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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지방 곳곳 백제와 고구려의 위대한 흔적 남아
# 프롤로그...고려향, 백제천, 나라 등 지명 낯익어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을 주로 여행하면서 느낀 바는 '사람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문화나 생활방식에서는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구나' 하는 이질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으로 떠난 해외비교답사 기간 중 이질감이 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본 간사이 지방 곳곳에 ‘우리나라’의 흔적이 있었던 겁니다. 역사유산과 고대 언어, 문화가 여기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스카 지역 다카마쓰고분 인근의 시골마을
외세를 끌어 들여 강성대국 고구려와 문화대국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른바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마치 신라만이 우리의 고대국가인 양 신라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아 온 우리...
요즘 중국이 고구려에 이어 발해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데는 신라만을 중시한 우리의 못나고 속 좁은 옛 정치인들과 식민사학자들의 저열한 사관(史觀)도 한몫을 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사람들을 ‘찌질이’라고 한다지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우리의 위대한 고대국가 백제와 고구려를 만났던 겁니다.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이번 답사여행에서 백제의 빼어난 불상들과 도자기, 수많은 고대무덤 출토품과 탑, 고구려의 고분벽화, 그리고 우리민족의 피를 받은 인물로서 일본에서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성덕(쇼토쿠)태자를 만났습니다.
또 고구려를 나타내는 고마향(高麗鄕)과 신령한 개를 뜻하는 고마이누(高麗犬), 구다라군(百濟郡), 구다라천(百濟川), 신라를 지칭하는 시라이신사 등의 이름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참, 이들 지명 가운데 ‘구다라’라는 말이 백제의 고어로써 큰 나라, 또는 큰 마을을 뜻한다는 것도 알려드려야겠네요.
그러니까 당시 일본은 백제를 큰 나라, 즉 대국(大國)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이지요. 뭐, 잘 아시는 대로 ‘나라’라는 지명도 우리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아, 호류지....신이 된 성덕태자
호류지(法隆寺) 금당과 5중탑
답사 첫날은 오사카에서 자고 이튿날 나라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전날의 밤 깊도록 이어진 술자리의 후유증으로 버스 안에서 잠이 깜박깜박 들어왔다 나가곤 합니다.
게다가 호류지(法隆寺)앞에서 하차했을 때의 그 무지막지한 더위라니... 아마도 영상 40도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습기 많은 대기에다가 쨍쨍 내려 쬐는 햇볕 속에 섰을 때는 답사고 뭐고 다시 시원한 냉방장치가 있는 버스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낍니다.
그러나 두 줄로 길게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길을 지나고 이 절의 정문인 남대문과 중문을 거쳐 금당과 5중탑 앞에 섰을 때 숨을 턱턱 막히게 했던 더위와 온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졸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 1천 4백 년 전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도 그러했지만 여기에 우리 고대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게 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개가 숙여집니다.
호류지 안에는 쇼토쿠 태자를 모신 동원과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를 모신 중궁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중궁사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물이 바로 몽전이다. 백제 위덕왕이 보낸 구세관음
상이 모셔져 있다.
호류지는 금당과 5중탑이 있는 서원(西院), 중앙의 대보장원, 그리고 몽전(夢殿)이 있는 동원(東院)으로 나뉘어져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가람입니다. 이중 동원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를 모신 건물.
쇼토쿠 태자는 일본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고 숭배 받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곳 호류지엔 성덕종이란 불교 종파 종무소가 있고, 성덕태자는 관음보살로 숭배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거의 신으로까지 모셔지고 있는 것이지요.
쇼토쿠 태자는 아스카 시대 권력을 장악한 한반도 백제 도래인인 소가씨의 외손자입니다. 백제계 출신이라 왕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왕의 섭정으로써 중앙집권의 기초를 닦고 불교를 진흥시킨 인물입니다.
호류지를 비롯해 사천왕사 등 41개의 절을 세우기도 하지요.
이 절 곳곳에서 쇼토쿠 태자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원의 몽전 중앙에는 쇼토쿠 태자 실물 크기의 구세관음상이 안치돼 있는데, 이 상은 백제의 아좌 태자가 쇼토쿠 태자의 모습을 보고 제작한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라고 들었습니다.
서원에 있는 금당은 고구려 승려인 담징이 그린 ‘사불정토도’라는 금당벽화로 유명합니다. 이곳에는 또 백제 귀화인 도리(止利)가 만든 조각품 약사상과 석가삼존상도 있습니다.
호류지의 또 다른 상징인 담징의 금당벽화는 안타깝게도 실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1949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지금은 지하 창고에 보존돼 있다는 것입니다.
#2. 아스카(飛鳥), 낯설지 않은 풍경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스카지역의 자세한 답사였습니다. 아스카 지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설레는 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멀고 먼 길을 돌아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고향에 온 기분이라고...
저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찾아갈 고향을 잃은 사람입니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낯선 땅 일본에서 고향을 봤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요? 허나 분명 나라 지방의 아스카 지역은 한국의 고향산천과 놀랍도록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주 친근합니다.
아스카 자료관에 전시된 옛 아스카 시가지 모형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터전이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님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부여와 공주를 답사하면서 느끼는 공통된 감상은 그 주변의 자연풍광이 일본의 지형 중에서도 아스카와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다”라고 자신의 책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느낌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듯합니다.
일본의 아스카문화는 아스카시대(592~710년) 나라 땅에 핀 문화입니다.
일본 땅으로 건너간 우리 옛 조상들은 우리나라 산천과 비슷한 여기에 터전을 잡고 한국에서처럼 신성한 자리를 골라 솟대를 세우고 아스카(飛鳥)라고 불렀습니다.
최초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호족도 우리 조상인 진(秦)씨와 난파길사(難波吉士)씨였다고 하는군요.
일본 최초의 절인 아스카데라(飛鳥寺), 후에 법륭사란 이름으로 바뀐 이 절도 백제 사람들이 장장 8년에 걸쳐 건축한 건물입니다.
다카마쓰 고분벽화. 고구려 여인복식의 특징인 주름치마가 보인다.
고분들도 여기가 남의 나라라는 긴장감을 없애줍니다. 특히 저를 감탄케 한 것은 다카마쓰(高松)고분의 벽화였습니다.
아, 이럴 수가... 이건 완전한 고구려 벽화군요!
석실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동서 양쪽 벽 청룡, 백호의 위쪽에는 금박과 은박으로 해와 달의 모습이, 천정에는 북두칠성 등 성좌가 보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일본 별자리 위치가 아니라 한반도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색동주름치마와 저고리, 머리 모양...모든 것이 고구려의 양식이었습니다
다카마쓰 고분을 뒤로 하고 버스로 돌아오는 길, 길옆에는 쑥과 개망초꽃, 강아지풀, 패랭이꽃, 방아깨비, 수세미넝쿨과 조롱박도 보입니다, 무궁화꽃도 만발해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일본 나라 아스카 지역엔 무궁화꽃이 참 흔하게 보입니다.
아스카 자료관에 보관돼 있는 출토유물들도 발길을 붙잡습니다. 저도, 시간...이 놈을 붙잡아 매놓고 싶어집니다.
#3. 고류지(廣隆寺)의 미륵반가사유상
고류지는 교토 땅의 신라인 지도자였던 진하승이란 사람이 7세기 초에 창건한 절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감동을 줬던 문화재는 ‘미륵반가사유상’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일본 국보 1호였던 이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 78호와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생김새가 비슷해 종종 비교가 되기도 했고 한반도에서 건너갔을 거라고 추정되기도 했었지요.
헌데 어느 날 미술을 전공하는 한 일본 여대생이 아름다움에 반해 불상을 끌어안아 버렸고(사실은 저도 끌어안고 싶었습니다) 이로 인해 불상의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고류지. 미륵반가사유상은 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그런데 불상 보수작업 도중 나무의 재질이 한반도 경상북도 봉화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적송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일본 학계로서는 한국과 관련한 물증이 나왔으니 유쾌하지 않았겠죠?
그렇다고 해서 고류지 관광안내서에서 조차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다는 사실을 삭제해 버리다니....에이, 속 좁은 사람들!
하지만 미륵반가사유상의 그윽한 미소와 몸의 우아한 선은 모든 일본인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같은가 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미륵반가사유상 앞에서 넋을 잃고 발걸음을 뗄 줄 모릅니다. (간혹 떠드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모두 한국 단체관광객들입니다. 휴우...)
고류지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미륵반가사유상의 표정이 선연합니다. 아마 당분간 꿈속에서도 보일 것 같네요.
#4.춤추는 백로처럼 아름다운 히메지성(姬路城)
히메지성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지난 2001년 영상 41도의 살인적인 폭염을 무릅쓰고 감행(!)했던 답사...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다시 오겠다고 했던 다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엔 특별히 필자가 속해있는 학술단체와 인연을 맞고 있는 히메지 민간단체 측의 배려로 히메지성 정원에서 조촐하나마 뜻 깊은 술자리를 갖게 됐습니다.
호류지와 함께 일본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됐을 만큼 아름다운 히메지성의 정원에서 주연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사실, 2001년에 방문했을 때 히메지성의 야경을 보고 반해 ‘여기서 한잔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동행인들은 야경사진을 찍으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히메지성의 야경
히메지성의 아침 풍경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히메지 성을 관람했습니다.
히메지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완성도의 성곽건축으로서 목조성곽 건축물과 석조성벽, 흰색 토벽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구조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그야말로 ‘예술작품’입니다. 흰색으로 빛나는 외관도 그렇지만 성의 중심인 천수각의 규모와 정교한 건축술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여기서 입을 더 크게 벌리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수원화성처럼 성곽을 안내하고 해설을 해주는 자원봉사자 할머니...우리 모두는 이분을 ‘닌자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73세의 고령인데다 등이 동개궁(우리나라 기마무사들이 말을 달리면서 쏘던 작은 활)처럼 굽은 ‘꼬부랑 할머니’인데도 날다람쥐처럼 급경사의 목조계단을 뛰어서 오르내렸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무예를 조금 배웠다는 제가 그분 흉내를 내며 열심히 75도 경사의 나무계단을 뛰어 내려 와봤지만... 에구, 그만 일행의 놀림감만 되고 말았습니다.
히메지성을 안내하셨던 73세의 ‘닌자 할머니’
성의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그분의 얼굴은 히메지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빛났습니다.
‘닌자 할머니’ 같은 분이 있음으로 해서 히메지성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할머니, 지금도 건강하시지요?
#.에필로그
4박5일간의 주마간산식 답사여행 중 위에 소개한 곳 말고 인상에 남았던 곳은 시가현의 히코네 성과 교토 동지사대학 내의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였습니다.
히코네성
히코네성은 한국관광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한번 가볼만한 곳입니다.
축성 400주년을 넘긴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민관이 모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등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득 한사람이 생각납니다. 당국자의 방해에 가까운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유네스코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에 뛰어 들어가 세계문화유산 심의위원들을 한명씩 일일이 만나고 설득했던 사람...
그래서 기어코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고 만 그 사람...아아, 심재덕 수원시장님! 이런, 또 눈시울이 시큰해지는군요. 그래요,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 하늘에서 잘 계시지요? 아니면 다시 수원사람으로 환생하셨나요?
동지사대학 구내의 윤동주 시비와 정지용 시비를 보게 된 것도 시를 쓰는 저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언제 와 봐도 좋은 청수사와 청수사 입구 상가, 동대사의 대불과 사슴들, 또 교토 기온거리의 다정다감한 작은 술집들, 오사카의 도톤보리에서 먹은 회전초밥, 오사카성의 야경, 무예연구자.시인.바다 항해자들이 순례한다는 스미요시타이샤, 사천왕사 등의 모습도 아직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천왕사
청수사
이번 답사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한국으로 다녀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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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일본여행 잘 했습니다. 눈물이 나려하네요..........으흐.........수원을 사랑하셨던 심 시장님.........
언제나 총각 같은 김우영 시인, 이곳에서 만나니 반갑군요. 늘 건강,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