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위에 올려진 걸레,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도 도무지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마우스, 다 써놓고 저장도 해놓지 않은 채 지워버린 원고, 화가 수없이 클릭을 했는데 에러가 나 컴퓨터가 다운이 돼 버리기도 하고, 또 shift키를 8초 누르고 있었더니 필터 기능으로 가버리면서 삑 소리와 함께 일시 다른 기능이 정지해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무언가 뒤죽박죽이된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세상사는 일이 어디 가지런한 대로만 되어진다던가. 어쩌면 응지에 볕 뜨고 양지에 그늘지는 게 세상이지. 항시 좋은 날만 오란 법도 없고, 항시 쪽빡 차라는 법도 없다. 가만가만 잘 나갈 때 조심허고 힘들 때 참아낼 일이다.
그래 분명히 눈이 와서 그럴 것이여. 눈이 오니 무신 놈의 연애질들 허니라고 다들 이메일 쓸 것이고 첫눈오니 첫사랑이 그리워 또 무신 감상에 사로잡힌 거라고. 어둡고 바람불어 쓸쓸허구나. 그러니 내 마우스가 지랄을 떨지, 아무리 가자고 고삐를 당겨도 말을 안듣는 쥐새끼 같은 놈이라니, 난 그 쥐새끼를 모니터를 향해 던져버렸어. 지깟 놈이 춤을 잘 추면 얼마나 잘 춘다고, 혼자 지랄이야 지랄이. 몇 번을 땅에 내팽개치고 또 던져도 녀석은 무서워하지 않더구만, 계속 춤을 추는 것이 요즘 젊은 것들 답더라고. 그래 한 세 번은 예의상 던졌는데도 녀석의 몸은 부서지지 않더군. 배가 뒤집히고 속 내장이 나왔는데 불은 껌뻑껌뻑 그 안에서 번쩍이더라구. 이 놈이 단단하긴 단단하군그래, 꼬리를 왜 그리 길어. 녀석의 본댁에 가서 녀석의 소속이 잘 붙어 있는지 확인까장 했는데도 녀석은 계속 춤만 추는 거야. 그렇게 녀석은 진정시키면서 겨우겨우 사정사정 조심조심 길을 찾아가 그 놈의 밑줄 나타난 클릭이란 걸 허면서 껌뻑하고 사이트로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고개를 넘어갔지. 그래 천신만고 끝에 글을 써놨더니만 글씨, 어디서 장난을 쳤는지 천둥을 쳤는지 해까닥 글이 뒤집혀 글이 사라져 버린거야. 어매, 글이 어디갔는지 아무리 뒤치기를 해도 없어, 글이. 그래 또 신경을 써가면서 그 놈의 엑스를 찾아 각기표를 해 두었더니만 글씨 조금 전에 누른 그 엑스표시 전에 아 글이 딱 떠 있더라구. 참 기막힐 노릇이지. 그래 한 번도 쥐새끼 녀석은 던져버리고 불빛 빤짝이는 놈을 가져다 진정시켜 놓고 있었더니 아들 녀석 다가와 그러더라구. “아빠, 한 번 껐다 켜봐” 아이구 신세대는 신세대에요. 그래 다시 그 춤 추는 녀석을 달래 컴퓨터를 끄고 켰더니만 괜찮아유. 참으로 자신이 원망스럽게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풀렸는지, 어디가 열받았는지 그렇게 기능이 안 되고 소통이 안 될 때, 너무 속 끓지 말고 다시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 마우스 녀석을 생각하니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시유. 통닭 배달을 하던 내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기는 그렇고 어디 가서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발견한 그 클래식바의 이야기지요. 배달을 다닐 때 붉으락푸르락한 불빛을 켜놓은 클래식바의 간판불빛이 무슨 배달의 기수에게 찾아온 청신호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들를 그런 희망의 분기점 같은 것으로 생각을 했으니께요. 내가 그곳을 처음 가게 된 건 순전히 배달 때문이었지유.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환한 네온 불빛으로 사람을 설레게 하던 클래식 바, 아담한 팬션식 분위기에, 어두운 조명 또한 마음 편하게 다가왔지요.
교양있고 부드러운 매너의 주인과 미소가 고운 여자의 깔끔한 세라제복이 눈을 번쩍 띄워주었죠. 이선희. 그 미소가 곱던 긴 머리의 여자 이름이었죠. J에게로 이름을 날렸던 여자 가수와 이름이 같았지만 분위기는 훨씬 더 세련되고 이뻤지유, 그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저 그곳에 가서 재즈 음악을 듣는 척 네모난 냅킨에 시를 적기도 하고 시를 적는 척 옆 테이블에서 그녀와 다른 손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받아 적곤 했지요. 그녀는 그런 나를 의식하는듯 의식하지 않았고 의식하지 않는 듯 또 관심을 가져주었어요. 참 그 경계란 것이 사람이 애를 태우는 것이드만요.
그녀는 내가 찾아가면 항시 그 아이스티를 내주었지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시원한 아이스티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어요. 아마도 약간의 알코올을 넣은 것이었는데, 두잔을 마시고 나면 딱 통닭 한 마리 값이더구만요. 그래 닭보시 한지유. 통닭 시키는 고객에게 우리 패밀리 레스토랑 차원에서 그저 싸비스 비슷하게 내가 직접 밤에 찾아가 고객관리를 헌 거라고 보면 돼유. 그런데 내가 그 어둡고도 분위기 있는 클래식 바에 간 이후로 그녀는 글씨 통닭을 시키지 않는 거예요. 아 왜 그런디야. 내가 오면 더 시켜주고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감. 대신 그녀는 그저 나를 보고 웃어주었어요. 나를 홀리려는 듯이.
그렇다고 그런 미소에 가볍게 넘어가는 것도 채통머리 없는 짓인 것 같고 무심헌 듯 그저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를 쓰러 온 사람처럼 신중했지유. 그녀는 내가 무언가 몰입해서 시를 쓰는 걸 보면서 미소를 흘리듯 노란 나비처럼 다른 테이블로 날아다녔어요. 그 분위기란 것이 알고보니 클래식 분위기가 아니고 뭐 그 잘 차려입은 정장차림의 여자가 품위 있게 여기저기 술시중 들고 또 좌석에까지 가서 술을 따르고 그러더라구요. 하지만 뭐 그런 것 모른 채 하고 그저 하루 정리하고 가면 그만이다 싶었어요. 글도 못쓰고 통닭 파는 일로 보낸 하루가 아까웠던가 봐요. 그래 그 집 냅킨 죽이면서 시를 써 아이스티 잔과 함께 그녀에게 슬쩍 건네기도 했지요.
그러면 그녀는 살짝 그 메모지를 보고는 보조개 들어가는 미소로 웃곤 했어요. 가끔 그녀는 내 앞으로 다가와 친절한 대화를 나눠주었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한 마디씩 평론가처럼 심각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이런 어록을 남겼어요. [사장님께서는 생각이 복잡하신 분 같아요.] 나는 그 이후로 그곳에 두 번 다시 찾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 눈에는 내가 생각이 복잡해서 그렇게 글을 남기고 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가 봐요. 그 말은 문학을 하는 사람은 그저 머리가 복잡한 사람들이란 뉘앙스로 자신은 그렇게 머리 복잡한 건 딱 질색이란 표정이었지요. 갑자기 그녀의 머리가 휑 하니 비어보이는 것이 왜 음식 먹다가 정내미 떨어진 남자의 심정 바로 그런 것이었지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우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전화를 걸어왔어요. 배달을 시킨 거지요. 감자튀김을 너무 튀기지 말고 튀겨다 주고, 통닭도 너무 맵지 않게 튀겨줄 수 있냐구요. 그래 바람처럼 주문한 바대로 빨간 배달통에 뜨끈한 것들을 넣어가지고 달려갔지요. 그날부터 난 그렇게 다시 그 클래식 바를 밤만 되면 자주 들렀다 왔는데, 어느 날 그 선희란 여자가 그러는 겁니다. [이거 무슨 냄새지?] 그녀는 킁킁 개코 소리를 내면서 어둠 속 조명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 때서야 나는 알게 된 겁니다. 내가 배달로 땀에 절은 옷과 또 홀 물청소와 후라이어 기계 기름청소를 하느라 발가락 사이에서 미끈덕 거리던 물기가 가득함을... 나는 편하다고 그 클래식 바에서 신발까지 벗고서 냅킨을 죽였던 거죠. 옷을 갈아입고 갔기 때문에 그 냄새 또한 갈아입고 갔다고 생각했던가 봐요.
여자는 예민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한 여자이기도 했지만 특히 미각과 후각이 발달된 여자였던가 봐요. 미묘한 감자튀김과 통닭의 맛을 주문할 정도로. 그리고 그 강렬한 내 몸의 체취를 찾아 킁킁 개코 소리를 내면서 찾아왔던 것이. 정말로 그 다음부터는 나도 그곳에 갈 일이 없었고 또 그녀의 미묘한 주문 또한 없었습니다. 그저 그 클래식바의 네온불빛만 어두운 모퉁이에서 빛나고 있었죠. 바람처럼 그곳을 스칠 때면 그곳을 향해 더욱 오토바이 소리를 뒤로하고 스쳐지나갔죠. 바람처럼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