 입력기 중에 OpenWnn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앱을 기반으로 한글 입력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일본어 입력기를 기반으로 했냐고 하면, 앞서 말했듯이 일본어 입력기와의 빠른 전환을 위해서라는 개인적인 이유였습니다.
<한글 엔진>의 초기 버전을 만들고, 사진의 '프리브용 세벌식' 배열을 적용하여 프리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세벌식 입력기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일본어 입력기와의 빠른 전환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들다가 보니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어 입력기와 전환을 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소스에서 일본어 입력기는 제거해 버리고(...), 한글 전용 입력기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컨셉도 바꿔서, "여러 배열을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라는 컨셉을 걸고, 390과 최종 외에도 몇 가지 배열을 더 추가해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업데이트를 해서 지금 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53명 정도가 사용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그 외
결국, 세벌식을 사용하면서 제가 느낀 장점을 정리하면,
- 손이 편하고 리듬감이 있다. (200% 공감할 수 있는 게, 몇 시간 타자를 쳐도 손목이 전혀 아프지 않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특유의 리듬감이 정말 좋습니다. 이건 써 본 사람만이 아는 거겠죠? ^^)
- 모아치기를 켜면 오타가 줄어든다. (가끔 가다 모아치기를 끄고 타자를 해 보면 상당한 양의 오타가 발생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원래는 그만큼 오타가 나야 한다는 것이니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겠죠)
- 타속이 빨라진다. (1년 정도 사용하니 단문에서 두벌식을 사용할 때 이상의 타속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던 중간에 신세벌식을 잠시 사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안드로이드 앱에 신세벌식을 추가하고 나서 테스트를 하던 중에 익숙해져 버려서 그대로 컴퓨터에서도 사용을 했지만, 모아치기가 안되고 윈도우 정식 지원 배열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서 결국 컴퓨터는 최종, 핸드폰은 신세벌식 원안으로 고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중간에 세벌식 모아치기 2016도 시도를 해 봤습니다만 노트북 자판의 한계로 완전히 모아치기가 되지 않고, 역시 기본 지원 배열이 아니라는 점이 걸려서 세벌식 최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이상한 짓 중 하나로, CAS 속기 자판을 날개셋 입력기로 구현해 본 적이 있었지만 세모이보다도 심한 고스트 현상 때문에 (그리고 그냥 테스트기도 했지만) 하드 속 어딘가에 봉인했습니다.
이상 후기 끝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요즘도 게임 번역은 직결식 글꼴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림판당고 리마스터'가 최근에 세벌식 직결 글꼴을 사용해서 번역이 되었는데 샘물체 비슷한 글꼴을 띄게 되어 호불호가 갈렸었죠. 만일 네벌식 직결 글꼴로 번역되었다면 누리꾼 분들의 반응이 좀 더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네벌식 타자기는 타자를 치기가 좀 복잡하던데 그걸로 빠르게 타자를 치실 수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프리브를 위한 세벌식 배열은 openwnn한글 앱에서의 세벌식 단모음 자판이로군요. 저도 비슷한 자판을 사용하고 있는데 역시 모바일 세벌식은 글쇠 수가 적어지면 좀더 편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벌식의 장점을 정말 깔끔하게 정리해주셨군요! 세벌식을 사용하다보면 공병우 박사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시라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세모이 자판 모아치기를 노트북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제로 제가 노트북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정말 '적응의 동물'이라고 생각되는 게 저도 처음에는 노트북에서 고스트키가 많이 터져서 노트북에서 이걸 어떻게 사용하나 했었는데, 사용하다보니 고스트 키가 나올 글자는 저도 모르게 왼손부터 빠르게 이어치기로 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세모이 자판 모아치기를 노트북으로 치면서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금 검색해 봤는데 저 그림판 당고의 직결식 글꼴은 샘물체도 아니고 뭔가 반조합같기도 한 게, 특이하게 생겼네요.
사진 속의 배열은 세모이를 단축시킨 것 같이 보이는군요. 글쇠 수가 적어야 글쇠 하나하나가 커져서 정확히 치기가 좋지요.
@신세기 아, 그런 식으로 적응을 하면 되긴 되겠네요. 좋은 팁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최종에서 모아치기를 할 때는 아주 작은 시간 차로 초성을 먼저 누르는 게 그냥 몸에 베어버린 것 갈네요.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사용기와 프로그램 개발기를 보면서 정말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즐겁게 하고 싶은 바 개척해나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