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8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1020 木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374(423)장 ‘나의 믿음 약할 때 주가 붙드네.…’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58:1-11), 설교(15분),
◈ 시편 58편은 ‘악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그 주제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사울 왕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을 때에,
사울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특히 장로들이 사울의 비위를 맞추려고
다윗을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지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표제에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알다스헷’은 ‘파괴하지 말라’는 뜻으로,
제목이나 본문을 고치거나 하지 말고 그대로 살려서 노래하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 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그대로 살려 두고자 하는 뜻으로 봅니다.
◈ 대부분의 시편이 기원이나 찬양의 권유로 시작하지만
오늘 시편 58편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시편들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시작하는데 비해
본문은 ‘통치자들; 인자들’을 부르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서 ‘통치자들; 인자들’은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아들들’이지만
다윗 당시에는 ‘신들’, ‘신들 같은 자’, ‘신 같은 통치자들’을 뜻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어로 [엘로힘], ‘신들’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시편 82편 1절에
“하나님이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라고 표현한 것이 그런 용례입니다.
이 말씀에서 ‘신들’은 ‘권세 있는 왕’ 또는 ‘통치자, 사사, 재판관’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당연히 이 땅에서 인간사를 통치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기에는 그들이 결코 공의를 말하지 않는 겁니다.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너희들이 행하는 재판이 정말 믿을 수 있고, 바른가?”를 묻고 있습니다.
세상의 공의가 흔들릴 때, 억울한 사람이 있을 때,
지도자들이 바르게 말해야 하는데!
직무를 유기하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2절에 보면,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라는 표현은 “심한 폭력을 저울질한다.”는 뜻인데,
저울추는 정확하고 공평해야 당연히 옳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폭력’이 저울추가 되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기 31장 6절에서 욥이,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하고 하소연한 까닭이 바로 ‘힘의 논리’에 따른 불공평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악한 사람의 악은
먼저 그 마음속에 계획되었다가 손으로 실행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3절에서는 ‘원죄’에 대한 교훈을 봅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인류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두 함께 죄인이 되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어머니가 죄 중에서 잉태하였다.”고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본문 4절은 ‘뱀의 독’이라고 표현합니다.
죄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뱀의 독’처럼 위험합니다.
또한 죄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아서 완악하고 불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은
‘귀머거리 독사’와 같이 자기와 남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됩니다.
◈ 10절에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라는 다소 살벌한 말씀이 있습니다.
승리한 군대가 패배한 대적의 시체를 확인하며 전쟁터를 걸어 다니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다윗 당시 사람들은 “의인이 발을 악인의 피에 씻는다.”는 표현을 썼고,
신약시대에는 “양의 피에 씻는다.”는 표현을 같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결국, 악인이 망해야 의인이 바로 선다는 의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의인에게 상급과 보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0장 10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의인에게는 상급과 보응이 있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4절입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첫댓글 장차.. 친히.. 보라~! 아멘.