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1)… ◇
* 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집필] 호산아 오상수 *
▶ [프롤로그] 미지(未知)의 땅, 신비(神秘)의 히말라야를 그리며
☆… 그곳에 가고 싶었다. 너무 아득하여 뭇사람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는 곳, 이 세상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Himalaya), 내 몸소 그 준엄한 산정에 오르지는 못할지라도 장엄한 설산의 진면목을 보고 싶었다. 나는 인생이라는 산을 지고 가슴 저리는 큰 산 앞에 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생(生)의 의미를 생각하고 싶었다. 우리 인생이란 얼마만큼의 짐을 지고 가는 여정이 아닌가. 산을 오른 지 어언 40여 년, 언제나 뜨거운 마음으로 산을 우러르며, 겸허한 발걸음으로 산길에 들어서곤 했다. 그 때마다 산은 생명의 어머니가 되어 나를 안아주고 넉넉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고 했고, 나의 온몸을 아낌없이 달구고 혹독한 고통으로 나를 벼리기도 했다. 그리고 산은 바로 그 자신[산]을 내 온몸에 실어놓는다. 산을 내려올 때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실린 산, 그것이 비로소 생명의 기운이며 생의 의미라는 것을 아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산길에서 흘린 그 수많은 땀방울이 내가 산에게 올리는 보잘 것 없는 헌정(獻呈)이었다. 산(山)을 통하여 하늘을 가까이 하고, 산(山)을 통하여 자연의 숨결과 호흡하고, 산(산)을 통하여 나는 모든 삶의 의미(意味)을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산(산)을 통하여 생명(生命)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었다. 이제 극한의 땅, 더 이상 높은 데가 없는 지상의 극점(極點), 그 앞에 서서 내 영혼의 알몸을 드러내보고 싶었다. 아니 너무 거창하다. 그냥 세계의 오지 국가라는 네팔이 늘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고 기백이 살아 있는 산악인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그 히말라야 설산(雪山)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그리고 히말라야 산록 3,500m 이상의 고지에서만 산다는 그 착한(?) 야크의 눈망울이 보고 싶었다.
☆…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던가. 기회가 왔다. 25년 동안 제집 드나들듯, 히말라야에 미쳐 살아온, 알피니스트 이상배 대장과 연결이 된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나의 히말라야 열망을 얘기한 바 있었지만, 내 여건이 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 이제 사회적 역할 구조에서 벗어나 ‘자연인(自然人)’의 몸이 되었으니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가족이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걱정하고 만류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내 마음은 네팔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네팔은 우리 한반도의 3분의 2정도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 작은 나라지만, 아열대의 평원과 해발 7,000~8,000m급의 고봉(高峯)들을 품에 안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세계의 지붕, 지구 제3의 극지라고 일컬어지는 히말라야의 첩첩고봉이 만년설을 뒤집어 쓴 채, 세계의 뜻 있는 사람과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남으로는 인도, 북으로는 티베트와 접하고 있고, 동으로는 부탄, 서쪽으로는 인도-파키스탄과 접하고 있는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야말로 만 리 밖 외진 오지(奧地)의 나라, 오래 전부터 강렬한 흡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원정대는 이상배를 대장으로 하여 부산에서 결성되었다. 대장을 포함한 다섯 명이었다. 서울에서 나와 나의 지기 기원섭이 참가하여, 최종 7명이 확정되었다. ‘2013-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원정대’는 그렇게 결성되었다.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부산의 본대는 김해공항에서 출발하고, 서울의 두 대원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여 태국의 방콕국제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가는 미지의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기대와 설렘, 우려와 걱정이 없는 바는 아니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나의 호기심은 결행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2013년 3월 04일 (월요일) : [이상배 대장 회동] (오후 6:30, 서초동 <기원섭법무사> 사무실)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트레킹>(03.20.~04.03.) 원정대의 ‘외윤(畏尹) 이상배(李相培)’ 대장이 상경했다. 서울에서 참여하는 나와 기원섭에게 트레킹의 코스와 준비물 등, 떠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정 양산에서 상경한 것이다.
☆… 3월 4일 월요일 오후 6:30, 서초동 기원섭법무사 <작은 행복> 사무실에서 회동했다. 기원섭 부부와 나, 백파가 함께 자리했다. 먼저 이상배 대장은 준비해온 ‘안나푸르나 등산지도’ 펴놓고 코스를 짚어가며 설명을 했다. 이 대장은 히말라야맨이다. 히말라야 고봉 여러 곳을 등정하기도 하고 원정대를 이끌고 수없이 다녀온 곳이라 지도에 있는 지명 하나 하나에 대한 실감 있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준비물에 관한 내용을 현지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세세하고 명쾌하게 짚어주었다. 저녁 8시가 넘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자리를 식당으로 옮겨 저녁식사를 하면서 여담을 나누었다.
▶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
☆… 히말리스트 '외윤(畏尹) 이상배(李相培)' 대장은 세계 7대륙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초오유(8,201m), 가셔브롬2봉(8,035m), 세계 4위 로체(8,516m), 티벳루트 초모랑마(8,840m) 등 히말라야 8,000m급 산봉을 여러 곳을 등정하였고, 그중 에베레스트는 여러 차례 등반하였다. 그리고 1990년 미국의 요세미티100주년을 기념하는 암벽 등반을 한 것을 비롯하여,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4,101m), 유럽 알프스산맥 종주, 대만의 옥산(3,952m), 일본의 북알프스(3,190m) 종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7회 등정, 남미의 안데스사맥의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 3회 등정, 유럽 알프스 몽블랑(4,810m) 10회 등정, 이란 최고봉 다마반드(5,671m), 히말라야 메라피크(6,654m) 등정과 북미 최고봉 맥킨리(6,194m)에 산악스키, 유럽의 최고봉 엘부르즈(5,642m) 등을 등정하였고, 2010년에는 히말라야 히무룽(7,126m) 한국 초등(初登)한 전문 산악인이다. 그리고 2001년에는 일본 산악인 노구치 켄과 함께 에베레스트 클린원정대를 조직하여 등산루트에 버려진 쓰레기를 청소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 외 패러그라이딩, 산악스키 등에도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한 만능산악인이다. 현재는 한국히말라야클럽 이사, 사단법인 영남등산문화센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히말라야 트레킹가이드로 여러 차례 다녀온 그야말로 네팔, 히말라야 원정의 베테랑이다. 일찍이 아웃도어 ‘콜핑’의 모델을 하기도 했다.
▶ 안나푸르나(ANNAPURNA) 원정과 각별한 의미
☆… 내 일찍이 히말라야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동경을 해오던 중, 안나푸르나 등정의 쾌보를 전한 동아일보 1999년 4월 30일자의 보도를 보고 스크랩해 둔 적이 있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 원정을 앞두고 그 기사를 읽어보았다.
* [동아일보] 엄홍길 씨 안나푸르나 등정 / 8천m급 고봉 11번째 올라 (1999년 4월 30일자의 보도)
☆…「99.안나푸르나 한국-스페인 합동원정대」의 엄홍길 대장(39)과 지현옥 대원(38)이 3월 29일 안나푸르나Ⅰ봉(8,091m)에 올랐다. 엄 대장 일행은 9시간여의 사투 끝에 지구상에서 열 번째로 높은 안나푸르나Ⅰ봉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엄 대장은 안나푸르나Ⅰ봉 등정에 다섯 번째 도전 끝에 성공했으며 자신의 11번째 히말라야 8천m급 고봉 등정의 꿈을 이루어냈다. 한편 스페인의 산악인 워니토 오아라사발(43)은 이날 안나푸르나Ⅰ봉에 오름으로써 히말라야 8천m급 14개의 고봉을 모두 등정한 세계 여섯 번 째 산악인이 됐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1993년 한국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이 그 안나푸르나Ⅰ봉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 길에서 실종된 것이다. 지현옥은 지금도 안나푸르나 설곡(雪谷) 어느 곳에 잠들어 있다. 히말라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엄청난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준 비보였다. 지현옥은 일찍이 1989년 매킨리 등정을 시작으로 안나푸르나 등정 직전 1997년 가셔브롬Ⅰ봉, 1998에는 가셔브롬Ⅱ봉에 오른 탄탄한 여성 히말리스트이다. 당시 등반대장이었던 엄홍길의 안나푸르나 등정의 순간을 기록한 내용이 아주 인상 깊다.
☆… “안나푸르나 신이여, 안나푸르나 여신께 감사합니다.” 엄 대장이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달하여 절규하듯 내뱉은 일성이다. 안나푸르나는 엄 대장에게는 악몽의 산이었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그토록 처절하고 피눈물 나는 산은 없었다. 등반을 하면서 3명의 동료를 잃었고, 엄 대장 역시 죽음의 고비를 넘어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고난의 땅이다. 1989년 처음으로 안나푸르나를 대면한 이후 10년 간 다섯 번을 시도, 네 번의 실패 끝에 1999년 3월 29일 겨우 올라설 수 있었던 정상에서의 감격적인 첫 외마디였다. [*1]
☆… 그리고 2010년 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하고 세계 6대륙의 최고봉을 다 오르고, 남극과 북극의 극점까지 밟은, 한국의 걸출한 산악인 박영석이 2010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Ⅰ봉(해발 8,091m)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내기 위해 올랐다가 강기석, 신동민과 함께 실종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조난이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에 그들을 추모하는 돌탑이 세워져 있지만, 우리는 안나푸르나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곳에는 지금도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은 우리의 산악인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정을 준비하고 트레킹을 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모든 것을 산에 바친, 뜨거운 그들을 생각했다.
☆…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삶이란 기쁨과 슬픔, 애환 그 자체이고, 역사란 우리 인간의 영광과 좌절이 만들어가는 노정이 아닌가. 내 인생 65년의 삶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볼 여지가 필요한 때,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들게 된 것은 참으로 남다른 감회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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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홍길의 휴먼리더십 ‘거친 산 오를 땐 독재가가 된다’. p132. (김경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