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교통네트워크 논평]
구로역 사망 노동자에 대한 애도는
구체적인 재발방지에서 시작한다
여전히 말 뿐인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를 규탄한다
지난 8월 9일 새벽 2시 21분 구로역에서 작업중이던 철도 노동자들이 죽고 다쳤다. 보도를 종합하면, 구로역 선로 횡단 구조물(전철역사) 9번 선로 위쪽 전기 시설물을 고치기 위해 펼쳐져 있던 전기 모터카의 고소작업대가 인접한 상1선으로 올라오던 고속선 선로검측차와 격돌했다. 작업대 위에서 작업중이던 노동자들은 죽거나 다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네트워크는 산업 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또한 중상을 입은 노동자들의 쾌유를 바란다. 노동자의 사망과 부상이 발생한 지 4일이 지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나 한국철도공사는 여전히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다. 양 기관의 관련 보도자료는 지난 9일 자의 유감을 표하는 입장문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반복적인 교통현장에서의 사건들에 대해 책임있는 기관들이 시간을 보내며 잊혀지기를 바라는 행태를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담아 입장을 밝힌다.
1.
사건의 재발 방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원인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사고라기보다는 그동안 운이 좋아 벌어지지 않았던 ‘지연된 살해’로 보는 것이 타당한다. <사고는 없다>라는 책을 쓴 제시 싱어는 ‘사고’라는 말이 책임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용어라며 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네트워크는 이와 같은 진단에 동의하며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에 다음과 같은 점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첫째, 먼저 노동자의 죽음과 부상의 책임은 시스템과 이를 관리하는 철도공사 및 국토부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철도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규모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다. 해당 사건과 같은 작업은 실제로 다른 열차를 차단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전기 모터카는 해당 전철 선로 일대를, 고속선 선로검측차는 고속철도 및 일반철도가 이용하는 인근 선로를 잠시 차단하고 점검 또는 보수하기로 정기 작업조정회의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해당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결정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접선 노동자 사이에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이렇게 위험 속으로 노동자들을 몰아간 시스템의 구멍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
둘째, 또한 구로역 해당 개소 자체가 가진 취약점도 명확하다. 선로검측차가 달린 상1선은 구로역 진입 직전 곡선을 통과하므로 구로역 작업자들이 열차를 빠르게 발견하기 어렵다. 더불어 경인선과 경부선이 합류하는 지점이므로 선로의 구조가 복잡하고, 여러 부서가 관련되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취약 지점의 차단 작업을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연계 선로의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 필요한 위치라는 말이다. 구로역의 구조를 바꾸긴 어려운 만큼, 복합적 판단을 고도화시켜 대응할 수밖에는 없다. 이 판단을 마비시킨 원인이 무엇인지 또한 조사를 통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철도 현장은 인력의 양적,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는 상태다. 최근 10년간 철도영업거리는 600km, 16% 이상 늘었지만 인력 규모는 단 2%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무리한 정원 감축으로 인해 인력이 오히려 줄었다가 그나마 늘어난 것이다. 2024년에도 새 철도 노선이 300km 이상 개통됨에도 정원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으로도 2009년 이후 수년간 채용이 거의 없다가 2018년 이후에나 채용이 대거 이뤄져, 현장 지식과 숙련을 전달할 허리 또한 부실한 조직이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본선 차단 작업을 관리, 조율해야 할 관제의 경우 현장과 점차 단절된 조직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안전을 관리할 철도공사와 현장의 역량이 점차 형해화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는 이를 방지하기는커녕 조장해 왔다.
3.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가 사후 대책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이미 언론들은 기존 2인 근무제가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나섰다. 복수의 안전점검 인원을 두는 이유는 개별 인원들이 별도의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이 작업을 할 동안 다른 한 명이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철도공사의 인력운영은 이런 안전 조치에 부적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비단 철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 지하철의 경우에도 문제가 심각하고 우이경전철과 같은 민자경전철로 가면 아예 정비 등의 업무를 위탁으로 외주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미 철도와 지하철 현장 곳곳에서는 제2, 제3의 구로역 사망사건이 예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사고’라는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는 노동자를 일터에서 죽도록 만든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의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말 뿐인 대책이 아니라 노동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실시해야 한다. 사고가 일어난 수도권 전철 뿐만 아니라 차제에 동일한 정비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전국의 도시철도와 경전철 등을 전수조사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제도 역시 개정되어야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사고’라는 말 뒤에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가 숨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다. 다시 한번 명을 달리한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2024년 8월 13일
공공교통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