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 소묘 1
마당
대문도 없다. 텃논머리에서 수숫대 울타리가 양쪽으로 늘어선 거르막으로 접어들면 몇 걸음 만에 마당이다. 대문이 있을법한 자리에는 어른 팔뚝 굵기의 포플러 두 그루가 양쪽으로 갈라 서 있을 뿐이다.
마당에서는 모가지 긴 수탉이 암탉들을 거느리고 모이를 쪼는 중이다. 며칠 전 보리타작 때 떨뜨린 낟알을 이삭 줍듯 찾아 쫀다. 흰둥이는 마루 밑에서 대가리를 쭉 뻗은 앞발에 내려놓고 멀뚱한 눈으로 닭들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 바라지 앞 개밥구덩이에 그득하던 밥을 다 핥은 포만감에 젖어 있는 모양이다.
바라지에서 서쪽으로 벋은 정지 벽 창살 바로 아래, 옆으로 긴 타원형의 대쪽으로 엮은 닭의 집이 매달려 있다. 저녁이면 어미닭과 병아리는 어리에 들고 어른 닭들은 모두 이 닭둥우리에 들어가 밤을 새운다.
안채와 몇 발짝 떨어진 서쪽에는 헛간채가 있다. 허청은 마당에서 곡식을 말릴 때 쓰는 멍석, 곡식에서 검불이나 먼지를 털어내는 풍구, 물건을 나르는 지게와 갖가지 농기구들을 간수하는 곳이다. 길쌈을 할 때에는 여기 가운데 짚불을 펴고 무명, 모시, 명주 등 각종 베를 매기도 한다. 그리고 안쪽 구석에는 벽에는 짚둥우리가 매달려 있다. 산란기를 맞은 암탉들이 들어앉아 알을 낳는 곳이다.
허청 북쪽 처마 밑을 타고 몇 발짝 가면 허청이 끝나는 곳에 잿간 입구가 있다. 잿간 입구 바로 뒤에는 중항아리 크기의 전소매통이 서 있다. 이 통은 남자들의 오줌만을 받는 것으로 여기서 삭힌 오줌은 뒤란 채소밭 거름으로 쓰인다. 잿간은 부엌에서 재소쿠리에 담아 온 재를 모어 두는 곳이다. 잿간 입구 벽 안쪽에 붙여 묻어놓은 큰 항아리가 측간이다. 측간 뒤 한 쌍 똥통 위에 누운 똥바가지는 재를 뒤집어쓴 채 한가하다. 측간에 내용물이 차면 똥통에 담이 똥지게로 날라 들에 낸다. 남새밭 채소를 가꿀 때에는 상추, 갓, 솔 등의 이랑에 뿌리기도 한다.
허청 남쪽에 마련된 좁은 공간은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바깥 측간으로 앞집 뒤란 울타리 바로 옆이다. 측간 앞은 한 칸짜리 돼지우리다. 돼지우리 앞에 놓인 구정물동이에는 호박씨며 병든 채소 잎이 둥둥 떠 있다. 우리 안 돼지밥구덩이 역시 비어 있다. 검은 색 중돼지는 새로 넣어준 마른 풀을 요 삼아 편안한 휴식 중이다.
돼지우리 옆은 덩치 큰 보릿대가리가 차지하고 있다. 보릿대가리는 볏짚가리와 달리 단 없이 마구잡이로 쌓아 올려 가지런하지 않다. 그러나 여름철 아궁이 땔감으로는 겨울철 볏짚에 버금갈 만큼 긴요하다.
보릿대가리 옆 두엄자리는 기왕의 두엄 위에 며칠 전 타작 뒤에 쓸어 올린 쓰레기가 누렇게 덮여 주인 잃은 묘의 봉분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 두엄자리와 남새밭 울타리 사이, 작은 웅덩이에는 거무죽죽한 물이 자작자작하다. 남새밭 울타리를 타고 벋은 호박넝쿨이 무성하다. 장마철에는 집시랑 물이 흘러들어 제법 도랑을 이루기도 하지만 장마 후에도 어지간한 가뭄이 아니고는 마르는 일이 없다.
두엄자리 옆 웅덩이는 안채 윗간 부엌 옆 돌확 뒤로 난 좁고 얕은 도랑과 연결되어 있다. 돌확은 여름철 밥 짓기 직전 절구에 찧은 보리를 가는 데 주로 쓴다. 갈아낸 보리쌀을 씻어 밥솥에 처초 삶아 건져 두었다가 다시 지어야 꽁보리밥이 완성된다. 확은 양념으로 쓸 고추를 갈 때나 갯벌에서 잡아온 농게를 으깰 때에도 요긴하다. 곰삭은 농게젓갈 한 종지면 한여름 고봉꽁보리밥도 마파람 앞에 게눈이 된다. 지금은 확의 가장자리에서 빈둥거리는 좀돌이 반들반들하다.
마루 중간 기둥에서 마당 입구 포플러 사이에 쳐놓은 빈 빨랫줄을 바지랑대 하나가 맥없이 떠받치고 있다. 길쌈 후 마전하는 베의 무게에 짓눌릴 적에는 바지랑대 두 개로도 힘겨웠는데….
앞집 뒤란 개가죽나무 우듬지에 걸린 태양이 조금씩 열기를 더해간다. 마루 밑에 앉아 있던 흰둥이가 느릿느릿 일어서 몇 발작 토방으로 나오더니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보리낟알을 쪼던 닭들은 볕을 피해 보릿대가리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허청 짚둥우리에 뛰어내린 씨암탉이 ‘꼬꼬댁, 꼬꼬댁’ 알 낳았다는 신호를 한다. 그늘 있던 수탉이 고갯짓을 하며 ‘꼬꼬, 꼬꼬’ 화답을 한다.
하품을 하고 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흰둥이가 꼬리를 살살 내두르며 입구를 향한다. 때맞추어 어깨에 괭이를 걸멘 남자와 손에 호미를 든 여자가 마당에 들어선다. 흰둥이는 꼬리에 더 힘을 주어 내두르며 이들 부부를 맞이한다. 여자가 흰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애기, 집 잘 봤제.” 웃음을 보내자 흰둥이는 주둥이를 들어 여자의 손등을 핥으려한다. 여자가 토방에 올라 머리에 두른 무명수건을 벗어 탈탈 털자 흰둥이는 주춤 물러서 여자의 모습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무성한 넝쿨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호박꽃 봉오리가 슬며시 입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