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 Special]
마당 깊은 집 건축가 조병수의 양평 ‘ㅁ’자 집과 땅집
조병수 소장의 양평 집 두 채는 마당을 위한 곳이다. ‘ㅁ’자 집은 작은 연못을, 땅집은 소담한 흙으로 다진 땅을 바라보고 앉았다. 마당은 또다시 자연을 향한다. 마당 깊은 집엔 자연이 있고, 내가 있다.
1 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지붕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 위에서 바라본 ‘ㅁ’자 집의 내부. 2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단층 건물인 ‘ㅁ’자 집은 여느 별장의 아담한 외형과는 다른 모습이다. 3 ‘ㅁ’자 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통로다. 통로는 곧 공간이며, 순환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4 통창은 집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다. 작은 ‘ㅁ’자 형태의 마당엔 맑은 지하수로 채운 연못이 자리한다. 5 조병수 소장의 작업 테이블 뒤에서 본 외부 모습. 사각 프레임을 통해 보이는 자연은 또 하나의 풍경을 창조한다.
건축가이자 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인 조병수의 ‘ㅁ’자 집은 공간 그대로가 체험되는 곳이다. 집의 어느 곳에 있든지 시선의 연장이 계속된다. 벽에 기대어 놓은 의자에 앉아 나무 기둥을 바라보고, 나무 기둥 뒤의 연못을 바라보고, 연못 뒤 유리창으로 비치는 벽을 바라보는 식이다. 한 걸음 앞에서 바라보는 장면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 집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암갈색 나무 기둥은 불규칙적 시선과 동선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한다. 아주 짧은 거리도 굽이굽이 돌아가게 만드니 흥미롭다. 실제 한옥의 대들보를 옮겨온 기둥 앞에 서면 세월의 흔적이 말을 건네오는 듯하다. 정사각형 모양의 건축물 가운데로 또 다른 정사각형의 뚫린 공간을 만든 이 집은 단절하거나 구속함이 없다. 집 안으로 좁혀 들어가기보다는 집 밖의 자연으로 확장하는 쪽에 가깝다. 문과 창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중앙 정원을 제외하면 집의 내부는 주연이 아닌 조연의 역할을 할 뿐이다. 건축가 조병수는 양평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필요 이상의 요소들을 채우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가구라고 해봤자 작업 용도로 쓰이는 테이블 세트, 의자 두 개, 나지막한 티 테이블 하나 정도다. 사람 몇몇이 공간을 채워도 ‘ㅁ’자 집은 비어 있는 공간과 같은 느낌을 준다. 형태는 반듯한 미음(ㅁ)자지만 위아래로 뻗은 수직적 형태가 강조돼서다. 집 안의 유일한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따로 문을 달지 않았다. 단절이 없으니 그 높이는 실제보다 더 높게 인지된다. 앞서 말했던 나무 기둥 또한 그러하다. 보통 천장을 지지하는 기둥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게 마련이지만 ‘ㅁ’자 집의 기둥들은 그렇지 않다. 어떠한 규칙 없이 툭툭 세워진 모양새로 이 역시 세로의 높이를 강조한다. 의자 옆에 세워진 스탠드와 벽 모퉁이에 설치된 형광 조명 역시 수직으로 일관되는 요소다. 그럼에도 이 공간에선 물리적 요소들이 주는 긴장감을 읽을 수 없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다. 실제 조병수 소장은 이 집을 건축할 때 부지에서 나는 흙만을 사용했다. 다른 지역에서 난 흙은 전혀 섞지 않았다. ‘ㅁ’자 집은 본래 자연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사람 인(人) 변에 나무 목(木)자가 붙은 ‘休’의 개념을 충실히 따른 세컨드 홈인 셈이다.
1 ‘ㅁ’자 집의 특징이라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나무의 결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왼쪽에 보이는 것은 책장으로 쓰는 뒤주. 달항아리의 매끈함은 거친 나무의 질감을 중화시킨다. 2 통창과 바닥으로 비친 실재하지 않는 풍경도 ‘ㅁ’자 집에선 진짜 풍경이 된다. 3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인은 조병수 소장에게 늘 건축의 영감을 준다. 4 조병수 소장은 틈만 나면 스케치를 한다. 자연의 경험을 그림으로 옮기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바람이 불고 해가 난다. ‘ㅁ’자 집의 휴식이란 그게 전부다. 조병수 소장은 ‘ㅁ’자 집에서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축적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한 곳이다. 시간과 계절도 물론이지만 날씨의 변화가 가장 민감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면 집 안으로 비가 떨어지는 셈이 되는데, 해와 달이 지나갈 때도 ‘ㅁ’자 프레임으로 그 순간을 인지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ㅁ’자 집은 형태적으로 멋진 공간이 아니다. 언덕 중턱에 버티고 선 것 같은 건물의 외형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두 개의 철문을 닫아놓으면 언뜻 지역 주민들의 창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은 이렇게 묵묵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양달과 응달, 비와 바람이 시간과 계절을 거치며 수만 가지의 표정을 만든다. 집은 그 표정들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다. 푸른빛을 머금은 풀과 나무들의 소박한 풍경들이 문지방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시간을 쫓아보내던 서울과 달리 시간을 옆에 두고 앉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병수 소장도 그렇다.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사무실의 어수선함과 번잡함을 떠나오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여유가 생긴다. 언덕 뒤로 난 숲길을 따라 걸으며 소박한 마을과 저수지의 풍경을 담아오기도 한다. 조병수 소장은 양평 집의 안과 밖에서 자연을 끼고 걷는 일을 반복한다. 집 안 곳곳에선 그가 여기저기서 모은 자연의 오브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놋쇠로 만든 뚜껑과 기왓장, 만질만질한 표면의 돌 몇 개와 엮어놓은 나뭇가지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아주 정교하게 자연의 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오후 2시. 먹구름이 걷혔다. 연못 물이 태양을 머금으며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 수초와 돌 사이로 움직이는 손가락만 한 미꾸라지들은 잔잔한 연못에 물결을 만든다. 몇 년 전 조병수 소장이 연못에 풀어놓았던 이들이 번식을 거듭해 이젠 3세대가 됐단다. 겨우내 깡깡 얼었던 연못 물이 봄볕에 녹아내리는 순간처럼, 양평 ‘ㅁ’자 집은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곳이다.
위치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 대지 면적 877m² 건축 면적 191.14m² 건축 연도 200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