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인 셰프

[물망초]

이 기사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국 신문을 보는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본 내용이다.

빨간색(?)에서 영감을 얻었다.

외국 여행은 - 특히 걸어다니는 경우는 - 지도와 가이북이 필수적이다.

2009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기독교 순례길을 처음으로 걸을 때도 그랬고, 그 2년 후에 유럽 동서횡단을 나서면서 실제로 지나갈 루트를 설계하는 동안에 그야말로 길 정보가 절실했다.

사실 대륙 동서횡단은 꼬박 3년 동안 길을 찾고 나섰지만~~

첫 경험과 두 번째 다소 독특한 경우를 통해 절실하게 느낀 바가 있기에 평소에 지나치구나 싶을 정도로 길안내, 소위 내 나름의 안내를 남발한다.

물론 오늘도 그 연장선 상이다.

하기사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다 필요한 정보를 쉽사리 얻을 수 있고, 이젠 스페인의 까미노 정보라면 한국인에게 보편화 된 형편인지라 이 또한 번거로운 내용이지 싶다.

먼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도시를 만나면 크고 작고 간에 큰 혼란에 빠진다. 거길 들어갈 때도 빠져 나올 때도 길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나그네에게 도시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유럽에서 길을 걷다가 지도가 갑자기 필요한 경우는 주유소에 딸린 마트가 가장 좋다. 주유소는 자동차족을 위해 대부분의 도로지도 등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게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어쨋거나 가이드북으로 길을 간다면 문제는 다르다.

대체로 가이드북의 정보는 역사적인 길 아니면 아름다우면서 한적한 길이고 자동차 도로를 따라 난 길이 아니다. 나의 경우는 불가리아에서 그런 길을 선택했다가 강도를 당한 이후로 무조건 오픈된 도로를 따라 걷는다.

그건 내 사건을 해결해 준 불가리아 경찰 팀장의 간곡한 당부였다.

누구든 생면부지의 유럽 땅을 혼자 걷는 행위는 각자의 로망이나 체력 이전에 위험천만 모험 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일부 보행자들께서 어떤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걷는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평소에 나는 한국인 나그네들이 어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 반도의 동경(憧憬)에서 벗어나 유럽의 다른 길도 걸어보시라 권한다. 거긴 기독교 순례길 말고도 -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 도처에 굉장한 길들이 거미줄 같다.

앞서 불가리아 경찰의 충고가 아니라 특히 걸어다니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가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 부디 머리로 걸어야 한다. 

걷는 나그네는 탐미적인 감성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머나먼 길은 시시각각 변하는 생물이고 도처에 유혹과 위험도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쉐린은 세계적인 지도 출판사이다.

물론 미쉐린 판 스페인의 까미노 가이북도 있다. 

하지만 미쉐린이란 다들 알다시피 원래 자동차 타이어 회사 아닌가.

여기서 호사가들을 위해 잠깐 방담으로 들어가자면, 타이어의 미쉐린(Michelin)이나 스포츠 용품의 아디다스(ADIDAS)는 둘다 회사의 스타트엎 동기가 같다. 두 형제가 힘을 합해 창업한 회사니까....

미쉐린은 프랑스의 앙드레와 에두아르 형제이고 아디다스는 오스트리아의 아디와 다슬러 형제였다. 다만 여기서 그들의 사설(辭說)을 자질구레 더 보태는 건 오늘 이야기의 맥락을 벗어나겠다.

암튼 미쉐린은 자동차  타이어 회사지만 지도 또는 여행 가이드북에 식당 안내까지 아우르고 있다.

물론 여기에 수록되는 식당들은 우리의 기사식당과는 그 태생 자체부터 차원이 다르다.    

우리에게 프랑스의 미쉐린 가이드는 지도나 여행 안내서보다 식당 가이드북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 프랑스어로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이라 하고 특히 레스토랑 안내서는 식당계에서 '빨간책(Red Guide)'으로 통한다.

스페인은 물론 서유럽 일대의 기독교 순례길 가이드북도 일컬어 '빨간책'(Rother Wanderführer 판)이 있다.  주로 독일계 서양인 보행자들이 애용한다.

그동안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이 길을 안내하는 빨간책은 물론 '미암미암 두두(Miam Miam Do do, 냠냠 쿨쿨)' 등 몇몇 가이드북까지 소개해 보지만 아직 '아! 그렇군요' 가시적인 공감은 드물었다.

동아일보의 파리 특파원 동정민 기자(ditto@donga.com )는 심심찮이 나와 같은 역마살에게 깜짝 참고가 될 만한 기사를 제공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올해 정월 대보름 무렵에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은 한국인 셰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국의 머나먼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일단 그게 체력과 대단한 싸움이기에 무엇보다 가는 데마다 먹고 자는 일이 절실하다.

다만 보행자는 여늬 여행자보다 실비 위주인지라 럭셔리 식당이라면 외면을 할 수밖에 없다.

유럽을 떠돌면서 맛집이라면 나그네들에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여 아래에 그 기사의 전문을 가감 없이 소개해 본다.

지난 밀레니엄 무렵에 수도권의 길 공부에 한참 열을 올리던 시절에 신문마다 앞다투어 새로운 길소개 기사가  연재되기에 일부러 찾아가서 길어도 보곤 했다.

아마 내가 동기회에서 '길사랑'을 만들 때쯤이었을 거다. 

길이 아니라 음식점이라면 매스컴에서 대박집 소개만 믿고 한 번 찾아가보면 왕왕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닌 집이 있었다.

인천에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한 허름한 중국 음식집이었다.

몇몇 친구와 월미도와 영종도 길을 몇차례 걷고 그집과 익숙해졌을 때 어느 날 짐짓 물어봤다.

실은 처음에 오게된 동기가 신문 기사의 소개 때문이었는데...기자가 처음에 취재차 왔을 때 전후 사정이 어떠했냐는 질문이었다.

주인의 대답은 그냥 평범한 고객이 찾아와서 짜장면을 먹고 가면서 영수증을 챙기고 갔는데, 후에 손님들이 자기집이 신문에 났다더라는 이야기였다. 

짜장면이나 짬뽕 한 그릇 먹은 손님이 굳이 영수증을 챙기기에 거억한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프랑스 요리의 태생지인 리용을 소개해 보겠다.

까페에서 '르쀠길'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 소개하는 식당의 소재지도 바로 리용이고 하니,

거기다 음식을 공부한 한국인이 하필 프랑스 음식의 본향에서 자신의 식당을 개업한 야심과 기개를 응원하는 일념으로다.... 

소개는 나의 부족한 글 '프랑스의 르쀠와 르쀠길 이야기'에서 발췌한 부분으로 대신한다.

「카미노 네이버 카페」의 '기타 자료'방에 물망초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는 글이다.      

「.....프랑스인들은 콩포스텔 또는 GR65이라 하고 한국인들은 '르쀠길'이라 부르는 길, 프랑스의 르쀠부터 이 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파리에서 기차로 접근해야 한다.

파리에서 르쀠까지는 직행이 없으므로 파리~리용 구간은 테제베(TGV)로, 리용~르쀠 구간은 일반기차를 이용한다.

파리에서 이 기차를 타려면 시내의 리용역(Gare de Lyon)을 이용하고, 리용에 도착하면 출찰구로 나가지 않은 채 구내 플랫홈에서 일반 기차와 쉽게 환승 연결된다. 단 기차 시간은 미리 확인을 해야겠지만~~

예를 들어 파리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한다면 두세 시간 후에 리용에 도착해서 곧장 일반 기차로 환승할 수 있고, 르쀠에 도착까지 모두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만 리용을 지날 때 우리 한국인의 경우 모처럼의 프랑스 여정에 꼭 권할 일이 있다.

그대가 정녕 식도락가(구르몽)시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요리의 탄생 본향이 바로 리용이므로 이곳에서 1박 정도 머물면서 본고장 프랑스 요리를 시식겸 한 번 즐겨보실 일이다.

유럽에서 콧대높은 프랑스인들의 이미지는 어쩌면 그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에서 연유되는지 모른다.

그게 음식 자체와 프랑스와인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음식이라면 그런 프랑스인들 앞에서는 이탈리아인들마저도 일단 꼬리를 내린다.

흔히들 이탈리아 문화의 특색을 단 셋으로 축약할 때 Amore(사랑한다) Cantare(노래한다) Mandare(먹는다)로 규정하는데도 그렇다. 세상에 이탈리아 음식이 프랑스 음식에 두 손을 든다는 이야기 아닌가.  

물론 배낭을 메고 떠도는 나그네가 프랑스의 정식 요리를 즐기기엔 부담이 될테지만 리용 지역은 전통 음식과 함께 술도 즐겨볼 수 있는 음식점이 따로 있다. 그게 부숑(Bouchon)이라는 음식점이다.

이 부숑들은 메뉴가 대부분 비슷하다.

해마다 리용에서는 그들의 전통요리 종류와 맛을 잘 지키고 있는 진정한 부숑을 20곳씩 선정 발표한다. 그런 집은 한국의 모범음식점에 태극문양처럼 특정한 마크를 내다건다. 모자를 쓴 새가 양손에 와인 잔과 빨간 냅킨을 들고 있는 캐릭터이다......」  

때때로 예술가 등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공통점을 가지는 모양이다.

오늘 리용의 한국인 셰프도 마찬가지다.

현직 때 학생 관련 실화는 좀처럼 입을 다물고 살지만 오늘은 모처럼 오픈을 해본다. 

하동철 화백은 나와 서로 총각 선생으로 만났지만 유학도 다녀오고 나중에 서울미대 학장까지 역임했다.

나는 그분의 딸 하 원 교수를 고3 때 담임을 맡았기로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남보다 빨리 미술대학 교수가 된 하 원이는 벌써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다.

그에 앞서 하 선생은 나와 동갑 내기로 서울예고에서 동료교사로서 각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유학 내내 하도 그림이 되질 안아서 귀국 날자는 임박해 오고 죽을 맛이라 했다.

귀국 날자 바로 직전에, 심지어 내일까지 그림이 되지 않으면 자살을 해야 겠다는 작정까지 했단다. 그런데 귀국 바로 전날 번쩍하고 영감이 왔기로 그게 지금 당신의 예술이라 했다.

그것이 바로 '빛의 기원'이라는 그의 예술 세계가 탄생한 과정이다.

하 화백이 흥분 중에 혼자 지니고 있던 산통(産痛)의 비밀을 고백한 배경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대전 출신인 그는 서울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도 수석으로 마감한 이력이었다.

그날 나와 그가 마주 앉은 자리는 바로 그분의 장녀 하 원이도 서울미대에 수석 합격을 한 날이었다.

세상에 아버지와 딸이 함께 서울미대에 수석 합격을 했다. 

이제 비로소 오늘 주제의 기사 소개로 들어가겠다.

미슐랭 식당은 빨간책에서 별의 숫자로 등급을 나타내는 모양이다.

＊ 먼저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A very good restaurant in it's category)

＊ 다음 별 둘은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Excellant cooking, worth a detour)

＊ 그리고 별 셋은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Exceptional cuisine, worth a special jour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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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던 맛이 안나와...개업 직전 2시간 만에 개발한 음식이 대박"

 

- 불어 한마디 못하던 한국인, 프랑스 상륙 10년만에 4년 연속 미슐랭 셰프로 -

 

1920년 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빨간색 표지의 책,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되는 건 전 세계 요리사들의 꿈이다. 특히 미슐랭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매년 1월 말~2월 초면 모든 언론들의 관심이 리스트에 쏠린다. 프랑스 리스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표된다. 

 

지난달 21일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2019 프랑스 편'에는 632개 별 식당리스트가 실렸다. 미슐랭 별은 요리사에게 최고의 훈장인 동시에 받은 순간부터 유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원천이다. 올해 식당 75곳이 새로 별을 받았지만 57곳은 별을 잃었다.

 

18년 동안 최고 등급인 3스타 식당으로 꼽힌 '르 수케'의 셰프는 지난해 "나는 더 이상 압박 속에서 요리하고 싶지 않다"며 미슐랭 리스트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2003년에는 3스타 셰프가 별을 유지해야 항다는 스트레스를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올해 미슐랭 리스트 중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한 곳 있다.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용에서 이영훈 셰프(35)가 운영하는 '르빠스떵'(Le passe temps, 기분전환). 2016년 이후 4년 연속 원스타 식당으로 선정 됐다. 프랑스에서 음식으로 미슐랭을 받은 한국 셰프는 이 셰프가 유일하다. 불어 한 마디 못한 채 프랑스에 상륙한 지 10년 만에 프랑스 인들이 극찬하는 미슐랭 셰프가 된 그를 6일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 4년 연속 뽑혔다. 탈락의 압박감이 심하다는데 실제 그런가.

“미슐랭에서 아무런 연락이 안 오기만을 바랐다. 처음 별을 받았던 2016년에는 발표 사흘 전 미리 귀띔을 해줬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연락이 없으면 별을 유지하는 거고 오히려 별이 떨어지면 연락을 준다고 하더라. 미슐랭 홈페이지에 우리 식당 옆에 미슐랭 연도 숫자가 2018에서 2019로 바뀐 걸 보고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미슐랭 선정되는 게 얼마나 힘든가.

“리옹에 공식적으로만 3000개의 식당이 있다. 이 중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은 16개다. 우리 식당 바로 옆 식당은 2스타를 받기도 하고 20년 가까이 별을 유지해왔는데 올해 떨어졌다. 미슐랭도 식당의 세대교체를 바라는 것 같다.”

- 미슐랭 평가단이 매년 와서 평가를 할텐데, 누가 심사위원인지 전혀 짐작이 안 되나.

“매년 9~12월에 평가단이 온다고 하는데 전혀 알 수 없다. 당연히 식사비도 똑같이 내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도 않는다. 짐작조차 못하겠다.”

- 미슐랭 별 식당으로 선정된 이후 뭐가 달라졌나.

“일단 손님이 늘어난다. 대기자가 많아졌다. 그 전까지 그렇게 까다로웠던 은행 대출도 보증 없이 바로 해주더라. 무엇보다 우리 식당에 대한 손님들의 리스펙트가 생긴다. 그 전까지는 동양 셰프가 프랑스 음식 한다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 프랑스인들이 동네 자랑이라고 좋아한다.” 

이 셰프는 집에 보관하고 있던 편지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 폴 보퀴즈가 보낸 축하 편지였다.  

“처음 미슐랭으로 선정되자 전국 곳곳의 전설 같은 셰프들이 축하 편지를 보내왔다. 리옹에 있는 선배 미슐랭 셰프들이 출근하다가 문 두드리면서 축하해줬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셰프는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2월 프랑스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한국관광대학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음식점에서 일하던 그는 현지에서 음식을 배워야겠다는 갈증을 느꼈다.  

“프랑스에 올 때 학교를 다닐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딱 한 가지 마음이었다.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를 먹어도 프랑스 본토에서 만든 감자튀김을 먹고 오자는 것, 그래야 한국에서 후회 없이 프렌치 식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프랑스 내에서 최고의 요리학교로 꼽히는 ‘폴 보퀴즈’를 졸업했다. 최고 요리학교의 교육법은 남달랐나. 

“매우 체계적이다. 매주 한 개의 컨셉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실습하고 탐구한다. 특히 미슐랭 3스타 식당 폴 보퀴즈에서 인턴을 할 때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한국 인간문화재 격인 명장이 3명이 있는데 요리한 지 37년이 된 그들이 직접 고기와 생선을 굽고 소스를 만들었다. 음식 내보내기 직전 확인하고 몇 번 테이블 내보내라고만 지시만 했던 내가 경험한 한국 셰프와 달랐다. 월급쟁이 셰프인데도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흐트러짐 없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도 매일 오전 8시에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하고 밤 11시 가장 늦게 퇴근한다. 거의 매일 혼자 가서 장을 보고 생선과 고기는 직접 굽는다.” 

- ‘폴 보퀴즈’ 졸업 후 바로 식당을 열어 오너 셰프가 됐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나.

“파리 미슐랭 2스타 식당에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내 이름 석 자 걸고 음식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가스렌지 2개, 테이블 한 개 놓고, 손님 딱 5명만 받더라도 내 식당 해보고 싶다’고 이해해달라고 했다. 내가 하는 프랑스 요리를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궁금했다” 

그는 대학교 과선배인 부인 임소영(36) 씨와 2010년 결혼했다. 임 씨는 개업 이후 식당 홀을 지키며 주방을 책임지는 남편을 돕고 있다. 임 씨는 “결혼 후 처음 프랑스 올 때는 2, 3년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개업까지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 식당을 개업하려면 초기 투자금이 필요했을 텐데.

“개업하기로 마음먹고 일 년 동안 돈을 빌리러 프랑스에서 은행이라고 쓰인 곳은 다 갔다. 그러나 한결같이 체류 자격도 확실치 않은 외국인 학생이 창업 하겠다고 돈 빌리러 온 경우는 처음 봤다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결국 2013년 7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프랑스인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슬펐다. 출국 직전 우연히 못 봤던 은행을 발견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고 그 곳 점장이 ‘전에도 당신 같은 중국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며 대출을 해줬다. 인테리어는 친한 동생 두 명과 벽에 석고 바르는 것부터 모든 걸 인터넷 뒤져서 직접 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3500유로(액 450만 원)에 마쳤다.”

- 지금 식당 인테리어는 모던한 분위기로 고급스럽다.

“미슐랭 별 식당으로 선정되자 모든 프랑스 은행이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더라. 추가로 돈을 빌려 다시 인테리어 한 거다.”

-연고도 없고, 평판도 없는 동양인 셰프가 프렌치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손님은 제법 왔나.  

“2014년 4월11일 개업식 날 점심 첫 손님을 잊을 수가 없다. 40대 후반 여성 둘이 들어왔다. 메뉴판을 보더니 아내를 불러서 대뜸 ‘초밥을 먹으러 왔는데 왜 없냐’고 했다. 내가 홀에 나가서 ‘여기는 아시아 레스토랑이 아니라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했더니 당신 아시아 사람이니까 만들어줄 수 있지 않냐, 좀 해달라‘고 하더라.

- 그래서 만들어줬나. 

”돈이 급할 때니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정말 초밥 재료가 없어서 돌려보냈다. 돈이 급해서 공사 끝나고 다음날 바로 가게를 열었다. 그래서 테스팅을 못하고 메뉴를 개발했다. 그런데 막상 개업 당일 만들어 보니 생각한 맛이 아니었다. 몇 시간 후면 손님이 오는데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손에 땀이 나고 몸이 떨렸다. 오늘 못 해내면 내일도 못 해낼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모든 직원을 주방에서 다 내보내고 혼자서 다시 메뉴를 개발했다. 그 절실함에 두 시간 만에 내놓은 음식이 대박이 났다.“

- 개업한 지 얼마 만에 이 식당에 손님이 꽉 찼나. 

”26석이 만석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리옹의 유명한 음식 블로거가 들르더니 이어서 지역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됐다. 5월 첫 번째 주 토요일 그러니까 개업 3주 만에 만석이 됐다. 진짜 소름이 돋았다.“ 

그의 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음식은 제철 음식으로 매번 달라지고 손님들은 코스에 나오는 음식 수만 시킨다. 메뉴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이영훈 셰프‘ 이름을 믿고 손님들이 오는 셈이다. 그의 시그니처 메뉴는 멸치 육수에 넣은 푸아그라. 맛을 보니 개운한 한국 국물 맛이 느껴졌다. 

- 프랑스 음식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다.  

”멸치 육수와 간장은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며 밸런스를 잡아준다. 오늘 또 다른 대구 음식에는 동치미 국물이 사용된다. 한국 음식이 프랑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 프랑스에서 식당을 연 첫 미슐랭 한국인 셰프라는 타이틀, 원래부터 꿈꿨었나.

”공부는 1등을 못했는데 요리는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2010년 결혼식을 하러 한국에 간 적이 있다. 집에서 TV를 보는데 광고에 에드워드 권 셰프가 나왔다. 그를 아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알지 그럼. 우리 아들도 요리하니까 언젠가는 TV에 한 번 나오지 않을까‘ 말씀하시더라.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부모님 위해 TV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미슐랭 본고장에서 별을 받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 돈을 1등으로 벌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1등을 해봤다고 생각한다.“ 

- 매년 미슐랭 별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불안하지 않나.

”첫 해에는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쫓아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다. 이제는 지금처럼만 하면 손님이 내 노력을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변함없이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자, 그러다 별에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손님은 여전히 내 음식을 사랑해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개업 초기에는 장 볼 때 아내가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사과 몇 개 안 먹으면 식당 젓가락을 살 수 있다‘고 못 먹게 하고 그랬다. 아내가 사과를 마음껏 먹게 된 것만도 기쁜 일이다.“

-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미슐랭 2스타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꼭 받아보고 싶다. 미슐랭 별을 받고 한국에 갔을 때 친분이 없는 셰프들까지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도 별을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감사하다‘는 격려를 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내가 별 두 개를 받으면 또 다른 한국 셰프가 별 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인 셰프 누군가가 프랑스에서 별을 받으면 당장 식당 문 닫고 가서 밥과 술을 사주며 축하해주고 싶다.“ 
 

- 조만간 비빔밥 가게를 리옹에서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옛날부터 한국 식당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한국 음식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엄청 늘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비빔밥이니까 종류별로 특색 있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며 살고 싶다.“ 

[빨간 마후라]

물망초! 오늘 글도 순례길 걷는 이야기인가하여 작심하고 읽었더니 식당과 음식 이야기이군요. 미슐랭 스타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한국인이 불란서 요리로 미슐랭 스타를 딴 이야기는 통념을 초월하는데 앞으로 2스타에 도전하고 더욱이 비빔밥으로 도전하는 겁도 없는 한국인, 그 자세가 멋있고 여객기 기내식이 요즘 외국인한테서 칭찬을 받는다니 그 가능성도 보이는군요. 벗의 글 솜씨가 좋아 미쉐린 타이어 광고 판의 식당 가이드란에 이글의 번역판이라도 실었으면 좋으련만.
미국에서 게속 머물러도 장문의 글솜씨는 변하질 않는구료. 물망초! 계속 건강하세요.

[물망초]

대사님도 골프를 좋아하시지요?
즐거운 골프는 형식이고 뒷풀이는 내용입니다.
걷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목표지향적인 한국인들은 형식을 무겁게 여기고 내용은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대학도 결혼도 취직도 무조건 최고로 가려고 합니다. 사실은 가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데도 말입니다.

머나먼 길을 걷는 나그네들에게도 목표보다 과정이 더 소중하는 걸 안내하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