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제11호)/최종덕목사
창골산칼럼제11호
아침에 보내드리는 동산의 소리
이 칼럼은 회원 여러분이 참여하여 만들어 갑니다

글 / 최종덕목사(창골산 봉서방 운영자)
용서의 조건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은 당사자에게서 찾는 용서의 조건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용서의 횟수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던 것처럼 용서의 많은 조건들 가운데 중요한 이슈가 몇 번째냐는 횟수의 문제입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줄까요?“
우리말에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용서의 횟수는 베드로에게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제시한 일곱 번의 용서가 아니라 횟수와 범위에 상관없는 무한대의 용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인간의 감정이나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씀 같지만, 빚진 자의 비유를 이어가시는 말씀에서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지요.
자신의 소유는 물론하고 제 몸과 가족들을 다 팔아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빚을 진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몸값이 한 달란트였던 시대에 일만 달란트의 빚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분량입니다.
임금 혹은 주인이라고 소개된 채주는 그 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모든 빚을 한꺼번에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에서 오직 주인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빚에서 자유하게 된 사람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비유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사하신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인에게서 엄청난 은혜를 입은 이 사람이 자신에게 빚을 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빌려준 백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백일동안 일하면 벌 수 있고 친구의 애원대로 조금만 기다리면 얼마든지 돌려받을 수 있는 분량이었지요.
친구의 목을 조르고 옥에 가두는 그의 악한 마음은 결국 주인의 분노를 샀고 그는 악한 종이라는 멍에와 함께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갇혔습니다.
갚을 수 없는 만큼의 빚이기에 옥에 갇힌 그는 무기수였고 이는 해결하지 못한 죄를 가진 자가 장차 받게 될 영원한 형벌에 대한 가르침이셨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행함이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였던 야고보는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그리스도 십자가로 나타났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죄가 해결되는 우리입니다.
주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용서는 내 감정이나 기준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나의 주인이신 주께서 하시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흐르는곡 /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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