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을 향하려면 꼭 보게되는 북한식당, 초입에 예쁘게 단장한 젊은 여인이 해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다. 앞서 이 만주땅에는 미인이 드문것 같다고 한 말은
적어도 이 서탑에서만은 예외다. 남남북녀라는 말은 백두산을 경계로 만주여인들과는 구분하여 상용되어야 할듯 싶다. 반지르한 모습으로
문앞에 서 있기만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일종의 미인계 아닌가. 서탑지역에만 14개의 북조선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어느 식당 미녀가 최고 얼짱이라는 소감문도 있을 정도다.
캄보디아 티엔립 여행 때 평양관이라는 북한식당을 찾은 적이 있다. 식사도 하고 공연도 본다는 곳은 양수겹장이라 그런지 조금 비쌌다. 맨
앞줄에 앉아 그야말로 침을 흘리며 그녀들을 지켜보았다.그런 여인들은 음식도 나르고 악기도 한여인이 최소 두개내지 세개는 다루었고 춤도
그만이었다. 하나만 잘해도 대단하다 여겨지는데 다재다능으로 거기에 미인이라니. 나는 침 흘리는 모습을 아내가 볼까 봐 신경이 쓰여 가끔은 딴청을
하는 척을 했지만 여전히 눈길은 무대 정중앙이었다. 그때 사진을 못 찍어둔 것이 큰 아쉬움이다.
가이드 말로는 이설주(북한 김정은 부인) 동기 동창이 그 안에 있다고 했다. 가만 보니 가이드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관광객 유치를 하려면 그들과 공생을 할 수밖에 없지 싶기도 하다. 나중 100달러를 더 내면 북한미녀들하고 공연 끝나고 술도 마실수 있다고 하며
가이드가 나를 끄는데 굴뚝같은 마음과 달리 행동을 하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아내 앞에서 '별로 예쁘지도 않구만 그래. ' 라고 하얀 거짓말을
하였다. 가이드하고 북한 미녀 한 명이 눈이 맞아 도망을 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는데 종말은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여권이 없는데 어디로 도망을 갈 것인가.
그녀들이 티엔립 시내를 나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교통이 마비될 정도라하니 그 인기는 알아줄 만하다. 심양 이곳에서도 아침
일찍 8시 체조를 하러 문 밖으로 나올 때 사람들이 기웃거린다고 했다. 내가 헤아린 북한식당만해도 7곳이 되는데 그러다보니 잘되는 곳은 잘되지만
영업이 잘 안되는 곳도 많을 테다. 북조선식당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가격도 만만하지 않고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계절적인
비수기까지 겹쳐 썰렁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북한식당은 한국관광객이나 이곳에 상주하는 한국교민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이제 그곳 종업원은 대부분 한족이다.
조선족동포들의 한국방문 기회가 대폭 확대되면서 한국으로 가버려서 이제 조선족종업원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한족 (漢族)
종업원으로 채우다보니 당연히 서비스의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다들 한소리 해댄다. 우리가 사실 서비스 때문 그곳을 찾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부분
반갑습니다를 오프닝사운드로 시작되는 공연은 각 식당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노래와 춤, 악기연주를 뽐낸다.
옛맛 그대로 음식도 깔끔하고 개운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티엔립에서도 그러했듯이 내 입맛에 맞는 북한식 김치와 가자미식혜를 맛 볼 수도 있고 시원한 냉면과 옥수수면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산 명태찜과 도루묵찜과
털게...그리고 단고기 등은 특별한 미각을 돋군다하였다. 그런 그들의 출신성분은 아마 비교적 좋은 집안일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한때 평양미인들의 주수입은
봉사료였다. 미녀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식당의 손님들은 꽃다발을 갖다가 안긴다. 꽃다발 한 번 선물하는데 30~50위안 정도인데 나중에
음식값에 포함이 되어 계산이 되었다. 아가씨들이 고객들한테 은근히 꽃다발 증정을 권유하기도 한다.
알기로 이 꽃값은 기록이
되었다가 내부규정에 따라 개인들에게 배분이 된다고 한다. 경쟁심 유발이 아니겠는가 싶다. 오래 전 중국에서 북한식당을 갔을 때는 말도 안받아주고 팁도 받지않은 딱딱한
분위기로 첩첩산중이었는데 요즘은 사뭇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사진촬영에도 적극적으로 임한다. 이들은 약 3년동안 근무를 하다가 평양으로 돌아간다.
평양으로 돌아가면 원 소속인 직장 혹은 식당에서 복무한다. 나이가 아직 어린 경우 다시 해외로 파견을 나올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는 꽤 어려운 모양이다. 자본주의 물이 들 것을 우려하여서일지 모른다.
북한은 중국을 포함해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네팔 등의 12개국에
110여 개의 북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식당의 운영주체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찰총국 등 공작기관, 당 선전부, 39호실, 재정경리부,
내각의 체육성, 상업성, 인민무력부, 평양시 인민위원회, 만경대 위원회 등으로 다양하다.
현재 북한은 해외 북한식당을 ‘외화벌이를 통한 통치자금 마련’과 ‘대남 정보 수집 창구’ 라는 두 가지 용도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해외 식당운영을 통해 연간 500~1,000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소득은 북한 통치자금 사금고인 조선로동당 39호실에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해외 북한식당들은 식당에 출입하는 한국인 상사원, 주재원, 관광객으로부터 대남 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하여 대남 공작 부서인 정찰총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심양에는 그들의 정보국 사람들과 우리쪽에서 파견 나간 사람들이 서로 응시하고 적대시하며 때로는 주고받고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김정은이 들어서고서는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미사일을 쏘아올리니 돈은 갑절에 갑절이 더 들어갈 것이고 그러니 더욱 닥달을 해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안 파는게 없고 물건 파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몽골 울란바토르 중심가의 북한 식당 백화관에서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다시 내려와 쉴 틈도 없이 손님들을 접대하는 그녀들, 음식은 북한에서 가져왔다며 바닷가재나 삭스핀, 북한산 털게 등 비싼 메뉴를 추천한다.
식당 한 켠 방에서는 그림들을 팔고 있다. 계산대에는 인삼과 약재 등을 쌓아 놓고 판다. "뇌에랑 좋고 심장에랑 좋은 약...이 약이 효과가 더 쎕니다. 비싸단 말입니다. 48달러."고급 양주도 종류별로 팔고 심지어 화분까지 판다. 파는 품목이 2, 30가지가 넘어 차라리 잡화점이라고 하는 게 맞다. 대북제재 등의 여파로 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곳 울란바토르 안에 있는 북한 식당들 사이의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시내에 있는 다른 북한 식당. "평양술은 여기에만 있습니다.(이거 백화관에 없어요?) 이거 새로 나온 거라서 없습니다." 이마저도 신통치 않자 북한판 비아그라까지 팔고 있다. 극심한 영업난에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구잡이로 팔고 있는 현실, 이러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고 말 것이다. 도망을 치든 끌려가든. 같은 동족으로서 측은하기 그지 없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서탑에 펼쳐진 평양관, 모란관, 묘향산, 동묘향산, 동명관 식당...
요즘은 동묘향산 미녀가 최고 얼짱이라 하던데 가보고 싶지만 우리는 곳에 들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다. 특히 술을 마시면 끝을
모르는 분이 두분이나 계신데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북한사투리를 듣다 보면 중독이 돼 돈은 철철 새고 말 것이다. 나도 절제를 장담할 처지가 못 된다.
1780년 연암
선생이 연행을 향할 때 호기심에 그는 기생집을 따라 들어 갔었다. 글에는 없지만 아마 한 미모 연상하며 들어갔을 테다. 차라리 상상하는 편이
훨씬 나을 뻔 했다고 한 그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당시 그들이 댓가로 지불을 한 것에 대구 포가 끼어 있었다. 그 시대 동해는 명태 서해는 조기 남해는 대구라 하였다는데 그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싶었었다.
요즘 그녀들이 우리 화장품을 좋아한다는데 대구포 대신 화장품을 건네면 안되려는가. 당시는 사내가 비파를 타고 여인은 의자 위에서 봉(鳳) 부리에 금고리를 물린 저를 불고 또 한 여인은 주렴을 걷고 나오더니 손에 박자 판을 들고 이어서 소리가 사뭇 구슬퍼서 남의 창자를 에이는 듯싶고, 참으로 들보의 티끌이 저절로 나부낀다 하였는데. 지금은 전자올갠에 맞춰진 구성진 찔레꽃 노래, 남쪽나라가 눈앞에 선하다.
풍류는 시대를 따라 변하지만 그러해도 여심을 탐하는 사내들의 흑심은 변함이 없을 테다. 돈만 충분하다면 한 번 들려봄이 괜찮을 듯도 싶은데...옛부터 평양기생은 알아주지 않던가.
문앞에서 살랑살랑 눈웃음치는 모란관 여인, 그녀를 보자 제주의 명기 애랑의 계교에 넘어가 뒤주 속에 들어가 망신당하였던 배비장이 언뜻 떠오르고 티엔립에서 가이드에게 건네는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도 싶다. 요즘 와 안오십네까? 보고픈데 자주
오시라요.~이 세상에 여자에 유혹되지 않겠다고 본처에게 장담하던 배비장이 어디 한 둘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