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전 상서2
올해도 추석이 가까워져 옵니다. 그러나 아직은 길가에 코스모스 피고, 고추잠자리는 날지 않습니다. 올여름도 무던히나 더웠습니다.
그 여름을 넘기고 부모님 무덤앞에 섰습니다. 그간 자주 찾아뵙지 못함을 용서 빕니다. 더위 핑계삼아 부모님 그 크신 은혜를 상쇄시키고자 하는 마음 아닙니다.
묘지 주변 환경이야 달라진게 없습니다. 아래칸 묘지엔 40대쯤의 중년 부부가 벌초(기본 벌초는 관리소에서 대행)를 한다고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본 그 모습이 참 정성스럽습니다.
부모님과, 인접해 있는 누님의 묘앞에는 시들어 가는 국화꽃이 놓여 있습니다. 여동생들이 가져다 놓았는지, 행여나 조카가 다녀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어진 것도 아니어서 추석까지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떨어진 관리실 화장실앞 수조에서 병에 물을 담아다 축였습니다.
하늘은 푸르게 높고, 하얀 적난운이 솟아 오릅니다. 산골 마을앞 들판의 벼도 익어가고, 더위 식힌 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갑니다.
그러나 이곳 세상은 생전에 계실때보다 먹을건 풍족하나 인심 팍팍하고, 계절은 갈수록 사나우며, 형제들의 아픈 삶도 남아 있습니다.
작년엔가 작은 형님네에서 형제들이 함께 2박 3일쯤 국내여행을 하자고 제안 있었습니다. 저는 슬픈 추억여행이 될까봐 불참의사를 드러냈고, 애 엄마 더러 참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주일 전쯤 막내 여동생이 작은 오빠가 여행 못가는 대신 모여 식사를 함께 하자더란다고 전하여 왔습니다. 그래보았자 태어났던 7남매 중 4가정뿐이어서 역시 서글픈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생전,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 부산으로 올라오시게 하고, 농촌 일에서 손은 떼셨다지만, 좁은 아파트에 아버지는 감옥이셨고, 어머니는 자식들 아이 돌보아주시는 십수년을 희생하셨다는 죄스런 생각에 고착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판단했고, 그런데 나는 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서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가슴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두분 돌아가시고, 미국으로가신 큰형님네는 문자로만 소식 올갈뿐 누군가 운명을 달리해도 안타까운 생각들만 남을 것입니다. 나머지 형제들도 자식들 따라 서울로, 안산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갑니다. 마치 가문의 대가 끊어진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부모님 앞에 선 저의 모자란 생각은 지난 어려운 시절에 다른 집처럼 자주 모여 좀더 의논하고 살았더라면, 하는 후회로 이어집니다. 지금에 와서 자칫 과거를 잘못 되돌려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보다는 상처를 키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래서 한동안 묘지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솟아 오르는 구름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 스스로를 훼손하기 위하여 더 큰집을 짓고, 더 비싼 옷을 입고, 더 맛있는 고기를 먹습니다.
이 공원묘지의 푸르럼 같이 푸르른 산과 들, 감과 밤이 익어가던 그 순박하던 마음의 고향 부모님의 품속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다 발길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