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 전쟁 7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기념일이기 보다는 기억하자는 의미가 있는 날이지요. 이 날이 전쟁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 되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아침 7시에 선배가 단톡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학교에서 제 아비 때처럼 아들 때에 똑같이 ‘6.25 반공’ 포스터를 그려오라고 숙제를 냈다. 삼십년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이 없다니 ‘반공’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보물 가득 든 창고의 녹슬지 않는 특수 강철로 된 자물쇠통과 같은 것인가 보다. 어쨌든 아들은 아버지의 지도 없이도 포스터를 그렸다. 탱크도 그리고 철조망도 그리고, 괴뢰군도 그리고 국군도 그렸다. 출연하는 것은 제 아비 때와 같았으나 믿거나 말거나 괴뢰군과 국군이 푸른 하늘 한 가운데서 서로 반갑게 껴안고 있었다. 그러니까 단번에 탱크도 철조망도 장남감이 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천구백 팔십구년 육이오를 맞아서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오른손을 번쩍 들어주었을 뿐이었다.(나해철/내 아들의 6.25 반공포스터)
저는 그동안 내가 사는 우리나라에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남들이 전쟁이 날까봐 걱정해도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땅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두 주쯤 지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사람들이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이 1년 반이나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발달된 무기들로 순식간에 어디나 전쟁터로 만들 수 있습니다. 비행기와 대포가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 같은 전쟁은 이제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군인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고 다칩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과 노인들이 많이 다치고 생명을 잃습니다. 피해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도 피해를 입습니다. 숲이 불타고, 그곳에 의지해 살던 식물 동물이 모두 다치고 죽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할 식량이 줄어든다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자다가 새벽녘에 잠이 깨었습니다. 잠자리에서 뭉기적거리다 일어나 베란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아파트 15층. 많은 것들이 내려다보입니다.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공원의 푸르른 숲, 건너편 우체국, 아파트 틈새로 보이는 바다, 소래포구로 들어가는 고기잡이 배, 지나다니는 차들, 다 셀 수 없습니다. 위로는 하늘과 그 하늘을 따라 올라간 고층 아파트들이 보입니다.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평화로운 모든 것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전쟁이 난다면?’ 하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별로 오래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소름이 좍 돋았습니다. 어디로 피할 것인가? 피할 곳이 없습니다. 다리가 편하지 않은 내가 15층에서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엘리베이터? 무용지물입니다. 전기가 있어야 움직일텐데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끊기는 것이 전기일 것입니다. 전기가 끊기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마실 물도 없습니다. 수돗물도 전기가 있어야 내 집까지 옵니다.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모든 것이 마비됩니다.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 자세하게 생각할 수도,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있습니다. 오천백육십만명 총인구의 50%가 조금 넘는 이천육백만명이 경기 서울 인천에 모여 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옴치고 뛸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지역은 그럼 괜찮을까요? 대동소이. 전쟁은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근자에 저는 우리나라가 전쟁무기를 수출하는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발달된 기술력으로 전투기와 탱크를 만들어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땅에도 군사무기가 많겠지요. 그것이 우리를 보호하는 장비가 되기도 하겠지만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화약고가 될 확률이 큽니다.
그러한 이 때, 우리가 군사력이 세고, 미국과 일본이 우리를 돌보아 주고 있으니 이 기회에 북한과 전쟁하자고, 핵전쟁도 불사하자고 하는 말들이 돌아다닙니다. 전쟁은 어디서 일어나나요? 미국 땅에서? 일본 땅에서?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전쟁터가 됩니다. 어리석은 생각은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이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이 땅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평화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면 ‘샬롬’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평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가운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뭄과 기아를 기화로 이집트 땅으로 이주했던 그들은 그곳에서 사백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모세를 앞세워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이끌어 낸 출애굽 사건을 시작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수많은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도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부족들과 전쟁해야 했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 뿐인가요? 동족끼리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뉘어 싸웠고, 나라가 갈라진 이후에는 앗시리아, 페르시아 로마 등 신흥 강대국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국가 없는 민족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평화를 원했고, 그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무엇이었을까요?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사65:17)”
이사야서 기자는 평화는 지금까지 있던 것과는 다른, “새 하늘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백성 또한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세계 속에서 기쁘게 행복을 누리는 이들로 창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들 속에서는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하늘 새 땅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 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이사야 65:20-22).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지은 집에서 자신이 살고, 자기가 지은 농사를 자신들이 먹는 것,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리는 것. 즉 일상에서 평화는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일상의 평화를 누리려면 전쟁은 지구상 어디서도 일어나는 안됩니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전쟁의 기운이 뻗쳐오는 불안 가운데서 살면서 우리는 이 더운 여름을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옵소서, 우리를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하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