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여자
김호정
화장을 하는 일은 내 삶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마치 내 인생처럼 누군가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을 살듯 날마다 정성껏 화장을 한다. 그리고 내가 화장을 다 마칠 때까지는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도록 한다. 그 시간은 오직 나만의 사색의 시간이요, 바쁜 일상 속에서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잠시 동안 홀로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화장을 하면서 늘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화장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산다면 어떨까….
화장을 하는 시간에 대해 나는 언제나 성실하기를 원한다. 곱고 예쁘게 화장을 하려고 온갖 정성을 들이면서 문득문득 화장을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 수 있기를 다짐한다. 왜냐하면 화장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단지 얼굴만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또한 추스르고 가꾸고 다듬는 순간이며, 아름다운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든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 시간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뿐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기분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도 있고,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들이 생각나서 화를 면한 적도 있기다 . 아마도 찡그리고 화를 내면서 화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있다고 해도 그 화장은 그리 예쁘지 않을 것이다.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때의 심정이 어떤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매일 화장을 하는 사람은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아름답고 고운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피부 관리를 하고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피부를 더 오래도록 지속하며 사는 것은 아마도 그 순간순간 남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게 되는 한 몫이 있기도 할 것이다.
나는 화장을 하면서 나름대로 배우는 삶의 교훈이 있다.
-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
- 기초화장처럼 기본에 충실하기
- 피부 관리를 하듯 자신을 사랑하기
- 거울 속의 나를 보듯 타인을 향하여 미소 짓기
- 색조화장처럼 삶을 다양하고 조화롭게 꾸미기
- 화장은 마무리가 중요하듯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 그리고 매사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서기
얼마 전 모 TV프로그램에서 소개한 현대인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 웃음치료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여러 문제들이 대부분 우리 자신의 마음의 태도와 많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날마다 우리들을 더욱 곤고하게 만드는 불신과 분노를 보다 여유로운 긍휼의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누군가 내게 자신은 세상을 이해하는 재미로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화장할 때의 기분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화장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눈가의 잔주름을 예방하는 아이크림을 애써 바르는 것이다. 기초화장품에도 달라지는 것이 있다. 유분과 수분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주름 개선이 잘 되는 제품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점이다. 미백효과까지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그리고 색조화장에도 신경이 쓰이긴 마찬가지다. 나이에 맞게 분위기를 연출해줄 수 있는, 경망스럽지 않은 컬러에 자꾸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혹자는 화장하는 것을 매우 경시하는 경우도 있다. 뭘 그렇게 꾸미는가, 자연 그대로 살지, 생긴 그대로 살지, 인생이 연극무대 같아서 너도 분장을 하느냐….
하지만 우리 생긴 그대로가 그리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지 않나…. 모나고 거친 우리의 이기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생을 조금이나마 다듬어가려는 마음가짐이 화장하는 마음에서도 묻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값지고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의 축적이나 성공이라는 커다란 사건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순간순간 멈추어 서서 그러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더구나 자신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날마다 화장을 하는 여자는 고단한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하루하루를 연습하며 사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대부분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적어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나이가 들어가는 세월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기보다는 그 나이에 합당한 내 모습이 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염려한다. 그러하기에 행여나 내 삶이 품위를 잃고 향방 없이 너무 가벼워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겸허히 거울 앞에 앉아본다.
저 바다 끝에서부터 떠오르는 태양처럼 싱그럽고 힘차게, 정오의 하늘처럼 내 자리를 지키며, 고요하게 넘어가는 석양의 노을빛처럼 아름답고 황홀하게 인생을 그리듯, 맑고 고운 마음으로 화장을 하듯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