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진주같은 인생이다
젊음이 남에게 자유로운 것이라고 한다면 늙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젊을 때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지만 늙어 갈수록 체면으로 인해 행동이나 처신은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옛말에도 예순에는 귀를 열고 칠순에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인격이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들이 동화 속처럼 순수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친구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여자아이가 휠체어에 타고 횡단 보도를 건너가는 할아버지를 뒤에서 밀고 가다가 갑자기 정차하고 있는 자동차들을 향해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밀고 조금 가다가 다시 인사하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마음이 울컥하고 진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또 지난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 무렵이었다. 10차선 대로의 횡단 보도를 아흔 살은 되어 보이는 가냘픈 노인이 리어커에 산더미같이 폐지를 싣고 건너고 있었다. 도로의 중앙은 야트막한 언덕이다. 비가 오면 빗물이 양쪽 도로변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것 같다. 노인은 언덕을 오르는 것이 힘에 부쳐서 쩔쩔매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젊은 여성이 멈춰서더니 노인의 리어커를 밀었다. 그러자 리어커가 조금씩 중앙으로 올라갔는데 아무래도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그때 한 젊은 남성이 따라붙더니 힘차게 밀어서 도로 중앙 턱을 넘어서게 되었다. 파란불이었던 신호등은 이미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으나 정차해 있던 자동차들은 노인이 무사히 횡단 보도를 건널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인도에 서 있던 구경꾼들이 박수를 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젊었을 때는 강하게 보이고 싶은 본능 때문에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그러나 늙어 갈수록 평범한 일에도 웬만하면 감동하고 눈물도 자주 흘린다. 눈물샘이 물러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눈물샘 근육에 힘을 빼고 살기 때문인 것 같다. 고개를 쳐들고 어깨를 펴고 걷는 시절에는 호기 있게 큰소리로 웃기도 했지만 이제는 축 늘어진 채 팔자걸음으로 느슨하게 걸으면서도 조용히 혼자 웃음 짓는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늙어서 자유롭다는 것은 방종과는 다르다. 자유로워도 될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고 책임도 따른다. 엉뚱한 일탈은 방종이지 자유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자신에게 자유로워진다고 해도 그들의 판단이나 사고가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륜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륜을 논할만한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듣고 읽고 쓰는 평생의 학습이 뒤따라야 한다. 학습의 방법으로는 독서가 좋은 스승인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지식을 얻는 것도 있지만 그 속에 나의 체험이 있는지 그럴 때 작가는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경륜을 쌓는다.
늙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진주 같은 인생인 것 같다. 조개는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 모래 때문에 까칠하게 몸속을 파고드는 고통을 이겨내고 진주라는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듯 늙음이라는 것은 삶의 희로 애락을 이겨낸 영광을 안고 가는 것 같다.
그런데 늙어 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떤 이는 무슨 글을 쓰려고 종이하고 펜을 찾는 사이에 쓸 말 다 까먹는다고 한다. 또 일어섰다가 왜 일어섰는지 용건을 까먹고 다시 앉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오랜 세월 뇌를 써왔기 때문에 축적된 지식이 너무 많아서 혼동이 일어날 뿐이지 뇌 기능이 저하된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면서 좋은 소재가 떠 올랐다. 그 소재를 가지고 처음에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생각하기도 하고 글을 이어가다가 결론은 어떻게 맺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보면 나무와 들꽃들을 보면서 또 다른 소재가 떠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조금 전에 무슨 소재였는지 생각해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초조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좋은 소재가 떠오를 테니까 그때는 메모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 그만이다.
(2024. 7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