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창작 연구 스크랩 문학의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구중서/유심 7월호 권두논단
은하수 추천 0 조회 19 13.11.19 14:0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3.11.19 14:06

    첫댓글 근래에 한국 시단이 난해시로 범람하고 있다. 일찍이 T.S.엘리엇이 난해시에 관해 말했다. "이해될 수 없는 진실은 없다" 고. 그렇다면 무모하게 난해시를 남발하는 시인들은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시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대 현실의 변화를 맞이해 일정한 역사의식도 상실했고, 인간정신의 끝없는 내면적 깊이와 인간성의 무진장한 표정도 신뢰하지 못하며 머리로 꾸며서 쓰는 시들이 너무 많다. 것은 시인들 서로가 바라보기에도 겸연쩍고 민망한 낭패의 계절이다. 이것은 지난 세기말의 퇴폐 사조뿐 아니라 1930년대 모더니즘 2천 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누적된 용도 폐기의 상태이다.

  • 작성자 13.11.19 14:06

    혼미해 진로를 알 수 없을 때 돌파구는 어떠한 것인가. "변화무쌍한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것" 이것이 바로 돌파구다. "아름다움의 보편적 형상은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 의해 공감되고 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예술은 그것이 자연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도덕성의 상징이다." 이 대목의 미학은 변하지 않고 있으면서 동시에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로를 잃고 방황할 때에도 이 고전적 미학을 실천하며 활기 있게 창작의 임한 이들도 없지 않다. 시집 <악의 꽃> 때문에 퇴폐분자처럼 여겨지기도 한 보들레르의 경우는 실상 낭만적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리얼리즘 소설가 위고와 발자크의 친구였다.

  • 작성자 13.11.19 14:09

    구소련의 미학자 바흐친은 스탈린 치하에서 5년간 시베리아 변방에 유배를 당했다. 바흐친은 굴하지 않는 민중언어의 주요 요소가 '익살' 이라고 보았다. 미완의 운명에 대응하는 인간성의 잉여와 역동성을 그는 신뢰했다. 고갈되지 않은 인간성의 잉여가 있으면 문학을 할 수 있다. 이념과 정치적 계파와 사회운동의 조직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쓸 수 있다.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답다." 키츠의 시를 증명할 수 있다.

  • 작성자 13.11.19 14:12

    십수 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기없이 /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 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는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죄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작성자 13.11.19 14:13

    예술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과정 자체가 자생적이며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이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쾌락지상주의가 될 수는 없고 도덕성의 상징이라는 영예도 지닌다. 그러면서 미학은 관념이 아니고 역사적 현실의 구체성을 지니는 인간의 삶에 생동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현실의 구체성에서 뿌리뽑히지 않은 인간의 삷이 창조하는 문학, 여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의 세게가 있을 것이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