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시인과 나는 동향 선후배 사이다. 형은 48년생,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이시다.
나는 해남군 현산면, 형은 바로 이웃면인 화산면 출신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 때
형은 전남고등학교 교사였다. 1969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와 <시인>지로 등당한 시인이었다.
일찍 등단한 고향 선배 시인을 문명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십년 후쯤 등단한 나로서는 형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터였다. 나는 고향 해남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80년대 <남촌문학회>를
이끌고 있었기에 해남에서의 활동 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시절이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형
을 만나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신군부의 군화발이 청춘의 도시 광주를 짓밟을 때, 형은 광주에서 항쟁을 직접 온몸으로 겪
었다. 정의감,혹은 박애정신, 인간 본연의 성정, 그 바탕은 따뜻한 인간미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형의 성정은 늘 이런 풋풋한 시골풍의 인간미와 물질문명의 폐해인 인간정신의 황폐
화를 마음 아파하는 정신의 소유자로서 악에 물들지 않은 아름답고 청정한 세상을 꿈꾸는 시인
형이다. 이런 시인이 신군부의 만행을 그대로 지나칠리 만무하다. 형은 <전남매일>지에 온몸
으로 군부만행에 항거하는 광주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를 발표한다. 그리고 곧
붙잡혀 보안대에 끌려간다. 2개월 후 교단에서 쫒겨나야 했다. <전남매일>지는 폐간당했다.
83년, <남촌문학>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여러 행사를 치르면서 의욕을 부렸다. 그 무렵 형을
문학강좌에 초청하고자 승락까지 받아냈으나 , 후원하는 측에서 군부정권눈치보느라 곤란함을 표
시하여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형께 큰 빚을 진 셈이다. 몇 년 전 모교에서 <광고문학상 백일장>
시상식 문학강좌 때 형을 초청할 수 있어서 다소나마 조금은 빚을 갚은 셈이랄까.
그리고 김 완(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장), 아우 병원 개원식 때 형을 만났다. 형은 갑작이 내 호를
지어주겠노라 제안했다. 요모저모 궁리하더니 <해평>이라는 새 호를 선물하셨다.'넓은 바다 같
은 평화로움'의 의미가 풍기는 호다. 약간 달리 해석하면 자신과 이웃을 품어 평화로움으로 만들
라는 사명적 과제를 부여받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든 내가 이런 호를 받을 만한 위인인가 겸허
해질 필요가 있겠으나 호를 염두에 두고 노력한다면 얼마간 닮음꼴은 되어가지 않을까?
같은 문학의 길을 가는 우리는 다른 듯 닮았다. 욕망을 뒤섞고 순수가 말살되고 가식과 기만이
네온싸인처럼 유혹하는 도시에서 살아갈 위인들이 천상 아니다. 깨꽃 종소리를 듣는 일이 즐겁고,
참깨를 털고, 뒷산에서 딱정벌레를 만나면 두어시간 딱정벌레와 놀고, 냇가를 걷다가 물수제비를
뜨거나 소낙비를 맞은 채로 들길을 걸어가는 천상 시골그러움이 배인 풋풋한 성정의 위인임에 틀
림없을 것이다. 형을 만날 때마다 나는 둘 사이에 이런 동질감이 흐르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내 귀는 그래서 형의 내면의 숨소리를 향해 더욱 맑아지곤 한다.
김준태 형의 건승을 기원드리고 나이에 관계없이 늘 충만한 시의 기운으로 살아가시길 응원드리
고 싶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 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망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 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어 죽어 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 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산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 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난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그들은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Gwangju, Cross of Our Nation)」는 1980년 5월, 한반도의 남녘 도시 광주에서 공수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일어난 '5·18광주항쟁 / Gwangju Upring'을 최초로 형상화한 시로 동년 6월 2일자(전남매일 ; 2개월 후 군사파쇼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됨) 신문 1면에 일부 게재되었으나 이날 바로 삭제되지 않은 시 원문 전체가 외신을 타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지로 흘러나가 발표되었다.
첫댓글 2018년 6월 초 광주고등학교 교정 <이성부 시. 무등산 >시비 앞에서 김준태 시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