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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한라산 보다 무서운 녀석은
구 본 황
제주도 여행에서 새겨놓은 추억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의 누구에게나 제주도 여행에서 새겨놓은 소중한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 중 뒷날에도 잊지 못할 산행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품었던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게도 7번의 제주도 여행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비록 등산의 값진 체험은 누려보지 못하였지만, 지금도 보석 같이 가슴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1985년 12월 초 신혼여행의 그림 같았던 장면들이다.
제주도에 첫눈이 내린 날, 전설 속 장면 같이 눈 외투를 푹 뒤집어 쓴 숲길에서, 아내와 단둘이서 데이트하며 싱싱한 열정을 나누었었다.
그리고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남 제주 해변 절벽 위 나지막한 호텔에서 창문을 열고 우러러본 남국의 밤하늘, 쏟아질 듯 밤바다를 비추는 별빛 가운데, 신비의 <노인성>을 발견하고는 하얗게 밤을 새웠던 젊은 날이 그립기만 하다.
삼 세 번 떠나는 한라산 등정 길
높은 산을 즐겁게 오르려면 인복이 따라야 하고, 천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산을 오를 때 마다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남한)에서 2, 3번째로 높고 명산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설악산을 진달래 꽃, 새빨간 단풍, 은하수의 마중을 받으며 오를 때는, 철인 같은 체력과 풍부한 경험을 겸비한 임경유 선생님이 늘 곁에서 인도해주셨고, 기상 조건이 순탄하기만 하여, 등정의 희열과 아기자기한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독 맏형님 산인 한라산만은 인복이 함께 했으면서도, 천시가 맞지 않아서, 두 번의 기회에서 번번이 산 정상을 밟아보지 못하여서 아쉽기만 하였다.
5월의 인어 아가씨를 사랑하다가, 한라산 산신령에게 쫓겨나다.
첫 번 째 기회는, 2002년 7월 개포고에 전근 온 첫해에 찾아왔다.
2학년 문과 반 담임을 맡았었는데, 학년부장 선생님이 제주도 서귀포시 출신인 김명철 선생님이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담임선생님들이 부장 선생님을 따라서 <탐라국>을 득달같이 방문하게 되었는데, 인어 아가씨가 솟구쳐나올 듯, <5월의 청순미>가 빛나는 에메랄드(에메랄드의 별명은 <5월의 청순>) 빛 한림항 앞 바다 한 가운데에서 난생 처음 바다낚시를 즐기는 호강을 누리고는, 서귀포 선생님 자택에 쳐들어가서 코와 입을 함께 즐겁게 하는 흑돼지 바비큐 파티로 여름날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넘치는 복을 누려서인지, 다음 날 가장 기대를 하고 찾아간 한라산은, 그 문턱인 성판악에서 세찬 빗줄기를 사정없이 뿌려 대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내쫓기듯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째 기회는, 2008년 4월 당곡고에서 슬며시 다가왔다.
<당산대형>(당곡고 등산모임)의 문동진, 기우현 선생님, 그리고 문동진 선생님의 친구이자 서울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윤태 선생님, 여기에 이한승 선생님이 함께 어우러져서, 자상한 김영철 대장님의 인도로, 한라산 등정 팀이 탄생한 것이다.
총선 휴업 일을 이용하여 해외 나들이에 나섰는데, 아쉽게도 <120mm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라, 등산로가 온통 물길로 돌변하여 등산객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악천후 속에서도 불과 2시간 15분 만에 진달래 대피소까지 질주하였으나, 대피소 직원의 제지로 아쉽게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고, 하산 후 외돌개 해안, 서귀포 항을 거닐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나서는, 강풍으로 지연된 한서항공 비행기를 이용하여 밤 9시 10분 경 제주공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라산 원정대가 결성되다
지난 1월 14일(토), 작년부터 여러 번 추진한 끝에 우리산악회의 마니산 등반이 이루어졌다.
<당산대형> 멤버들이 각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니, 우리산악회의 산행 모임에 다수가 참여하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이날 모임에는 임경유, 김대성, 기우현 선생님 등 꾸준히 등산을 함께 해온 분들 외에도, 김석, 김영철 선생님도 참석하셔서 새해를 여는 멋진 산행을 하였고, 뒤풀이로 대명포구 횟집, 대방동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4월 총선 날 한라산 등반이 잠정 결정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3일(토), 아직 북한산 계곡에 얼음이 풀리지 않은 초봄 북한산 산행을 한 뒤, 김대성 선생님의 옛집 터를 돌아본 후 가진 쌈밥집 모임에서, 전화 통화까지 해가며 김대성, 기우현, 김영철 선생님과 상의한 결과, 마침내 4명이 함께 참여하는 <한라산 원정대>가 결성되고, 7월 여름 방학 기간의 무더위와 호우를 피해, 원래 예정대로 4월 총선 날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담임선생님과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맞춰 입고 하이킹 사진을 찍는 당곡고 학생들
김포공항 2층 라운지에서 저녁 6시 30분까지 도착하여, 비행기 탑승절차를 받기로 한 4월 10일(화)은 마침 당곡고 하이킹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낭을 꾸렸는데, 비록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김영철 대장님이 방한 준비를 하고 오라고 연락하였으나, 힘든
등산에 대비하여 짐은 될수록 줄이되 아이젠과 우의는 챙겨 넣었다.
고산 등반에서 이 두 장비는 부상 방지나 감기 몸살 예방에 얼마나 필요한지 그간 절실히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하이킹대회 모임 장소인 서울대 정문 쪽 만남의 광장에, 한라산 등반 복장으로, 아침 7시 30분쯤 걸어가는데 더위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산 등반에 대비하여 겨울 점퍼를 걸친 때문인데, 짐을 줄이기 위한 결과이니 어찌하랴!
우리산악회가 수없이 올랐던 돌산 쪽으로 <관악산 둘레길>이 어느 사이 조성되어 있었고, 이병재, 이현철 선생님과 바위 전망대 앞에서 학생들을 통제하여 절벽 낭떠러지 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였는데, 여학생들은 담임선생님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맞춰 입고, 전망대에서 멋진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곤 하여,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었다.
당곡고 선생님들의 성원 속에 빗속에서 출발하다
대회가 끝난 후, 보라매공원 쪽 나주곰탕집에서 선생님들이 모두 참석하여 식사 모임을 가졌는데, 한 마음으로 우리산악회의 <한라산 원정>을 성원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김운상 선생님은,
“당곡 하이킹대회 때문에 봄비가 11일(수)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였 는데, 이제는 한라산 원정을 피해 12일(목) 내리게 기도하겠다.”
고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시간 여유가 많이 있어서, 당곡고에 걸어 올라가서, 기상대와 성판악 관리사무소에 다시 전화하였더니, 기상예보대로 11일 오전에야 비가 그칠 것 같고, 지금은 한라산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여 답답한 마음이 개이지는 않았으나, 3학년 학력평가 시험 감독을 수행한 생활지도부의 이상기, 신장수 선생님과 옆방의 김종민 선생님이 한결같이 무사 등반을 기원하는 인사말을 하고 퇴근하시곤 하여서, 마음이 한결 가뿐하여졌다.
아이스콘 하나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다
김포공항에서 만나는 시간이 식사 시간대인지라, 기 선생님과 통화하여 <옛날농장>에서 만나 미리 저녁 식사를 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 이전인데도 두 김 선생님이 반가운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다만 두 분은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하자, 기 선생님이 재빨리 슈퍼에 달려가서 아이스콘 하나씩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슬며시 지난 날 설악산 산행 여행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이번 여행을 주관한 김영철 선생님께 회비 20만원을 드리고, 여행계획표와 여행경비 예상 내역서를 받았다.
예의바르고 자상한 김 선생님은 재빨리 주민등록증과 배낭을 회수하여 혼자 탑승절차를 마무리하셔서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데, 놀랍게도 김대성 선생님은 아이젠을 준비해오지 않으셨다고 하여 걱정이 되었다.
오늘 탑승하는 비행기도 저가 항공사인 <이스타 항공>여객기인데,(지난번은 <한서 항공>), 4년 전 여행할 적에는 왕복 88,000원이었던것이 125,000으로 오른 것을 보고 기 선생님이 놀라자, 김대성 선생님은 5분 간격으로 제주행 여객기가 이륙하는 것을 가리키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빗속에서 조기매운탕과 제주 감귤 막걸리로 제주도 여행을 시작하다
비바람이 불어치는 기상 조건에다가, 잦은 이착륙에 따른 혼선 때문에 예상 시간 보다 늦은 밤 9시 경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아이스콘 1개, 기내 음료수 1컵으로 배를 채운 김대성 선생님은 힘들어하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공항을 택시를 타고 나와서 제주 버스터미널 근처에 오니, 여러 식당과 모텔이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출입문에 적힌 메뉴판을 살피다가 이름도 정다운 <용이네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젊은 부부 둘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지난 관악산 산행 후 맛본 기억을 살려서 <조기 전골 매운탕>을 시켰는데, 은근히 서비스 고기까지 추가시켜주고, 향기가 나는 제주 감귤 막걸리까지 더해지니, 선생님들이 만족해하셨다.
김 대장님은 10여 번 제주도 여행에서 얼굴을 익힌 모텔에 가서 숙박하려하였으나 아쉽게도 일행이 함께 사용할 큰 방이 없어서, 제주 종합경기장이 마중하는 모퉁이를 우산을 쓰고 돌아가니, 벚꽃 가로수의 꽃비가 지나간 듯 보도에는 꽃잎이 어지러운데, 탐스러운 푸른 이파리 사이로 빨간 동백꽃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장님은 이곳에서 오라성 모텔에 들어가 계약을 마치고, 일행은 TV로 총선 관계 뉴스와 기상 예보를 간단히 살펴본 뒤, 약속이나 한 듯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우산을 들고 정상을 향해 진군
아직 어둠이 개지 않은 아침 6시 경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한 후, 모텔을 나서니, 가랑비가 내리는데, 김 대장님은 자취가 보이지 않고, 제주 종합 운동장 건물 옥외 복도에서는 모자를 쓴 중년 남자들이 달리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중에 혹시 대장님이 있나 유심히 살펴보다가, 전화로 터미널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피식 웃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어제 용이네 식당에서 알려준 것처럼 길 건너 맞은 편 전주 식당은 불을 환히 밝히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대장님이 있는 터미널 건물에 들어가 중년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이 집 국밥이 맛있어서 일부러 이곳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터미널에 가서 서귀포 행 시외버스를 탔는데, 채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고 비가 내리는 날씨이어서인지, 수원에서 온 젊은이 등산 팀과 우리 팀만이 버스를 전세 놓고 있어서, 말 주변이 좋은 김대성 선생님께서 젊은이들과 계속 대화를 이어가셨다.
516도로로 한라산 국립공원을 종단하며 동남쪽으로 올라가는데, 이름도 정다운 아라 마을이 나오고, 목장에서는 이슬비 속에서도 말들이 얼굴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는가 하면, 왕벚나무의 본고장답게 활짝 핀 주먹만 한 벚꽃이 함초롬히 배꽃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서 마음속이 상쾌하여졌다.
7시 45분 경 한라산 국립공원 동편에 자리 잡은 해발 750m의 제법 널찍한 구릉지역인 성판악에 도착하니 아직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리는 수원 팀과 인사하고는 우산을 들고 먼저 출발하였는데, 호우주의보가 내린 상태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대규모로 찾아온 산행 팀도 있어서, 등산 붐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졸참나무 숲속에서는 꾀꼬리와 까마귀가 번갈아 응원가를 불러주고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 가랑비도 오고 있었지만, 성판악지구 관리소에서는 등산객을 통제하지 않으니 진달래 밭 대피소까지 산행은 문제가 없는 셈이고 비도 2008년 보다 훨씬 가늘게 내려서, 일행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일행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기 선생님이 선봉 장군이 되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정상을 향하여 서쪽 길로 총알 같이 달려 나갔다.
그러나 산 전체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제182호),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한라산은, 극히 제한된 산길을 따라 끊임없이 경계목이 펼쳐져 있어서 넓은 지역을 자유롭게 산행할 수가 없고, 산길 자체가 밋밋한 오르막길로만 조성되어 있어서 걷기의 묘미가 떨어질 뿐 아니라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즐거움도 적기 때문에, 쉬 지루함이 느껴지고 산행의 피로가 일찍 오는 것이 단점이다.
전날 폭우를 말해주는 물줄기를 피하며, 바윗길, 침목, 돌계단 길, 나무 계단 길을 오르다 보니, 기 선생님은 이내 일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점퍼를 벗어 우산과 함께 배낭에 넣고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영주산>의 맑은 정기를 가슴에 담고 나아갔다.
샤워를 마친 여인네처럼 긴 가지를 어지러이 늘어뜨린 졸참나무 등 활엽수 군락이 끊임없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서 있는데,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꾀꼬리와 까마귀가 혹은 맑은 소리로, 혹은 둔탁한 소리로 교대로 응원을 해주고 있어서 산행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또한 몇 백 m 간격으로 이정표들이 산행로 주변을 지키고 있다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도 보기 좋았다.
안개 커튼 속의 산정 호수 가를 거닐고, 빗줄기 속에 경보 경기를 펼치고
그런데 9시 20분 경, 성판악에서 5.8km 거리에 위치한 <사라오름> 갈림길에 이르자, 김 대장님이 2010년 가을에야 개방한 전망이 좋은 곳이고 시간이 충분하니(진달래 밭 대피소에 12시 30분까지 도착해야 등산을 통제받지 않음), 오름을 오르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사라오름(해발 1324m)은 제주도 380여개 오름 중에서 산정호수를 가진 특별한 곳이고 전망도 뛰어나서, 명승 83호로 지정되어 있으니,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 아닐 수 없었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노라니 일행이 뒤쳐져서 홀로 걷다 보니, 널찍한 공터에 나무로 조성한 보도가 안개 속을 파고들며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데, 오른 쪽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안개 커튼 속으로 꿈결같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서 있는 듯, 황홀함을 느끼면서 스트레칭을 하노라니,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여, 함께 눈 호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전망대가 갖추어진 사라오름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서둘러 우산을 펼쳐들고 황급히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갈림길에서 진달래 밭까지 1.5km 오르막은 빗줄기를 피하기 위하여 본의 아니게 경보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산행객들은 비닐 우의를 뒤집어쓰고 달음질하고 있는데, 눈과 얼음 덩어리가 발길을 가로막곤 하여서, 섬뜩 긴장이 되곤 하였다.
사발라면 두 그릇을 비우고, 한라산 등정 길에 나서다
진달래 밭 대피소에 앞장서서 들어서니 10시 20분쯤 되었다.
사라오름을 다녀온 20분을 공제하면, 성판악 관리소에서 진달래 밭까지 7.3km, 3시간 코스를 2시간 15분 만에 주파한 셈이어서, 말 못할 성취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사라오름 길까지 합하면 8.5km, 2시간 35분)
일행이 모두 도착하길 기다려서 대장님과 함께 라면과 초코파이를 매점에서 샀는데(개인당 라면 2개까지만 판매), 이곳에서는 쓰레기는 각자 가져가도록 하고 있어서, 사발라면 두 그릇을 비운 후(1개로는 에너지 보충이 힘들 것 같았다), 플라스틱 용기는 구겨서 배낭 속에 넣고 출발하였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두 분은 이미 출발하였고, 자상한 김 대장님이 기다리고 있어서 같이 발길을 옮기는데, 시계를 얼핏 보니 11시 5분쯤 되었다.
눈과 얼음이 히말라야 등산로처럼 발길을 가로막다
해발 1500m 진달래 밭에서 1950m 정상까지는 2.3km, 1시간 30분 거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앞길에서 산행객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는데, 고도가 높아지니 전날 호우에도 불구하고, 눈과 얼음이 히말라야 등산로처럼, 심술쟁이 거인처럼, 기다랗게 엎드려서 가로막고 있으니, 모두들 쩔쩔매고 있었다.
얼마를 올라가니 길섶에서 기 선생님이 아이젠을 착용하려 하는데, 아픈 팔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아이젠을 채워드리고 나도 착용하였다.
그런데 아이젠을 갖고 오지 않으신 김대성 선생님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헤매는 산행객들을 지나쳐서 재빠르게 오르다 보니, 김 선생님이 역시 눈구덩이, 얼음판을 피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달려가서 손을 잡아드리니, 오히려 허망하게 넘어지시는 것이었다.
결국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하는 선생님을 뒤로 남기고 발길을 재촉하게 되니 죄송한 마음이 앞서는데, 등산대장이 당부했던 아이젠 준비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
칠흑 같은 안개와 모진 바람에 쫓겨 하산 길을 재촉하다
수원 젊은이 팀과 어울려서 1800m 고지에 올라서니 나무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세찬 바람 탓인지 눈, 얼음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짙은 안개가 10m 앞도 내다보지 못하게 사방을 둘러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 그 동안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겨우 올라왔는데, 정상에서 조망을 못하고 내려가는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12시 20분 경 칠흑 같은 안개 속에서 한라산 정상 표지목을 스쳐 백록담이 자리한 경계목 쪽으로 올라가니, 우악스런 상승기류가 한사코 가슴을 세차게 밀어대서 한시도 버티고 서 있을 수 없었다.
9.6km의 성판악 등정 코스를 4시간 15분 만에 오른 셈인데(휴식 시간을 제하면 3시간 30분), 정상에서는 이내 밀려나서 희뿌연 해진 안경을 낀 채, 산 길 아래 오들오들 떨고 있으려니, 처량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등산 시간은 4시간 30분)
뒤늦게 도착한 김대성 선생님은 모진 고생을 한 탓인지, 관음사 쪽 하산 코스가 험난하면 다시 성판악 쪽으로 내려가자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대장님은 관음사 쪽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야 한라산 종주가 완성된다고 설득하였다.
한라산 등반도 힘들지만, 2월 설악산 등반을 하다가는 죽을 뻔하였다
관음사 쪽 하산 길은 곧바로 제주시를 향해 북쪽으로 8.7km 뻗어 있는데, 코스가 짧은 만큼 험난하여, 이곳으로 오르는 등산객은 거의 없다고 대장님이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안개가 너무나 자욱하여 경치가 좋다는 왕관바위를 볼 수 없어서 아쉬운 발길을 내딛는데, 이쪽도 정상 부근은 세찬 바람 탓인지 등산로에 눈과 얼음이 자리 잡지 못하였으나, 왕관릉 가파른 비탈길에는 눈구덩이와 얼음판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어서, 역시 각개 약진을 하며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앞장서서 내려오는데, 아이젠을 준비해오지 못한 수원 젊은이 팀은 시퍼렇게 날선 얼음판을 살금살금 피해 내려오면서, <한라산 등반도 힘들지만, 2월 달 설악산 등반은 봄옷 차림으로 갔다가 죽을 뻔하였다>며 고개를 내젓지 않는가!
지난 날 눈보라치는 설악산 능선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던 기억이 저절로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눈구덩이 코스에서 고전하는 수원 팀이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한참을 나아가니 한결같이 흰 비닐 우의를 두른 문경 팀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대부대라 좁은 산길에서 꽁무니로부터 머리까지 몽땅 추월해낼 재간이 없어서, 경상도 사투리에 파묻혀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오후 1시 30분 경, 백록담에서 1.9km 아래에 있는 용진각 대피소터가 널찍한 공터를 자랑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까마귀 한 쌍이 인사하는 용진각 대피소터에서 한라봉과 과자를 나누어 먹다
큼지막한 까마귀 한 쌍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환영가를 불러주는데, 큼지막한 더듬이 지팡이를 팔에 걸친 중년의 부인이 한라봉을 쪼개서 내게 건네주며, <이 놈을 맛보려는데 (당신이) 오셨으니, 이쪽은 내 것이 아니지요^^*>하고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다시 길을 떠나는 부부 팀에게 감사의 배웅 인사를 하고나서, 아이젠을 벗고 스트레칭을 하며 기다리니, 대장님과 기 선생님이 나란히 고개를 내밀고, 얼마큼 지나니 다시 말 못할 고생을 한 김 선생님이 지친 발길로 내려오시는 것이었다.
일행이 배낭을 풀어 초코파이와 과자를 몽땅 꺼내어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갖는데, 수원 젊은이 팀 가운데서 후미 멤버(아이젠이 없어 고전한 4명의 멤버가 결국 2명 씩 나뉘어졌다) 두 분이 내려와 우리 곁에서 철부 덕이 앉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과자와 초코파이를 건네주며 얼마 전에 받은 보시의 기쁨을 그 분들에게 되돌려드렸다.
그런데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뜻밖에도 앞서간 수원 젊은이 선두 팀이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어 막걸리와 과자 맛을 보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세 버스에서의 감칠 맛났던 대화에도 불구하고 김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며 내려가 버리니, 몹시 서운해 하였다.
대장님과 나는 얼른 자리에 어울려 막걸리 잔을 들고, 과자를 입에 넣으며, 젊은이들과 유쾌한 자리를 함께 하였다.
해발 1000m에서 비 개인 능선을 바라보며 엉터리 사진을 찍다
오후 2시 경, 정상에서 2.7km 내려온 해발 1500m의 삼각봉대피소(무인대피소)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였는데, 연이어 다른 등산 팀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것이었다.
기 선생님이 떠날 준비 마치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와 보니, 김 선생님은 내려가시고, 대장님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김 선생님은 관음사지구 관리소에 내려와서야 재회할 수 있었다)
일행 셋이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하게 솟아있는 개미등 소나무 숲을 감탄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깊은 계곡에 걸쳐져 있는 다리를 지나 숨 가쁘게 오르막에 올라서니, 해발 1000m 안내석이 웃고 있고, 벤치 위에서는 용진각 대피소터에서 한라봉을 건네준 부부 팀이 인사를 건네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3시가 넘어서자 거짓말 같이 스르르 산자락을 가렸던 구름이 걷히는 것이 아닌가!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무사등반을 축하해주는 김종민 선생님께 답장 메시지를 보낸 후, 연방 주변 경치와 일행의 모습을 촬영하였는데, 이놈이 아뿔싸 군대 간 막내 아이 것이라, 이후에 발걸음을 멈춰가며 수없이 촬영한 멋진 장면들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으니, 이글을 쓰는 순간도 아쉽기 한량없다.
4월의 한라산 보다 무서운 녀석은
숯 가마터, 구린굴, 탐라계곡에서 귀여운 산죽, 상수리나무 등 활엽수, 동남아시아의 고무나무 같은, 싱싱한 초록 잎사귀와 붉은색 입자루가 상큼한 굴거리나무 등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로 일행들과 사진을 찍어가며 여유 있게 하산하니, 4시간 15분쯤 되었고, 저 멀리 휴게소 쪽에서는 김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반가이 맞아주시는 것이었다.
정상에서 12시 40분 경 출발하였으니 3시간 35분 걸린 셈이라, 우리산악회의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관음사 지구까지 일반적인 등산 시간 역시 4시간 30분이다)
한라산 종주코스로, 성판악에서 정상을 거쳐 관음사까지 18.3km를 8시간 30분 걸려 주파한 셈인데, 정확히는 사라오름 1.2km 다녀온 것까지 합하여야 하므로, 19.5km를 8시간 30분 걸려 무사히 완등하였으니, 보람이 저절로 느껴졌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휴게소에서 파전을 곁들여 제주 감귤 막걸리파티를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기분에 도취되어 택시를 몰아 해변 횟집을 찾아가서 다시 제주 감귤 막걸리와 조껍데기 막걸리를 섞어가며 무한정 뱃속에 집어넣다 보니, 다리 아픈 것보다 배 아플 것이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선생님들께 드리려고 사온 감귤 초콜릿을 옆자리 이상기 선생님께 권하면서, 살며시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 얼음, 비, 바람이 기다리는 4월의 한라산 보다 더 무서운 녀석은 바로 <술>이었어!”
( 2012년 4월 16일 적음 )
※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이 모두 없어져서, 이 글에 실은 사진은 곽영을, 김석 선생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첫댓글 제목이 '등산이 쉬웠어요.'처럼 들리는데요. 같이 갔다 온 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표현도 멋지거니와 기록도 정확하고 세밀해서 기록으로 읽는 맛도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을 철 아니면 여름방학에 한번 더 도전해야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시험 출제를 미루고 겨우 완성하였습니다ㅠㅠ 엉터리라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자신의 관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쉬움 없는 한라산 등정을 향한 선생님의 열정을 배워야 하겠군요^^*
구선생님! 사진과 함께 멋진 글 실어주시어 고맙습니다. 새록새록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결국 구선생님을 공포(?)에 떠시게 한 감귤막걸리의 장본인은 저인 것 같습니다. 깊이 반성하겠으며 다음에는 막걸리를 한 잔 덜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숙한 글 속에서 좋은 막걸리를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는군요^^* 선생님의 친절한 인도와 자상한 배려로 무사히 한라산 등반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노고에 재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