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뭉우리돌의 바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김동우 글, 사진, 수오서재, 2021.
1.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백범일지>에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나온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가 말했다.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김구는 이 말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고 답했다.
이 책 제목의 ‘뭉우리돌’은 이렇게 김구선생으로부터 유래한다. 김동우 작가(이하 저자)는 우리나라 밖에서 전개된 뭉우리돌 같은 독립운동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유적지와 후손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연을 이 책에 담았다. 일제의 통치는 경술국치일인 1910년부터이지만 우리 동포들은 그 전부터 멕시코로 만주로 연해주로 이주하였고, 거기에서 우리의 일본에 대한 저항을 시작하였고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일제에 저항하며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벌였다.
나는 책을 고를 때는 이런저런 책 선전을 참조하지만 독서모임들을 하기에 다른 회원이 선택한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은 다른 회원이 추천한 책인데 읽다 보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이 책과 저자의 <뭉우리돌의 들녘> (러시아, 네델란드 편, 2024)을 주문하였다. 이 책을 함께 읽은 다른 회원들도 같은 심정이라 우리 모임이 비축하고 있던 회비 중 일부를 저자에게 기꺼이 후원하였다.
2. 이 책에는 인도에 가서 훈련을 하던 독립군들, 먹고살기 위하여 1905년에 아주 먼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으로 이민간 농부들, 멕시코에서 쿠바로 건너가서 체 게바라의 동지가 된 독립군, 미국 땅에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된 김종림이 후원하여 시작된 우리 최초의 공군과 비행장, 안창호 선생, 1908년 친일 활동을 하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열사... 등등의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그 증거가 되는 현장의 사진과 함께 나온다. 그렇게 멀고 낯선 지역을 일일이 직접 찾아가서 보고, 사진 찍고,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실감나게 썼다. 그때의 독립운동한 분들은 이미 죽었기에 그 후손들을 수소문해서 힘들게 찾아간다.
그렇게 낯선 곳에 정착한 우리 동포들은 힘들게-열심히 일만 한 것이 아니었다. 민족 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단체를 구성하고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낸다. 지금은 통신이 발달하여 서로 연락을 잘할 수가 있다고 하지만 저 깜깜하다고 생각되는 1900년대 초에 우리 동포들은 그 먼 이국땅에서 서로의 소식을 듣고 연락하고 도왔다는 것이 나에게 의외였다. 광주학생운동이나 3.1만세운동의 소식도 저 먼 이국땅에 전해졌고 함께 동조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세계정세를 제대로 알고 그분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을 세계 각지에서 전개하고 독립운동 단체들을 후원하였다.
나는 우리 동포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운동이 이렇게 이국 땅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이번에 더욱 자세히 알고 우리 민족의 굳센 독립의지에 감동하였다. 지금 우리는 해방된 조국에 살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저렇게 자기와 가족들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선각자들이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 자취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 저자는 자기 돈 써가면서 힘들게 찾아다니며 기록을 하고 있다. 이 책에 계속 언급되지만 희미해져 가는 자취들이 계속해서 기억되려면 지금이라도 기록이 되어야 역사가 된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다 사라지게 마련이다.
3. 물론 이런 탐구는 이전의 관련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겠다. 이 책의 맨 뒤에는 참고자료가 나온다. 그런 자료들은 모두 소중하다. 그렇지만 그런 자료들(특히 학술논문들)에 일반 대중은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자료들을 찾아서 읽고 비교적 접근하기 쉽게 풀어서 썼다는 것이며, 저자는 ‘다큐멘타리 사진작가’이기에 사진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막연하지 않고, 황망하고 처연한 유적지의 체취와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한 독립운동가 3~4대 후손의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저런 논문들과 역사 교과서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만 나오겠지만 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후손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고 흥미롭다.
저자는 원래는 사진작가이지만 글 쓰는 솜씨가 웬만한 전문 작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일했다고 하니 글도 일목요연하다. 더구나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추구한 애달프고 뜨거운 평화-독립 의지와 저자가 느끼는 감흥을 글로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후손과 현장을 찾았을 때의 그 감흥을 일부러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지표(指標)로 그들을 증거하고 싶”은 마음을 차분하고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4. 나도 (법학)논문과 책을 써 봤지만 대개 연구실에서 다른 책과 논문들을 참조하여 쓰는 글이 대부분인데 저자는 직접 발로 뛰면서 저렇게 낯설고 먼 지역을 다니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추적하여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저자의 작업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미주 지역에서 더 나아가서 이미 발간된 러시아, 네델란드의 독립운동과 계속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에서의 독립운동으로 확대될 것이다.
저자의 건투를 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저자의 저 끈질기고 투철한 의지와 실천성, 독립운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하려는 그 의도와 모험심, 그리고 사진 기술 - 글 솜씨가 많이 부럽다.
저자는 국가보훈처 정책자문위원이었는데 윤석렬 정권 들어와서 짤렸다고 한다. 일본과 어떻게든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양보하는 현정권에게 이런 작업은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처신이 한심하다.
저자의 이런 책들이 많이 팔려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이런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강추한다.
* 그러고 보니 이 책에 나오는 기념비를 나도 봤다. 작년 미국여행 때 L.A.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길의 ‘리들리’시에서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을 1/4로 축소해서 제작한 독립문과 10명의 독립유공자의 기념비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