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크리스티나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초기 순교자의 한 명으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1880년 볼세나 인근 성당의 기초를 발굴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한 대리석 항아리에 “Hic requiescit corpus Beatae Xristinae Martyris”(여기에 복된 크리스티나 순교자의 시신이 잠들어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마 순교록”의 기록과 전설적인 이야기들에 따르면, 그녀는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Latium)의 볼세나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교도였다. 그래서 황금과 은으로 된 많은 우상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딸에게도 우상 앞에서 향을 피우도록 강요했다. 어느 날 한 천사가 찾아와 그녀를 ‘그리스도의 신부’라 부르며 앞으로 겪게 될 고통에 대해 말해주었다. 천사의 방문으로 힘을 얻은 성녀 크리스티나는 비록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혀 금과 은으로 된 우상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성녀 크리스티나의 행동에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하인들을 시켜 채찍질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한 고통을 주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딸을 죽이려고 그녀의 목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매달아 볼세나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성녀 크리스티나는 천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수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 다른 재판관에 인계되어 끌려간 성녀 크리스티나는 계속해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참아냈다. 율리아누스 총독은 그녀를 불타는 가마 속에서 5일 동안 있도록 했으나 그녀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큰 뱀들에게 물린 상처도 바로 치유되었다.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잔인하게 혀가 잘리고 목에 화살을 맞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녀의 유해 일부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Palermo) 대성당에도 모셔졌고, 팔레르모의 4대 수호성인(성녀 아가타, 성녀 크리스티나, 성녀 님파, 성녀 올리바) 중 한 명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굿뉴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