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말씀드린 '구체적인 증거'란 단적으로 말해서 선구자님의 논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원전이나 연구서 인용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만 일단 판단한다면 선구자님의 증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은 듯 싶군요.
그야 어떻든 우선 사대주의와 모화주의의 차이점부터 분명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사ː대 (事大) [명사] [하다형 자동사·하다형 타동사]
1. 약자가 강자를 붙좇아 섬김. 2.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김.
모ː화 (慕華) [명사] [하다형 자동사] 중국의 문물이나 사상을 우러러 사모함.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조일전쟁 이전의 사대와 모화는 전반적으로는 일치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대는 말 그대로 '힘의 차이'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반면 모화는 힘의 차이와는 전혀 상관 없는 '관념'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일단 여기까지 파악한 연후에 선구자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우선 제가 주장하고싶은 것은 사대모화사상하고 교조적인 성리학과는 완전히 다른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선구자님 주장)
일단 사대 사상과 모화 사상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한데 교조적인 성리학 즉 화담 서경덕, 남명 조 식 선생과 같은 성리학 조차 발을 붙이기 어려운 성리학과 모화 사상은 대체 무엇이 그리 다를까요?
사대 사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조만전쟁 시 사대 사상으로 보자면 명보다는 청이 당시 근소하나마 강했으니까 청에게 붙어버리는 것이 하등 이상하지 않습니다.
한데 서인들은 '주저 없이' 명을 받들었지요. 그것도 나라를 걸면서까지요.
이것은 교조적인 성리학 즉 주자학에 매몰된 모화사상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인조를 수반으로 한 집권층의 현실적 이익 때문에라도 말이지요.
"조선초기 신진사대부로써 새왕조건국에 앞장선 세력들의 경우 결코 모화주의자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정도전의 경우 성리학적 통치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많았는데 그의 대외외치적인 측면을 보자면 요동정벌을 준비함으로써 되려 명과 불편한 관계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세종시대의 경우 한글창제문제를 따지는 경우 한글창제에 기여한 집현전 학자나 그것을 반대한 사대모화주의 유림인 최만리, 이 두부류 모두 성리학적 소양을 가진 학자들입니다."(선구자님 주장)
삼봉 정도전 선생의 성리학에 대해서는 제가 이의를 제기한 기억이 없습니다.
한데 삼봉 선생의 성리학과 최만리 및 이후 김종직 등의 성리학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국가 경영 방략에서부터 삼봉 선생과 점필재(김종직)의 학문성향은 전혀 다르지요.
삼봉 선생의 성리학은 사림파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이단'으로 단죄될 수밖에 없는 성향입니다.
왜냐하면 사림파의 학문 성향은 고려 말기의 온건파 사대부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인데 근본적으로 성리학'만'을 정통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α는 완전히 배제하는 이른바 '교조적 성리학'이지요.
양자의 국가 경영 방략 성격을 비교해봅니다.
⑴ 혁명파 사대부: 정도전·남 은
성격: 주자학을 기본으로 하되 주례 이념 즉 국가 우선주의 이념을 수용하고 공개념을 강화하며 왕도와 패도가 공존한다. 즉 이념과 현실적 수단이 공존한다. 한·당 유학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표방함.
⑵ 온건파 사대부: 이 색·길 재·정몽주
성격: 주자학을 정통으로 간주(리(理)에 치중), 사대부 계층의 역할 강조, 춘추 표방(왕도정치 지향, 즉 이념우선주의) ⇒ 길 재→ 김숙자 → 김종직(사림파)으로 연결.
출처: 이순권,『희소전공역사』, p. 271.
저는 혁명파 사대부에 대해 모화주의자라고 평가해 본 적은 없습니다. ⑴에 속하는 부류는 모화주의와는 분명하게 구별을 두고 있고 이 부류에 의해 선구자님 말씀대로 요동정벌을 준비하거나 최소한 사대관계는 긍정할지언정 모화로는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사림파 득세 이후의 성리학은 어떠했고 또 율곡의 학문을 이었다고 하면서 골수 성리학자를 자처했던 송익필 같은 사람들은 어떠했던가요?
"송시열이 만동묘를 건립할 정도로 사대모화주의자인것은 사실이고 당시 성리학적 교조분위기가 만연한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이 두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놓고 해석한다는 것은 문제가 분명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려는 핵심내용은 사대모화주의와 성리학적 교조주의는 분명 다른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선구자님 주장)
송시열은 기본적으로 '사림파'의 '정통'을 이었다고 자부하는 '모화주의자'입니다.
사림파 자체가 이미 '주자의 성리학'을 기본으로 했는데 송시열은 거기에서 더 들어가 '주자 자체'에 매몰된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주장하려는 핵심내용은 '적어도 개항 이전까지 만큼은 사대주의는 몰라도 모화주의와 성리학적 교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담헌 홍대용과 같은 실학자가 '반론'을 폈을리 없었겠지요.
저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를 일단 제시했습니다.
답변을 기다립니다.
역사문의 김 모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