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7월 21일 채만식이 출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채만식의 ‘성격’을 “소설가,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의한다. 그가 독립운동기 막바지인 1940년대에 징병 지원 활동 등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한 이력 탓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다고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 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한 그의 수작들을 아니 읽어볼 수도 없다. 그는 창작 기법에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특히 풍자적 수법에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만식의 소설 중 흔히 백미로 거론되는 작품은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 〈논 이야기〉 〈탁류〉 〈태평천하〉 등이다. 〈태평천하〉의 주인공은 윤직원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한 그의 아버지 윤용규는 수령의 토색에 시달리던 끝에 화적떼의 습격에 목숨을 잃는다. 그 일로 윤직원은 자신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에게 극심한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일본인들이 재산을 지켜주겠다면서 윤직원에게 접근한다. 윤직원은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경찰서 무도장 건설에 큰 기부를 한다. 하지만 인력거를 타거나 나이 어린 기생을 데리고 놀 때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소작인들도 자신의 ‘자선’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 존재로 여긴다.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윤직원은 아들과 손자들이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주리라 기대한다.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아들은 노름에 빠지고, 큰손자 종수는 제 아비의 첩과 통정한다. 마지막 희망은 둘째손자 종학뿐이다. 그때 소식이 들려온다. 유학 중인 종학이 사상 문제로 동경 경시청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윤직원은 분노한다. 일본 순사들이 치안을 유지해주고 화적떼들을 없애주는 이 태평천하에 그 따위 사회주의 운동은 왜 한단 말인가! 그는 도무지 손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토록 살기 좋은 태평천하에 무슨 불만이 있단 말인가? 이 태평천하에!
1851년 홍수전이 중국에서 태평천국 ‘운동’을 일으켰다.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교과서에서 분명히 태평천국의 ‘난’으로 배웠는데, 역사서와 포털portal 등에 한결같이 ‘태평천국 운동’으로 소개되니 얼떨떨하다. 사건의 성격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평가하는 세상이 변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학자들이 시대에 곡학아세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홍수전은 33세이던 1837년 어떤 노인으로부터 “악마와 요괴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는 꿈속 노인을 서양인 선교사가 준 크리스트교 서적 속 여호와로 확신했다. 그는 배상제회拜上帝會라는 종교단체를 만들었고, 우상숭배 거부 ‧ 여호와만 경배 ‧ 차별 없는 사회 건설을 약속했다.
1851년 홍수전은 새로운 나라 ‘태평천국’ 건국을 선포하고 청군과 싸우면서 북진했다. 1853년 태평천국군은 50만에 이르렀고, 남경을 정복해 천경天京으로 바꾼 다음 태평천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때 태평천국군은 남자 180여 만, 여자 30만 명에 달했다.
“토지가 있으면 함께 경작하고, 음식이 있으면 함께 먹으며, 옷이 있으면 함께 입고, 돈이 있으면 함께 쓰고, 장소에 따라 불균형이 있거나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자가 없도록 한다.”
백성은 모두 평등한 형제자매로 인정되는 반면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았다. 토지는 공평하게 분배되었다. 여성을 옭아매었던 전족 폐습은 폐지되었고 노예매매와 축첩은 금지되었다. 혁신적인 조치들이 취해지자 민중은 환호했다.
그러나 내분과 고위 관리들의 부패 탓에 태평천국은 1864년 멸망했다. 서양 제국들은 태평천국이 크리스트교 국가를 선언한 초기에는 관망했지만 외국 조계 공격 등 외세로부터 중국을 수호하겠다는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자 청을 도와 진압에 가담했다. 14년이나 지속된 내전 끝에 홍수전을 비롯한 태평천국 지도자들은 자결하거나 처형당했다.
윤직원은 반민족적 불평등사회를 태평천하라고 했고, 홍수전은 민족적 평등사회를 태평천하라고 했다. 윤직원에게도 홍수전에게도 태평천하는 오지 않았다. 심지어 소설 〈태평천하〉를 쓴 채만식조차 반민족행위자로 돌아섰다. 소설로든 현실에서든 태평천하는 참으로 어려운 이상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