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유명하고 대단한 디자이너에 대해 보았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영향을 후대에 남긴 것 일까??
먼저 샤넬.....
1883년 8월 1일 프랑스 소뮈르에서 출생한 샤넬을 본명은 가브리엘 샤녈로서, 별칭은 코코(Coco)로 코코샤넬로 불리었다. 1910년 파리에 여성 모자점을 열고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여성복 디자이너로 전향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모토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시작하여 코르셋 등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으며, 여성복에 저지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샤넬 슈트라고 불리는 카디건 스타일의 슈트를 발표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약 15년간 가게를 닫았으나 1954년 다시 문을 열었다. 장식이 생략된 옷의 본체에 브레드나 코드의 테두리를 붙이고, 당시에는 보기 드문 크고 작은 색유리나 크리스털 글라스의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유행의 변천 속에서도 별로 변함이 없이 오늘날에도 애용된고 있다. 또, 그녀가 만든 향수 ‘샤넬 No.5’도 유명하다.
샤넬은 시대를 앞서가는 대담성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현대적 의미의 의복을 창조했으며 여성의 개성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관습을 타파하고 자유와 활동성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어냈다. 통이 넓은 바지, 짧은 검정색 원피스 드레스, 긴 외투, 남성용 재킷 등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또한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제품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의상들은 하나의 스타일로 남아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샤넬의 특유의 클래식한 패션 세계을 확립했다.
한마디로 샤넬의 의상은 패션의 차원을 넘어선 현대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해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의복의 역사에 혁신을 일으킨 샤넬은 또한 액세서리와 보석을 디자인하여 패셔너블한 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는데 미국의 보그紙는 샤넬이 의상에서 액세서리까지 망라한 이 모든 작업을 "토탈 룩"이라고 표현했다. 이때부터 토탈 패션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샤넬의 패션의 패션을 정리 해보면......
1.샤넬의 모자
코코샤넬이 처음으로 빠리에 전문 샵을 열게된 종목은 모자였습니다.
당시에 귀족 부인들이 쓰던 모자는 꽃장식 달리고 아주아주 화려하면서 예쁜,
하지만 거추장스러워서 모자를 쓰고서는
도저히 활동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모자였습니다.
그런 모자만이 여자의 모자라고 여겨지던 때에
샤넬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여성의 활동성을 높여줄 수 있는 모자를 디자인해서 팔았습니다.
샤넬의 모자는 우선 편했고 디자인도 독특해서 여성들사이에서 많이 팔렸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샤넬의 디자인이 여성들에게 활동성을 부여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2.핸드백의 줄
샤넬은 최초로 핸드백에 줄을 단 디자이너입니다.
당시의 여성용 핸드백에는 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외출할때는 항상 핸드백을 들고다녀야했고
한쪽손은 핸드백에 얽매여야 했으므로 한쪽손만이 자유로웠습니다.
몰론 그에 따라서 활동성도 떨어지겠죠.
하지만 핸드백에 끈을 달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핸드백을 어깨에 맬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의 양손은 핸드백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여성의 활동성은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3.샤넬라인
대부분 샤넬라인에 대해 알고있을겁니다.
샤넬라인은 스커트의 무릎정도 길이를 말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한번 외출하려면 치렁치렁한 치마자락을 끌고 외출해야했습니다.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바닥을 쓸고 다니는 치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 치마는 여성들에게 짐이 되었습니다.(예쁘긴 했겠지만..^^;;;)
그리고 세계대전 후에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그에따라 여성들의 활동이 늘어나서
치마의 길이는 더 이상 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긴 치마를 무릎선으로 올린것이 샤넬이었습니다.
따라서 여성의 활동은 더 편해지게 되었고, 파격적인 샤넬의 치마선은
아직도 '샤넬라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4.그밖의 것...
샤넬은 자신의 디자인뿐만아니라 샤넬 자신의 행동도 상당히 진보적이었습니다.
지금 저희가 샤넬과 동시대에 살 수 없기에 그녀의 사진으로 짐작해보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나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등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파격적인 패션,행동등을 한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 담배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는데 여성이 담배를 피움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대등함'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코샤넬이라는 한 여성의 화려한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자체도
여성들의 각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샤넬은 남성못지않은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완벽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이런 프로의 모습 자체가 여성의 남성과의 대등함을 보여주는 요소였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델의 모자’라는 암호명으로 나치스첩보원으로 활동하였음이 사후 20년이 지난 1995년에 확인되어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디오르.......
1905년 노르망디 그랑빌에서 출생하였다. 건축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에콜 리브르 데 시앙스 폴리테크에서 수학하고 외교관을 지망했다. 1930년 공황 때 집안이 파산하여 한때 화랑을 열기도 했다. 1935년부터 생활의 방편으로 드레스와 모자의 크로키를 그리기 시작하여, 1938년 R.피게의 양장점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한때 디자인을 멀리했으나, 다시 피게의 양장점에 돌아와 뤼시앙 P.를롱 등을 전전하였다. 1947년 독립, 파리의 몽테뉴가(街)에 자신의 양장점을 열었으며, 긴 플레어 스커트를 채용, ‘뉴룩’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제1회 컬렉션에서 제1급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그의 롱스커트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튤립라인·H라인·A라인·Y라인·애로 라인 등을 발표하여 세계의 패션을 이끌었으며, 1956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57년 스핀들 라인을 발표한 후 사망하였는데, 그의 양장점은 마르크 보앙이 이어받았다.
크라스찬 디오르는 디오르 사후 많은 디자이너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피에르 가르뎅, 입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 프랑코 페레 그 이후 지금 디오르 하우스를 거느리고 있는 존 갈리아노까지......
47년 뉴룩
최신 유행 스타일이라는 뜻. 특히 1947년 봄에 크리스챤 디오르가 발표한 새로운 룩을 말한다. 살짝 들린 어깨선과 쏙 들어간 허리선의 재킷이 바로 그것. 세계 제2차대전으로 황폐화된 당시 프랑스에서는 여성들도 군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선보인 가냘픈 허리라인, 둥근 어깨선,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A라인 스타일 등은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뉴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53년 춘하 튤립 라인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 길이를 짧게 하여 발랄함을 추구하였다. 어깨는 둥그스름하고 가슴선을 크게 강조한 반면 웨이스트부터 아래는 가늘게 디자인하였다
53년 가을 에펠탑 라인
하이웨이스트에 포인트를 둔 이브닝드레스로 프린세스 라인이 아랫단으로 내려가면서 넓게 퍼지는 형태로 허리선에 절개선을 넣거나 허리선 아래에 주머니를 달아서 H자의 가로선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54년 봄 S 라인
뒤 중앙에 여유를 주어 웨이스트를 조이고 스커트는 체형을 따르게 한 실루엣으로 옆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형이 S자와 비슷하였다.
55년 봄 A 라인
작은 모자에 좁은 어깨, 약간 하이 웨이스트에 편평한 가슴, 주름스커트가 아래로 퍼져서 A자형 실루엣이 되는데 이러한 실루엣은 슈트, 원피스, 코트 등에 적용시킬 수 있었으므로 H라인보다 인기가 있었다.
55년 가을 Y 라인
스커트의 폭이 좁아졌고 어깨부터 가슴까지 흐르는 듯한 실루엣으로 앞중심선과 칼라의 윤곽선에서 Y라인을 형성하는 스타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씬하나 때로는 수직형으로 옷을 강조할 때도 있다.
56년 가을 마그넷 라인
U자형의 자석처럼 모자에서부터 어깨, 허리로 흘러내리는 선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는 실루엣으로 애로 라인이라고도 하였다.
57년 가을 스핀들 라인
방추형으로 옷 중앙을 부풀려 과장시키고 위아래는 좁게 한 모양이 특징이다
58년 사후 입셍로랑의 트라페즈 라인
트라페즈는 프랑스어로 사다리꼴이라는 뜻으로 어깨에서 스커트까지의 벌어짐이 사다리꼴과 같은 형태의 실루엣이었다. 이것은 색 드레스의 일종으로 스커트는 여유가 있는 형태였다. 색 드레스를 끝으로 라인 시대는 끝났다.
여기까지 디오르가 발표한 라인입니다.
많은 내용을 썼지만 이걸 가지고 내 나름대로의 정리를 해 보자면 샤넬과 디오르는 모두 다 여성성이라는 것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추구한 여성성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샤넬은 여성성이란 여성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더욱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고, 반면 디오르는 여성성을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이 모두는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모두 필요했던 것으로 그들로 인해 여성의 여성성을 더욱 발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