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47년간 임학을 공부하고 강의한 이경준(李景俊)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6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정희기념사업회(회장 김정렴) 초청 특강에서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 성공이 불멸(不滅)의 업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도벌을 5대 사회악으로 규정
박 대통령은 5.16이후 도벌(盜伐)을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 임산물 단속법, 산림법, 사방사업법을 제정하고 국토녹화 촉진을 위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어 산사태를 막았다.
또 1967년 산림청을 발족하고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연료림 조성 5개년 계획, 농어촌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밤나무단지 조성, 1971년 그린벨트제도 도입 등으로 산림을 보호했다. 이어 1973년에는 산림청을 농림부에서 내무부로 이관,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강력 추진했으며 74년에는 화전민 정리사업 5개년 계획으로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화전(火田) 역사를 종결시켰다.
박 대통령은 애림(愛林)사상을 바탕으로 76년 산림용 비료개발을 제안하고 77년 ‘육림의 날’을 제정했다. 또 1962년에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문화재와 유적지 주변 조경을 추진하고 국토건설 현장에도 나무를 심었다.
5.16 직후부터 70년대까지는 식량과 경제건설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에 따른 강력한 산림녹화 정책으로 환경파괴로 인한 국난을 극복하고 오늘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을 되살려 냈다.
UN 산하 FAO는 지난 82년 한국이 2차 대전 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라는 보고서를 냈으며, 미국 록펠러재단이 설립한 지구환경연구소 브라운 소장은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산림녹화가 세계의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조 이후 6.25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민둥산 세월
조선시대의 한반도 산림은 궁궐ㆍ사찰ㆍ군함용 목재와 사대부의 주택용 및 연료용 등으로 황폐했다. 20세기 초에는 한양 인구 40만명, 한반도 인구가 2천만 명으로 늘어나 도시와 마을주변 야산이 벌거숭이로 변했다.
국력이 쇠잔해진 조선조 말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중국과 조약으로 압록강 주변 벌채권으로 산림을 남발하고 러시아는 1896년 한로(韓露) 산림협약으로 두만강 유역 산림을 벌채해 갔다.
또 일본은 1910년 한반도 강점 후 14개 영림서(營林署)를 세워 압록강ㆍ두만강ㆍ백두산 잣나무와 잎갈나무 등 원시림을 벌채하여 만주 건설에 이용하고 경북 봉화와 울진지구에서도 대량 벌목하여 금강소나무를 일본으로 실어갔다.
그 뒤 8.15와 6.25는 행정 공백을 틈탄 남벌을 가져와 남한 산림면적의 절반 이상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이승만 정부는 식목일을 재정하고 1951년 산림보호 임시조치법, 1952년 단기 속성조림 3개년 계획, 1953년 사방사업 5개년 계획, 1954년 민유림조림 10개년 계획, 1958년 상류 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 10개년 계획, 1959년 연료림 조성 5개년 계획 등을 세웠지만 산림녹화에는 역부족이었다.
▲민둥산이 이렇게 바뀌었다. 대한민국과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에 대하여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1982년 FAO), “한국의 조림사업은 세계적인 자랑거리”(2008년 UNEP 사무총장),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 모델”(2008년 레스터 브라운 저서 〈플랜B 3.0〉) 등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성과의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 국가기록원
5.16 초기부터 아까시나무ㆍ포플러로 산림녹화…10.26까지
5.16정부는 혁명 직후 장경순 장군을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하여 사방과 식목을 독려하고 각종 산림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연료림 조성, 아궁이 개량, 산림조합 결성 등 치산녹화에 총력을 투입했다.
당시 사방사업이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초기에는 산림계 지도원들을 동원, 아까시나무를 심고 서울대 현신규 교수를 통해 이태리포플러를 도입, 속성수로 심었다.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은 포플러심기운동을 벌인 후 경제부총리가 됐다. 1970년까지 하천부지 등에 2,000만 그루의 포플러를 심어 목재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사용하여 ‘포플러 장학금’으로 불리었다.
박 대통령은 군 시절 후생사업이란 명목으로 군용 트럭을 민간업자에게 빌려주고 월동용 장작을 공급받는 행위를 보고 1군 참모장 시절에 송요찬 장군에게 건의하여 이를 근절시킨 적이 있었다.
1964년 지리산 도벌사건 현장을 직접 확인한 박 대통령은 즉각 3개도 합동조사반을 구성, ‘인간 송충이’들을 소탕하고 관련 공무원들은 처벌함으로써 도벌행위의 뿌리를 뽑았다. 또 박 대통령은 1967년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국립공원제도를 도입, 지리산, 한라산 등 13개의 국립공원을 지정했다.
그린벨트는 1938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하여 캐나다 오타와와 일본 동경 주변에 적용했지만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71년 도시계획법을 개정, 수도권에서부터 전국 대도시권 7곳과 중소도시권 7곳을 그린벨트로 지정, 철저하게 산림을 보존했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당진 KBS 중계탑 준공식에서 생애 마지막 기념식수를 끝으로 ‘10.26 국변’으로 서거했다.
박 대통령의 일생은 국가재건을 통한 조국근대화에 바쳤지만 5.16 혁명은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회복하려는 산림녹화와 치산치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평가된다. 박 대통령에게는 카리스마적 영도력, 통찰력, 기억력과 함께 일하는 관료들에 대한 배려, 근검절약 솔선, 소박한 농부의 심성을 갖춘 청렴성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린 영웅으로 기억된다.
47년간 나무와 함께 살아온 ‘산림박사’
이경준 명예교수는 서울대 농대,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플로리다대 박사과정을 거쳐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서울대 식물병원 초대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전국나무병원협회 초대회장, 자연유산보존협회 부회장, 임업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밀원수조림육성협회장, 한국포플러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2010년 〈박정희가 이룬 기적,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를 집필,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출간한 바 있다. ◎
첫댓글 사방사업 그때는 귀찬아서 커꾸로 심고 햇지요 ㅋㅋㅋ
앞서가는 정책이고 필요한 사업이였습니다
어릴적에 산림사방사업 많이 다녀봤어요 4,50년이 지난 지금은
산림땜에 산에도 못들어갈 정도로 너무 많이 우거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