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리송하다
유 병 덕
2015harrison@naver.com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았다. 갑년이 지나도록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 진 적이 없으니 말이다. 알 수 없는 역병이 지구촌을 3년 가까이 설쳐대도 무사하게 지냈다. 누가 뭐래도 조심조심한 덕일 것 같다. 지인이‘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비아냥거림도 웃어넘기며 버티어 냈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대면 강의 요청이다.
한참 망설였다. 텔레비전 속에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식당이나 카페에 사람이 붐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도로에 움직이는 차량이 가득하다. 그간 까칠했던 역병이 부드러워 진듯하다. 하나 정부 발표에 의하면 오미크론 하위변이가 퍼지며 신규 환자가 늘어나 불안하다.
어쨌든 출강 요청에 동의했다. 인재개발원 측에서 대면으로 강의를 하되 강의 도중 10% 이상 환자가 나오면 비대면 강의로 전환한다고 단서를 달아 놓았다. 그러니 두 가지로 강의를 준비해야 했다. 비대면 강의는 지난번 강의 자료를 일부 수정 보완하여 노트북에 담고 대면 강의는 새로이 준비해야 했다. 현장 강의에 맞게 강의용 PPT를 새로 구성하고 실습과제에 맞는 사례를 찾아 USB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제 대면 강의가 부담스럽다. 수많은 이를 만나기에 역병이 걸릴까 봐 두려워 마스크를 단단히 챙겨야 하고 외모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힘든 일이다. 사실 처음 비대면 강의를 시작할 때 진땀 뺐다. 강의시간을 맞추느라 강사들끼리 모여 연극배우처럼 밤새워가며 연습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비대면 강의가 수월하고 편하다.
출강을 하루 앞두고 담당 주무관의 연락이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비대면 강의할 때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지만, 대면 강의는 서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약국에서 자가 검진 키트를 구입하여 검사했다. 검체 추출용액 튜브를 상자에 고정하고 멸균 면봉을 콧구멍에 넣어 검체를 추출하여 튜브에 넣고 저어주었다. 카세트 파우치를 뜯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체 혼합액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타이머를 눌렸다. 검사 결과 두 줄이 나오면, 강의 준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에 초조하게 15분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 한 줄이 나와 검사 패드를 담당 주무관에게 확인받고 기숙사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른 아침,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강당에 오르니 모든 것이 처음인 듯 낯설다. 마스크를 쓰니 누가 누군지 알아볼 재간이 없다. 그래도 강사가 누구인지는 소개해야 했다. 첫 화면에 칠갑산을 배경으로 지게 지고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칠갑산 지게꾼의 아들이라고 운을 뗐다. 학력이나 경력은 스크린에 글자가 춤을 추며 날아간다. 교육생들이 화면을 보며 우스웠던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쯤 되면 라포 형성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할연기와 역량토론, 그리고 집단토론을 이어가면서 역량별 사례를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흥미롭게 학습 분위기를 이끌었다. 갈등관리, 의사소통, 동기부여, 주민지향, 조정통합….
쉬는 시간이면 누군가 커피를 단상에 갖다 놓는다. 고마운 일이지만 역병이 무서워서 마시고 싶지 않았다. 슬그머니 강사휴게실로 가져와 처리하고 빈 컵을 올려놓고 마신 척했다. 온종일 코로나19에 신경을 쓰다 보니 해질 무렵엔 몸이 녹초가 되었다.
강의 마지막 날, 어렵사리 강의를 마치고 차에 오르니 몸살기운이 돈다. 목이 아프고 팔다리가 늘어지며 만사가 귀찮다. 긴장이 풀려서 그려니 여기며 저녁노을과 같이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문간방에 누우니 오슬오슬 떨리며 한기가 느껴진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셔서 잠을 이룰 수 없어 야간 병원을 찾아보니 마땅한 병원이 없다. 이렇게 아파보긴 난생 처음이다.
결국 아침에야 병원을 찾았다. 목구멍이 아파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간호사가 체온을 재니 38도가 넘는다. 콧구멍에 면봉을 넣고 이리저리 후비더니 기다리란다. 얼마 후 담당 의사가 부르더니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오늘부터 일주일간 격리하란다. 가족이든 누구든 일절 접촉하지 말라며 종합감기약을 처방해준다. 얼마 후 보건소 여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인적 사항을 확인하더니 격리수칙을 일러주며 준수하라고 당부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약속해놓은 강의, 모임, 골프 운동 등의 일정을 모두 취소시켰다.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다. 정부가 정한대로 격리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나와 호텔로 갔다. 호텔직원이 몇 마디 묻더니 고개를 젓는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문간방으로 돌아와서 둥지를 틀었다. 한집에 아내와 둘이 살면서 무늬만 부부지 남남으로 지내게 되었다. 행여 그녀가 감염될까 두려워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일주일간 홀로 누워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코로나 환자라니! 이 역병이 어디서 왔을까? 잠복기간에 만났던 가까운 접촉자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역학조사를 해본다. 강의하러 가기 전에는 조상님 산소에 벌초하러 다녀온 것밖에 없는데, 대면 강의 가서는 기숙사, 구내식당, 강의실에 꼼꼼히 마스크를 챙겨 쓰고 다녔는데, 심지어 교육생이 마시라고 준 커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구한테서 감염된 것인지, 정말 아리송하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비아냥거리던 지인이 남몰래 선물로 보내왔을까.
세상사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또 누구나 건강은 장담할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마스크를 썼는데도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게 다가온다.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걸리지 않는 게 상책일거다.
시원한 가을바람 한줄기가 폐부를 찌른다. 멀리서 계룡산이 물 그래미 내려다보는 것 같다. 갑자기 창가에 날아온 텃새 한 마리가 웃으며 무어라 말하는 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다면 운명으로 받아 드리라’고 말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