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북설악 화암사 신선대 산행.
① 산행일시 : 2015 년 8월 22일 (토)
② 출발지 및 출발시간 : 쌍용회관 (07시 00분)
♣ 차량순환안내 ♣
차량이 정해진 시간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미리 나오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BUS 순환코스 : 쌍용회관 (07:00) → 소양로 현대APT앞 (07:05) → 춘천여고앞 (07:08) → 팔호광장 신한은행앞 (07:12) → 춘천막국수앞 (07:12) → KBS앞(07:15) → 굿모닝마트(07:20) → 하이마트(07:25) → 호반체육관(07:30) → 우리소아과(07:40) → 한방병원(07:45)
③ 산행코스 및 산행시간 [5.0Km, 3시간]
주차장 - 화암사 일주문 - 수암헬기장 - 선인대갈림길 - 신선대(신선암) - 선인대갈림길 - 화암사숲길 - 화암사 - 화암사일주문 - 주차장
안내도에는 2시간 소요로 되어 있으나 등산코스길이 오르막길로 1시간 이상 소요되고 신선대 조망바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있어 3시간 소요 예상합니다.
④ 산행회비 : 25,000원
⑤ 준비물 : 등산장비, 우의, 점심도시락, 그 외 개인준비물
가급적 산행을 마친 후에는 일찍 춘천에 돌아오려합니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상황이 벌어 질수도 있으니 본인이 판단을 잘하셔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산행은 산행과 트레킹을 겸하고 있다.
춘천에서 미시령터널을 나와 고성 잼버리 도로 입구에 있는 화암사 일주문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화암사 기념품 판매소 앞쪽 쉼터의자가 있는데 수암가는길 안내판이 보인다 거기서 급경사길로
약 10여분 올라가면 능선마루에 커다랗게 솟아오른 수암을 만날수 있다.
수바위을 감상하고 다시 능선을 타고 40여분이면 최고의명당 북설악 신선대가 나온다.
울산바위가 지척이고 발아래 과거와 현재의 미시령길이 굽이굽이 휘어저 보인다.
넓은바위가 고래등처럼 펄처지고 낙타바위와 기암괴석이 우리를 반긴다.
하산은 오던 길로 다시 선인대삼거리로 내려가 선인재로 올라서면 금강산 화암사숲길 안내도가 나오고 삼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출입금지 안내표시가 서 있는 곳에서 화암사골 산림치유길로 하산 산행이 끝난다.
출입이 금지된 삼봉으로 오르면 우리나라 최북단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진부령 쪽으로 신선봉, 마산봉으로 미시령 건너서는 황철봉, 마등령으로 이어진다.
화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진표(眞表)가 창건하여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 이 절을 각각 창건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월영암(月影庵)을 창건했으며, 1401년(태종 1)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1623년(인조 1) 불에 타자 1625년 중건하였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하였다.
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1716년(숙종 42)에는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하였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하였다.
1760년(영조 36) 대웅전과 향각(香閣),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웠고, 1762년에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 오도록 하여 경위를 듣고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요사채 2동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1796년에는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풍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창건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했으며, 춘담(春潭)이 중심이 되어 중건에 착수하였다.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내다가 이 해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1872년수봉이 새 터에 법당과 영각(影閣),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으며, 1882년(고종 19)자허(耔虛)와 선월(船月)이 철원 장구사(長久寺)에서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을 모셔와 봉안하였다.
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축성(竺星)이 중수했으며, 1909년영운(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12년에는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타서 1917년 중건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다.
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첫댓글 신청입니다...! 김대식(안드레아),최철규(사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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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현 (안토니오) 부부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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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자 아가다 신청 --- 5명
이승환 다빗드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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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숙레지아 변금녀로사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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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섭 데레사 신청 --- 9명
신건숙(글라시아)외 이영자,이춘자씨 신청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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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구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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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구교수님 반갑습니다..환영합니다.
송영무(베드로)하정복(율리안나)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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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교,교수님신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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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레아, 이향미, 한춘복, 백춘자, 고진철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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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미,한춘복,백춘자 - 쌍용회관탑승
고진철-KBS탑승
이남수스테파노,조봉애아가다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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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베네딕토, 김주연 아녜스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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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훈(가브리엘)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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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숙베로니카, 이수복님 신청 --- 28명
송성복마지아 신청 --- 29명
최효정 아가다, 정인자 파미올라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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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숙리타 신청합니다
한방병원에서 탑승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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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베네딕토, 김주연아녜스 산행 취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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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국용벨라도 신청 --- 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