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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서 의식이 緣起的 작용으로 어떻게 전변 되고 현행 되는지 개략적으로 살폈다면 본편에서는 성서에서 디폴트 되어 있는 인간 의식의 원형을 찾아 보고 그 의식이 어떻게 염오(染污)되어 고통과 불안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이르기 까지 전변 되고 현행 하는지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년 ~ 686년)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현시정의분(顯示正義分)에서 진여식(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연기적으로 현행되고 전변 되는 지를 밝힌 삼세(三細) 육추(六麤)의 메카니즘을 통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인간의 출현
인간이 출현한 것은 神의 의지로 부터 비롯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1: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위의 생기는 숨으로 네솨마(נְשָׁמָה)이고 생령은 생명(네페쉬 하야 חַי נֶפֶשׁ)이다. 최초의 인간은 신이 숨을 불어 넣어 생명체가 된 것인데 흔히 네페쉬 하야를 영혼을 불어 넣은 것으로 해석해 인간의 육체 안에 영혼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신학자와 목회자가 있다. 이는 잘못된 견해다.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창세기 1장 20절과 21절 그리고 24절 등에도 나와 있다는 점입니다. 20절과 21절에 보면, 물속에서 숨 쉬는 모든 생물을 ‘네페쉬 하야’라고 했다. 우리말로는 간단히 ‘생물(生物)’로 번역한 단어다. 24절에 보면, 땅 위에 사는 생물들, 즉 동물과 곤충들도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영혼의 선재설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서에서는 사람을 육체와 의식을 분리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창1:26에는 사람을 만들었다고(아싸 עָשָׂהㅅ) 기록하고, 창2:7에는 아다마(הָ֣אֲדָמָ֔ה)로 아담을(אדם) 빚었다(야차르 יָצַר)고 기록하고 있으며 2:22에는 여자를 지었다(바나 בָּנָה)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인간이 無에서 有로 창조 된 것이 아니라 흙먼지(아다마הָ֣אֲדָמָ֔ה)와 아담의 갈비뼈(첼라 צֵלָע)가 질료인 因이 되어 神의 의도와 의지가 조건이 되어 각각 남자(아담 אדם)와 여자(네케바 נְקֵבָה)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져 自性이 없기 때문에 生住異滅의 緣起的 존재임으로 空하며 필경 질료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네가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라는 기록이 그 증거다.
위의 기록과 같이 신의 모상으로 인간의 원형인 아담카드몬이 만들어 졌다. 아담카드몬은 아직 남성과 여성으로 분화 되지 않은 완전한 이미지로 신의 반사된 모습을 담기 위한 존재이다. 아담카드몬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인간으로 만들어져 출현 됐다.
2. 인간 의식의 원형
1) 루아흐(רוּחַ) 심령(心靈)
성경에서 사용한 루아흐(רוּחַ)는
첫째 '기상학적 바람'으로 神과 관계 없는 자연현상 또는 신이 일으킨 바람 이다.
둘째 신의 능력과 권능 그리고 신의 심령 또는
예언자에게 부어 주는 영감
으로 신과 분리된 위격을 가진 성신 또는 성령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본질이 아닌 활동, 작용으로 사용되었다.
셋째 인간의 루아흐
인간의 루아흐는 '숨', '호흡', '마음', '정신', '생명력', '정서', '의지', '성품', '활기', '용기', '심령'으로 사용 되었다. 메타노이아 복음에서는 인간의 루아흐를 '심령(心靈)으로 번역하고 의식의 본바탕으로 삼는다.
'심령(心靈)'은 사전적으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존재이며 정신의 근원이 되는 의식의 본바탕으로 정의 된다.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슥 12:1b)'라는 스가랴 기록으로 神이 사람 안에 바로 심령(루아흐 רוּחַ)을 만들어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서에서 루아흐를 '숨', '호흡', '마음', '정신', '생명력', '정서', '의지', '성품', '활기', '용기'로 사용한바 심령은 이 모두의 본바탕이 된다. 그러나
육체와 분리된 심령주의에서 말하는 영혼이나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인 영혼이 아니며 신약성서의 영혼 또한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구약 성서에서 루아흐를 영혼 또는 위격을 가진 성령으로 사용한 기록이 없고 대부분 '생령'(네페쉬 נֶפֶשׁ)을 영혼이라고 번역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본 헬라 철학의 영향인 것으로 보이며 신약성서에서의 '영혼(프쉬케ψυχή)이라는 용어 또한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사용된 것이다. 루터는 프쉬케(ψυχή)를 '생명'으로 번역했다.
무엇 보다도 '영혼'이라는 용어 대신 '심령'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뜻이 명확해 진다. 신약에서 심령(프뉴마 πνεῦμα)이 구약의 루아흐며 산상수훈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로 사용 되었다.
이 심령이 불교에서의 진여심 또는 아뢰야식과 같다고 본다. 아뢰아식은 메타노이아 복음(2)에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인간 의식의 디폴트 값은 루아흐인 '심령'으로 육체와 분리 될 수 없다.
2) 공간의식
동물은 태어나면서 시각 정보 등의 입력 되는 정보로 뇌의 두정엽에서 위치, 깊이 , 거리 , 신체 범위 등 공간을 지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에 따라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등의 공간의식이 형성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창조 이전 Kaos 상태의 공간 형성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2:8)'
★에덴을 인간이 차지할 공간의 위치로 설정하여 공간의식 형성.
3) 시간 의식
동물은 뇌의 시각교차점(chiasm) 바로 위에 있는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SCN)이 생체 시계로 설계 되어 있어 빛의 시감각으로 수면 주기에 따라 수면과 각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하루라는 시간의식이 가능하다. 또한 변화에 따른 시간 지각이 가능해 시간의식이 형성 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
★ 빛과 어둠을 생체시계 정보로 설계하여 하루(날)의 주기로 시간의식이 형성된다.
공간과 시간의식은 인간의 의식에 내재 된 존재와 인식의 기본 틀이다. 공간과 시간을 제거하려 해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은 선험적으로 내재화 되었기 때문이다.
4) 분별의식
모든 감각은 파동의 차이로 감각되고 인식 된다. 각각 파동이 다른 색과 소리가 감각되고 인식된다. 차이가 없다면 색과 소리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색은 가시 광선이 400에서 700nm까지의 범위를 소리 가청주파수는 약 20~20,000Hz를 감각하고 인식한다. 차이 분별은 디폴트된 의식이다.
元形意識인 심령은 아직은 백지와 같아 아무 것도 모르는 無明이며 자아의식이 아직 발현 되기 전이어서 神과 人間 그리고 自我(主)와 他者(客)가 구분되지 않은 全體意識이다.
元形意識을 원효는 카르마가 전혀 없어 염오 되지 않은 진여식(眞如識)으로 보며 진여식이 不覺을 연하여 현행한 第八識인 아뢰아식(여래장식) 으로 본다.
심령 또는 여래장식인 원형의식이 연기적으로 어떻게 염오되고 훈습되어 죽음의 苦痛과 不安이라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는지 살펴 보자.
1.삼세(三細) 微細意識
미세한 三細意識은 아뢰야식이 因이 되어 무명을 緣하여 現行한다.
무구 청정하고 여여한 심령, 진여가 어리석음이 조건이 되어 미세하게 현행하기 시작한다. 진여식이 아뢰야식으로 현행하고 심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1)무명업상 無明業相( 業相의 現行)→
마음 이 움직이기 시작함으로 業相이라고 한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면 괴로움이 있게 되니, 결과가 원인을 여의지 않는 까닭이다. 업상은 주관(自我)과 객관(대상)이 아직 분리 되지 않은 상태다.
비로소 無明으로 인해 심령, 여래장식이 움직여 현행하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無明의 無意識 상태에서 에덴에 있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는 경작과 지키라는 과업이 주어지기 전에는 분리되어 있지 않은 무위의 하나 였다. 그러다 경작과 지키라는 과업을 부여 받자 그것들을 지향하여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가치를 부여하여 의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覺이 生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2) 능견상 能見相(主觀意識, 自我意識)→
의식의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볼 수 있게 되며, 움직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없다.
백지와 같은 無明의 無意識이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로 의식이 지향하며 가치를 부여하여
의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과업의 대상이 되면서 아담이 주관이 되고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이 객관으로 구분 되어 아담이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主觀意識과 자아의식이 발현 된다.
아뢰야식의 능견상(見分)으로 부터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 意)
으로 현행한 자아의식은 염오식으로서의 아치(我痴)가 근본 원이 되어 아견(我見)→아만(我慢)→ 아애(我愛)라는 네가지의 근본 번뇌로 현행한다.
아치(我痴)는 나(我)가 空한 五蘊(色受想行識)인 無我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아견(我見)은 아치의 어리석음으로 오온을 나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아집(我執)을 말한다.
아만(我慢)은 아집을 원인으로 현행하는 거오(倨傲: 거만과 오만)를 말하는 것으로, 제7말나식으로 하여금 소집아(所執我) 즉 망령되이 계탁하여 실재하는 자아로 삼은 환영적인 자아에 대해 '믿고 의지하고 자부[恃]'하여서 고거심(高舉心: 지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아탐(我貪)을 말하는 것으로, 제7말나식으로 하여금 소집아(所執我) 즉 망령되이 계탁하여 실재하는 자아로 삼은 환영적인 자아에 대해 탐착(耽著: 탐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착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3) 경계상 境界相(現相 客觀)→
주관의식의 발현과 함께 內外와 自他가 분별 되며 의식이 지향하는 외부 세계의 他者에 대한 客觀意識이 발현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2. 육추(六麤) 거친의식
거친 六麤意識은 無明이 因이 되어 대상을 緣하여 현행한다.
4) 지상 智相→
주관인 능견의식과 객관인 소견의식으로 이분화 되면 이를 의지해 가장 낮은 단계의 분별·식별 즉 앎의 작용을 하는 이 단계에 이르면, 객관인 대상에 대하여 시비와 애증의 분별을 일으키고, 염정(染淨)과 선악의 구별을 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 자의식과 대상의식 발현으로 자유의지로 알아서 판단 선택 결정 실행하게 됨
★ '임의로'라는 자유의지로 의식이 전변하기 시작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라도 먹을 때 生死를 분별하는 분별의식이 발현됨.
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앎으로 선악분별 의식이 배태됨.
5) 상속상 相續相(相이 연쇄적으로 이어짐)→
지상(智相)에 緣하여 고 락(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생각을 일으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이 생각은 순간 찰나에 前念이 滅하고 後念이 生하며 생각이 生滅을 거듭하며 이어진다.
6) 집취상 執取相(住持苦樂取)→
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 하여 생각하고 苦•樂에 머물러서 마음에 집착을 일으킨다. 생각이 내 밖의 대상에 달라 붙기 시작하면 取着하는 가운데 慾貪이 일어난다.
貪嗔痴 三毒의 시작인 貪이 현행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7) 계명자상 計名字相(依於妄執 分別假名言相)→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가짜 명칭과 언설의 모양을 분별하기 시작한다. 헤아리고 이름으로 개념화 하고 범주화 한다.
생각이 가 달라 붙어 있는 대상을 어찌할까 이리저리 계산하고 헤아려 그 이름과 말에 속아 개념화와 범주화로 분별하기 시작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 성서에는 '뱀'으로 표현 했으나 무명에 의한 내면의 惑이다.
★ 죽을까 안죽을까 헤아린다(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 필경에는 善惡을 개념화 하고 범주화하여 분별하게 될 것이다(名字)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2:19)"
★이미 대상에 이름을 붙임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개념화와 범주화 되어 분별의식과 차별의식이 발현된다.
이름을 붙이는 19절은 경작하고 지키는 15절 이전에 기록 되어야 연기적 의식 현행에 맞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선행 되야 그 이름으로 인식하고 분별 할 수 있다.
8) 기업상 起業相(행동함 造業, 作業)→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몸과 입으로 업을 짓는다.
까르마가 형성 되어 의식을 덮는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 惑이 業을 짓게 한다. 意識이 行으로 변한다.
"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루아흐 심령 그리고 여래장식은 자유의지로 無明業相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起業相에 이르러 행동으로 옮겨 지도록 緣起的으로 轉變했다.
9) 업계고상 業繫苦相( 受報 과보로 받음)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고통하게 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3:7)"
★눈이 밝아짐은 참혹한 현실에 눈 뜸이다.
★벗은 줄 앎은 수치심을 갖는 것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8)"
★ 아담과 아내는 이제 神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 벗었음은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다. 바로 죽음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3)'
★ 핑게와 원망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業苦 발생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業苦 발생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옷으로 몸과 환경의 경계가 이루어짐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 죽음의 苦 발생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3:23)'
★생업의 苦 발생
결국 원형의식인 심령과 아뢰아식이 무명을 緣으로 염오(染污)되어 인류를 불안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한 메카니즘을 밝혔다. 진단은 마쳤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진단에 따라 염오식(染污識)을 어떻게 메타노이아 하여 무구( 無垢)한 청정식인 본래의 진여심령으로 되돌릴 것인가의 처방과 이 메타노이아가 신약성서의 예수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밝히는 일이 남았다.
첫댓글 '생령'(네페쉬 נֶפֶשׁ)을 영혼 ' 영혼(프쉬케ψυχή) , 루터는 프쉬케(ψυχή)를 '생명'
무엇 보다도 '영혼'이라는 용어 대신 '심령'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뜻이 명확해 진다.
신약에서 심령(프뉴마 πνεῦμα)이 구약의 루아흐며 산상수훈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장로님의 탐색이 본질을 헤아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