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것이다. 반면 나이든 여인의 아름다움은 품격에서 비롯된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이와 무관하다. 잔주름이 있고 백발이 성성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좋은 향기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근담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끝마무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만절(晩節)의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젊었을 때에는 품행이 난잡했던 여자라도 느지막하게 좋은 남편을 만나 함께 깨끗한 생활을 한다면
젊은 시절의 추한 허물은 아무도 흉보지 않게 된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에는 굳게 정절을 지키던 여자가 흰머리가 눈에 띄는 나이가 되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깨끗한 생활을 해오던 노력도 무의미하게 된다.
위 이야기는 여자의 만절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내 생각에 ‘어떻게 늙느냐, 곧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 짓느냐’ 하는 문제는
남자에게 있어 조금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주위에 노인들을 보면 똑같이 주름투성이에 허리는 굽었어도
마치 아름다운 노송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움직이는 곳마다 추한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듯한 사람이 있다.
이처럼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백작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를 숭배하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뒤마를 만나자 감탄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우아하게 늙으셨습니까?”
그러자 뒤마가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 나는 내 모든 시간을 쏟았답니다.”
추하게 늙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며 맞게 되는 불행들은 대부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추하게 늙는 것만큼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이 늙은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늙은이 냄새’다.
냄새쯤이야 요즘에는 향수로 속일 수 있다.
피부 나이를 돌리기 위한 성형술도 발달되어 한층 젊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추(老醜)는 어떤 것으로도 감추지 못한다.
더욱 고약한 것은 스스로 늙은이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가 얼마나 노추에 젖어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사람은 늙으면 노추가 되기 쉬운 것일까?
인간이 나이와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이야기가 있어 몇 가지 소개하겠다.
이솝우화에 보면 인간은 제우스신으로부터 수명을 받았다.
그게 너무 짧다고 생각한 인간은 말한테서 수명의 일부를 받고, 그 다음은 소로부터,
또 그다음에는 개로부터 수명의 일부를 받았다.
그래서 제우스신으로부터 받은 당초의 수명을 사는 동안에는 욕심이 없고 선량하지만
그 다음에 말로부터 받은 수명을 살 때에는 허풍을 잘 떨고 거만스러워진다.
소의 나이에 이르면 남을 지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개의 나이에 이르면 화를 잘 내고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사람은 늙으면 화를 잘 내고 까다로운 성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림동화에서는 더 구체적인 설명이 나온다. 당초 인간의 수명은 30년이었다.
그런데 나귀로부터 18년을 얻고, 개한테서 12년을 물려받고, 원숭이한테는 10년을 양보 받는다.
그래서 인간은 30세까지는 순진하고 선량한데
그 다음 48세에 이르는 동안은 나귀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게 되고,
49세에서 60세까지는 개처럼 살게 된다. 그래서 남을 물어뜯거나 짖곤 한다.
그리고 마지막 61세에서 70세까지는 원숭이처럼 산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가 노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추란 겉모습의 추악함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노추란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그 나이대로 행동하지 못했을 때,
시쳇말로 나잇값을 못할 때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앙드레 지드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 홍사중 지음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