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눈물밥
박 용 수
“요즘 사람은 생각 없이 사는 갑서야, 빈 병이고 깡통이며 비닐봉지까지 길 가상에 아무렇게나 버려야 쓰것냐.”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도로 쓰레기 줍기 청소를 하신 모양이다.
“그래도 존 사람이 간혹 있어야. 쉬었다가 허라고 오늘도 빵과 우유를 주고 가드라, 말도 얼마나 이쁘고 다정하게 하는지, 인자 얼굴도 알아 보것어야.”
툇마루에 겨우 걸터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어머니 눈빛이 애잔하다. 나는 안다. 빵과 우유를 가지고 온 곳은 요양원일 거다. 낯을 익히고 친해질 필요가 있었을 게다. 이미 어머니 앞으로 요양원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요양원도 많이 생겨 경쟁이라더니 수긍이 갔다. 예전에 몇 번, 친구 어머니를 빌러 요양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어머닌 펄쩍 뛰면서 그곳에 갈 바엔 혀를 깨무시겠단다. 요양원은 당신에게 그런 곳이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속삭이신다.
‘이렇게 밥 잘 먹다가, 어느 날 잠자듯이 가고 싶다고….’
불과 며칠 전이었다. 장모님 면회차 담양의 한 요양원에 들어설 때였다. 입구부터 요란했다. 어느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우리 집에 데려다 달라고, 우리 큰아들 오라고, 이건 내 휠체어가 아니라니까.”
“여보시오, 혼자 사는 곳 아니니 좀 조용히 하세요”
쭉 지켜보던 한 할머니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 나섰다.
“뭐야, 네까짓 년이 뭐라는 거야, 내 큰아들 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노인들아”
할머니는 아들만 불러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아마 그 아들도 요양원 건너편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요양원 입소, 바라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종착역이다. 간혹 몇은 스스로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신다. 더구나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손을 뿌리치는 배신은 여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발악도 하고 발작도 해본다.
요양원, 불씨가 시나브로 꺼져가는 곳, 치매라는 내면의 적과 싸워야 하는 혼돈의 장소, 정신이 들면 오히려 고통이 커지는 스스로 소멸을 직시해야 하는 고독한 곳.
저 신입, 노인도 얼마간, 고향 집 뒷마당에 핀 꽃, 부엌에서 딸그락 소리, 현관문 열리는 환청으로 시달리겠지만 조만간 이곳 생활이 익숙해져야 한다. 죽음을 거부하는 몸짓이 아니라 생을 거부하는 것을, 생을 수용하기보다 죽음을 수용하는 법을
세상 마지막 휴게소에 도달한 그 끝에서 자기 눈물로 말아진 밥, ‘눈물밥’에 수저를 들어야 하는 곳이다.
애당초 창에 등을 대고 안으로 단단히 잠근 노인들이다. 간혹 창문을 통해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은 그나마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다. 그들도 머잖아 창에 등을 돌리고 애써 망각 속으로 자기를 가둘 것이다.
중앙치매센터 2023년 통계에 의하면 그해 65세 노인 인구는 950만 명으로 추정치 치매 노인은 100만 명이다. 30년에는 140만 명, 40년은 230만, 50년에는 315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우리는 그 누구도 늙음이라는 파도를 피해 갈 수 없다. 이미 나도 그 틈에 끼어 부지런히 걷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가한 가장 가혹한 형벌은 아마 죽음이 아니라 자기의 늙어가는 모습을 직시하며 고통을 느끼는 일일 거다.
노년은 비움과 버림의 시기라기보다 버려지고 버림받는 시기다. 게다가 타인에 의해 강요될 때는 그 고통은 견디기 힘들어진다. 헛간에 걸린 녹슨 호미나 처마 밑에 걸린 삐쩍 마른 명태처럼 노인들의 삶이 힘겹게 흔들리고 있다. 그 곁에 요양원이 있다.
마지막을 수용할 수 있도록 눈물밥 대신 활짝 웃으며 갈 수 있도록 미소 가득한 정성 한 그릇 짓고 싶다.
박용수
전남일보 신춘문예 아버지의 배코 등단. 광주문학상. 광주예술문화상. 광주문학 올해의 작품상. 화순문학상 수상. 수필집 :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 현) 광주동신여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