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이 놀던 곳이라 해서 선유동(仙遊洞)이라 이름 붙은 계곡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잔설과 얼음 아래흐르는 물소리와 산신령들이 숨어 있는 바위들이 있습니다. 여름날 번잡함 대신에 인적 드문 호젓함과 겨울 낭만을 만났습니다.
계곡 입구에는 100년 먹은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낙락장송들입니다. 그 장송들 앞줄을 가만히 보면 소나무 두 그루가 허리춤에서 가지를 맞대고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처럼, 날 때 둘이었으나 훗날 서로 가지를 붙이며 '하나'가 되어 살게 된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연인과 다툰 분, 함께 손잡고 선유동으로 오십시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송면을 돌아다니는 여행입니다. 자, 아래 동영상을 미리 감상하십시오. 오늘 만나게 될 연리지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진들은 마우스를 클릭하면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 이 땅에서 맺은 인연, 하늘까지 가져간 연리지.
겨울과 나, 그리고 선유동
선유동은 청천면에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증평IC를 빠져나와, 괴산을 거쳐 그 이름도 유명한 속리산 화양계곡 가는 길에 있습니다. 화양계곡은 소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요. 우람하고 남성미 넘치는 화양동 덕택에 작고 예쁜 선유동 계곡은 아직 발길이 드뭅니다. 지금 선유동 겨울은 매섭기 짝이 없습니다.
▲ 선유동 계곡. 옛 사람이 바위에 남긴 낙서를 보세요.
계곡물은 꽁꽁 얼어붙어 발을 굴러도 깨지지 않습니다. 아주 느리게 걸어서 40분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짧은 계곡인데, 겨울이 어디 숨었나 했더니 몽땅 거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바위에도, 얼음에도, 팍팍한 산책길에도. 푸른 색 남아 있는 상록수들과 앙상한 나목들이 푸른 하늘과 새하얀 얼음 사이를 채워놓고 있습니다. 봄! 봄도 있답니다.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계곡 위 산책로에서도 시끄럽게 들릴 정도입니다. 겨울 속에 그렇게 봄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답니다. 계곡에는 선녀도 없고, 사람도 드물어 오직 함께 간 동행과 즐길 겨울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겨울 아래 흐르고 있는 봄을 보세요!
우리의 인연은 영원히 - 연리지(連理枝)
겨울과 작별하고 선유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리지를 만났습니다. 선유동 송면쪽 입구에 있는 음식점 겸 펜션 뒷산입니다. 음식점 이름은? 당연히 '연리지가든'이고요.
▲ 두 나무는 손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아니,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연리지, 아시지요? 연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한 몸이 된 두 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두 사람의 팔이 서로결합한 후 함께 사는 셈입니다. 하나하나의 생명을 소우주(小宇宙)라고 한다면, 두 개의 우주가 서로 연결돼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치(理)'가 연결됐다고 연리지(連理枝)라고 합니다. 단순한 생물학적 결합이 아닌 거대한 이치의 합일입니다.
그래서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송면 연리지 밑동에 세운 표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수종 및 본수:소나무 1본'. 한 그루라는 말입니다. 나이는 100살이고, 높이는 15미터, 둘레는 1.6미터입니다. 생물학적, 화학적, 나아가 정신적으로 결합해 있는 두 나무를 우리네들은 하나로 보는 거지요. 정말 진짜로 하나일까요? 네, 맞습니다.
밤이면 함께 달빛과 별빛을 받고, 낮이면 함께 태양을 맞으며 아침을 보냈습니다. 머리 위로 흐르는 구름도 함께 즐겼고, 눈과 비도 함께 즐겼답니다. 그렇게 100년을 함께 살아온 두 나무는 슬프게도 지난해에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시름시름 함께 껍질과 솔잎을 떨구며 병을 앓더니 마침내 한날 한시에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한날 한시에 하늘로 함께 여행을 떠난 거지요. 보호수 지정도 해제되어 버렸고, 지금은 권위를 잃은 표석과 철제 울타리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 연리지를 찾는 이들이 더 많답니다. 함께 자라나 함께 살다가 끝내 함께 하늘로 날아간 뭉클한 감동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생명이 떠난 그들을 끝없이 찾아옵니다.
▲ 한날 한시에 하늘로 여행을 떠난 연리지.
폭포수 옆 또 다른 연리지, 용추계곡
괴산에는 연리지가 두 그루 더 있습니다. 그 중에 용추계곡에 있는 연리지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얼어붙은 물줄기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용추폭포와 폭포를 내려다보며 꿈을 꾸고 있는 연리지.
용추계곡은 괴산에서 송면으로오는 길목, 사기막골에 있습니다.
▲ 몸통이 맞붙어서 하나로 자라난 용추 연리지.
용추계곡에 있는 연리지는 정확하게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합니다. 가지가 맞붙은 게아니라 몸통이 붙은 거지요. 가깝게 있는 나무들끼리, 비바람 혹은 산사태로 상처 난 몸통이 접촉되면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연리지에 비해 확률은 더높다고 하나 애초의 한 그루가 병이 나면 하나가 된 나무 전체가 병에 걸리니, 한 몸이라는 눈으로 보면 똑같이 애틋합니다.
▲ 두 나무가 한 그루처럼 살고 있습니다.
용추골로 가는 길에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 이리 대답했습니다. "사진만 찍지 마시고, 나무님한테 기도 많이 해야 소원 들어주는 거예요." 많이는 아니었지만, 나무님께 기도했습니다. 인간들 손길로부터 보호하려는 고육책이겠지만, 철책에 갇혀 있는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탈 아래에 있는 용추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흘러내리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폭포수, 크지는 않지만 그 빙폭(氷瀑)의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들리시나요? 냉정한 미학, 겨울에 뒤덮인 폭포가 봄 노래를 합니다. 계곡은 겨울로 뒤덮였는데, 정작 청각은 봄에 미혹돼 있습니다. 연리목의 낭만과 봄의 희망을 용추계곡에서 욕심쟁이처럼 맛보고 돌아왔습니다.
승천하는 나무, 왕소나무
이런 나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 장으로 이 나무님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아래에 한꺼번에 여러 장을 보여드립니다.
송면 연리지에서 용추폭포 반대편, 그러니까 화양계곡쪽으로 간 후 T자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을 하세요. 5킬로미터 정도 가면 오른편에 '옥량폭포' 간판이 나옵니다. 간판을 보면서 길 건너 마을 안쪽 시멘트포장길로 들어가면 나옵니다. 행정구역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입니다.
다리를 건너고, 오른쪽 언덕 위에 소나무 숲이 보입니다. 마을 안으로 가서 길 따라 차를 몰면 솔숲 앞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리 건너 바로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셔도 좋습니다.
논두렁을 걸어서 언덕을 올랐을 때, 숲이 아니라 소나무 한 그루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주위에 다른 소나무들이 있긴 했지만, 아까 봤던 솔숲의 외형은 왕소나무가 전부였다니까요.
키가 12.5미터에 둘레가 4.7미터. 크기도 크기지만, 밑동부터 잔가지까지 온몸을 쥐어짜듯 비틀며 하늘을 향한 모습이 정말 장관입니다. 나무 속에 신령님이 살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신목(神木)임을 알리는 당줄이 밑동에 둘러쳐 있습니다.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송(龍松)이라고도 합니다. 천연기념물 290호. 이런 나무가 이곳에 원래 세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삼송리입니다. 나이는 600살 정도로 짐작되고요. 그 웅자(雄姿)에 저는 말문이 막혀서 한참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답니다.
느티나무가 많은 고장이라고 해서 괴산(槐山)입니다. 성황당 신목은 대개 느티나무였고, 오래오래 산 느티나무는 굉장히 큽니다. 괴산에는 느티나무도 많고, 노거수(老巨樹)도 많습니다. 이 겨울, 누군가가 그리운 분은 괴산으로 가보시면 어떨까요.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그립다 그립다 못해 함께 하늘로 가버린 연리지가 있습니다. 폭포 소리 들으며 꿈을 꾸는 연리목이 있고,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왕소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따라 걷고 온 여행, 여기서 맺습니다.
첫댓글連理枝 는 오랜세월을 이웃하다가 가지가 하나되는 현상이요, 連理木은 몸통이 하나되는 현상인데 주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이 연리지 연리목을 인용하지요? 연리목은 '부부는 일심동체'를,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현대인의 사랑은 '연리지'로 인용하곤합니다. 여기서 요즘은 일심동체 는 낡은 생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
첫댓글 連理枝 는 오랜세월을 이웃하다가 가지가 하나되는 현상이요, 連理木은 몸통이 하나되는 현상인데 주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이 연리지 연리목을 인용하지요? 연리목은 '부부는 일심동체'를,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현대인의 사랑은 '연리지'로 인용하곤합니다. 여기서 요즘은 일심동체 는 낡은 생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