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이명박 서울시장이 술 취한 노숙자에게 둔기로 봉변을 당할 뻔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기사가 나갔습니다.
1보(가정 먼저 기사화)를 내보낸 건 연합뉴스였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연합뉴스는 신문사나 방송사가 아닌 통신사입니다. 원래 통신사의 고객은 일반 독자가 아니라 신문사와 방송사였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실시간으로 속보를 내보내 사람들에게 친숙한 매체가 됐지만요.
‘이명박 피습시도 사건!’ ^얼마나 큰 뉴스입니까. 안 그래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유력한 대권 후보로 불리는 이 시장에 대한 테러 시도라니….
연합뉴스는 이 사건을 1보, 종합, 종합 2보 등 무려 세 번이나 기사화했습니다.
당연히 취재에 나섰지요. 그런데 취재내용은 기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우선 연합뉴스 기사의 첫 문장.
‘이명박 서울시장이 술에 취한 노숙자에게 둔기로 봉변 당할 뻔했다는 주장이 이 시장 주변 인사들에 의해 제기돼’
이 시장 주변 인사는 누구일까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겠지요.
연합뉴스 역시 관련자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다음입니다.
‘현장을 목격한 김병일 서울시 대변인은 “이 시장이 승용차에 오른 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15m 정도 떨어진 곳에 노숙자가 망치를 들고 있었다”며 “얼굴을 보니 최근 시청 주변에서 자주 돌아다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 시장이 이미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시민들도 공격 당할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경찰에 연락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용이 아리송하고 애매합니다. 이 시장이 차에 오르던 시점에 노숙자가 나타난 건지, 노숙자가 이 시장을 정말 공격하려 한 건지….
다음은 현장에 있다가 술 취한 노숙자를 제지한 청원경찰 박모(56)씨의 경찰 진술 내용입니다.
“운전사와 함께 이 시장의 관용차를 시청 앞에 정차하고 이 시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이 시장은 내려오기 전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손에 망치를 들고 술에 취해 비틀비틀 다가오는 사내가 보이더라. 달려가서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망치를 손에 들고 있을 뿐 위협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노숙자가 시청 앞에 등장했을 때 이 시장은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연합뉴스 기사의 두 번째 문장을 보실까요.
‘14일 오전 9시40분께 서울시청 현관에서 이명박 시장이 관용차에 오르려는 순간 노숙자 최모(40)씨가 둔기를 들고 다가서다 청원경찰 박모(56)씨 등에 의해 제지됐다.’
이상하게 ‘이 시장이 관용차에 오르려는 순간’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청원경찰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한국일보 시청 출입기자를 통해 김병일 대변인을 취재했습니다. 김 대변인 역시 청원경찰 진술처럼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이 시장이 있는 상태에서 노숙자가 온 건 아니다. 나도 떠난 뒤에 봤다. 하지만 망치를 들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까 봐 신고했다. 연합뉴스 내용은 사실과 조금 다르다.”
쉽게 말해 이 시장은 차에 오르려는 순간 노숙자의 공격을 받을 뻔한 게 아니라 노숙자가 이미 제압된 상태에서 차를 탔고, 뒤늦게 이를 발견한 김 대변인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 됩니다. 그 시간은 길어야 몇 분이었을 테니 선후관계가 뒤섞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누가 봐도 술에 취한 노숙자가 벌인 해프닝을 극악한 의도를 가진 정치 테러 사건으로 포장할 우려가 있으니까요. 정교하고 섬세하지 못한 기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가뜩이나 정치테러에 대해 민감한 분위기인데….
연합뉴스 기사가 나가자 몇몇 신문과 인터넷 매체는 아예 확정적으로 ‘이 시장이 봉변을 당할 뻔했다’고 썼네요. 청원경찰의 진술내용은 빠진 채로….
저는 기사를 안 썼습니다. “한 줄 써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시도 있었지만 경찰, 청원경찰, 서울시 등을 취재해본 결과 사건이 아니라 ‘해프닝’이었으니까요. 제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혹 관련 기사를 보더라도 불필요한 가정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술 취한 노숙자가 어느 당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느니, 취업을 부탁했다느니 하는 의혹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자, 그럼 궁금해집니다.
술 취한 노숙자는 누구인가?
정식조사는 제가 글을 쓰는 동안 지금 진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노숙자 최씨는 이날 새벽 소주 2~3병을 마셨습니다. 서울광장 주변 등에서 노숙을 했는데 전날을 아시다시피 토고전이 있던 날이었지요.
그날 그는 거리응원 무대를 만드는 인부들을 잠깐 도왔나 봅니다. 그리고 인부들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망치를 하나 손에 넣게 되죠. 망치는 길이 43㎝, 폭 11.5㎝의 평범한 못박이 망치입니다. 그가 메고 있던 큰 가방엔 옷가지와 식기 등 노숙용품 외에 위협적인 물건은 없었습니다.
최씨의 최초 진술은 이렇습니다.
“차가 과속을 하려는 것 같아서 제지를 하려고 다가가는데 누가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경찰에 왔다. 누굴 해치려는 의도도 없었고, 누구 차인지도 몰랐다.”
여러분이 느끼시기엔 노숙자 최씨에게서 정치적인 음모의 음습한 냄새가 나는 지요?
제가 보기엔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도 웃지 못할 해프닝인데, 행여 ‘음모론’이 나올까 봐 경찰은 신중합니다.
경찰은 최씨가 도봉구 방학동에 전셋집이 있다고 진술해 그 집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도 조사한다고 합니다.
음모론을 좋아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은 지나친 확대 해석을 하지 마시고 조금 더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
첫댓글 누가 뭐라해도 그간 노무현대통령의 탈권위 의지와 실천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박근혜피습에 대해 수년만에 최초로 경검합동수사 지시했다는데, 이건 아니다. 박근혜 피습건에 대해선 경찰수사가 자질도 진실추구도 힘들다고 보는것인가? 한나라당 대연정차원인가, 퇴임후안전장치만들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